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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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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어제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나 보군."

"손님?"

"그래, 안으로 모셔라."

캐서린의 턱짓에 하는 수 없이 카렘은 마지막 국물을 머금은 빵을 그녀에게 먹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에서 정문까지의 거리는 무척 짧았지만, 그가 문을 열러 가는 동안에도 손님(추정)은 일정한 박자로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손님이 노크를 멈춘 것은 카렘이 문고리를 돌리고 나서였다.

"음? 아, 시종인가 보군."

손님, 아니 손님들을 대동한 손님을 올려 보자마자 카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로 존댓말이 우러나왔다.

"안녕하신지요. 경. 전속 시종에 요리사도 겸하는 카렘이라고 합니다."

"요리사? 이렇게나 어린데 말이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곰의 머리를 본뜬 투구 속에서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이었다.

그 밑으로 전신을 가리는 판금과 사슬이 혼성된 갑옷을 덮은 두꺼운 곰 가죽 망토, 양 허리춤에 패용된 롱소드.

기사의 뒤로는 가죽을 덧댄 누비 갑옷을 착용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나열해 있었다.

어딜 보더라도 병사들을 이끄는 기사였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여기에 아타니타스 공이 머무르신다고 들었다. 안에 계시는가?"

"그렇습니다. 나리. 손님을 안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군. 너흰 여기서 대기하도록."

카렘은 눈치껏 기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집의 넓이가 안내라는 것이 필요할 만큼 크지도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손님이었다.

중무장한 기사는 겉모습만큼이나 무게가 상당한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렘을 앞장세우고 걸었다.

다행히 부엌에 들어설 때까지 바닥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캐서린은 기사의 방문을 진작에 예상했는지 태연한 모습으로 품에서 이전에 외성, 내성을 출입할 때 보였던 두루마리를 건넸다. 인장을 거침없이 뜯은 기사는 두루마리-임명장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캐서린에게 돌려줬다.

"실례했소. 아타니타스 공. 난 베어폰드의 하이폰이오. 아무래도 식사를 방해한 것 같은데-"

"사과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 요리사가 식사하던 도중이긴 했지만."

"음, 식사를 방해했나. 그건 아니 될 말이지. 자고로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하니까."

카렘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하이폰을 슬쩍 쳐다보았다. 확실히 저만한 덩치라면 아침부터 통구이 돼지 한 마리를 뼈까지 씹어먹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아침을 보통 간단하게 먹는 세오폰 왕국에서는 독특하다면 독특한 말.

"요리사. 식사를 마저 끝마치도록."

하이폰은 빈말이 아니었는지 곰 투구의 바이저를 열어 부리부리한 눈으로 난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며 말없이 주장했다.

그렇다고 하니 카렘은 곧바로 앉은 자리에서 얼마 남지 않은 졸아든 닭곰탕에 빵을 곁들여 뼛조각만 남기고는 모조리 먹어치웠다.

"짐을 챙길 시간이 필요한가?"

이른 아침부터 방문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

그렇지만 애초에 캐서린은 앞서서 짐들을 미리 목적지에 보내놓은 상태.

카렘은 사정이 사정인지라 돈 자루와 이끼 멧돼지 가죽으로 만든 빵빵한 배낭에 매달린 각종 조리도구가 전부였다.

다만 집의 주인인 해머슨에게 열쇠를 전달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정을 이해한 하이폰은 캐서린과 카렘이 얼마 없는 짐을 들고 오자 곧바로 호위했다.

보더스터와 그 주변은 지금 한창 바쁠 시기.

전형적인 부촌 밀집 구역인 내성조차도 월동을 나기 위해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내성 한복판을 한 무리의 병사들이 다가오자 목양견을 피하는 양 떼 같이 인파가 갈라졌다.

투덜거리려던 사람들도 선두에 중무장한 기사를 보고는 없던 공손함마저 생겨나며 스스로 자리를 비켰다.

눈치가 안 보이려야 안보일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카렘과는 달리 기사도, 캐서린도, 하다못해 기사를 뒤따르는 병사들도 사람들이 비키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무언으로 인파를 가르며 내성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그래서 하이폰 경."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는 것도 잠시. 금세 질려버린 캐서린은 슬쩍 하이폰을 불렀다.

"안내를 위해서 온 책임자는 누구지?"

