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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5 KiB

애프터글로우 요새는 그 규모와 상주 인원답게 주방, 알현실, 변경백 집무실을 비롯한 특정 시설을 제외한 나머지 시설은 요새 곳곳에 널리 퍼져 있었다.

약초방 또한 그중 하나.

약초사로서 로완이 혼자 생활한 약초방은 주방에서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

한가하게 계단을 오르내릴 상황이 아니다.

철컹- 그그그그그긍-

월레스의 인도에 따라 일행이 방에 들어오자 잠시 후, 넓은 방 전체가 쇠사슬이 부닥치는 소리와 함께 하강하기 시작했다.

"승강기?"

지면의 진동과 약간의 부유감을 느낀 캐서린이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마석으로 구동되는 승강기입니다."

월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프터글로우 요새는 하여간 높아도 너무 높았다. 그렇다 보니 요새의 위까지 물자를 공급하다 사람이 먼저 퍼지는 상황이 종종 벌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수백 년 전에 침공이 이뤄졌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물자 공급이 늦어져 요새의 성벽 위에 몬스터가 침입했던 적이 있었다는 문헌이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요새 곳곳에 승강기가 설치되었습니다."

"그걸 마석으로?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고든의 의문은 당연했다.

하여튼 지금 그들이 탄 승강기는 못해도 최소 백단위의 사람을 한 번에 요새 위로 올려보낼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었다.

그런데, 그것도 무슨 산을 통째로 깎아 만든 것 같은 애프터글로우 요새의 꼭대기까지 올려보낸다? 그것도 마석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서? 그럴 돈은 없었을 텐데?

"당연히 처음엔 가축을 이용한 축력이었습니다."

"그러면 마석은..."

"공작 각하의 군림 이후 대대적으로 개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스랜드는 돈이 많았다.

월레스와 병사, 기사들을 뺀 일행 모두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질문을 끝으로 승강기는 몇 개나 되는 쇠사슬의 시끄러운 금속음만 울려 퍼졌다.

승강기가 멈추자 일행은 곧바로 로완의 약초방으로 향했다.

"도착했군."

"시종장님. 문이 잠겨있습니다."

"아, 품에 열쇠가 있는데."

로완의 유품(?)을 들고 있던 고든이 주머니에 들어있던 열쇠로 문을 열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느껴지는 진한 풀 내음. 약초방이라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 천장과 벽면, 책이 놓인 선반의 항아리와 유리병에는 수많은 식물의 꽃과 줄기, 이파리, 씨앗, 버섯이 정리되어 보관되어 있었다.

숙소를 겸하지만 일터에 가까웠는지 숙소로서의 흔적은 침대 단 하나. 그 외엔 모두 약초사와 관련된 물건들뿐이었다.

이끌고 온 병력으로 주변을 경계시킨 월레스는 일행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일단, 전부 뒤져볼까요?"

"당연하지."

캐서린의 말을 끝으로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약초방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카렘 또한 마찬가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체적으로는, 들어왔을 때부터 신경 쓰인 유리병과 항아리로 가득한 선반.

'희미하지만, 커피 냄새가 났는데. 이쪽이었으려나.'

증거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카렘에게는 말린 알라우네 부산물을 찾는 것 또한 중요했다.

그야 커피였다.

그것도 환생하고 나서 완전히 포기했던 영혼의 파트너.

현대인의 자의와 타의가 반씩 섞인 필수품.

각성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물론 카렘은 지금의 목적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그는 죽은 로완이 배신자인지, 아니면 로완으로 위장한 누군가인지 판결할 중요한 증거물을 탐색하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씨앗으로 가득한 항아리를 뒤적거리다가 뚜껑을 도로 닫은 카렘은 확인을 끝낸 항아리들을 치워둔 선반 쪽으로 밀었다.

"카렘. 뭐 찾은 거 있어?"

"씨앗이랑 버섯밖에 없어요."

"흠, 나도 이쪽이나 살펴야겠다."

"약초 더미 쪽으로 가셨던 거 아니셨습니까?"

"마법사님이 귀찮게 하지 말고 이쪽으로나 가라더라고."

카렘이 캐서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메리가 천장에 매달린 약초 더미를 풀어 내리고 캐서린이 이를 빠르게 확인하고 분류를 마친 것을 메리가 방 밖으로 치우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뭘요?"

"로완이라는 약초사 말이야."

"글쎄요. 주방 이전에 간이 신전에서 보기는 했지만, 고작 한 번뿐인데."

카렘은 머리를 긁적였다.

"전직 사제였고, 현 약초사에. 사제분들이 거의 다 파견 나간 상황에서 간이 신전의 자리를 지키고 계셨죠. 아, 잠깐."

"그래. 마법사님의 방에서 들었지."

"아, 그러면 스쳐 지나갈 때 맡았던 그 냄새가 말린 알라우네 냄새였던 거네요."

