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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말해서 방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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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블록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모든 국민의 정보가 전자 서버에 등록된 준-디스토피아급 통제 사회였던, 지구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 치안이 좋았던 전생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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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면 환생하고 나서는 안전과는 영 동떨어진 삶을 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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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마을 밖은 곧바로 목숨이 위험한 야생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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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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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게 최소 12시간의 고된 노동이 끝난 후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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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카렘은 숲과 들에서 수차례 목숨의 위협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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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하급 몬스터인 고블린이었지만, 다 큰 성인도 아니고 굶주려서 비쩍 골은 어린이에게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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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단련된 생존 본능은, 불과 몇 달 만에 전생의 카렘이었어도 부러워했을 풍요로운 문명 생활로 무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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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여긴 윈터홈. 공작성의 한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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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예상하는 것이 더욱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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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한날 실험 실패로 난리가 일어나긴 하지만 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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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금속 정육면체 여럿이 갑작스럽게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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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이었으면 반사적으로 피했겠지만, 카렘은 도로 위에서 헤드라이트를 본 동물처럼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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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르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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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카렘은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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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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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앞으로 나온 메리는 가장 먼저 날아오는 금속 블록을 후려쳤다. 깡-! 선명한 주먹 자국과 함께 블록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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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생각보다 그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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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손을 휘젓자 그 뒤로 날아오던 나머지 금속 블록들이 요란한 파열음과 금속 파편을 흩날리며 방어막에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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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리운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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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기초 1. 마법 이전에 가장 먼저 자신의 마력부터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 법. 마력을 느끼고, 이를 통해 사물을 움직이는 연습을 반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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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전에 말씀하셨던 염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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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반인이 보기엔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결과가 같다고 과정까지 똑같은 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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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습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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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마력 조절을 능숙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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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은 캐서린이 아닌 다른 방의 중앙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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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케이드처럼 쌓여있던 금속 블록들이 빠르게 방 중앙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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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공자의 맞은편에 앉은 올리비에의 손짓에 피라미드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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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카렘은 처음으로 올리비에의 방을 둘러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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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가 매일같이 치우는데도 하루만 지나면 재료와 양피지, 책의 대환장이 벌어지는 캐서린의 방과는 달리 매우 깔끔하고 고즈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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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저기 불효막심한 제자 나부랭이와는 다르게 진도 자체는 빠르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로빈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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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탱이. 하얗게 센 수염처럼 뇌 주름도 하얘졌냐? 난 이걸 사흘 만에 끝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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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연구실을 가루 하나 남김없이 완전히 무너트려 버렸지! 맹랑한 것아! 그때 네가 구멍 낸 연금술 냄비가 얼마짜리였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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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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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툼을 시작하려던 두 대마법사 사이에 메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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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사이에 쌓인 먼지, 바닥에 떨어진 보푸라기에 얽힌 털, 엷게 얇게 층을 이룬 먼지층. 역시 사흘 동안 환기조차 하지 않으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청소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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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지금부터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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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메리의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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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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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남들이 보기엔 딱히 더럽지 않은) 더러운 방을 본 집요정의 눈은 뒤집힌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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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진작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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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또한 말없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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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 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먼지가 흩날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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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공자님. 청소는 미루면 안 됩니다. 공기를 맑게 하는 정화 마법 같은 것으로 모여 있기라도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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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가문의 직계 혈족에게 내보일 수 없는 무례를 저지르며 메리는 창문으로 척척 걸어가 벌컥 열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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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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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공자님. 직접 만나 뵙는 건 처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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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쪽은 원래 저렇게 눈치가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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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메리는 눈치를 안 보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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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 집 시종 시녀들은 우리 가족 눈치를 많이 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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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보다 당장의 일거리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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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과 로빈은 캐서린을 따라 어느새 메리의 말대로 올리비에가 펼친 정화 결계의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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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계를 곧바로 안정화한 올리비에가 캐서린을 턱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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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키티. 네가 내 방엔 웬일이냐. 일거리를 떠맡길 때를 빼고는 직접 마주치는 것조차 경기를 일으키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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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가 사흘 넘게 틀어박혀서 뭐 하는지 궁금해하길래. 마침 나도 심심해서 따라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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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심심하다고? 그동안 쌓인 결재 서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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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하하하하! 내 일 처리 능력은 영감탱이 네놈이 가장 잘 알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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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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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한 동안 일거리를 올리비에한테 떠맡긴다고 하더라도 최종 확인 및 결재는 결국 명령권자인 캐서린이 해야 했기에 일감이 쌓이는 것은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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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캐서린은 성에 도착한 당일에 일거리를 모조리 해치운 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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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또한 그녀의 그런 능력을 알았기에 앓는 소리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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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볼거리도 있으니 딱 좋군.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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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엡. 부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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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간식은 여기서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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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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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진짜냐면서 질린 표정으로 캐서린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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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로빈 공자를 과외수업하는) 일이 남은 올리비에의 앞에서 즐겁게 휴식을 즐기겠다. 즉, 티배깅을 하겠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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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도 이건 참기 힘들었는지 손가락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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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으로 짜인 술식이 마력을 머금고 캐서린을 향해 불덩이의 형태로 쏘아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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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해보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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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이 코웃음을 치며 받아든 불덩어리는 그대로 얼어붙어 수없이 많은 파편으로 파열. 