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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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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소묘, 그러나 그에 어울리지 않는 컬러로 그려진 노을빛 언덕 위에는, 교복을 입은 무채색의 소녀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뛰어가는 거북이와 유영하는 고래. 밤하늘과 태양이 공존하는 그림.

사춘기를 막 벗어난 아이들의, 불안하게 흔들리면서도 미래를 긍정하려 하는 정서를 담은 것 같은(적어도 그림작가는 그렇게 주장하는)… 그룹 사운드의 첫 EP, [Plastic Nostalgia]의 앨범아트.

곡의 장르는 대부분 팝과 J-Rock의 혼용. 그러나 일본 음악이 유행하고 있는 현재의 세태에 따라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만듦새. 곡마다 세부적인 장르는 각자 다르지만, 컬러는 비슷한 앨범.

수록곡은 총 5곡.

선공개곡인 [잿빛의 나날들].

그리고 수록곡은, 현역 뮤지션들에게 찬사를 받았던 곡인 [Sternstunde].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을 담담하게 노래한 [누가 고기 좀 사줬으면 좋겠다].

천변만화하며 종잡을 수 없이 뒤척이는 감정을 이야기한 [내비쳐진 손가락].

그리고 타이틀인 [그 거리를 뛰어넘어]는 선공개곡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타이틀곡이었다.

[잿빛의 나날들]이 과거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에 가까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면, [그 거리를 뛰어넘어]는 발랄하며 아기자기하며 간질간질한 사랑을 속삭이는 노래.

이는 [잿빛의 나날들]과 다른 곡들이 평단과 인디, 그리고 힙스터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함과 동시에… [그 거리를 뛰어넘어]를 타이틀로 넣음으로써 일반 대중들의 공략까지 시도한다는 과감한 시도였다.

그리고 그 과감한 시도는, 꽤나 성공적인 결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채 사라진 평범한 인디 밴드의 곡처럼, 순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한 채 가만히 머물러있던 그들의 곡.

팬들은 “우리 애들 곡 너무 좋아요!!” 라며 홍보를 시도했지만, 그 곡을 들은 사람들이 “와 좋네~” 정도만 해줄 뿐 뭔가 유명세가 확산되는 징조는 전혀 없었던 곡.

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누군가가 [이 곡 좋다~ 처음 들은 밴드인데 신인인 듯?] 등의 트윗이나 게시물, 스토리를 올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다시 또 전파를 하고.

그다지 영향력이 없는 유튜버들의 플레이리스트에 올라가고, 그게 다시 또 영향력이 큰 유튜버의 플레이리스트에 올라가고… 그것을 반복하다가.

[요즘 인디락밴드 수준.avi]

(그 거리를 뛰어넘어 음원)

(잿빛의 나날들 음원)

인디락이미래다

  • [BEST] 요새 멜론보면 좆이돌노래만 나오는데 이런 노래 들으니까 좋네

  • [BEST] (박다인이 찍어서 바이럴인 것처럼 퍼트린 하수연이 V자 하고 있는 사진 링크) 외모미쳤네;

  • [BEST] 이번에 새로 EP 내면서 데뷔한 인디밴드인데 홍대에서 유명한 애들임 파라독스 가면 매달 공연함

  •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 아니 근데 ㄹㅇ 노래좋네 얘들 어디임?

ㄴ 인디인거같은데 소속사없음

  • 하 이런음악이 더 많아져야하는데 ㅅㅂ

… 와 같은 식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한구석을 살짝씩 달구기 시작했다.


“밥 먹어라.”

어머니의 말에, 현아는 치고 있던 피아노의 연주를 멈추었다. AUX 단자에 꽂아놨던 스피커를 빼고, 저녁 연습을 위해 미리 헤드폰을 끼워놓고 일어선다.

묵묵히 이루어지는 식사. 현아는 아무 말 없이 밥을 씹어 넘겼다. EP가 발매된 후로 밴드 연습은 줄어든 상태니, 이 참에 빨리 입시 연습을 해 놔야 했다.

“현아야.”

“네?”

