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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어제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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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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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안으로 모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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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의 턱짓에 하는 수 없이 카렘은 마지막 국물을 머금은 빵을 그녀에게 먹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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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정문까지의 거리는 무척 짧았지만, 그가 문을 열러 가는 동안에도 손님(추정)은 일정한 박자로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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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노크를 멈춘 것은 카렘이 문고리를 돌리고 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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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 시종인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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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아니 손님들을 대동한 손님을 올려 보자마자 카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로 존댓말이 우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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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지요. 경. 전속 시종에 요리사도 겸하는 카렘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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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이렇게나 어린데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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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곰의 머리를 본뜬 투구 속에서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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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밑으로 전신을 가리는 판금과 사슬이 혼성된 갑옷을 덮은 두꺼운 곰 가죽 망토, 양 허리춤에 패용된 롱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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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뒤로는 가죽을 덧댄 누비 갑옷을 착용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나열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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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보더라도 병사들을 이끄는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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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여기에 아타니타스 공이 머무르신다고 들었다. 안에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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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나리. 손님을 안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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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너흰 여기서 대기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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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눈치껏 기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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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해서 집의 넓이가 안내라는 것이 필요할 만큼 크지도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손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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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무장한 기사는 겉모습만큼이나 무게가 상당한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렘을 앞장세우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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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부엌에 들어설 때까지 바닥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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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은 기사의 방문을 진작에 예상했는지 태연한 모습으로 품에서 이전에 외성, 내성을 출입할 때 보였던 두루마리를 건넸다. 인장을 거침없이 뜯은 기사는 두루마리-임명장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캐서린에게 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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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했소. 아타니타스 공. 난 베어폰드의 하이폰이오. 아무래도 식사를 방해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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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 요리사가 식사하던 도중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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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식사를 방해했나. 그건 아니 될 말이지. 자고로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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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하이폰을 슬쩍 쳐다보았다. 확실히 저만한 덩치라면 아침부터 통구이 돼지 한 마리를 뼈까지 씹어먹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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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침을 보통 간단하게 먹는 세오폰 왕국에서는 독특하다면 독특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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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식사를 마저 끝마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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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폰은 빈말이 아니었는지 곰 투구의 바이저를 열어 부리부리한 눈으로 난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며 말없이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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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니 카렘은 곧바로 앉은 자리에서 얼마 남지 않은 졸아든 닭곰탕에 빵을 곁들여 뼛조각만 남기고는 모조리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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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챙길 시간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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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방문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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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애초에 캐서린은 앞서서 짐들을 미리 목적지에 보내놓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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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사정이 사정인지라 돈 자루와 이끼 멧돼지 가죽으로 만든 빵빵한 배낭에 매달린 각종 조리도구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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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집의 주인인 해머슨에게 열쇠를 전달할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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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을 이해한 하이폰은 캐서린과 카렘이 얼마 없는 짐을 들고 오자 곧바로 호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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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스터와 그 주변은 지금 한창 바쁠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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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부촌 밀집 구역인 내성조차도 월동을 나기 위해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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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와중에 내성 한복판을 한 무리의 병사들이 다가오자 목양견을 피하는 양 떼 같이 인파가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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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리려던 사람들도 선두에 중무장한 기사를 보고는 없던 공손함마저 생겨나며 스스로 자리를 비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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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안 보이려야 안보일 수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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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렘과는 달리 기사도, 캐서린도, 하다못해 기사를 뒤따르는 병사들도 사람들이 비키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무언으로 인파를 가르며 내성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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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이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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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는 것도 잠시. 금세 질려버린 캐서린은 슬쩍 하이폰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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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를 위해서 온 책임자는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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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랜드 공작께서 아이오나 장로님을 책임자로 임명하셨소. 오늘 아침 그대를 안내하라 하신 것도 그분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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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라니. 사제와는 좋은 기억이 없는 카렘은 그 말에 무심코 인상을 찌푸렸다가 재빨리 미간의 긴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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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아무도 키가 작은 소년을 신경 쓰지는 않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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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이 긴장하거나 말거나 캐서린은 의외라는 듯이 작게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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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장로? 그래 봐야 시종을 보내올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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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한파의 대정령을 안내하는데 고작 시종을 보내기엔 격이 맞지 않지. 공작님의 명령에 장로님께서 무거운 몸을 움직이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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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오폰 왕국은 비록 다신교 국가였지만 다행히 사제간의 계급은 사제, 대사제, 장로, 교주로 통일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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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사제에서 교주로 갈수록 종파 내에서 계급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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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교주가 종파의 본부, 본단에서만 머무른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장로란 사실상 한 지역 내에서 종교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실질적인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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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에게 고용됐으니 언젠가는 높으신 분이 찾아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갑작스러운 너무나도 높으신 분의 예정된 인카운트에 카렘은 입이 바싹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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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캐서린은 당혹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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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정...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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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타니타스 공. 뭔가 불편한 것이라도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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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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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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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의 대정령이라는 칭호는 그녀 스스로가 만들어낸 흑역사나 다름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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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는 질풍노도의 중2병 시기를 나름의 방법으로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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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그녀의 질풍노도는 불로에 다다르면서 찾아왔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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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힘과 재능에 심취했던 캐서린은 다년간 모험가로 활동하며 스스로 한파의 대정령이라 3인칭으로 부르며 온 세상을 쏘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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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질풍노도의 시기는 그녀의 긴 인생에 비하면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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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중2병을 졸업한 캐서린은 결국 스스로 만든 재앙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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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의 대정령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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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자신이 누굴 모시고 있는지도 몰랐다는 말인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업적을 하나도 몰라서야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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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그에 관해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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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람이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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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시간이 흘러 한파의 대정령과 직접 마주한 이들은 죽었지만, 그에 대한 기록들은 꾸준히 남아버렸고 그녀가 잊어버리려고만 하면 그녀의 상처를 후벼 파서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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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최연소로 현자에 도달해 불로를 이룩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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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압니다. 