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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소묘, 그러나 그에 어울리지 않는 컬러로 그려진 노을빛 언덕 위에는, 교복을 입은 무채색의 소녀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뛰어가는 거북이와 유영하는 고래. 밤하늘과 태양이 공존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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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막 벗어난 아이들의, 불안하게 흔들리면서도 미래를 긍정하려 하는 정서를 담은 것 같은(적어도 그림작가는 그렇게 주장하는)… 그룹 사운드의 첫 EP, [Plastic Nostalgia]의 앨범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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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장르는 대부분 팝과 J-Rock의 혼용. 그러나 일본 음악이 유행하고 있는 현재의 세태에 따라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만듦새. 곡마다 세부적인 장르는 각자 다르지만, 컬러는 비슷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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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은 총 5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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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개곡인 [잿빛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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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록곡은, 현역 뮤지션들에게 찬사를 받았던 곡인 [Sternstu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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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을 담담하게 노래한 [누가 고기 좀 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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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만화하며 종잡을 수 없이 뒤척이는 감정을 이야기한 [내비쳐진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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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타이틀인 [그 거리를 뛰어넘어]는 선공개곡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타이틀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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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의 나날들]이 과거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에 가까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면, [그 거리를 뛰어넘어]는 발랄하며 아기자기하며 간질간질한 사랑을 속삭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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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잿빛의 나날들]과 다른 곡들이 평단과 인디, 그리고 힙스터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함과 동시에… [그 거리를 뛰어넘어]를 타이틀로 넣음으로써 일반 대중들의 공략까지 시도한다는 과감한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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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과감한 시도는, 꽤나 성공적인 결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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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채 사라진 평범한 인디 밴드의 곡처럼, 순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한 채 가만히 머물러있던 그들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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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우리 애들 곡 너무 좋아요!!” 라며 홍보를 시도했지만, 그 곡을 들은 사람들이 “와 좋네~” 정도만 해줄 뿐 뭔가 유명세가 확산되는 징조는 전혀 없었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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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누군가가 [이 곡 좋다~ 처음 들은 밴드인데 신인인 듯?] 등의 트윗이나 게시물, 스토리를 올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다시 또 전파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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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영향력이 없는 유튜버들의 플레이리스트에 올라가고, 그게 다시 또 영향력이 큰 유튜버의 플레이리스트에 올라가고… 그것을 반복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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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디락밴드 수준.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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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리를 뛰어넘어 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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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의 나날들 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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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락이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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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ST] 요새 멜론보면 좆이돌노래만 나오는데 이런 노래 들으니까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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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ST] (박다인이 찍어서 바이럴인 것처럼 퍼트린 하수연이 V자 하고 있는 사진 링크) 외모미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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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ST] 이번에 새로 EP 내면서 데뷔한 인디밴드인데 홍대에서 유명한 애들임 파라독스 가면 매달 공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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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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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근데 ㄹㅇ 노래좋네 얘들 어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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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인디인거같은데 소속사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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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이런음악이 더 많아져야하는데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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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같은 식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한구석을 살짝씩 달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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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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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말에, 현아는 치고 있던 피아노의 연주를 멈추었다. AUX 단자에 꽂아놨던 스피커를 빼고, 저녁 연습을 위해 미리 헤드폰을 끼워놓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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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이루어지는 식사. 현아는 아무 말 없이 밥을 씹어 넘겼다. EP가 발매된 후로 밴드 연습은 줄어든 상태니, 이 참에 빨리 입시 연습을 해 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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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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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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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으로 전투적으로 밥을 먹어가던 현아에게, 현아의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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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 밴드인가 그거, 계속 할거니? 이제 입시 준비 본격적으로 해야 할 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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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에, 현아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작년부터 몇개월 간, 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핑계로 계속해왔던 밴드 활동. 요 근래에는 그런 말도 하지 못하고 “때 되면 그만둘 거에요.” 라는 핑계로 얼버무리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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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는 아직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지만(사실은 둘 다 하고싶은 마음이 컸다), 현아의 엄마가 보기에는 입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 초중고등학교 내내 준비해왔던 입시인데, 이제와서 그런 장난으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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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되면 그만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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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게 도대체 몇번째 이야기니.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이젠 진짜 그만둬야 할 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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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괜찮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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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아. 너 진짜 이럴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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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높아지는 언성. 그러나 서로의 얼굴이 붉어지기 직전, 굵은 목소리가 나직하게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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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계속 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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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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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뜬금없다는 듯 질문을 던지는 현아의 어머니. 현아의 아버지는 대답 대신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멜론 일간 차트. 종합 차트는 아니었지만, 록/메탈 장르에서 96위로 차트인한 [그 거리를 뛰어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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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젊은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신인 밴드가 차트에 들어오기는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했어. 그런데 어찌되었든 들어온 거잖아? 충분히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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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렇지, 애가 몇년을 준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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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누그러진 목소리와 내용. 하지만 현아는 섣불리 승낙을 요청하기보다는, 아버지의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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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뭐든 현아가 원하는 쪽으로 가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피아노 치는 걸로 먹고 살기도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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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밴드인가 뭔가하는 걸로는 쉽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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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어렵겠지만, 이미 현아는 증명을 했잖아. 