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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축제와 명절보다 이를 준비하는 전이 더 분주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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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센드가 코앞으로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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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홈의 천장 꼭대기, 성벽을 포함한 벽마다 망치가 그려진 삼각형을 새긴 각양각색의 화려한 깃발과 천들로 장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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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홈의 정문부터 문이라는 문마다 문틀에 겨울에도 새파란 침엽수 이파리와 새끼줄, 작은 청동 방울을 엮은 고리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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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도 더욱 벽과 바닥을 청소하는 건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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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에 성벽처럼 쌓아 올렸던 눈은 어디로 갔는지 말끔하게 치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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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돌이라도 밟힐까 어린 시종 시녀들이 허리를 굽혀 눈곱 만 한 돌조각까지 모조리 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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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과 제물을 바칠 번제자가 들어가서는 안될 장소는 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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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장식했던 장식품은 펠윈터 가문의 성세를 보일 각종 예술품과 장식물들과 자리를 교대해 창고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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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빨리 깨어나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윈터홈의 주방도 분주한 것은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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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준비하느라 지친 이들에게 주어질 두 끼 식사와 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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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윈터 가문의 일원부터 하인들까지 모두가 모이는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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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센드 당일에 제공될 연회 음식을 준비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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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주방의 불은 분주함이 줄어들지언정 꺼질 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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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윈터샌드가 끝날 때까지 이어질 당연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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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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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알프레드 펠윈터나 시종장인 아이오나같은 높으신 분의 대명사 같은 이들도 바쁜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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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캐서린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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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일을 처리하고 여유를 부리던 모습이 거짓말같이 그녀는 다시 일거리에 치여 초과근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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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불꽃놀이. 망할 플라워 오브! 한 발에 5크라운짜리 불쏘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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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는 당연히 화려함이 있어야 하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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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화려함을 온전히 캐서린 혼자 준비하느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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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불꽃이 터지는 것이라면 딱히 어려울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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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이 아니라 지나가던 마법사의 제자에게 맡겨도 될 정도로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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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윈터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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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던, 아니 아이스랜드 전역에서 가장 귀중품이 많을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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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윈터센드를 위해서 각종 장식물이 잔뜩 내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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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아이스랜드의 겨울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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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쌩쌩 부는 바깥에 몇 시간만 있어도 피부가 갈라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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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불똥이라도 튄다면 불나기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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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 많은 장식물과 시설들에 일일이 보호 마법을 걸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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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인력이 부족한 것은 둘째치고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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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불꽃놀이는 윈터홈에서만이 아니라 성 밖의 콜던에서도 벌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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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불꽃놀이에 쓸 플라워 오브에 일일이 손으로 조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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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니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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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후임이 들어오기만 하면...응?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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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식사부터 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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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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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 지옥에 빠져버린 그녀를 위해 카렘이 할 수 있는 일은 머리에 쌓인 피로가 풀릴 정도로 맛있는 식사와 간식을 차리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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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의 말이 끝나자 메리가 접시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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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와 겨울에 귀중한 파릇파릇한 양상추를 끼워 넣은 스테이크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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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종류의 치즈를 넣고 양면을 노릇노릇하게 구운 치즈 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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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과류 페이스트와 달콤한 잼을 바른 달콤하고 고소한 잼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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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각기 다른 샌드위치가 접시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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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냄새에 캐서린은 잠시 플라워 오브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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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는 그리폰 때 이후로 처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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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일을 손에 놓지 못하셔서. 아예 그냥 일하시면서 먹으실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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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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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은 혀끝을 차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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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는 해도 몸은 솔직한지 새하얀 장갑을 낀 채 형이상학적인 도형과 마법진으로 주먹만 한 플라워 오브를 세공하던 그녀는 메리가 샌드위치를 내밀자 곧바로 앙하고 베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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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타니타스님. 전에 말씀하셨던 보호 장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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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무래도 플라워 오브에 들어가는 재료가 재료다 보니 손을 보호하는 건 필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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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위험한가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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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다 괜찮은데 하나가 문제지. 접촉하면 강제로 고통을 유발하는 재료가 들어가서, 그나저나. 준비는 잘 돼 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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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떤 준비를 말씀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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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센드. 번제자.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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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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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기는 해도 제물로서 바치는 것은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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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야 하려나 고민 끝에 카렘은 그나마 면식이 있는 이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물었지만 그들의 대답은 모두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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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 작품이면 충분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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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면 충분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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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하고 막연한 말에 카렘은 머리가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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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뭐 먹을지 물어봤는데 아무거나 먹겠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의 심정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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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혹시나 해서 메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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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카렘이 물어봤던 대상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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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 작품이라는 게, 문자 의미 그대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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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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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번이나 들어도 막연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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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의 내용물을 씹어 삼킨 캐서린은 옆의 바구니에 플라워 오브를 내려놓으며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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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준비하지 않은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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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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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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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떠오르는 물건이 너무 많아서 고민일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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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메뉴가 아니라 막연하기 짝이 없는 리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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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미식가, 요리사에게 최악의 질문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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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 샌드위치 꼬다리를 먹어치운 캐서린이 치즈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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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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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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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까다롭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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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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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럴 때는 복잡하다고 해야겠군. 