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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정규 앨범 녹음 진행 상황에 대하여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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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과 고경민, 정유영, 그 외 레이블 직원들과 그룹 사운드 밴드원들. 정규 앨범 제작 관련자 모두가 소집된 프로듀싱 정규 회의. 고경민은 그렇게 말하며 레이저포인트를 잡고는, 프로젝터 한 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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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작중인 곡은 총 10곡. 그리고 현재 녹음이 진행되고 있는 곡은 3곡. 완성된 곡은 현재 1곡입니다. 진척도는 약 20% 정도이며, 예상보다는 좀 느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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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민의 말에, 혜인이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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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에 수연이에게 말을 들었을 때는… 수록곡이 12곡에서 15곡 정도 된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현재 10곡 정도 진행중이라면 진척도가 훨씬 높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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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설명하기 약간 좀 미묘하지만… 보통은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 딱 그 앨범에 필요한 곡만 제작하지는 않습니다. 훨씬 많이, 예를 들어 2배수 3배수를 제작한 다음 아닌 건 추려내고 다듬어서 세트리스트를 맞추는 쪽으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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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설명에 명전은 일화 하나를 떠올렸다. Beach boys의 Brian Wilson이 자신들의 앨범 Smile의 세트리스트를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완성하지 못했고, 결국 미완성 상태에서 릴리즈를 해버렸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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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12곡 앨범을 위해서 12곡을 만든다면 분명 부족한 퀄리티의 곡이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일단 곡을 많이 만들어낸 다음 퀄리티를 엄선해서 앨범에 곡을 수록합니다. 그래서 음악가들이 미공개 곡들이 많은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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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민의 설명에 혜인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습을 본 경민은, 시선을 돌려 명전과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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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한에 맞출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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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솔직히 말하면 글쎄요. 자신이 없긴 합니다. 아시다시피 곡이라는 게 만들어야겠다! 라고 다짐을 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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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들을 슬쩍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경민이 했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는지 자기들끼리 “아 그러면 나 곡 더 만들어야 되는 거야?” 라고 쑥덕이는 녀석들. 명전은 이마를 짚었다. 이 녀석들도 몰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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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한은 최대한 지켜야 하는 법이죠. 일단 해 보고, 정 안 된다 싶으면 일정을 미루는 쪽으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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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없겠죠. 곡 작업이라는 건 밴드 멤버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뭐… 만약 곡 구매가 필요하다거나, 프로듀서가 필요하시다면 말씀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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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에게는 어찌보면 치욕스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 ‘자체 프로듀싱을 못 하는 밴드’. 고경민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속에는 ‘기한 못 지키면 외부 프로듀싱을 고려하겠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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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기필코 아이들을 재촉해야겠다 다짐하며, 고경민이 띄운 다른 자료를 보았다. 앨범 관련 사항들이 이리저리 적힌 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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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진행해야 할 것은, 앨범 컨셉 관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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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정한 거 아니었나요? 수연이가 곡을 들고 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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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의 이야기에, 경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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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전반적인 컨셉은 그걸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이제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필요한 작업을 들어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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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필레이션 앨범(보통 히트곡을 모은 음반)이 아닌 이상에야, 앨범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지게 된다. 그 주제는 사상일 수도 있고,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하나의 경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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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지금 정해진 컨셉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들의 이야기’ 뭐… 그런 느낌이지만, 이게 좀 지나치게 넓은 감이 있다고 보고 있거든요. 팬들이나 일반 사람들에게야 ‘우리들의 이야기를 모은 앨범입니다.’ 라고 설명하면 그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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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고경민이 띄운 것은, 다양한 앨범들의 커버와 뮤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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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우리가 디자이너나 영상감독님들한테 가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컨셉입니다.’ 라는 말만 해가지고는 일이 안 되니까요. 제목. 앨범 표지. MV. 의상. 단독 콘서트를 할 거라고 하셨으니, 콘서트 무대 컨셉 등. 이런 것들을 하나로 묶는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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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경민은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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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앨범의 내용물이 다 만들어진 다음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면, 당장 지금 정할 필요는 없다. 세트리스트까지 다 나온 다음 그것을 고려해서 디자인을 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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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되면, 6개월 안에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다 만든 다음 거기에서 컨셉을 따온다면 당연히 시기적으로 늦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역도 마찬가지다. 6개월 안에 따로따로 하는 것은, 앨범 작업의 시간 자체를 줄여버리는 것이므로 마찬가지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고경민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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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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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처음에 멤버들에게 [Entangle](가칭)을 들려줌으로서 앨범의 전반적인 컨셉을 제시하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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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뭔가 정제된 이미지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들은 아이들이 알아서 그 곡을 어떤 느낌이구나 한 다음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컨셉을 구현해내는 방식이었고, 그 때문에 아이들 간에 컨셉의 온도나 편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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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민의 말은, 그런 것을 막음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컨셉을 설명할 수 있도록 보다 해석이 쉽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자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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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앨범의 이미지’와 함께, ‘유입용 컨텐츠’를 만들자고 하며 경민이 추가 설명자료로 들고온 것이 그 프릴 달린 의상이었다. “이 앨범의 경우는 매우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는 설명까지 덧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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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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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의 외침에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을 지은 고경민.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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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위의 시간을 여자로 살아오면서, 입을만한 옷은 다 입어봤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고 정서라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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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져도 그가 짧은 탱크탑에 핫팬츠를 입을 수는 없는 것처럼, 프릴 달린 이상한 일본 아이돌풍 드레스도 마찬가지였다.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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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절대 저런 것 안 입을 겁니다. 