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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블루스에 익숙하지 않다. ‘부루쓰’ 에는 익숙할지는 몰라도. 반대로 블루스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긴 하지만, 소득을 얻은 사람은 몇명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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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 애호가들 중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당연하다. 그걸 알 수 있다면 음악의 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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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블루스 곡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대세 장르가 되지 못하는 것일 뿐이지, 곡 하나쯤은 성공할 수 있다. 오히려 메인스트림에는 없는 생소함을 줌으로써, 성공 정도가 아니라 대박을 터트릴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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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이 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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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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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 주현이 듣고 있는 곡은, 주현의 대표곡인 [어느 그늘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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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초에 잠시 유행했던, 락발라드 붐 때 살짝 재해석을 섞어 불렀던 노래다. 적당히 고음이라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도전하기도 좋고, 이지리스닝을 추구한 곡이기에 들었을 때 한번쯤 ‘아 다시 들어볼까?’ 할 수 있도록 만든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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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멜로디와 가사는 분명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들려오는 사운드는 너무나도 생소하다. 보통의 락발라드에서 나오는 살짝 슬픈 느낌의 사운드보다 훨씬 내려간. 리듬도 약간 다른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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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그늘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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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만나러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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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컬을 전면에 내세웠던 주현의 오리지널 곡과는 다르게 기타가 전면에 들어갔다는 것. 가이드 보컬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힘을 빼고 부르는… 보컬을 마치 악기 취급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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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그늘진 날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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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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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톤 미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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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이 팔짱을 끼고 가만히 듣고 있는 동안스태프들 사이에서 조금씩 그런 혼잣말이 들려온다. 하지만 혼잣말을 한 사람들은, 주현이 딱 봐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노골적인 주위의 시선을 받고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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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곡은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보컬과 함께, 이내 그 보컬을 잊게 만드는 압도적인 기타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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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기타를 연주하는 것만 들어보자는 이유로 가져온 펜더 럼블 25W 앰프가 찢어지는듯한 굉음을 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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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무어의 노래에서 따온게 분명한 듯한 톤. 분명 소녀가 들고 있는 기타는 스트라토캐스터임에도 불구하고, 레스폴의 중후함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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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으로도 모자라, 소녀는 왼손을 마치 숙련된 기타리스트마냥 끊임없이 흔들고 오른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멜로디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그야말로 8~90년대, 팝이 살짝 섞인 블루스 락의 표본이라고 할만한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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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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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나온 주현의 작은 탄성. 소리는 작았으나 주위 스태프들을 다 집중시키기에는 충분한 음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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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주의 끝에 소녀는 짧게 피크를 끊어쳐… 소리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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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정도로 편곡을 좀 해 봤는데요. 콘서트 팬서비스 용으로 좀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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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는 살짝 큰 박수소리는 다시 쏙 들어간다. 주현은 그런 상황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본 후 다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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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곡을 그쪽 밴드에서 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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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크게 뭔가 한 건 아니구요. 밴드 사운드로 바꾸고, 리듬은 블루지하게. 기타를 좀 전면으로 내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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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듣기에는 겸손해보이는 말. 하지만 주현은 수연의 표정에서, ‘너는 이걸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라는듯한 자신감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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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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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 자체로도 주현은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똑같은 음량으로 계속 음악을 듣다 보면, 언제부터인가 ‘뭔가 소리가 좀 작지 않나?’ 라고 느끼게 되는 것. 그래서 음량을 더 올리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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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현이 느끼는 것도 그랬다. ‘여기서 좀 더 뭔가 나가고 싶은데…’ 라는 생각 자체는 매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곡을 손대기엔 또 그래서 매번 그냥 ‘아니 뭐, 그냥 똑같은 곡 부르자.’ 하고 콘서트 때 재해석만 어느정도 하는 수준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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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완전히 맛을 틀어버린 것도 아니면서… 기존의 곡에 살짝 질린 주현의 입맛을 충족시켜주는 절묘한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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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문제는 이런 곡 조차 스태프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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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만 따로 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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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은 우선 그런 생각부터 했다. 저 애들은 내보내고 곡만 산다? 그런데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미친 사람이 아닌 이상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곡을 인질로 잡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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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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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태프들을 쓱 둘러보았다. 영 못마땅한 표정이 3할, 나머지는 별 생각 없거나 저 애로 했으면 좋겠다는 느낌의 표정. 주현은 내적으로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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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상당히 마음에 들거든요. 다른 연주도 괜찮았고, 이번 편곡도 그렇고. 혹시 세션을 하는 걸로 되면, 다른 곡들도 편곡하실 마음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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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야 할 필요성이 있거나, 그럴만한 사유가 있다면 하겠죠. 곡이 좋다거나, 이런 쪽으로 해보면 어떨까 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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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살짝 오만한듯한 대답. 하지만 처음이었다면 모를까, 이제는 주현도 저 애들이 저럴만한 애들인 것을 안다. 기타는 물론이고, 베이스니 키보드니 드럼이니 전부 다 락에는 문외한인 주현이 듣기에도 꽤나 실력이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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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냥 곡을 판매하시는 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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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스태프 중 하나가 급했는지 살짝 더듬으며 말했다. 주현이 최초에 했던 생각. 그리고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주현이 예상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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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하고 싶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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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대답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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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우리 팀도 약간 인적쇄신 같은 걸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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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은 이리저리 고민하다, 그런 생각이 도달했다. 이미 저 애들을 쓰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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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지 않은가. 실력적으로도 충분하고, 매력적인 편곡조차 해 온 상태. 이걸 거절할 이유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태프 중 일부는 아직까지도 불만에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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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밴드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귀가 있다면 들어봐서 알 것 아닌가. 