차트에 들어가는 걸로. 이거면 안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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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님. 현아는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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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 차트 일간 록/메탈 부분 8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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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후의 성적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현재까지는 82위가 최고 성적인 것으로 보였다. 종합차트에는 차트인하지 못했지만, (일본 기준으로는) 아직 메이저데뷔도 못한 밴드가 일간 차트에 들어간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성공이라고 봐야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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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기타를 지하철 바닥에 내려놓고, 거북목 방지 자세를 취한 채로 핸드폰을 눈 앞에 올려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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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의 아이디어가 맞아떨어지긴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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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명전은, [Sternstunde]를 타이틀곡으로 밀고자 했다. [잿빛의 나날들]도 조금 대중적인 곡(최소한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이니, 타이틀곡은 인디 팬층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곡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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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아의 의견은 달랐다. “우리가 흥행을 노리기 위해서는 타이틀곡을 좀 더 대중적인 걸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는 것이 현아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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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처음에 그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디 수준에서 대중적이어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이유로. 그러나 지속적인 어필로 인해 “그래, 뭐 그렇게 해 보자.” 라고 수용을 했는데… 결과는 꽤나 좋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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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라던가, 이런 쪽으로 들어갈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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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문물에 대해서 나름대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고 있는 명전이었으나,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게 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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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노인네가 어떻게 ‘단독으로 듣기 좋은 노래’가 아니라 ‘플레이리스트에 섞여들어갈 만큼 무난하고 좋은 곡’이기에 뜨게 되었다는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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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겪어도 겪어도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하며, 명전은 도착역을 확인했다. 내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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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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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반가워요 히트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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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먼저 도착한 스튜디오. 안에는 기타를 옆에 둔 채로 핸드폰을 하고 있는 준홍이 있었다. 명전은 준홍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처음에야 한참 어린 후배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냥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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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양반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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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전’ 시절까지 합치면 상대가 안 될 경력이었지만, ‘하수연’으로만 보자면 기타를 시작한지 이제 1년, 세션 일을 시작한지는 1년도 안 된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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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뮤지션의 세션을 서는 것도 모자라, 자신을 리듬 기타쪽으로 밀어내고 리드 기타에 올라앉았는데. 그에 대해 그다지 불쾌한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었다. 명전 자신이었다면 격노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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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좋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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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종합차트에 혹시 들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무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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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종합차트에는 못 들지. 일간 차트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지금 종합차트에 들어가있는 락이 뭐가 있더라? 세네개 정도 되나? 순수 밴드곡만 치면 훨씬 줄어들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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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홍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꽤나 낡아버린 핸드폰. 뭔가 조작하는 것 같더니, 허탕을 치고는 다시 집어넣으며 말하는 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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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무래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앨범차트를 잘 운용을 안 하다보니까. EP 성적을 받아보긴 힘들 거에요. 그리고 음원 수입도 뭐, 그다지 나오지는 않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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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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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면 다행인데, 뭐 원래 밴드는 다 그런 법이니까… 에코사운드가 인디에서나 이름있는 레이블이지 메이저에는 비빌래야 비빌 수 없는 레벨이고. 한 1~2년 정도는 인디 레벨에서 고생 좀 해야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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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딱히 대답할 말도 없었다. 하지만 준홍이 보기에는, ‘이제 좀 뜨나 싶었는데 비관적인 현실을 강제로 알게 되어버린 아이’ 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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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진 말고. 좋은 소식도 있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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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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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홍의 입에서 나온,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 명전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하는 동안, 조금씩 스튜디오에 들어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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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수연 학생! 오랜만입니다. 그때 이후로 처음 뵙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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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의 녹음을 의뢰한 사람. 밴드 파이오니어의 심사위원이자, 유명 락 밴드 [테일러드]의 리더. 그리고 이제는 솔로 앨범까지 내기로 결심한 김철연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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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기타는 오늘 분량 끝! 잠시 쉬고 다른 악기 녹음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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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실의 내부 스피커가 울리며, 바깥쪽에 있는 철연의 말을 전달한다. 명전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기타를 들고 녹음실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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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기타를 잘 치는 건지 궁금하네. 무슨 비법이라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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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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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연의 물음에, 명전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처럼 다른 몸에 빙의라도 하는 게 아닌 이상, 연습 외의 방법이 있겠는가. 천재라고 불리는 모든 기타리스트들은 다 손에 피가 터질만큼 연습을 했다. 명전 또한 마찬가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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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그거는, 더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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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를 가지고 왔더니 생각이 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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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le Sound(한국말로는 찰랑찰랑 톤)를 잘 쓴 사람은 많지만, 그 중 유명한 한명을 꼽아보라 하면 The Smith의 Johnny Marr를 말하는 사람이 10명 중 5명은 될 것이다. Marr는 더 스미스 활동 초반에 텔레캐스터를 자주 사용했고, 명전은 오늘 철연의 요구대로 텔레를 가져오다가 Marr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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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확실히 내 생각보다 좋은 사운드가 들어갔어요. 녹음도 엄청 빨리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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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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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젓번에 그 일 있잖아요. 파이오니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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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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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사정 알아보니까 좀… 우리 쪽 판단이 성급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런 건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거였는데. 기관 쪽에서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사실 이게 그런 문제가 걸려 있으면 정상적인 사고가 안 되어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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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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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는 명전을, 철연은 뭔가 복잡한 시선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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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우리 밴드 주도로 페스티벌을 주최하려고 하거든요. 그 때 혹시 무대에 서볼 생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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