저한테 강요할 생각일랑 꿈에도 꾸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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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걸 입자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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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는 게 아니면 그런 걸 왜 가져왔다는 말입니까? 네? 그거 자체에서 이미 의도가 있다는 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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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이 떠나가라 외치는, 평소보다 말투가 많이 흔들리는 그녀의 친구. 이서는 머리를 긁었다. 얼마 전부터 계속 생각하던 거지만, 이제는 확실해졌다. 그녀의 친구 ‘하수연’은 킥보드 사고때 뇌가 좀 망가진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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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사람이 바뀔 수가 있겠는가. 별로 안 친하던 시절 인스타그램에 맨날 반쯤 헐벗은 사진 올리던 애가, 이제는 무슨 프릴 치마 하나 입는 거에도 완전 발작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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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유교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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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진정 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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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을 하게 생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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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 부장님이 당장 입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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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잦아든 것 같은 ‘하수연’의 움직임. 그러나 이서가 잠시 수연의 등을 토닥이는 사이, 현아의 발언이 옆에서 쏜살같이 날아와 수연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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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애초에, 옛날에 보면… 인스타에도 막, 그런 막, 저런 거보다 더 한 거… 그런 거 많이 올리셨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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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없는, 아니 악의가 있을지도 모르는 현아의 직설적인 발언. 그 말에 수연은 잠시 굳어있다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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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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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맞잖아. 그때 나 완전 놀랬어. 밴드 들어왔을 때는 엄청 조신하게 입고 있던 한살 어린 여자애가, 인스타에 가보니까 무슨 그때 중학생이었는데 반쯤 헐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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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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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교복 치마를 엉덩이 보이기 직전까지 끌어올려놓고. 07년생 이런거 해쉬태그로 올려놓으니까 나도 웬만한 거는 그냥 무시하는데 내 안의 유교드래곤이 막 깨어나는 게 느껴지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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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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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진실성이 느껴지는 수연의 외침.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는 서하와 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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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아. 엄마는 그런 거 진짜 좋지 않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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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의 그런 말에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이 부들부들대는, 하지만 엄마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수연. 그 틈을 타 이서는 잠시 수연의 등을 토닥이고는, 고경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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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제 저런 것처럼… 잘 만들어진 이미지는 잘 만들어진 앨범과 어쩌고. 그런 걸 만든다는 게 부장님이 말하고 싶으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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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다. 뭐 어쩌면 그게 역이 되었을 수도 있긴 합니다만, 아무튼 우리 정규 앨범 제작에 있어 일종의 이미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것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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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그 꼴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고경민 부장. 이서는 억울해서 죽으려고 하는 상태의 수연(도대체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을 힘으로 눌러 앉히고는, 머리를 긁었다. 이미지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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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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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세션. 명전은 세션을 위해서 만난 한국 메이저 락 밴드, 테일러드의 리더 김철연에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정규앨범의 근황을 궁금해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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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들 그러는 법이긴 하죠. 첫 앨범이니까. 아니 첫 앨범은 아닌가? 여러분 EP도 냈잖아. 그때는 그런 일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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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제가 다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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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 그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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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만들면 아무래도 그런 게 편하지~” 라는 중얼거림에, 명전은 속으로 동감했다. 혼자 다 하면 이리저리 귀찮은 일 안 겪어도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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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 같이 하고, 사람들 많이 끼는 게 앨범 퀄리티가 나오는 편이니까. 디자이너가 있었다면 조금 편하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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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드는 디자이너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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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야 뭐, 외주 주죠. 의상은 코디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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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의 질문에 철연은 그렇게 답하며 이리저리 설명을 해 주었다. 앨범 표지나 MV같은 건 다 외주. 전체적인 디자인 컨셉은 그냥 자기들끼리 고민. 그 외 의상디자인이나 그런 건 다 코디네이터 사용하고, 무대 디자인도 외주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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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도맡아 하는 직원이 있으면 편하긴 하지. 근데 무슨 큰 회사 아닌 이상에야 그렇게 막 직원을 뽑을 수가 없으니까. 그거 외주인력 말고 내부직원으로 뽑으려면 디자인 팀 자체를 채용을 해야 될 걸? 거의 다섯명 정도 뽑아야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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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한 명으로 안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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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그런 걸 누가 한명이 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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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연의 말에 명전은 머리를 꼬았다. 옛날에는 그냥 음반사 여직원 한명이랑 외부 인력 한명이 붙어서 저런 디자인 일 다 처리했던 것 같은데. 디자인이야 그냥 다 비슷비슷한 거 아닌가. 내나 다 예술하는 애 데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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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러니까 자꾸 꼰대 소리를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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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머리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 점점 더 아이들의 놀림이 심해지는 만큼, 그도 옛날 사고방식을 버려야 했다. 언제까지 놀림만 받고 살 것인가. ‘서명전’의 사고방식을 가져가면 가져갈수록, 허구한 날 꼰대라며 놀림받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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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뭐, 옛날 생각 나네. 그렇지 않냐? 우리도 옛날에 이랬잖아. 앨범 막 제작할 때 허둥지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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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긴 했죠. 그런데 우리는 이쪽보다는 고생이 덜 했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디자인이니 의상이니 그런 걸 신경 안 써도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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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는 명전을 앞에 두고, 철연과 동료들은 자기들의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명전은 그런 이야기를 조금은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보다 까마득한 후배들이었지만, 그래도 앨범 제작에 있어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베테랑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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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우리 뭐 앨범 예전에 작업했던 자료나 이런 것들 한번 볼래요? 참고가 될지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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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런 철연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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