충분히 훌륭한 상태인데, 이 밴드를 쫒아낸다면 이사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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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겠다. 최근에 우리 팀이 너무 고이기도 했고, 살짝 새 출발한다는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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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결코 이 밴드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인적 쇄신을 하는 김에, 이 밴드를 빌미로 삼는 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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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는 그의 행동에 확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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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밴드를 세션으로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혹시 이의 있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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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번쩍 올라간 손 몇개와, 주저주저하다 살짝 가라앉는 손들. 주현은 그 손들을 바라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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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손 드신 분들은, 이따가 저랑 면담 좀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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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하게 내뱉어진 주현의 말.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나마 유지되던 분위기가, 그 말 한마디에 와르르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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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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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죄송하지만 스태프분들, 도대체 지금 이 팀이 누구 팀인가요? 스태프 여러분들을 위한 팀? 아니면 저를 위한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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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주현의 목에서 튀어나간다. 그 목소리는 조금 높아지려다가, 부외자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다시 낮아진다. 그의 눈짓에 따라 스태프 한명이 밴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고, 장비는 허겁지겁 치워지고, 나머지는 집을 어질러놓고 처벌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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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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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커피를 쭉 빨았다. 뭔가 이상하게 요즘은 단 커피가 좀 땡기는 기분. 예전에는 달다고 해 봐야 카페 라떼에 평상시에는 아메리카노였는데. 최근에는 이서가 시키는 무슨 왱알앵알프라뭐시기 이런 거도 꽤나 잘 마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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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그런 것도 지나치게 안 달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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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너무 안 단 디저트가 최고의 디저트다’ 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서가 먹는 류의 음료는 그냥 설탕 범벅이었는데. 요 몇달 새에는 뭔가 쭉쭉 넘어가는… 체질이 바뀌어서 그런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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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사에서 다른 이야기는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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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야기를 하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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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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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네 회사에 소속될 생각 없냐고. 작곡가가 그랬거든. 전담 작곡가 및 밴드로 들어오시면 대우 무조건 해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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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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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가 이야기했지. 그 박휘석인가 하는 분도 그 이야기 하셨는데, 안 하기로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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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편곡을 하면서 인터넷을 뒤진 결과, 명전은 [엔트라인]이 꽤나 큰 회사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회사의 메인 상품이 되는 아이돌 한명과, 주력 상품이 되는 주현과 다른 가수 몇몇. 그리고 소규모 남돌 여돌 각각 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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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칭해지는 3대 기획사라거나 그 밑의 뭐 탄탄한 중견 기획사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 밑은 되는? 3티어? 3티어라고 하면 뭔가 좀 없어보이는데, 그래도 이름은 들어본 가수들이 많은 그런 소속사. 명전의 첫 인상보다는 훨씬 크다는 느낌이었지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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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가 아니면, 레이블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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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핸드폰을 보며 화장을 살짝 다듬다가, 거기에서 눈을 돌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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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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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는 기획사보다 레이블 같은 데에 소속되지 않아? 나는 그렇게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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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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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인가. 글쎄, 레이블도 음… 굳이 필요성이 있나. 국내 인디 레이블도 꽤나 성장하긴 했지만, 명전은 그런 쪽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런 곳에 소속될 바에는 그냥 따로 활동하는 것이 낫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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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명 레이블이라면 생각해볼만 하지. 예를 들어서 뭐 EMI라던지, 콜럼비아라던지, 하베스트, 캐피톨 같은 초 거대 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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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은 관심 없긴 한데… 음, 생각해보면 EP나 싱글 같은 것도 슬 내봐야 할 시점이네. 그런 쪽은 매니지 끼는 게 낫긴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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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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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이 아니고 EP,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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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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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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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거 아냐? 라는 표정을 하고 있는 이서를 보고, 명전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 가련한 중생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고개를 젖히고 있던 명전의 시야 사이로, 어디서 많이 봤던 여고생 두명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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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됐다. 연습이나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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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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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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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를 데리고 연습실에 들어서니 들려오는, 이전과는 다른 스태프들의 인사 소리. 살짝 훑어보니 인적 구성이 꽤나 바뀐 느낌이었다. 이전에 봤던 꼬장부리는 사람들은 몇명 없어지고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이 몇명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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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션이 몇명 더해진 구성. 우리 밴드만 붙어서 하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그러면 사운드가 비어있다고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명전의 판단에 의해 추가된 세션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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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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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애들도 있고, 늙은 양반도 있다. 공통점은 딱히 유명한 세션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밴드의 보조로 들어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쪽에는 익숙하지 않아 일어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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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희가 밴드를 써서 하는 무대는 이게 처음이다보니까… 리허설이 안 익숙할 수 있어요. 그래서 어, 그 리더? 세션 리더분을 뽑아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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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마스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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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목소리가 세션 기타 쪽에서 들려온다. 살짝 덩치가 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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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밴드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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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원래 이런 건 경력이나 실력으로 뽑는 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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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면서, 주위를 훑어보는 세션 기타. 아무런 의미가 담겨있지 않은 동작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의도가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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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타의 몸짓에, 그저 명전은… ‘경력이든 실력이든 뭘로든 밴드 마스터는 무조건 내가 될 수 밖에 없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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