"아이스랜드 공작께서 아이오나 장로님을 책임자로 임명하셨소. 오늘 아침 그대를 안내하라 하신 것도 그분이시오."

사제라니. 사제와는 좋은 기억이 없는 카렘은 그 말에 무심코 인상을 찌푸렸다가 재빨리 미간의 긴장을 풀었다.

다행히 아무도 키가 작은 소년을 신경 쓰지는 않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

카렘이 긴장하거나 말거나 캐서린은 의외라는 듯이 작게 감탄했다.

"호오, 장로? 그래 봐야 시종을 보내올 줄 알았는데."

"하. 한파의 대정령을 안내하는데 고작 시종을 보내기엔 격이 맞지 않지. 공작님의 명령에 장로님께서 무거운 몸을 움직이셨소."

세오폰 왕국은 비록 다신교 국가였지만 다행히 사제간의 계급은 사제, 대사제, 장로, 교주로 통일되어 있었다.

당연히 사제에서 교주로 갈수록 종파 내에서 계급이 높아졌다.

다만 교주가 종파의 본부, 본단에서만 머무른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장로란 사실상 한 지역 내에서 종교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실질적인 관리자.

마법사에게 고용됐으니 언젠가는 높으신 분이 찾아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갑작스러운 너무나도 높으신 분의 예정된 인카운트에 카렘은 입이 바싹 말랐다.

다만 캐서린은 당혹스러워했다.

"대, 대정...끄응."

"응? 아타니타스 공. 뭔가 불편한 것이라도 있소?"

"아, 아무것도 아니다."

당연히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한파의 대정령이라는 칭호는 그녀 스스로가 만들어낸 흑역사나 다름없었으니까.

모든 아이는 질풍노도의 중2병 시기를 나름의 방법으로 겪는다.

하필이면 그녀의 질풍노도는 불로에 다다르면서 찾아왔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자신의 힘과 재능에 심취했던 캐서린은 다년간 모험가로 활동하며 스스로 한파의 대정령이라 3인칭으로 부르며 온 세상을 쏘다녔다.

다행히 질풍노도의 시기는 그녀의 긴 인생에 비하면 찰나.

어느덧 중2병을 졸업한 캐서린은 결국 스스로 만든 재앙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파의 대정령이요?"

"흠, 자신이 누굴 모시고 있는지도 몰랐다는 말인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업적을 하나도 몰라서야 쓰나."

"혹여나 그에 관해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다만 사람이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법.

비록 시간이 흘러 한파의 대정령과 직접 마주한 이들은 죽었지만, 그에 대한 기록들은 꾸준히 남아버렸고 그녀가 잊어버리려고만 하면 그녀의 상처를 후벼 파서 상기시켰다.

"설마 최연소로 현자에 도달해 불로를 이룩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아, 그건 압니다. 나리. 현자는 처음 들어봤지만요."

"그나마 절반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로군."

오우거 무리의 습격을 받은 귀족 행렬을 구출.

도시를 위협하는 도적 기사단 격퇴.

대륙의 왕국을 다년간 위협한 변종 트롤 퇴치.

바다의 언데드 트롤인 미역 수염을 퇴치하는 등등.

단 하나만으로도 음유시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러들만큼 뛰어난 업적들이었다.

남에게 자랑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뛰어난 업적들이었지만, 캐서린에게는 그저 부끄러운 찰나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촉매였을 뿐.

'감히 이 한파의 대정령 앞에서 약자들을 괴롭히다니. 기사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오우거라는 기사조차 긴장시킨다는 몬스터의 위용이? 하, 같잖아서 죽고 싶어졌다.'

'괄목하라! 지상에 강림한 대한파를!'

'압도적인 힘으로! 무한한 힘이여!'

‘그만! 제기랄, 망할 꼬마 같으니라고! 네놈의 고용주를 배신하는 건가!’라고 무심코 속마음을 폭발시킬 뻔했던 캐서린에겐 다행히 맥주 통에 빠진 칼 여관에 도착, 엘프 여급에게 열쇠를 전달하고서야 이야기는 끝났다.

하이폰이 캐서린과 카렘을 이끈 곳은 주변의 다른 건물들보다도 한층 더 규모가 크고 고급스러운 여관의 옆에 딸린 커다란 마구간이었다.

