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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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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된 그날 이후, 아윤은 음악편지 출연진에 ‘테일러드’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카페에서 풀렸던 그 썰이 사실이라면, 곁다리로나마 우리 애가 메이저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 아닌가.

‘진짜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

그룹 사운드… 구체적으로 ‘하수연’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한국이 아이돌 천하니 아이돌로 생각해보자. 세상 어느 아이돌이 노래와 댄스를 배운지 1년만에 아이돌로 데뷔해서 오디션 프로그램 다 깨부수고 메이저 방송 프로그램에 1년만에 출연하겠는가?

2년 미만이면 아직도 연습실에서 돌고 있거나 이제 막 유망주라고 이야기가 나와야 할 시기다. 요즘 독한 돌빠들은 데뷔도 안 한 연습생을 빠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던데, 그런 애들도 ‘얘는 아직 한참 멀었음’ 이라고 치부할 그런 시기란 말이다.

‘그만큼 우리 애가 천재적이라는 거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잠시 고민하던 아윤은, 그냥 우리 애가 그만큼 잘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천재이면 좋은 거지 뭐가 문제겠는가. 우리 애가 그만큼 개쩌는거고 그런 애를 알아보는 내 안목도 그만큼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며칠을 기다린 끝에, 아윤은 그 주 ‘음악편지’에 테일러드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아윤의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게 흘러갔다. 친구와의 약속도 취소하고 부모님 집에 내려간다는 이야기도 취소한 채, 그 날까지 경건하게 공부를 하며 상시숭배를 이어가던 한 주.

그리고 그 주의 금요일 22시 50분, 아윤은 유튜브 재생 머신으로만 활용하던 스마트 TV를 드디어 TV의 목적에 맞게 활용했다. KBS 2채널을 튼 다음, 쟁반에 여러가지 음식을 올려놓고 고사를 지내는 자신의 사진을 찍어 올렸다. 수연이가 억까를 당하지 않기를 빌면서.

‘드디어…!

관람가 표시가 나오고, 로고가 뜬다. ‘김지연의 음악편지’. 덕질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수도 없이 봐 왔던 세트와 시작 화면이 뜬다. 오늘 온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슥 잡아주며 이리저리 휘젓다가, 무대로 후루룩 들어오며 진행자를 잡아주는 카메라.

[“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즐거운 금요일 밤 되시고 계신가요? 김지연의 음악편지, 김지연입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께서 KBS 제2음악홀을 찾아주셨어요.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신 여러분들을 위해서 자화자찬의 박수 한번!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자~”]

능숙하게 멘트를 치며 방송을 진행해나가는 김지연. 그런 것 다 집어치고 테일러드랑 우리 수연이좀 보여달라고!! 라고 하고 싶은 아연이었지만, 그녀의 마음 속 외침이 닿을리가 없기에 그냥 참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느긋하게 잡담과 함께 오늘의 진행 순서를 설명하고 있는 지연.

[“자, 그럼 이제 오늘의 게스트를 모셔볼까요. 이 분들을 가리키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습니다만, 저는 이게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밴드’! 테일러드! 나와주세요!”]

환호성과 함께 입장하는 테일러드. 아윤은 마음속 응원봉을 흔들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김철연과 노인네들이 입장하는 가운데, 이상하게도 비춰지지 않는 기타. 저 뒤에서 뚜방뚜방 걸어오는 걸음만이 비춰질 뿐, 수연의 얼굴이라던지 전신이라던지 하는 부분은 전혀 비추어지지 않고 있다.

“뭐야!”

이거 항의해야겠다! 사람을 불러놓고 이렇게 대접하는 게 어디 있어. 분노하던 아윤은 트위터를 켰다. 셀 수 없는(사실 셀 수 있다) 그녀의 동지들이 KBS 2채널 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려야겠다며 불타고 있었다.

그런 불길을 제압한 것은, 그 이후 비춰진 첫 곡이었다. 소개도 나오기 전에 시작된 곡. 보컬이 기교를 사정없이 뽐낼 수 있게 설계된 곡의 브릿지 부분에, 의도적으로 수연의 목 밑만을 보여주는 화면.

그리고 그 화면을 보며 아윤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연출을 하는 것을 보니 아예 죽이지는 않겠구나.

[“아! 그리고. 제가 엄청 궁금한 게 있었어요. 저 분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녀의 생각대로, 지연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기타리스트의 얼굴이 비춰진다. 동양인으로서는 드문 푸른 빛이 도는 눈동자. 그리고 살짝 굽이쳐 흘러내리는 긴 흑발머리. 그 밑에는 차가운 인상의 미녀가 있다.

