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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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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우렁찬 박수와 함께 끝난 유영의 공연.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손을 살짝 모았다. 떨려오는 손끝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녀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유영의 팬으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오늘 공연은 특별했다. 평소와는 달리 힘을 빡 주고 공연을 했다는 느낌. 조금 더 표현력에 힘을 주고, 조금 더 높은 소리를 내고. 그가 봐온 유영의 라이브 중에서는 열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그런 공연.

‘앞에 두 팀한테 자극이라도 받은 걸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면 잘은 모르겠지만… 앞의 그 남돌, 페이블스인가 하는 애들이나, 래퍼라는 애나… 둘 다 뭔가 좀 더 무대에 힘을 준 그런 느낌이 있긴 했다. 둘의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다가, 그는 그냥 생각을 그냥 놓아버렸다. 그냥 대첩이니 대결이니 하는 기자들의 호들갑에 좀 자극을 받은 거겠지. 그래도 약간 재미있긴 했다. 다들 연예계 생활이 몇년인데, 아직까지도 그런 호승심이 남아있단 말인가.

“그럼 무대 준비시간 잠시 가지겠습니다. 공연은 15분 뒤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덧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박수도 끝나고, 소강 상태에 접어든 공연장.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일어나는 사람들. 그는 핸드폰을 보고는 잠시 고민했다.

‘그냥 갈까. 지금 가면 버스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뒤의 공연은… 그도 들어봤던 [공중정원]을 부른 락 밴드 아이들의 차례였다. 그도 좋게 들었던 곡인 만큼 라이브를 보고 싶긴 했지만, 그렇게 막 엄청나게까지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지금 빨리 나간다고 해 봐야 과제의 진행상황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집에 가는 시간은 버스 시간표 때문에 몇시간씩 차이가 나니까.

잠시 갈등하던 그는, 곧 몸을 일으켜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제 막 신곡을 낸 아이들인 만큼… 굳이 지금 라이브로 안 봐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있을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몇몇 관객들도 그와 비슷한 생각인지 슬그머니 일어나 짐을 챙기고 바깥으로 나가려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하지만 그런 관객들을 잡아놓은 것은, 무대로 들어오는 업라이트 피아노(작은 피아노)였다. Group Sound의 곡을 많이 들어본 건 아니지만, 최소한 [공중정원]에는 저런 어쿠스틱 피아노가 필요하지는 않을 텐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생각과는 다른 느낌의 무대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그의 발을 붙잡고 있었다.

‘에이… 그냥 오늘 잠 좀 적게 자지 뭐.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짐을 내려놓았다. 화장실에 갔다가, 담배 한대 피우고 오면 준비가 다 끝나있기를 바라며.

다시 들어온 공연장. 아까보다 인원이 조금 줄어들었는지, 빈 자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그리고 세팅이 완료된 무대는, 뭔가 약간 이상했다. 음악은 좋아하지만 음악 장비는 잘 모르는 그로서는 정확하게 뭔가를 짚어낼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있어야 될 것이 없는 듯한 광경.

“3분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어지던 상념을 깬 것은, 무대 시작 시간을 알리는 스태프의 외침이었다.

잠시 후, 불이 훅 꺼지며 무대 위에 잔잔한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의례적인 박수와 함께 무대 저편에서 네 명의 여자아이들이 걸어들어왔다. 의상은… 좀 독특했다. 빈티지하달지, 에스닉하달지… 풍성하고 개성있는 스타일. 그가 [공중정원]으로 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

그리고 또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피아노와 드럼을 제외한 두 명이 들고나온 악기는, 그들이 원래 사용하던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기타가 아니었다. 어쿠스틱 기타와 어쿠스틱 베이스였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악기를 든 모습. 미약하지만, 그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빠르게 퍼져가는 관객석의 동요. 그러는 사이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느긋하고 차분하게 울리는 기타. 부드럽게 얹혀지는 피아노. 설명하긴 힘들지만, ‘둥’과 ‘톡’의 어디 중간쯤에 있는 소리를 내며 함께 걸어가는 드럼. 두텁지만 따뜻한 소리를 내는 베이스까지.

생각치도 못한 광경에 그는, 아니 관객들은 전부 가만히 무대를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베이스의 목소리.

하지 않았던 숙제

사물함 속에는 거북이가 있어

그날의 나는 매점 앞에 서서

뛰어가는 토끼를 바라보았네

느껴지는 감정은 우선은 차분함이었다. 마치 갓 구워진 빵을 먹는 것처럼 따뜻하고 향기롭게 넘어가는 음악.

