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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겨울 동안 휑했던 마법사의 탑은 봄이 되고 여름이 다가올수록 하루가 지날수록 마법사들이 들어왔고 북적거리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 봐야 탑에 널리고 널린 연구실의 반의반도 차지 않은 것도 있었다.
위력적인 마법 때문에 많이들 오해하지만, 기본적으로 마법사란 마법이란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자.
이른바 사무직.
그런 사무직이 바깥을 나돌아다닌다면 분명 이유가 있었다.
후원자가 없어 재료와 자금을 직접 수급해야 한다던가.
아랫사람을 도저히 믿기 힘들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던가.
아니면 그냥 몬스터와 사람이 불타고 죽는 것이 좋은 사이코라던가.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마법사의 탑에 들어온 이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연구자였고 조용한 편이었던지라 간혹 연구실 곳곳에서 폭발 소리와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를 제한다면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면 캐서린, 올리비에의 일상이었다.
최고 마법 고문이라는 대기사장에 맞먹는 직위를 가지면 뭐하나.
에우로파 대륙에 몇 없는 대마법사라고 하면 뭐하나.
막상 사람이 없어 그 직위에 그 실력인데도 두 대마법사는 직접 두 발로 뛰어다니며 돌아다니고 인챈트하고 주문, 도구를 만들고 시설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
일을 떠넘기고 부릴 수 있는 노, 아니 마법사들이 들어왔다.
실력에 맡게 업무를 분배할 수 있게 되었으니 두 대마법사의 스캐쥴은 여유롭다 못해 널찍해졌다.
이전의 초과근무와 야근에 절어 있던 일상에 비하면 여유 그 자체.
진정으로 찾아온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며 캐서린은 메리가 집은 머랭 쿠키를 입술로 물었다.
도토리만 한 크기의 분홍빛 꽃망울 형상의 머랭은 혀로 누르자마자 얼음이 부서지듯이 산산이 조각나 가루로 흩어졌다.
은은한 단맛과 과일 향이 순간 감돌았지만 이내 새벽의 안개가 햇빛에 의해 흩어지듯이 입안에서 순식간에 흔적을 감추었다.
틈만 나며 읽던 책과 두루마리도 없이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소파에 드러누운 캐서린은 있는 힘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그동안 쉬지 못한 것을 몰아서 한꺼번에 쉬겠다는 의지.
백수와 나무늘보, 판다를 합친 듯한 멍한 표정.
녹아내릴 것 같이 소파에 늘어진 팔다리
한심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빛을 발하는 미모 덕분에 그림이 되니 카렘은 마음속으로 열불이 나다가도 꺼지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주 소파에 녹아내리다 못해 일체화해버리시겠어요. 아타니타스님."
"이제 급한 일도 없을 텐데 무얼."
"처리하실 일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실 텐데요?"
물론 카렘의 말은 옳았다.
캐서린에겐 여전히 여전히 할 일들이 많았다.
아무렴 결국 밑에 사람들이 보고하는 경과와 결과를 마지막에 확인하는 사람은 한 명, 캐서린이었으니까.
그마저도 캐서린에 의해 마법 고문 위원.
대충 마탑의 2인자에 강제로 임명된 올리비에에 의해 걸러진 거긴 하지만 어쨌든.
"무얼 그래 봤자 서류 작업은 보고서를 확인하거나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게 전부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급이 맞는 사람만 하면 되니 여유롭다. 여유로워."
"개인적인 연구도 있지 않으셨나요? 전엔 연구할 시간 없다고 투덜거리시더니?"
".....연구는 뭐 넘쳐나는 게 연구 시간이니 나중으로 미루면 되겠지."
중요한 일이지만 급한 일은 아니니까.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잘 부탁한다. 미래의 나!
캐서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렘은 그 뜻을 얼굴에 떠오른 표정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장본인도 자신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지 알아 찔끔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렘의 불손한 눈빛에 찔려 도리어 버럭 호통쳤다.
"어허, 시선이 무례하다!"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말이 없어도 눈빛으로 할 말 다 하고 있지 않냐. 어허!"
"....하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렴 캐서린은 그의 고용주였으며, 옵시디언베리에서의 일 덕분에 보너스도 타 먹을 수 있었다. 가을에 있을 연봉 협상을 위해서라도 이쯤 하도록 할까.