그야말로 탄성을 지를만한 얼굴에, 그녀는 황급히 핸드폰 카메라로 티비를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우리애가 이래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전송. 편집하고 뭐고 할 시간은 없다. 바로 방송을 계속 봐야 하니까.

[“저희 기타리스트죠. 신입.”

“헉. 그럼 용성씨 그만둔건가요??”

“아뇨, 그건 아니고…”]

이어지는 철연과 지연의 이야기. 그 와중에 카메라는 철연과 테일러드 멤버들에 대한 전체적인 샷을 잡아주었다. 멤버들 사이에서 표정 없이 땅을 바라보고 있는 수연. 그런 수연의 얼굴은,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오자 환하게 밝아진다.

[“안녕하세요! 밴드 ‘그룹 사운드’의 보컬이자 기타, 그리고 테일러드의 세션 기타리스트! 하수연이라고 합니다!”

“하수연? 어디에서 들어본 이름이네요.”

“아, 이 친구가 그 옆 방송국에. 그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우승자요~? 오… 완전 실력자분이시네… 아. 그 곡 들어본 것 같아요. 과오.”

“네. 맞습니… 맞아요. 과오는 저희 곡입니다에요.”

“다에요?”]

“미친!”

이게 말이 되는가. 다에요! 아윤은 그야말로 심장이 멎을 뻔 했으나, 가까스로 참아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들어오는 일격.

귀여운 척 하려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합니다’, ‘습니다’ 같은 자신의 어미를 의식해서 어떻게든 ‘에요’ 같은 조금 더 여고생틱한 그런 느낌으로 바꿔보려는 모습. 그야말로 ‘씹덕 터지는’ 모습.

[와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

[저게사람인가?태양이아닌가?빛이아닌가?별이아닌가?해가아닌가?세상이아닌가?신이아닌가?부처가아닌가?하느님이아닌가?알라가아닌가?아무튼뭔가가아닌가?]

[너무귀여워서벽부실뻔함]

[이미세상은멎었다 수연이의귀여움때문에…나도죽엇다끄아악]

[숭배하라 하 수 연]

그 외에도, 자기 차례가 되지 않으면 시무룩하게 무표정으로 돌아갔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다시 밝아지는 모습이라던지.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몰라 아예 다른 데를 보고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라던지.

[“아 전에 들었던 것 같아. 학교폭…”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요’ 자 어미를 계속해서 붙여보려던 모습이, 저런 진지한 구간에서는 사라지는 점이라던지. 해명할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변명을 이야기 하지 않고 항상 반성하고 있다고 하는 점이라던지.

그리고 중간에 주어진 실력 어필 시간에, 미칠듯이 화려한 연주를 보여주며 ‘기타리스트’로서의 자신을 보여주는 대신, ‘그룹 사운드’의 [잿빛의 나날들]을 보여주며…

“제가 한 것은 많지 않고, 다 친구들과 동료, 선배, 많은 분들… 그런 분들이 저를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 에요. [그룹 사운드] 많은 사랑 부탁드립에요."

밴드를 홍보하는 모습. 그리고 입이 꼬여버려 이제는 어디에 ‘에요’를 붙여야 할지 모르는 모습까지.

전부 다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짧은 여름 방학이 끝나고. 명전은 연신 손부채를 부치며 힘겹게 교문을 지나쳐 교실로 향했다. 마주치는 아이들마다 왠지 모르게 그를 보며 싱글대는 것 같은 느낌. 묘한 분위기에 명전은 고개를 갸웃대며 교실의 문을 열었다.

“어! 왔다에요!”

“응?”

명전을 반긴 것은, 3인방 외 다른 아이들. 자기들끼리 모여 영상 하나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다가와서 의미 모를 어미를 외쳤다.

“너희들 뭐 하냐.”

“재미있는 거 보고 있었다에요.”

“말투는 왜 그런데?”

“나도 잘 모르겠다에요 으흐흐흫ㅎㅎ흫”

그는 도통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았다. 그런 명전의 앞에 디밀어진 것은 TV 프로그램 녹화 영상 같은 것이었다. 일전에 출연했던 ‘김지연의 음악편지’ 인 것 같은데.

“이거 벌써 나왔나? 찍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모니터링은 해봤어에요?”

“어디 누구한테 맞았어? 말투가 왜 그래?”

“으흫허긓겋긓ㄹ헣ㄱ큭큭컥웃기다에요흐흑흐흫ㅎ”

낄낄거리는 주변의 아이들. 명전은 도대체 이게 무슨 호들갑인지 궁금해하며 그가 나왔던 음악편지 영상을 재생시켰다.

[“과오는 저희 곡입니다에요.”

“맡아주고 있습니다…에요…”

“생각합니,에요.”

“많은 사랑 부탁드립에요.”]