거북이는 사흘 전에 떠나버렸어

그 애는 어딜 가는지 모른 채로

이미 내린 첫 눈의 그림자가

다시 한번 더 네게 찾아올 때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것은 보컬이었다.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나른하게 중얼거리는 듯한 음성. 그 어떤 악기보다도 낮게 깔리는 말소리는 자근자근히 분해되어가며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다.

“잿빛이여, 내게로 돌아와.”

스포트라이트도 꺼진다. 그리고 무대는 잠시 어둠으로 물든다. 그 사이 쏟아진 박수는, 분명 의례적이지는 않았다.

스태프들이 앞쪽에 5개의 의자를 가져다 놓는 동안, 그는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잠시 보았다. 그러는 사이 김지연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이번에는 꽤나 좀 장비가 많긴 한데요. 이제 마지막 게스트를 모셔볼까요. 인디밴드 성공의 신화! 미소녀 밴드! Group Sound를 모셔보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어두운 조명 밑에 가려져 있던 아이들이 들어와 앉는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는 순간, 관객석 사이에서 “헉”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옆 자리에 앉은 여자 한명은 “레전드…”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그도 동감이었다. 다들 이뻤지만, 기타를 맡은 아이는 진짜 작정이라도 하고 온 듯한 외모였다.

“저희, 전에 한번 만났었죠.”

“네, 그렇습니다.”

인사가 이어지고, 인터뷰가 시작되자 김지연이 처음 던진 질문.

“그때는 일렉 들고 나오셨잖아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 [공중정원]이나 지금 이 곡, [잿빛의 나날들]… 저도 참 좋아하는 곡인데요, 이 곡도 일렉 곡이고. 그런데 오늘은 어쿠스틱이네요? 전원 다.”

“네. 아무래도 오늘 무대가 좀… 뭐, 무대에 변화를 줬다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약간… 음, 저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느낌입니, 아니 그런 어… 생각이 들었다에요.”

말을 씹듯이 마무리하고는, 마구 머리를 꼬며 민망해하는 기타 멤버. 관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튀어나오거나 “귀엽다.”라는 말이 들려오는 가운데, 김지연은 정신없이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으흫흫, 전에 봤을때도 그렇고 너무 귀엽네요. 그럼 이제 방송 출연을 했으니, [공중정원]과 음반, [별이 되어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곡 한번에 자그마한 토크 한번씩. 무대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반응도 커져갔다. 특히 반응이 좋았던 것은, [공중정원]의 무대였다.

나른하게 읇어지는 랩이 쏟아지는 [공중정원]의 음원과는 달리, 이번 라이브는 정 반대였다. 악기의 개입을 최대한 줄인 채, 억누르고 있던 힘을 풀어낸 듯 노래를 부르는 보컬. 전혀 색다른 분위기의 음악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부분은 이 라이브 버전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했고.

“그럼 이제 마지막 곡입니다. 여러모로 좀 아쉬운 부분이 들긴 하는데… 원래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이라고 하니까요.”

관객 중 몇몇이 “안돼!!” “앵콜!!” 이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에 와르르 웃는 관객들.

“저희가 여러분의 귀가 시간을 위해서 더 공연을 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이 친구들 두명이 미성년자라서 집에 가야 되거든요? 양해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무대 옆에 앉아 있던 김지연 또한 웃으면서도,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그 말에 한번 더 터지는 웃음. 밴드 멤버들은 어느새 자리에 앉아 악기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어두워지는 조명.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별이 되어가는 것’, 들어주세요.”

어둠 속에서 나지막하게 말이 들려온다. 그리고 백색 스포트라이트가 수연에게로 떨어진다. 그녀 앞에는 마이크가 있다. 앞서 불렀던 세 곡과는 다르게.

그리고 기타가 시작된다.

바삐 움직이는 손. 유려하게 흔들리는 멜로디. 차분한 피아노. 드럼은 아주 살짝만. 베이스는 나지막하게 흘러가며 마치 콘트라베이스처럼 따뜻하게 울린다.

녹이 슨 울타리를 지나

전봇대를 넘어 또 그 앞으로

원형 도넛을 파는 가게

지난한 일상의 매일이 여기 있어

베이스를 맡았던 아이보다 더 낮은 목소리. 일상의 이야기를 말해주는 듯한 톤. 차분하게 내려앉은 목소리는 사람들을 진정시킨다. 마치 주말의 저녁처럼. 어두컴컴하고 따뜻한 집 안에서 티비를 보는 것처럼.