여관의 규모만큼이나 커다란 마구간에는 사람들이 짐을 옮기며 수레 사이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이폰의 뒤를 따르는 같은 무장을 한 병사들과 각양각색의 무장을 갖춘 바이킹 같은 느낌이 나는 전사들 수십 명이 마구간의 공터에 느슨하게 정렬하고 있었다.

여관에 눈이 돌아갈 법도 했지만 카렘의 시선은 마구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카렘이 보는 것은 병사들도, 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거대한 여관도 아니었다.

구우우우욱-! 구우우우욱-!

커다란 부리.

말이랑 비교할 만큼 커다란 덩치.

안 그래도 큰데 더 커 보이는 북슬북슬한 털까지.

게임에서 자주 탈것으로 등장하는 커다란 새가 독특한 울음소리를 내며 기수들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기서 스노우러너를 보게 될 줄이야."

"스노우러너. 저게 그?"

"그래, 어제 꼬마. 네가 먹은 꼬치구이의 주인공이다."

일단 조류라고는 들었지만, 카렘이 상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따지고 보면 귀여운 외형이었지만 명백히 타조보다는 훨씬 더 공격적인 특징이 곳곳에 보였다.

거대한 부리랑 한 뼘 만한 발톱들. 이건 공룡에 더 가까운 거 아닌가?

"저거 어지간한 몬스터는 찜쪄먹게 생겼는데요?"

"저만한 덩치에 무리생활까지 하는 놈들이지만 스노우러너는 겁이 많은 생물이라서 말이다. 게다가 초식이야."

"초식. 저런 발톱에 저런 부리를 가지고 겁이 많다고요?"

"저래 보여도 기사를 등에 태운 스노우러너는 기수의 명령에 철저하게 복종하지."

카렘은 기수로 보이는 기사에게 머리를 비비는 스노우러너를 바라보았다. 문득 기사를 등에 태운 전투마는 맹수를 물어뜯을 정도로 호전적이고 똑똑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오셨군!"

늙수그레한 어조에 카렘은 고개를 돌렸다.

소매와 자락이 크고 넓은 옷을 입은 뚱뚱한 노인이 막 여관을 나오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목살에 파묻혀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묵주 목걸이의 끄트머리가 수염 밖으로 달랑달랑 흔들렸다.

체구와는 반대로 날렵한 모습.

하얀 천을 걸친 살덩어리가 반쯤 굴러오는 것처럼 보였다.

"소개를-"

"아아, 아. 하이폰 경. 소개는 직접 하도록 하지. 부족한 몸으로 삼신교의 장로와 펠윈터 가문의 시종장을 겸하는 아이오나라고 하네."

"캐서린 메리골드 아타니타스. 펠윈터 가문의 전속 마법사로 고용된 본인이다."

아이오나는 캐서린이 내민 문서에 집중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수염이 미처 가리지 못한 두툼한 턱살이 출렁였다.

"음, 확실히 주군의 임명장이 확실하군."

"장로님. 그렇다면 바로 출발하시겠습니까?"

"그래. 준비만 끝난다면. 아타니타스 공. 갑작스러워서 미안하네만 바로 마차에 탑승해주게."

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아이오나는 곧바로 캐서린은 마구간에 있던 가장 크고 화려한 4두 마차로 안내했다.

준비가 끝났는지 마부석에 마부가 앉아있었다.

카렘의 신분은 일개 요리사에 불과했지만, 다행히 캐서린이 자신의 전속 시종을 겸하고 있다는 말 덕분에 카렘은 마차 안에 탑승할 수 있었다.

다만 아이오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는지 캐서린과 카렘을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어, 아타니타스 님. 뭔가 바쁜 거 같은데요."

"그럴 만도 하지. 일정보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 만큼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일정보다 일찍 도착했는데도요?"

"겨울이 되기 전에 되도록 일찍 도착하는 게 좋겠지."

캐서린이 마차 좌석에 앉고 복장을 정리하는 사이 카렘은 그녀가 앉으라는 듯이 비워둔 자리에 눈치껏 앉았다.

"음,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리나요?"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빠를 거다. 무얼, 아이스랜드에서 지내는 동안 매년 질리도록 보는 게 눈 일텐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오나가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차가 덜컹거리며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