"방부제로나 쓴다고 했던가?"

그렇지만 이거 가지고는 수상하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맹독을 지녔다고 해도 말리고 볶아서 독은 제거된 지 오래고 게다가 향도 좋으니 향 주머니처럼 들고 다녔을 수도 있으니까. 수다를 떨며 항아리를 조사하던 카렘은 고개를 획 돌렸다.

커피 냄새.

말리고 볶은 알라우네 부산물.

"안쪽에 있었네."

"...너 이거 노리고 이쪽 온 거냐?"

"어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좋아하는데?"

카렘은 선반 안쪽에 놓인 커다란 항아리를 끌어다 내렸다. 뚜껑을 열자마자 커피 내음이 진하게 피어오르는 알라우네 부스러기가 항아리 목까지 차 있었다.

고혹한 냄새에 순간 눈이 뒤집히도록 숨을 깊게 들이마시던 카렘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조사를 위해 손을 집어넣었다.

촤르르르르르-

"음?"

뭔가 잡혔다.

미끈미끈한, 뭔가 전현생을 포함해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가죽 같으면서 해파리 같은 묘한 질감의 천?

"갑자기 우뚝 굳은 걸 보니 뭐 찾은 거라도 있어?"

"뭔진 모르겠지만 찾은 거 같은데요."

"그래. 그럴-뭐? 진짜로 찾았다고?"

"네."

손에 잡힌 뭔가를 항아리에서 잡아 꺼내자 알라우네 부스러기가 바닥에 와르르르르 쏟아졌다. 그 모습에 카렘은 마음이 욱신거린 것도 잠시.

"...이건 뭐죠."

반대편이 불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투명하고 쭈글쭈글하고 미끌미끌한 감촉의 천만큼 얇은 가죽 비슷한 물체가 항아리에서 끌려 나왔다.

"어우, 이게 대체 뭔 냄새야?"

고든은 무심코 코를 부여잡았다. 일전에 디저트로 먹었던 볶은 알라우네 내음 사이로 무시할 수 없는 고기 썩은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정확하게 로완이 녹아내린 흔적에서 났던 냄새.

그것을 농축한 것 같은 냄새가.

"이건...잠시만, 이게 대체 왜 여기 있는 거냐."

"마법사님? 어떤 물건인지 아십니까?"

"셰이프시프터(ShapeShifter)"

캐서린이 손을 내밀었다. 카렘은 군말 없이 가죽을 탈탈 털고는 고이 건넸다.

"예전에 본 적 있지. 이 질감과 반투명함. 무엇보다 마력까지. 셰이프시프터의 가죽임이 틀림없다."

"어, 뭔가 심각하신데. 많이 심각합니까?"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심각한 일이지."

"왜 그런 겁니까?"

캐서린은 고개를 들어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카렘을 쳐다보다가 고든, 침대로 향하던 메리까지 어리둥절하자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셰이프시프터는 마족이기 때문입니다."

선반에서 노트를 꺼내 먼지를 털던 월레스가 그 이유를 말했다.

"마족이요? 마족이라면-"

"세상을 거의 다 불태웠다가 마왕이 용사 파티에 의해 암살당하며 실패한 마왕군의 주력. 셰이프시프터는 마왕군의 가장 우수한 첩보원이자 암살자였단 기록이 있습니다."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역사 수업 시간. 막연한 전설이었던 것에 카렘은 아득함을 느끼며 캐서린에게 넘긴 가죽을 응시했다.

"이게 셰이프시프터의 가죽이라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셰이프시프터의 가죽은 변신 망토와 투명 망토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지. 그렇지만 일개 약초사가 가지고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다."

캐서린은 고개를 저었다.

"셰이프시프터는 계절에 한 번씩 탈피한다."

캐서린은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가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형체가 변하는 특성 때문에 신성력에 유달리 민감해 접촉하면 하급 언데드마냥 녹아내린다지."

캐서린은 가죽에서 올라오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 주방에서 맡았던, 고든이 들고 온 유품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았다.

"확실히. 침대도 이상합니다."

그 말에 모두의 고개가 메리 쪽으로 돌아갔다. 두꺼운 시트를 뒤집은 메리는 거침없이 덮개를 벗기고 시트 내부를 파헤치고 있었다.

"역시."

메리는 침대 시트 속으로 팔을 쑥 집어넣어 뒤적거리다가, 곧바로 뺐다. 손에는 커다란 가죽 주머니가 쥐어져 있었다. 속에서 촤르르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조금 전에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와 비슷한 소리.

카렘을 비롯한 일행 모두는 동시에 시선을 마주쳤다.

가죽 포대는 그렇게 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물건이 침대 시트 속에 있다?

어떻게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자아 자아. 어디 한 번 보물 상자를 열어 보실까."