그런 생각으로 전투적으로 밥을 먹어가던 현아에게, 현아의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너 그… 밴드인가 그거, 계속 할거니? 이제 입시 준비 본격적으로 해야 할 때잖아.”

그 이야기에, 현아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작년부터 몇개월 간, 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핑계로 계속해왔던 밴드 활동. 요 근래에는 그런 말도 하지 못하고 “때 되면 그만둘 거에요.” 라는 핑계로 얼버무리고 있었지만.

현아는 아직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지만(사실은 둘 다 하고싶은 마음이 컸다), 현아의 엄마가 보기에는 입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 초중고등학교 내내 준비해왔던 입시인데, 이제와서 그런 장난으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 되면 그만둘 거에요.”

“너, 그게 도대체 몇번째 이야기니.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이젠 진짜 그만둬야 할 때야.”

“아직 괜찮다니까요.”

“정현아. 너 진짜 이럴거니?”

조금씩 높아지는 언성. 그러나 서로의 얼굴이 붉어지기 직전, 굵은 목소리가 나직하게 끼어든다.

“… 나는 계속 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왜요?”

그 말에, 뜬금없다는 듯 질문을 던지는 현아의 어머니. 현아의 아버지는 대답 대신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멜론 일간 차트. 종합 차트는 아니었지만, 록/메탈 장르에서 96위로 차트인한 [그 거리를 뛰어넘어].

“내가 오늘 젊은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신인 밴드가 차트에 들어오기는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했어. 그런데 어찌되었든 들어온 거잖아? 충분히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 같거든.”

“그래도 그렇지, 애가 몇년을 준비했는데…”

살짝 누그러진 목소리와 내용. 하지만 현아는 섣불리 승낙을 요청하기보다는, 아버지의 말을 기다렸다.

“결국 뭐든 현아가 원하는 쪽으로 가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피아노 치는 걸로 먹고 살기도 힘들어.”

“그럼 밴드인가 뭔가하는 걸로는 쉽고요?”

“그것도 어렵겠지만, 이미 현아는 증명을 했잖아. 차트에 들어가는 걸로. 이거면 안심 아닐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님. 현아는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될 것 같아서.


멜론 차트 일간 록/메탈 부분 82위.

오늘 이후의 성적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현재까지는 82위가 최고 성적인 것으로 보였다. 종합차트에는 차트인하지 못했지만, (일본 기준으로는) 아직 메이저데뷔도 못한 밴드가 일간 차트에 들어간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성공이라고 봐야 할 터.

명전은 기타를 지하철 바닥에 내려놓고, 거북목 방지 자세를 취한 채로 핸드폰을 눈 앞에 올려 바라보았다.

‘현아의 아이디어가 맞아떨어지긴 했군…’

원래 명전은, [Sternstunde]를 타이틀곡으로 밀고자 했다. [잿빛의 나날들]도 조금 대중적인 곡(최소한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이니, 타이틀곡은 인디 팬층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곡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현아의 의견은 달랐다. “우리가 흥행을 노리기 위해서는 타이틀곡을 좀 더 대중적인 걸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는 것이 현아의 말이었다.

명전은 처음에 그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디 수준에서 대중적이어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이유로. 그러나 지속적인 어필로 인해 “그래, 뭐 그렇게 해 보자.” 라고 수용을 했는데… 결과는 꽤나 좋았던 것.

‘플레이리스트라던가, 이런 쪽으로 들어갈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

첨단문물에 대해서 나름대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고 있는 명전이었으나,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게 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노인네가 어떻게 ‘단독으로 듣기 좋은 노래’가 아니라 ‘플레이리스트에 섞여들어갈 만큼 무난하고 좋은 곡’이기에 뜨게 되었다는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참 겪어도 겪어도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하며, 명전은 도착역을 확인했다. 내릴 때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 반가워요 히트가수.”

20분 먼저 도착한 스튜디오. 안에는 기타를 옆에 둔 채로 핸드폰을 하고 있는 준홍이 있었다. 명전은 준홍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처음에야 한참 어린 후배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냥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 양반도 뭐.