"그래서, 냠. 오늘 점심은 뭐지?"
"...간식을 들고 계시잖아요."
"그래. 간식이랑 점심과 무슨 관계가 있나? 뭐 새로운 거라도?"
"아니, 하."
카렘은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정말 싫지만, 캐서린의 심정을 이해해버렸다.
자고로 아침을 먹으면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뇌하고 점심엔 저녁밥을 고민하며 저녁을 먹고 나면 그다음 날 아침으로 뭘 먹을까 생각하는 법.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동안의 이미지와는 영 동떨어진 나태한 금색 비단 고치를 보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캐서린의 주문을 학습한 카렘의 머리는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신선한 소랑 돼지고기가 들어왔으니 채소와 함께 다져서 빵가루를 넣어서 구운 미트로프(Meatloaf)를 메인으로 달걀 마요네즈를 비롯해 사이드 메뉴 몇 가지는 어떠신지?"
"미트로프라. 아이젠발트 쪽 요리는 또 오랜만이구나."
이름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것저것 따져보면 이름에 덩어리(loaf)가 들어가는 것답게 거대한 빵 모양 미트볼과 별 다른 바 없었다.
맛도 미트볼과 유사하고, 재료도 별 차이는 없었다.
다진 고기와 채소, 빵가루를 베이스로 이것저것 취향에 따라 추가로 들어가는 정도였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역시 크기 때문에 훈제나 오븐이 필요하고 미트볼이 소스에 졸인다면 미트로프는 여러 차례 소스를 발라가며 구웠다.
그 단순한 재료와 조리법 덕분에 지역에 따라 약간의 변형만 있을 뿐 수많은 바리에이션이 있는 것이 바로 미트로프라고 할 수 있었다.
메뉴에 별생각 없었던 캐서린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같이 넣겠다고?"
"돼지기름에 튀겨지듯이 익은 소고기의 풍미. 그러면서도 돼지고기 덕분에 부드러워질 텐데 이걸 참으시겠다고요?"
"하, 그건 절대로 못 참지."
단순한 설명만으로도 캐서린은 그 맛이 상상이 가는지 작게 감탄했다.
아무렴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조합은 여러 방면으로 자주 보이는 조합이니만큼 안 어울릴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그러다 문득 캐서린은 무언가가 떠오른 듯 고개를 획 돌렸다.
"훈제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니 오븐으로 구울 테지?"
"그야 물론이죠."
"그렇다면 얇게 자른 베이컨도 같이 구워서 내오거라."
"바삭바삭하게 구워서 말입니까?"
"가루처럼 부서지도록 바삭하게."
"돼지 뱃살 베이컨?"
"그야 당연한 거 아니냐?"
본래 에우로파 대륙엔 돼지 등심, 안심 베이컨이 보편적이었다.
캐서린도 당연하게 여겼지만, 카렘이 일전에 맛보여준 돼지 뱃살 베이컨에 의해 그 고정 관념은 단번에 부서졌다.
부서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렴 잘 익혀봤자 바삭하기는커녕 퍽퍽하고 질기기만 한 물건보다 파슬파슬 바삭바삭한 돼지 뱃살 쪽에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캐서린은 뱃살 쪽이 좀 더 좋았다.
사이드 몇 가지라면 분명 따뜻한 수프도 같이 나올 테니 잘게 부숴서 뿌려 먹으면...잠깐, 따뜻한?
점심을 기대하며 고민하던 대마법사는 아차 하며 움직임을 멈추고는 입을 벌렸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음? 네? 역시 뭐 잊어먹으신 게 있었나 보군요?"
"에잇 참. 그게 아니다. 메리."
"아,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알겠습니다."
주어가 없는데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는 듯 메리는 캐서린의 입에 머랭 쿠키를 하나 더 물리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으름을 부리다가 잊어버린 일이나 물건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저번에 고드윈 공자 식사 때처럼 갑작스럽게 일이 굴러 들어오는 건가?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먼저 축하부터 해주마."
"네? 뭐 추가 보너스라도 주시는 겁니까?"
"반 정도는 틀린 말은 아니구나."
"음? 진짜요?"
"내가 아니라 주군이 보상을 하사하시는 것이지만."