주머니를 건네받은 고든은 활짝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알라우네 부산물이 비처럼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철퍽-

그리고 수분감 있는 미끈한 가죽.

캐서린의 손에 들린 것과 같은 미끈하고 반투명한 가죽 여러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이건 갑자기 든 생각인데."

흑갈색 알갱이들을 아쉽게 보던 카렘이 이마를 긁적였다.

"셰이프시프터가 로완으로 변장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저뿐인가요?"

"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고든은 손을 살짝 들었다.

"일기장을 보니 확실해지는군요."

노트를 팔락이던 월레스는 탁 소리가 나게 닫았다.

"날짜의 시작은 몇 년 전 로완이 사제 생활을 은퇴했을 때. 그리고 작년 여름부터 페이지가 비어 있습니다."

"그러면 로완 전직 사제는 그때부터 대체 당해버렸겠군."

"아마도 정황상 그게 맞을 겁니다."

셰이프시프터의 가죽이 한 장뿐이라면 억지로라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장씩이나?

"계절에 한 번씩. 작년 여름부터 해서 총 다섯 장입니다."

"숫자도 딱 들어맞는군."

"그렇다면 성수에 그렇게 녹아내린 것도 말이 됩니다. 셰이프시프터는 하급 성수에도 치명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하지요."

약초방은 침묵에 잠겼다.

그야 모든 정황이 들어맞았으니까.

"시종장님! 시종장님!"

약초방의 문이 벌컥 열리고 기사가 뛰쳐 들어왔다.

월레스가 입을 열기도 전에 기사가 다급히 소리쳤다.

"프레젠트에 언데드가!"

"또 언데드 이상 사태인가?"

"그게 아닙니다! 놈들이 프레젠트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인근 주민들이 성벽으로 피신 중입니다!"

기사의 보고를 받은 월레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약초방을 뛰쳐나갔다.

일행 또한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기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카렘은 일행을 따라 월레스의 뒤를 따르는 동안 요새의 시가지. 프레젠트를 둘러싼 성벽을 향해 다가오는 언데드 무리를 볼 수 있었다.

아니, 무리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새하얀 설원을 까맣게 뒤덮은 언데드 무리가 성벽으로 다가왔다.

마치 꿀 냄새에 이끌리는 개미 군단처럼.

"그런데 되게 익숙해 보이네요."

"뭐가, 말이냐!"

"프레젠트요. 대처가 빠른 거 같은데요?"

한눈에 보기에도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프레젠트는 혼란에 휩싸인 와중에도 일사분란하게 대피와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데드와 몬스터의 침공은 종종 있으니 익숙하지요. 다만 가을에 언데드 준동이라니."

그 말을 끝으로 월레스는 입을 다물었다.

승강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오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잠시 중심을 잃었던 카렘은 캐서린이 붙잡아주고 나서야 프레젠트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새하얀 설원을 새까맣게 물들이며 성벽을 향해 천천히 몰려오는 수많은 다양한 언데드 떼거리는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흥미진진하던 처음과는 달리 카렘도 새까만 무리가 성벽 너머의 마을을 휩쓰는 광경을 보자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허, 그야말로 겨울이 보우하사 인가."

"아타니타스 님. 갑자기요?"

"저길 봐라. 모르겠냐?"

그 말에 카렘은 다시 한번 성벽 너머를 보았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달리는 놈들이 없네요?"

"그래. 그나마 좋은 소식이지. 시간을 벌었어."

캐서린의 말대로였다.

인간과 맹수, 몬스터를 기반으로 언데드 무리는 한 마리도 빠짐없이 모두 일관성 있지만, 일반 사람이 걷는 것보다 느리게 다가오고 있었다.

덩치가 큰 놈들은 보폭도 커서 거리가 빨리 좁혀지고 있었지만.

"산맥 너머의 원정대가 복귀한다! 변경백 각하께서 돌아오셨다!"

그 말에 성벽 위의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돌렸다.

카렘 또한 마찬가지로 일행에 끼어들어 산맥 너머를 봤다.

원정대가 질주하느라 눈보라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선두.

전투마, 스노우러너, 멧돼지 등 수 많은 짐승에 올라탄 기수들과 함께 원정대의 선두에서 그 누구보다도 확고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중무장한 수백 명의 건장한 야만 전사들이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

카렘은 무심코 눈을 부여잡고 성벽에 머리를 박았다. 뭔가 싶었던 고든 또한 뒤늦게 같은 광경을 목격하고 단말마를 내질렀다.

"문 열어! 문 열라고!"

"씨발 열라고! 빨리! 빨리!"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기수 곁의 야만 전사들은 점점 요새와 가까워졌다.

그럴수록 야만전사들의 체크무늬 무릎 스커트는 격렬하게 흩날렸고 치명적인 절대영역을 온 사방에 또렷하게 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