꼬마. 네 직업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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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이 한 손에 마법진을 전개해 플라워 오브를 띄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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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을 들은 카렘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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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한 거냐는 문장이 대놓고 보이는 표정에 캐서린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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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내가 친히 해답을 알려주겠다는데. 어서 대답이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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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입니다. 직접 고용하셨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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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리고 요리사의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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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맛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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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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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반사적으로 떠오른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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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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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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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가 최선을 다해 좋은 무기를 만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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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두장이가 최선을 다해 가죽을 손질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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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도 최선을 다해 요리하면 충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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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작품을 만들라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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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라는 것은 분명 어디까지나 지금 가능한 최선의 작품을 선보이라는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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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과 여건에 따라 이것저것 조건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옛날부터 지금까지 요리사의 일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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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를 받은 만큼 손님에게, 고용주에게 정성을 다해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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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이것 봐라. 스스로 깨달았지 않느냐며 보라는 듯이 캐서린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카렘 그가, 전 현생을 포함해 가장 잘 하는 요리를 선보이면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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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그렇게 정하자마자 카렘의 머릿속에 펼쳐진 레시피는 곧바로 한 장으로 압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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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과 의심이 카렘의 얼굴에서 싹 사라지자 메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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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경고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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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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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센드의 번제자의 제물은 온전히 번제자가 만들어야 합니다. 일전에 머랭을 치거나 꼬치를 구웠을 때처럼 카렘 후배를 도울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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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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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의 식사를 수행하던 메리가 꼼수를 부리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처럼 카렘을 삐딱하게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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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카렘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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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독 브라우니 메리는 너무나도 편리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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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설거지도 알아서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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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은 뒷정리와 청소도 알아서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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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하며 방법만 알려주면 몸이 두 개가 된 것처럼 편리하게 요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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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을 버리지 못한 카렘은 슬쩍 척척박사 캐서린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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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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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모독죄로 작게는 추방으로 끝나고 심하면 신벌을 받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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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신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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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마지막 기록으로는 늙은 대장장이가 노쇠를 이유로 도제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가 제물을 바치는 그 순간 벼락을 맞아 폭사했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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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미련을 금방 접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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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윈터센드가 누군가를 위하는 명절, 축제라는 것을 듣자마자 어떤 고기를 사용할지는 곧바로 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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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를 가리지 않고 동서고금 문명과 야만을 통틀어서 무언가를 축하할 때는 돼지고기가 빠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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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과거 조선에서 누군가 무언가 축하할 일이 있다면 돼지를 잡아 마을 모두와 함께 축하했다. 이는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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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축제의 상징이 된 습성과 상징 같은 이야기는 제쳐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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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돼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카렘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가 돼지고기 요리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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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카렘은 캐서린의 식사가 끝나자마자 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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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꾼 메리를 대동하고 향하는 곳은 윈터홈의 도축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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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홈의 다른 장소들이 바쁜 것처럼 도축장도 한창 윈터센드를 준비하는 이들을 먹이고 윈터센드에 사용할 고기를 준비하는 데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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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도축업자들은 카렘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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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난데없이 꼬마가 찾아온다면 누가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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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의 시선도 메리가 카렘을 이번 윈터센드의 번제자 중 하나라고 소개하자 바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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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를 구하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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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라. 마침 부족민들이 보낸 좋은 하이랜드 암퇘지가 있었는데. 냄새도 적다고. 어떤 부위로 드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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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붙은 뱃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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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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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의 요구를 들은 도축업자들은 일제히 머리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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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붙은 고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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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통구이도 보통 껍질까지 바싹 구워져서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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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뱃살만이라니? 그들에게 돼지의 뱃살이란 넘치는 비계에 반해 먹을 것은 다른 부위에 비해서 매우 적은 기름이나 뽑아내는 부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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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살코기가 많은 등심, 안심, 뒷다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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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나마 앞다리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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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력이 다양한 도축업자들이 알기로 기름장수가 아닌 이상 오로지 뱃살을 요구하는 요리사는 카렘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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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랜드 돼지는 비계가 많지만, 운동량이 많아서 살이 쫀쫀한데 뒷다리살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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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붙은 뱃살! 기왕이면 살코기를 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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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렘은 흔들림 없이 오로지 돼지 뱃살만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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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뭐 그들에게도 방도가 있나. 원하는 대로 맞춰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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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라 돼지는 잔뜩 있었던 덕에 카렘은 큼지막한 돼지 뱃살을 통으로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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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곧바로 메리에게 떠넘기고 푸줏간을 떠나는 카렘에게 한 도축업자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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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체 그 뱃살로 뭘 만들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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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게타(Porch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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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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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센드의 제물에서 최고의 제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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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르게타는 카렘이 지금 선보일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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