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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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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말해서 방심하고 있었다.

한 블록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모든 국민의 정보가 전자 서버에 등록된 준-디스토피아급 통제 사회였던, 지구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 치안이 좋았던 전생의 고향.

그에 반면 환생하고 나서는 안전과는 영 동떨어진 삶을 살았었다.

도시, 마을 밖은 곧바로 목숨이 위험한 야생의 땅.

하지만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그게 최소 12시간의 고된 노동이 끝난 후라고 해도.

덕분에 카렘은 숲과 들에서 수차례 목숨의 위협을 받았었다.

주로 하급 몬스터인 고블린이었지만, 다 큰 성인도 아니고 굶주려서 비쩍 골은 어린이에게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그렇게 단련된 생존 본능은, 불과 몇 달 만에 전생의 카렘이었어도 부러워했을 풍요로운 문명 생활로 무뎌졌다.

하물며 여긴 윈터홈. 공작성의 한복판.

위험을 예상하는 것이 더욱 이상했다.

(허구한날 실험 실패로 난리가 일어나긴 하지만 여튼)

그런 상황에서 금속 정육면체 여럿이 갑작스럽게 날아들었다.

이전이었으면 반사적으로 피했겠지만, 카렘은 도로 위에서 헤드라이트를 본 동물처럼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자칫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지금 카렘은 혼자가 아니었다.

"엇차."

어느새 앞으로 나온 메리는 가장 먼저 날아오는 금속 블록을 후려쳤다. 깡-! 선명한 주먹 자국과 함께 블록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거 생각보다 그립군."

캐서린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손을 휘젓자 그 뒤로 날아오던 나머지 금속 블록들이 요란한 파열음과 금속 파편을 흩날리며 방어막에 가로막혔다.

"이게 그리운 일입니까?"

"마법사의 기초 1. 마법 이전에 가장 먼저 자신의 마력부터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 법. 마력을 느끼고, 이를 통해 사물을 움직이는 연습을 반복하는 것이다."

"어, 전에 말씀하셨던 염동력?"

"음. 일반인이 보기엔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결과가 같다고 과정까지 똑같은 법은 아니다."

"그 연습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당연히 마력 조절을 능숙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그 답은 캐서린이 아닌 다른 방의 중앙에서 들려왔다.

바리케이드처럼 쌓여있던 금속 블록들이 빠르게 방 중앙으로 날아갔다.

로빈 공자의 맞은편에 앉은 올리비에의 손짓에 피라미드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그제야 카렘은 처음으로 올리비에의 방을 둘러볼 수 있었다.

메리가 매일같이 치우는데도 하루만 지나면 재료와 양피지, 책의 대환장이 벌어지는 캐서린의 방과는 달리 매우 깔끔하고 고즈넉했다.

"뭐, 그래도 저기 불효막심한 제자 나부랭이와는 다르게 진도 자체는 빠르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로빈 공자."

"영감탱이. 하얗게 센 수염처럼 뇌 주름도 하얘졌냐? 난 이걸 사흘 만에 끝냈다고."

"그리고 내 연구실을 가루 하나 남김없이 완전히 무너트려 버렸지! 맹랑한 것아! 그때 네가 구멍 낸 연금술 냄비가 얼마짜리였는 줄-"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말다툼을 시작하려던 두 대마법사 사이에 메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책장 사이에 쌓인 먼지, 바닥에 떨어진 보푸라기에 얽힌 털, 엷게 얇게 층을 이룬 먼지층. 역시 사흘 동안 환기조차 하지 않으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청소를 시작하겠습니다."

"지, 지금부터 말이냐?"

갑작스러운 메리의 선포.

올리비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남들이 보기엔 딱히 더럽지 않은) 더러운 방을 본 집요정의 눈은 뒤집힌 지 오래였다.

카렘은 진작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

캐서린 또한 말없이 공감했다.

"지금 방 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먼지가 흩날리지 않을까?"

"로빈 공자님. 청소는 미루면 안 됩니다. 공기를 맑게 하는 정화 마법 같은 것으로 모여 있기라도 하시죠."