영상의 제목은, [다에요 여고생]. 그 영상에는 그가 음악편지에 나와서 이야기했던 내용이 짤막짤막하게 들어가 있었다. 단, 그가 말했던 기억이 전혀 없는 이상하고 멍청한 말투를 달고.

‘에요?

명전은 분노하기 전에, 우선 당시 녹화할 때를 떠올려보았다. 어떻게든 ‘여고생’이라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 말을 순화시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그럼 이게…

“이제야 봤냐에요 흐흐흫ㅎㅎㅎ헣겋가학악악악!!! 개웃겨!!!!”

“반갑다에요~ 저는 하수연이다에요~ 요즘뭐하냐에요~ 밴드한다에요~ 이름은 그룹 사운드다에요~”

뒤에서 마구 뛰놀며 “다에요~” 를 외치고 있는 여고생들. 명전은 핸드폰을 쥔 채로 부들부들 떨 수 밖에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이 ‘서명전’이? 이런 무슨 어처구니 없는 말투를? 게다가 어처구니 없는 [다에요 여고생] 이라는 제목은 뭐냐. 쇼츠 조회수가 백만이 넘는다고?

이런 걸 백만명이나 쳐 볼 정도로 대한민국 국민의 시간이 남는단 말인가? 아니 백만명이 넘는 걸 넘어서 학교 학생들이 다 알 정도로 퍼진 것은 뭐냐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인터넷에 돌고 있길래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아니 이런 걸 내보낼 거면 이제 출연자한테 이야기라도 해 줘야지. 이게 뭐냐. 완전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명전은 성을 내지도 못한 채, 부들부들 떨면서 뒤의 친구들이 자신을 놀리는 것을 잠자코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좀 더 철저히 연습해서 기필코 ‘요즘 여고생’을 연기해내겠다고 다짐하면서.


“반갑습니다.”

“아~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에 찾은 준홍 사단의 연습실. 작업을 하고 있던 준홍이, 문을 열고 들어온 명전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 그 말투 안 하시네요.”

그 말에 명전은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무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얼굴에 겸연쩍은 듯 시선을 돌리며 웃는 준홍. 잠시 멈추었던 대화는 다시 이어진다. 주로 일적 문제로.

“요즘은 어떠세요. 한달쯤 활동 멈추셨던데. 철연이형이랑 작업 시작하시는 건가요? 밴드 차원에서. 콜라보?”

“아니오. 그건 그냥 그쪽에서 대타 뛰어달라고 해서 한 거고… 밴드는 잠시 좀 쉴 것 같습니다. 저희 키보드가 예대 입시를 들어간다고 해서.”

“아~ 여러분 고등학생이었죠. 자꾸 까먹는단 말이지. 실력 때문에. 그런데 여러분 실력이면 뭐 예대는 그냥 문 걷어차고 들어갈 것 같은데?”

“밖에서 보기엔 그렇게 보여도 당사자는 걱정되는 법이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준홍과 명전은 근황을 교환했다. 유튜브가 어쩌고, [다에요 여고생]이 어쩌고. “음악으로 알려지고 싶었지 이딴 이상한 영상으로 알려지고 싶지는 않았단 말입니다.” 같은 명전의 푸념과 함께.

“어찌되었든 유명세는 좋은 거니까요.”

“네… 뭐… 그렇긴 하지요. 그래도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사람들이 저를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여고생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준홍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딱히 입 밖에 그 말을 내지는 않았다. 아무튼 ‘수연 학생’은 ‘서명전’ 선생님의 영향을 깊게 받은 모양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아무튼 그래서… 어차피 지금 밴드 활동도 잘 못하고 있고. 그런 상황이라. 밴드 홍보나 할 겸 유튜브 같은 곳에 좀 나가보려고 하는데요.”

“유튜브, 좋죠. 저희 채널은…?”

“이미 한번 나갔지 않습니까.”

준홍의 제안을 칼같이 물리친 후 명전은 팔짱을 끼었다. 아무튼 개같은 [다에요 여고생]의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서는, 진지하면서도 시청자가 많을 음악 채널에 출연하는 것이 필요하다. 명전의 이메일로 온 제안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보다는 그냥 인맥을 움직여서 찾아보는 것이 훨씬 나을 듯 했다.

“그룹 사운드를 대표하는 것도 좋고, 제 개인으로 나가는 것도 좋고. 좀 진지하게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이 ‘멍청한’ 이미지도 벗어버릴 수 있는… 그런 좋은 채널이 있을까요?”

명전의 말에 준홍은 잠시 고민하는 듯 천장을 바라보았다. 살짝 답답해질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준홍은 고개를 내리며 대답했다.

“채널 하나가 있긴 한데요. 이게 음… 출연이 가능할지 모르겠네. 저도 뭐 잘 아는 분은 아니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