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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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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축제와 명절보다 이를 준비하는 전이 더 분주한 법.

윈터센드가 코앞으로까지 다가왔다.

윈터홈의 천장 꼭대기, 성벽을 포함한 벽마다 망치가 그려진 삼각형을 새긴 각양각색의 화려한 깃발과 천들로 장식되기 시작했다.

윈터홈의 정문부터 문이라는 문마다 문틀에 겨울에도 새파란 침엽수 이파리와 새끼줄, 작은 청동 방울을 엮은 고리가 걸렸다.

평소보다도 더욱 벽과 바닥을 청소하는 건 당연.

성안에 성벽처럼 쌓아 올렸던 눈은 어디로 갔는지 말끔하게 치워졌다.

혹시나 돌이라도 밟힐까 어린 시종 시녀들이 허리를 굽혀 눈곱 만 한 돌조각까지 모조리 줍고 있었다.

손님과 제물을 바칠 번제자가 들어가서는 안될 장소는 봉인.

성을 장식했던 장식품은 펠윈터 가문의 성세를 보일 각종 예술품과 장식물들과 자리를 교대해 창고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가장 빨리 깨어나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윈터홈의 주방도 분주한 것은 마찬가지.

축제를 준비하느라 지친 이들에게 주어질 두 끼 식사와 특식.

펠윈터 가문의 일원부터 하인들까지 모두가 모이는 저녁 식사.

윈터센드 당일에 제공될 연회 음식을 준비하기까지.

며칠 전부터 주방의 불은 분주함이 줄어들지언정 꺼질 새가 없었다.

이는 윈터샌드가 끝날 때까지 이어질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이들.

예를 들어 알프레드 펠윈터나 시종장인 아이오나같은 높으신 분의 대명사 같은 이들도 바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캐서린도 마찬가지였다.

밀린 일을 처리하고 여유를 부리던 모습이 거짓말같이 그녀는 다시 일거리에 치여 초과근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망할 불꽃놀이. 망할 플라워 오브! 한 발에 5크라운짜리 불쏘시개!"

축제에는 당연히 화려함이 있어야 하기 마련.

그리고 그 화려함을 온전히 캐서린 혼자 준비하느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불꽃이 터지는 것이라면 딱히 어려울 것은 없었다.

캐서린이 아니라 지나가던 마법사의 제자에게 맡겨도 될 정도로 간단했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윈터홈.

콜던, 아니 아이스랜드 전역에서 가장 귀중품이 많을 장소.

하물며 윈터센드를 위해서 각종 장식물이 잔뜩 내걸리고 있었다.

하물며 아이스랜드의 겨울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칼바람이 쌩쌩 부는 바깥에 몇 시간만 있어도 피부가 갈라질 정도로.

이런 상황에 불똥이라도 튄다면 불나기 딱 좋았다.

그렇다고 그 많은 장식물과 시설들에 일일이 보호 마법을 걸을 수는 없었다.

마법 인력이 부족한 것은 둘째치고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불꽃놀이는 윈터홈에서만이 아니라 성 밖의 콜던에서도 벌어질 예정.

결국엔 불꽃놀이에 쓸 플라워 오브에 일일이 손으로 조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타니타스님."

"망할 후임이 들어오기만 하면...응? 뭐냐?"

"우선 식사부터 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응? 벌써?"

철야 지옥에 빠져버린 그녀를 위해 카렘이 할 수 있는 일은 머리에 쌓인 피로가 풀릴 정도로 맛있는 식사와 간식을 차리는 것뿐.

카렘의 말이 끝나자 메리가 접시를 놓았다.

치즈와 겨울에 귀중한 파릇파릇한 양상추를 끼워 넣은 스테이크 샌드위치.

네 종류의 치즈를 넣고 양면을 노릇노릇하게 구운 치즈 토스트.

견과류 페이스트와 달콤한 잼을 바른 달콤하고 고소한 잼 샌드위치.

세 종류의 각기 다른 샌드위치가 접시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맛있는 냄새에 캐서린은 잠시 플라워 오브에서 벗어났다.

"샌드위치는 그리폰 때 이후로 처음인데."