공작 가문의 직계 혈족에게 내보일 수 없는 무례를 저지르며 메리는 창문으로 척척 걸어가 벌컥 열어버렸다.

"카렘, 맞지?"

"로빈 공자님. 직접 만나 뵙는 건 처음이군요."

"저기 저쪽은 원래 저렇게 눈치가 없는 거야?"

"아뇨. 메리는 눈치를 안 보는 것뿐입니다."

"보통 우리 집 시종 시녀들은 우리 가족 눈치를 많이 보던데."

"그런 것보다 당장의 일거리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카렘과 로빈은 캐서린을 따라 어느새 메리의 말대로 올리비에가 펼친 정화 결계의 안으로 들어갔다.

결계를 곧바로 안정화한 올리비에가 캐서린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키티. 네가 내 방엔 웬일이냐. 일거리를 떠맡길 때를 빼고는 직접 마주치는 것조차 경기를 일으키더니만."

"꼬마가 사흘 넘게 틀어박혀서 뭐 하는지 궁금해하길래. 마침 나도 심심해서 따라왔을 뿐이다."

"뭐? 심심하다고? 그동안 쌓인 결재 서류는-"

"파하하하하! 내 일 처리 능력은 영감탱이 네놈이 가장 잘 알 텐데."

"끄으응-"

외출한 동안 일거리를 올리비에한테 떠맡긴다고 하더라도 최종 확인 및 결재는 결국 명령권자인 캐서린이 해야 했기에 일감이 쌓이는 것은 당연.

하지만 캐서린은 성에 도착한 당일에 일거리를 모조리 해치운 지 오래.

올리비에 또한 그녀의 그런 능력을 알았기에 앓는 소리만 냈다.

"마침 볼거리도 있으니 딱 좋군. 꼬마"

"예엡. 부르셨습니까."

"오늘 간식은 여기서 먹겠다."

"우와아아..."

카렘은 진짜냐면서 질린 표정으로 캐서린을 보았다.

아직 (로빈 공자를 과외수업하는) 일이 남은 올리비에의 앞에서 즐겁게 휴식을 즐기겠다. 즉, 티배깅을 하겠다는 말.

올리비에도 이건 참기 힘들었는지 손가락을 휘둘렀다.

즉석으로 짜인 술식이 마력을 머금고 캐서린을 향해 불덩이의 형태로 쏘아 보내졌다.

"하, 해보자는 건가."

캐서린이 코웃음을 치며 받아든 불덩어리는 그대로 얼어붙어 수없이 많은 파편으로 파열. 올리비에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갑작스러운 두 대마법사 간의 작은 전쟁에 이제 막 마법에 입문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로빈이 상황을 파악 못 하고 넋이 나간 것은 당연했다.

카렘은 계급을 초월해 공감하며 무심코 로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공자님도 좀 있으면 적응하실 겁니다."

"아니, 이걸 적응할 수 있다고?"

"며칠에 한 번씩 보게 되면 싫어도 적응하게 되실 겁니다. 그러면 조금 이따 다시 오겠습니다."

카렘은 로빈에게 꾸벅 인사했다.

"응? 어디 가는 거야?"

"아타니타스님 말대로. 간식을 준비하러 갑니다."

그리고 카렘은 불똥이 튀기 전에 얼른 올리비에의 방을 나섰다.

어느새 청소를 완전히 끝낸 메리가 소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두 대마법사의 오랜만에 벌어진 작은 전투는 결국 보다 못한 로빈이 수업이 끝나지 않았다는 핑계로 종전을 선언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캐서린도 어쨌건 자신이 수업 중에 끼어든 것은 알았고, 로빈이 하는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먼저 마법을 거둬들이고는 수업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아니, 이게 이렇게. 어!?"

휘이이익 쾅!

물론 로빈의 실수는 계속 이어졌다.

"아타니타스!"

"저기 놈팡이는 걱정 마십쇼. 공자. 저것도 못 막으면 현자는 진작에 때려치워야지."

올리비에는 별걱정을 다한다는 투로 털썩 의자에 앉았다.

그 말대로 캐서린은 의자에 앉은 그대로 팔짱만 풀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자, 실패 원인을 복기해봅시다. 역시나 문제는 하나입니다. 공자."