소문은 바람처럼 빠르다는 말처럼 흥미로운 소식과 정보가 습기 찬 봄바람처럼 사람을 타고 아이스랜드 곳곳으로 퍼졌다.
콜던에선 독초를 먹는 것이 유행이라거나.
유명한 대마법사들이 윈터홈에 고용됐다거나.
그리고 당연히도 아도비스의 사절이 아이스랜드에 방문했고, 또 요리를 극찬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리고 캐서린과 카렘의 보상은 이와 관련이 있었다.
보상의 이유는 아도비스의 사절의 입에서 아이스랜드의 문화를 극찬하게 만들어 카렘을 고용한 캐서린을 신하로 삼은 아이스랜드 공작 알프레드 펠윈터의 명성을 드높였다는 것.
신하의 공로는 곧 주군의 공로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주군의 명성/명예를 드높인 신하에겐 상이 있어야 하는 법.
점심을 끝낸 캐서린을 따라 카렘은 그에 대한 보상을 논한다는 이유로 메리와 함께 알프레드의 집무실로 호출됐다.
"그 외에도 카렘 그대의 비전을 숨기지 않고 아낌없이 베풀어 윈터홈의 주방과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했으며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독초가 아님을 밝혀 아이스랜드에 새로운 물산을 발견한 공로도 있지."
"허어..."
대량으로 반입된 산더미같이 쌓인 각양각색의 서류를 제외하면 겨울에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 집무실에서 잠자코 듣던 카렘은 새삼스러웠다.
귀족에게 있어서 명예, 명성, 평판은 어쩔때면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욱 중요할 때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카렘과 캐서린의 공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아이스랜드에 새로운 수입이 될 예정인 붉은 마녀의 손가락.
비전을 아낌없이 베푼 덕분에 더욱 풍성해진 펠윈터의 식탁.
아도비스에서 찾아온 귀빈 네파네크를 만족시키며 한 방 먹이게 만든 것까지.
캐서린? 부하의 공로는 곧 상사의 공로인 법.
무엇보다 캐서린, 그녀의 진정한 공로는 카렘을 발굴하고 고용한 데 있었다.
그리고 이는 공적으로서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그녀가 카렘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위의 셋 어느 것도 성사되지 않았을 테니까.
친히 설명을 끝마친 알프레드가 작은 종을 흔들었다.
그 신호에 아이오나가 화려한 비단 두루마리가 올려진 쿠션을 든 시종과 함께 기사와 병사들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카렘은 반사적으로 캐서린과 메리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캐서린 메리골드 아타니타스의 시종 겸 요리사인 카렘은 아이스랜드에서 새로운 물산을 발견하고 펠윈터 가문의 명성을 드높인 것에 대한 보상으로 펠윈터 가문의 보물고에서 한 가지 물건을 선택해 소유할 권리를 부여한다."
끝났나 싶어 눈치를 보던 카렘은 캐서린을 따라 일어나려다가 아이오나의 말이 계속 이어지자 잽싸게 자세를 원상 복귀했다.
"또한, 요리사 카렘을 발견, 등용한 캐서린 메리골드 아타니타스에게도 펠윈터 가문의 보물고에서 같은 권리를 부여하며, 이전의 예산 증액 요청을 받아들여 하나의 장원을 마법사의 탑에 배정한다."
그리고 아이오나의 말이 이어지자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캐서린은 소리 없이 경악했다.
펠윈터 가문의 보물고.
아무리 가난한 귀족 가문이라도 재산을 보관하는 창고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었지만 펠윈터 가문의 보물고라면 차원이 달랐다.
가문의 위상만 따지면 왕가 다음을 논할 정도며 역사로만 따지면 세오폰 왕국은 어린아이에 불과할 정도로 펠윈터 가문은 사실상 아이스랜드와 같이 여겨질 만큼 기나긴 역사를 자랑했다.
솔직히 카렘도 조금은 두근거렸다.
그야 카렘도 남자였다.
산처럼 쌓인 금화, 온갖 마법이 걸린 장비와 도구, 오랜 역사가 깃든 물건들과 차곡차곡 쌓여있을 골드바와 실버바.
남자라면 보물고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자료첨부
-머랭 쿠키-
챗GPT가 그려준 그림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