"원체 일을 손에 놓지 못하셔서. 아예 그냥 일하시면서 먹으실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캐서린은 혀끝을 차며 고개를 저었다.

라고는 해도 몸은 솔직한지 새하얀 장갑을 낀 채 형이상학적인 도형과 마법진으로 주먹만 한 플라워 오브를 세공하던 그녀는 메리가 샌드위치를 내밀자 곧바로 앙하고 베어 먹었다.

"그런데 아타니타스님. 전에 말씀하셨던 보호 장갑인가요?"

"그래. 아무래도 플라워 오브에 들어가는 재료가 재료다 보니 손을 보호하는 건 필수지."

"많이 위험한가 보네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하나가 문제지. 접촉하면 강제로 고통을 유발하는 재료가 들어가서, 그나저나. 준비는 잘 돼 가냐?"

"네? 어떤 준비를 말씀하시는지?"

"윈터센드. 번제자. 제물."

"아,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기는 해도 제물로서 바치는 것은 처음.

뭘 해야 하려나 고민 끝에 카렘은 그나마 면식이 있는 이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물었지만 그들의 대답은 모두 똑같았다.

‘최선을 다한 작품이면 충분하다.’라고.

그거면 충분하다니.

무책임하고 막연한 말에 카렘은 머리가 아찔했다.

마치 뭐 먹을지 물어봤는데 아무거나 먹겠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의 심정과 비슷했다.

카렘은 혹시나 해서 메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카렘이 물어봤던 대상 중 한 명이었다.

"최선을 다한 작품이라는 게, 문자 의미 그대로입니까?"

"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들어도 막연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었다.

입안의 내용물을 씹어 삼킨 캐서린은 옆의 바구니에 플라워 오브를 내려놓으며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아직도 준비하지 않은 거냐?"

"솔직하게 말해서."

"그래."

"머릿속에 떠오르는 물건이 너무 많아서 고민일 정도입니다."

명확한 메뉴가 아니라 막연하기 짝이 없는 리퀘스트.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미식가, 요리사에게 최악의 질문이나 다름없었다.

스테이크 샌드위치 꼬다리를 먹어치운 캐서린이 치즈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꼬마야."

"네."

"너무 까다롭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

"까다롭다?"

"아니, 이럴 때는 복잡하다고 해야겠군. 꼬마. 네 직업이 뭐지?"

캐서린이 한 손에 마법진을 전개해 플라워 오브를 띄우며 말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을 들은 카렘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한 거냐는 문장이 대놓고 보이는 표정에 캐서린이 소리쳤다.

"어허! 내가 친히 해답을 알려주겠다는데. 어서 대답이나 해라!"

"요리사입니다. 직접 고용하셨잖습니까?"

"그래. 그리고 요리사의 일은?"

"그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는 것.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떠오른 그 말.

카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네.

대장장이가 최선을 다해 좋은 무기를 만드는 것처럼.

무두장이가 최선을 다해 가죽을 손질하는 것처럼.

요리사도 최선을 다해 요리하면 충분할 뿐.

최고의 작품을 만들라는 것도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은 분명 어디까지나 지금 가능한 최선의 작품을 선보이라는 것일 터.

상황과 여건에 따라 이것저것 조건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옛날부터 지금까지 요리사의 일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대가를 받은 만큼 손님에게, 고용주에게 정성을 다해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이것 봐라. 스스로 깨달았지 않느냐며 보라는 듯이 캐서린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카렘 그가, 전 현생을 포함해 가장 잘 하는 요리를 선보이면 될 뿐이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정하자마자 카렘의 머릿속에 펼쳐진 레시피는 곧바로 한 장으로 압축되었다.

혼란과 의심이 카렘의 얼굴에서 싹 사라지자 메리가 말했다.

"혹시나 해서 경고하지만."

"응? 네?"

"윈터센드의 번제자의 제물은 온전히 번제자가 만들어야 합니다. 일전에 머랭을 치거나 꼬치를 구웠을 때처럼 카렘 후배를 도울 수는 없습니다."

"아, 그건 좀 아쉽네요."