‘서명전’ 시절까지 합치면 상대가 안 될 경력이었지만, ‘하수연’으로만 보자면 기타를 시작한지 이제 1년, 세션 일을 시작한지는 1년도 안 된 아이가…

같은 뮤지션의 세션을 서는 것도 모자라, 자신을 리듬 기타쪽으로 밀어내고 리드 기타에 올라앉았는데. 그에 대해 그다지 불쾌한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었다. 명전 자신이었다면 격노했을 것이므로.

“성적 좋던데요.”

“감사합니다. 종합차트에 혹시 들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무리더라고요.”

“에이, 종합차트에는 못 들지. 일간 차트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지금 종합차트에 들어가있는 락이 뭐가 있더라? 세네개 정도 되나? 순수 밴드곡만 치면 훨씬 줄어들수도 있고.”

준홍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꽤나 낡아버린 핸드폰. 뭔가 조작하는 것 같더니, 허탕을 치고는 다시 집어넣으며 말하는 준홍.

“한국은 아무래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앨범차트를 잘 운용을 안 하다보니까. EP 성적을 받아보긴 힘들 거에요. 그리고 음원 수입도 뭐, 그다지 나오지는 않을 거고.”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면 다행인데, 뭐 원래 밴드는 다 그런 법이니까… 에코사운드가 인디에서나 이름있는 레이블이지 메이저에는 비빌래야 비빌 수 없는 레벨이고. 한 1~2년 정도는 인디 레벨에서 고생 좀 해야 될 거에요.”

명전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딱히 대답할 말도 없었다. 하지만 준홍이 보기에는, ‘이제 좀 뜨나 싶었는데 비관적인 현실을 강제로 알게 되어버린 아이’ 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진 말고. 좋은 소식도 있을 거니까.”

“좋은 소식이요…?”

준홍의 입에서 나온,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 명전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하는 동안, 조금씩 스튜디오에 들어오는 사람들.

“오, 수연 학생! 오랜만입니다. 그때 이후로 처음 뵙던가요?”

그리고 오늘의 녹음을 의뢰한 사람. 밴드 파이오니어의 심사위원이자, 유명 락 밴드 [테일러드]의 리더. 그리고 이제는 솔로 앨범까지 내기로 결심한 김철연이 그곳에 있었다.

“리드 기타는 오늘 분량 끝! 잠시 쉬고 다른 악기 녹음 들어갈게요.”

녹음실의 내부 스피커가 울리며, 바깥쪽에 있는 철연의 말을 전달한다. 명전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기타를 들고 녹음실에서 나왔다.

“진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기타를 잘 치는 건지 궁금하네. 무슨 비법이라도 있어요?”

“연습밖에 없죠.”

철연의 물음에, 명전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처럼 다른 몸에 빙의라도 하는 게 아닌 이상, 연습 외의 방법이 있겠는가. 천재라고 불리는 모든 기타리스트들은 다 손에 피가 터질만큼 연습을 했다. 명전 또한 마찬가지였고.

“마지막에 그거는, 더 스미스?”

“텔레를 가지고 왔더니 생각이 나서요.”

Jangle Sound(한국말로는 찰랑찰랑 톤)를 잘 쓴 사람은 많지만, 그 중 유명한 한명을 꼽아보라 하면 The Smith의 Johnny Marr를 말하는 사람이 10명 중 5명은 될 것이다. Marr는 더 스미스 활동 초반에 텔레캐스터를 자주 사용했고, 명전은 오늘 철연의 요구대로 텔레를 가져오다가 Marr를 떠올렸다.

“그런 거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확실히 내 생각보다 좋은 사운드가 들어갔어요. 녹음도 엄청 빨리 했고.”

철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먼젓번에 그 일 있잖아요. 파이오니어 건.”

명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사정 알아보니까 좀… 우리 쪽 판단이 성급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런 건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거였는데. 기관 쪽에서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사실 이게 그런 문제가 걸려 있으면 정상적인 사고가 안 되어버리니까.”

“이해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명전을, 철연은 뭔가 복잡한 시선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우리 밴드 주도로 페스티벌을 주최하려고 하거든요. 그 때 혹시 무대에 서볼 생각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