사각대는 연필 소리가

어째서인지 짜증나지만

그렇다 해도 나갈 순 없어

눈 앞엔 여럿의 길

아니 하나일지도

조금씩 연주가 고조된다. 그는 가만히 앉아 손을 꽉 쥐었다. 왠지 모를 긴장감. 치솟아오르는 분위기.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단지 4명. 전자악기 하나 없는 그런 공연인데… 왜 이리도 꽉찬 느낌이 나는지.

그리고 후렴구에서, 완전히 폭발한다.

세면대의 칫솔

말라붙은 비누

물때가 낀 거울

그 속에서

우리는

별이 되어 갈지도 몰라

완전히 뒤바뀐다. 조명도, 연주도, 분위기도, 보컬도… 그 외 모든 것이.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차디찬 겨울을 나던 매화가 일순간에 피어나듯. 꽃 하나 없이 빽빽하던 나무는 눈을 깜빡이는 순간 만개한다.

구겨신은 신발

우중충한 하늘

등교길의 버스

그 속에서

우리는

별이 되어 갈지도 몰라

“별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몰라…”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열흘 넘기는 꽃이 없듯이… 곡은 끝이 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잠잠하게. 막연히 읊조리는 마지막 말은, 마치 미련과도 같았다.


무대를 마치고, 프로그램도 마치고. 그와 밴드원들은 일단 대기실에 가 소파에 드러누웠다. 4곡 정도밖에 안 되는 공연이지만,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뽑아낸 느낌이었기에. 그런 그들을 일으켜 세운 것은 쿵쿵 하고 두들겨지는 문이었다.

“들어오세요…”

“야!! 대박이야, 대박!”

그런 말을 외치며 들어온 사람은, 프로그램의 피디였다. 마치 그를 껴안을 것 같이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더니,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표정으로 몸을 물리는 피디. 하지만 기세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소파 하나를 차지하고 푹 몸을 꺼트렸다.

“하수연 학생, 진짜 잘 했어요. 정말 기대이상, 아니 애초에 기대를 안… 안 하지는 않았는데, 이 정도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어.”

“아, 감사합니다.”

“미안하다고 할 수 밖에 없겠네. 진짜 최고의 무대를 뽑아준 것 같은데. 관객들 봤어? 완전 난리났더라고.”

그렇게 말하며 피디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많이 흥분한 모습. 그럴 만 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도 관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앞의 공연 3개도 분명 좋았고, 관객들의 반응 또한 좋았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때, 그들이 펼친 공연이 좀 더 좋은 호응을 받은 듯 했다.

“아, 이거 보도자료 뿌려야 하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 어… 아니다. 미안한데 나 빨리 가볼게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뭔가 생각났는지 빠르게 사라져버리는 피디. 조용해진 대기실에서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 끝났지 이제?”

“뭐…그렇지.”

“아, 진짜 죽을 뻔 했다. 나 머리가 띵해. 실수 안 하려고 진짜 집중 엄청 했어…”

그렇게 말하며 비칠비칠 들어와 안겨드는 이서. 그는 이서를 떼어내려 했다가, 손을 내렸다. 이렇게 칭얼대는 것을 이해할 만큼 빡센 일정이었으므로. 얼마 안 되는 시간 안에 어쿠스틱 편곡을 하고, 거기에 다들 숙달되도록 연습을 하고, 그 다음은 계속되는 합주. 시키는 그조차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일정.

하지만 고난 끝에 얻어낸 열매는 정말 달았다.

갑작스럽게 선택한 어쿠스틱 편곡은 바로, Nirvana가 MTV Unplugged에서 보여주었던 공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그냥 '실력도 안 되는데 파워코드나 치면서 소리만 질러대는 미친 놈들' 취급을 받았던 Nirvana를 '세계 최고의 락 밴드'로 만들어줬던 공연. MTV Unplugged in New York.

그는 Nirvana가 그 공연으로 자신들의 평가를 뒤집어냈던 것처럼, Group Sound도 이 공연으로 평가를 뒤집어내기를 바랐다. 1군 아이돌이니, 탑급 래퍼니, 최정상급 싱어송라이터니… 그런 것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는… 최소한 현재의 평가보다는 올라가지 않을까 싶었다. '초동 1만장을 판 신생 밴드'에서, '충분히 탑급 뮤지션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인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