캐서린의 식사를 수행하던 메리가 꼼수를 부리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처럼 카렘을 삐딱하게 응시했다.

하지만 이건 카렘도 어쩔 수 없었다.

일중독 브라우니 메리는 너무나도 편리했으니까.

하기 싫은 설거지도 알아서 해줘.

귀찮은 뒷정리와 청소도 알아서 해줘.

부탁하며 방법만 알려주면 몸이 두 개가 된 것처럼 편리하게 요리를 할 수 있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카렘은 슬쩍 척척박사 캐서린에게 물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 되나요?"

"신성 모독죄로 작게는 추방으로 끝나고 심하면 신벌을 받겠지."

"....어. 신벌이요?"

"그래. 마지막 기록으로는 늙은 대장장이가 노쇠를 이유로 도제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가 제물을 바치는 그 순간 벼락을 맞아 폭사했다더군."

카렘은 미련을 금방 접어버렸다.

카렘은 윈터센드가 누군가를 위하는 명절, 축제라는 것을 듣자마자 어떤 고기를 사용할지는 곧바로 정할 수 있었다.

현재와 과거를 가리지 않고 동서고금 문명과 야만을 통틀어서 무언가를 축하할 때는 돼지고기가 빠질 수 없었다.

당장 과거 조선에서 누군가 무언가 축하할 일이 있다면 돼지를 잡아 마을 모두와 함께 축하했다. 이는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돼지가 축제의 상징이 된 습성과 상징 같은 이야기는 제쳐두고.

무엇보다도 돼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카렘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가 돼지고기 요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카렘은 캐서린의 식사가 끝나자마자 밖을 나섰다.

짐꾼 메리를 대동하고 향하는 곳은 윈터홈의 도축장이었다.

윈터홈의 다른 장소들이 바쁜 것처럼 도축장도 한창 윈터센드를 준비하는 이들을 먹이고 윈터센드에 사용할 고기를 준비하는 데 분주했다.

처음에 도축업자들은 카렘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난데없이 꼬마가 찾아온다면 누가 좋아할까.

하지만 그들의 시선도 메리가 카렘을 이번 윈터센드의 번제자 중 하나라고 소개하자 바뀔 수밖에 없었다.

"돼지고기를 구하고 싶은데요."

"돼지고기라. 마침 부족민들이 보낸 좋은 하이랜드 암퇘지가 있었는데. 냄새도 적다고. 어떤 부위로 드릴까?"

"껍질이 붙은 뱃살!"

"....왜 굳이?"

카렘의 요구를 들은 도축업자들은 일제히 머리를 기울였다.

껍질이 붙은 고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돼지 통구이도 보통 껍질까지 바싹 구워져서 나오니까.

하지만 뱃살만이라니? 그들에게 돼지의 뱃살이란 넘치는 비계에 반해 먹을 것은 다른 부위에 비해서 매우 적은 기름이나 뽑아내는 부위에 불과했다.

보통 사람들은 살코기가 많은 등심, 안심, 뒷다리를 찾았다.

드물게나마 앞다리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경력이 다양한 도축업자들이 알기로 기름장수가 아닌 이상 오로지 뱃살을 요구하는 요리사는 카렘이 처음이었다.

"하이랜드 돼지는 비계가 많지만, 운동량이 많아서 살이 쫀쫀한데 뒷다리살이라도..."

"껍질이 붙은 뱃살! 기왕이면 살코기를 붙여서!"

하지만 카렘은 흔들림 없이 오로지 돼지 뱃살만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뭐 그들에게도 방도가 있나. 원하는 대로 맞춰 줘야지.

축제라 돼지는 잔뜩 있었던 덕에 카렘은 큼지막한 돼지 뱃살을 통으로 얻을 수 있었다.

이를 곧바로 메리에게 떠넘기고 푸줏간을 떠나는 카렘에게 한 도축업자가 물었다.

"그래서 대체 그 뱃살로 뭘 만들려는 거야?"

"포르게타(Porchetta)!"

카렘은 확신했다.

윈터센드의 제물에서 최고의 제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포르게타는 카렘이 지금 선보일 수 있는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