올리비에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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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두 대마법사 간의 작은 전쟁에 이제 막 마법에 입문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로빈이 상황을 파악 못 하고 넋이 나간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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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계급을 초월해 공감하며 무심코 로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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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도 좀 있으면 적응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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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걸 적응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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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에 한 번씩 보게 되면 싫어도 적응하게 되실 겁니다. 그러면 조금 이따 다시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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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로빈에게 꾸벅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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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디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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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니타스님 말대로. 간식을 준비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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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렘은 불똥이 튀기 전에 얼른 올리비에의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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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청소를 완전히 끝낸 메리가 소년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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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대마법사의 오랜만에 벌어진 작은 전투는 결국 보다 못한 로빈이 수업이 끝나지 않았다는 핑계로 종전을 선언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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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도 어쨌건 자신이 수업 중에 끼어든 것은 알았고, 로빈이 하는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먼저 마법을 거둬들이고는 수업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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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이렇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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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이익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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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로빈의 실수는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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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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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놈팡이는 걱정 마십쇼. 공자. 저것도 못 막으면 현자는 진작에 때려치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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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는 별걱정을 다한다는 투로 털썩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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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대로 캐서린은 의자에 앉은 그대로 팔짱만 풀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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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실패 원인을 복기해봅시다. 역시나 문제는 하나입니다.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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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블록은 너무 무겁고, 마력은 조절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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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십쇼. 며칠 전엔 블록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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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의 말대로 로빈은 조급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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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급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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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때부터 허약했던 탓인지 로빈은 바깥보다는 의자가, 의자보다는 침대가 더욱 익숙했다. 그 때문에 자유로운 형제 남매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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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자기 맘대로 윈터홈을 돌아다니는 알리시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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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력이 크게 폭주하고, 이를 진정시킨 이후 마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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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걸음만 걸어도 숨을 헐떡이던 몸은 도리어 너무 멀쩡해져 움직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거기에 설마 기대하지도 않았던 마법을 다룰 수 있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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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누워만 있었던 로빈은 지금의 상황이 꿈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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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원인이 된 마법, 마력을 더더욱 잘 다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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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숨과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다시 눈을 감고 마력에 집중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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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요. 한 번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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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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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부정에 로빈은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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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는 줄로 엮여 로빈의 가슴팍에 매달린 얼음 구체, 카렘이 로빈에게 빌려준 스카디의 성물을 두드리며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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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본다니. 그런 건 없습니다. 하거나, 하지 않거나. 못하거나. 해보겠다는 건 의미 없습니다. 그리고 이 늙은이가 보기엔 공자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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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의 말은 로빈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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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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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로빈은 무엇 하나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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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못했다. 전부 다 몸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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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작 수일 만에 완전히 상황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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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파운드만큼 무거웠던 몸은 솜털같이 가벼웠고, 언제나 거칠었던 숨은 부드러웠다. 이거나 저거나 처음이나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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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올리비에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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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은 조급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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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 한참이나 어렸고, 흘러넘치는 게 시간인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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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가능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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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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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은 다시 한번 금속 블록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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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저 계단식으로 쌓여있는 블록은 천천히 하나씩 바닥으로 내리면 될 뿐. 로빈은 정신을 집중하고, 주변의 마력을 움직여 블록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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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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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니타스님. 기다리시던 간식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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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드디어. 마침 지루해지려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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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장창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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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소리에 확 풀려버린 긴장. 그와 함께 블록에 또 과한 마력이 쏠려 주변을 폭격할 것처럼 흩날렸지만 캐서린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펼친 염동력에 붙잡혀 계단식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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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야말로 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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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카렘과 메리를 바라보았지만, 뜨거운 감정은 눈이 녹아버리는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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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케이크인가? 생각보다 크기가 작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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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디저트를 시험해보다가 나온 결과물입니다. 계약자. 카렘 후배가 도와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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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낭시에(financier)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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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에 놓여있던 접시와 잔들이 테이블에 차곡차곡 쌓이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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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의 중앙에 놓여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작은 금괴같이 생긴 파운드 케이크가 로빈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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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한 금괴 같은 모양에 어울리는 밝은 노란색과 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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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바랜 황금색의 작은 케이크는 총 네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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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눈곱보다 작은 씨앗, 아몬드, 베리 등이 알알이 박힌 것과 아무 장식도 되지 않은 일반 케이크가 종류별로 섞여 작은 건물 목업(Mock-up)처럼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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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찬가지로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구름 같은 휘핑크림 위로 계피 가루가 눈처럼 쌓인 큰 잔이 다섯 개가 테이블 주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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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공부하시는 것도 좋지만 간식 시간이니 먹고 하는 게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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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의 물음에 로빈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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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시아 그 돼지가 맨날 와서 자랑하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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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하는 로빈의 머리와는 달리 몸은 유령에 홀린 것처럼 테이블에 착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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