"하지만 블록은 너무 무겁고, 마력은 조절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십쇼. 며칠 전엔 블록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잖습니까?"

올리비에의 말대로 로빈은 조급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급해할 수밖에 없었다.

날 때부터 허약했던 탓인지 로빈은 바깥보다는 의자가, 의자보다는 침대가 더욱 익숙했다. 그 때문에 자유로운 형제 남매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나 자기 맘대로 윈터홈을 돌아다니는 알리시아를.

그런데 마력이 크게 폭주하고, 이를 진정시킨 이후 마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을 헐떡이던 몸은 도리어 너무 멀쩡해져 움직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거기에 설마 기대하지도 않았던 마법을 다룰 수 있기까지.

언제나 누워만 있었던 로빈은 지금의 상황이 꿈만 같았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된 마법, 마력을 더더욱 잘 다루고 싶었다.

"그렇다면 숨과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다시 눈을 감고 마력에 집중해보시길."

"알았어요. 한 번 해볼게요."

"그게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부정에 로빈은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올리비에는 줄로 엮여 로빈의 가슴팍에 매달린 얼음 구체, 카렘이 로빈에게 빌려준 스카디의 성물을 두드리며 강조했다.

"해본다니. 그런 건 없습니다. 하거나, 하지 않거나. 못하거나. 해보겠다는 건 의미 없습니다. 그리고 이 늙은이가 보기엔 공자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올리비에의 말은 로빈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 말대로였다.

그동안 로빈은 무엇 하나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니, 못했다. 전부 다 몸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작 수일 만에 완전히 상황은 바뀌었다.

천 파운드만큼 무거웠던 몸은 솜털같이 가벼웠고, 언제나 거칠었던 숨은 부드러웠다. 이거나 저거나 처음이나 마찬가지.

확실히 올리비에의 말이 맞았다.

로빈은 조급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아직 한참이나 어렸고, 흘러넘치는 게 시간인 몸.

'이번에는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로빈은 다시 한번 금속 블록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할 일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저 계단식으로 쌓여있는 블록은 천천히 하나씩 바닥으로 내리면 될 뿐. 로빈은 정신을 집중하고, 주변의 마력을 움직여 블록을 붙잡았다.

벌컥-

"아타니타스님. 기다리시던 간식이 도착했습니다."

"오, 드디어. 마침 지루해지려던 참이었다."

와장창창창!

갑작스러운 소리에 확 풀려버린 긴장. 그와 함께 블록에 또 과한 마력이 쏠려 주변을 폭격할 것처럼 흩날렸지만 캐서린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펼친 염동력에 붙잡혀 계단식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이번에야말로 될 줄 알았는데!

로빈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카렘과 메리를 바라보았지만, 뜨거운 감정은 눈이 녹아버리는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디저트 케이크인가? 생각보다 크기가 작은데."

"여러 디저트를 시험해보다가 나온 결과물입니다. 계약자. 카렘 후배가 도와줬습니다."

"피낭시에(financier)라고 합니다."

쟁반에 놓여있던 접시와 잔들이 테이블에 차곡차곡 쌓이는 가운데.

테이블의 중앙에 놓여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작은 금괴같이 생긴 파운드 케이크가 로빈의 눈에 들어왔다.

볼록한 금괴 같은 모양에 어울리는 밝은 노란색과 갈색.

빛이 바랜 황금색의 작은 케이크는 총 네 종류.

각각 눈곱보다 작은 씨앗, 아몬드, 베리 등이 알알이 박힌 것과 아무 장식도 되지 않은 일반 케이크가 종류별로 섞여 작은 건물 목업(Mock-up)처럼 쌓여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구름 같은 휘핑크림 위로 계피 가루가 눈처럼 쌓인 큰 잔이 다섯 개가 테이블 주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시는 것도 좋지만 간식 시간이니 먹고 하는 게 어떠십니까?"

카렘의 물음에 로빈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알리시아 그 돼지가 맨날 와서 자랑하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경악하는 로빈의 머리와는 달리 몸은 유령에 홀린 것처럼 테이블에 착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