나리. 현자는 처음 들어봤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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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절반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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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거 무리의 습격을 받은 귀족 행렬을 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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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위협하는 도적 기사단 격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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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왕국을 다년간 위협한 변종 트롤 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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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언데드 트롤인 미역 수염을 퇴치하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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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만으로도 음유시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러들만큼 뛰어난 업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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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자랑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뛰어난 업적들이었지만, 캐서린에게는 그저 부끄러운 찰나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촉매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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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이 한파의 대정령 앞에서 약자들을 괴롭히다니. 기사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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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오우거라는 기사조차 긴장시킨다는 몬스터의 위용이? 하, 같잖아서 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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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하라! 지상에 강림한 대한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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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힘으로! 무한한 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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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제기랄, 망할 꼬마 같으니라고! 네놈의 고용주를 배신하는 건가!’라고 무심코 속마음을 폭발시킬 뻔했던 캐서린에겐 다행히 맥주 통에 빠진 칼 여관에 도착, 엘프 여급에게 열쇠를 전달하고서야 이야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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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폰이 캐서린과 카렘을 이끈 곳은 주변의 다른 건물들보다도 한층 더 규모가 크고 고급스러운 여관의 옆에 딸린 커다란 마구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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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의 규모만큼이나 커다란 마구간에는 사람들이 짐을 옮기며 수레 사이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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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폰의 뒤를 따르는 같은 무장을 한 병사들과 각양각색의 무장을 갖춘 바이킹 같은 느낌이 나는 전사들 수십 명이 마구간의 공터에 느슨하게 정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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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 눈이 돌아갈 법도 했지만 카렘의 시선은 마구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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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이 보는 것은 병사들도, 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거대한 여관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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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우우욱-! 구우우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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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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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비교할 만큼 커다란 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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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큰데 더 커 보이는 북슬북슬한 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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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자주 탈것으로 등장하는 커다란 새가 독특한 울음소리를 내며 기수들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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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스노우러너를 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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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러너. 저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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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제 꼬마. 네가 먹은 꼬치구이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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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조류라고는 들었지만, 카렘이 상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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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귀여운 외형이었지만 명백히 타조보다는 훨씬 더 공격적인 특징이 곳곳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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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부리랑 한 뼘 만한 발톱들. 이건 공룡에 더 가까운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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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어지간한 몬스터는 찜쪄먹게 생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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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한 덩치에 무리생활까지 하는 놈들이지만 스노우러너는 겁이 많은 생물이라서 말이다. 게다가 초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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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 저런 발톱에 저런 부리를 가지고 겁이 많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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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래 보여도 기사를 등에 태운 스노우러너는 기수의 명령에 철저하게 복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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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기수로 보이는 기사에게 머리를 비비는 스노우러너를 바라보았다. 문득 기사를 등에 태운 전투마는 맹수를 물어뜯을 정도로 호전적이고 똑똑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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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오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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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수그레한 어조에 카렘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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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와 자락이 크고 넓은 옷을 입은 뚱뚱한 노인이 막 여관을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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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목살에 파묻혀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묵주 목걸이의 끄트머리가 수염 밖으로 달랑달랑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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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구와는 반대로 날렵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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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천을 걸친 살덩어리가 반쯤 굴러오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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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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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아. 하이폰 경. 소개는 직접 하도록 하지. 부족한 몸으로 삼신교의 장로와 펠윈터 가문의 시종장을 겸하는 아이오나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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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메리골드 아타니타스. 펠윈터 가문의 전속 마법사로 고용된 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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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나는 캐서린이 내민 문서에 집중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수염이 미처 가리지 못한 두툼한 턱살이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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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확실히 주군의 임명장이 확실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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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 그렇다면 바로 출발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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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준비만 끝난다면. 아타니타스 공. 갑작스러워서 미안하네만 바로 마차에 탑승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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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아이오나는 곧바로 캐서린은 마구간에 있던 가장 크고 화려한 4두 마차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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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끝났는지 마부석에 마부가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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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의 신분은 일개 요리사에 불과했지만, 다행히 캐서린이 자신의 전속 시종을 겸하고 있다는 말 덕분에 카렘은 마차 안에 탑승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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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이오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는지 캐서린과 카렘을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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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타니타스 님. 뭔가 바쁜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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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도 하지. 일정보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 만큼 있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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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보다 일찍 도착했는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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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기 전에 되도록 일찍 도착하는 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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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이 마차 좌석에 앉고 복장을 정리하는 사이 카렘은 그녀가 앉으라는 듯이 비워둔 자리에 눈치껏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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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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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빠를 거다. 무얼, 아이스랜드에서 지내는 동안 매년 질리도록 보는 게 눈 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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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오나가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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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차가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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