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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화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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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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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 one can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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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요리에 능숙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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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사전적인 정의는 동물, 식물 등의 재료를 먹을 수 있게 가공하는 행위지만, 그것을 먹기 좋게 가공하는 것은 더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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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굵기, 얇기에 따라 변하는 식감과 맛, 익는 시간과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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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합과 발효, 굽기 등 사용되는 기술에 따른 세포, 영양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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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뿐만이 아닌 시각, 후각, 촉각 등 다채로운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변화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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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더 나아가 요리는 다양한 방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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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의 관습은 손님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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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성질의 재료를 배합하는 과정은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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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형태를 가공해 원하는 레시피로 가공하는 것은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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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서로 다른 재료를 가공 및 배합하는 수많은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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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모든 것에 앞서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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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탐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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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의 별의 정체와 존재유무 같은 우주 진리의 끄트머리에 닿는 거창한 것에 대한 탐구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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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건을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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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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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배를 불리기 위한 생존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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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능하다면 더 맛있게 먹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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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번영하는 생물이 되었고, 요리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재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해 수많은 분야에서 활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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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카렘은 떳떳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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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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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라고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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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독이었던 물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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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의 물음에 로완은 미묘한 인상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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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우네는 무분별하게 버려진 시체가 방치된 장소에서 발생하는 식물형 몬스터지. 줄기와 이파리, 뿌리는 맹독이라 굶주린 곰도 더러워서 피할 정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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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열매는 맹독이지만, 가공하면 활용도가 높아 다방면으로 쓰인다지요. 저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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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시 한번 묻겠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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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완은 미묘한 표정 그대로 말린 알라우네의 부산물 부스러기를 약포에 소분해 냄비에 넣고 끓이는 중인 카렘을 가리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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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볶아서 독성이 사라졌기는 하다지만. 그걸, 저렇게? 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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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무려 계약자의 선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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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단언하려고 했지만, 순간 그녀의 입은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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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답을 내리기에는 전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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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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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독이라고 알려진 것이 재발견되는 일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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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위해 각종 실험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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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부산물의 활용도를 발견해 요리에 투입하는 것도 아무렴 맛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먹는 게 사람인데. 그 과정이 심히 기이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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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귀족 공작가의 후계자와 막내딸에게 귀리를, 말먹이로나 쓰던 귀리를 먹이는 건 메리도 한순간이나마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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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주둥이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거나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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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간덩이가 얼마나 부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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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카렘은 방향제를 물에 팔팔 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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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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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처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 꼬마 제정신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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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건 독이 없다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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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말린 다음 가열하면 독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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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냄새 좋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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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냄새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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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메리는 차마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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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기에는 냄비에서 약포가 끓을 때마다 점점 흑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액체는 너무나도 향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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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아몬드를 농축해 볶는 것 같은 고소한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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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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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는 않지만 고급스러우면서 고혹적인 손길이 코를 통해 눈과 머릿속을 쓰다듬은 후 목구멍과 폐부 안쪽으로 들어가 차갑게 식은 속을 따뜻하게 데우고는 금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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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운은 그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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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잠을 깨우는 중독적인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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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 것도, 볶은 것도, 잘 익은 고소한 견과류도, 얼핏 태운 캐러멜이나 오래 구운 버터 쿠키 같으면서 그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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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좋은 정도는 아니군요.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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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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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걸로 뭘 하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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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에 준비된 재료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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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고개를 쭉 빼고 냄비를 보는 메리와 로완 사이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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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는 카렘의 말에 따라 접시와 그릇, 바구니에 담긴 재료들을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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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풍미가 일품인 크림치즈가 커다란 그릇으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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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핑크림에 녹인 버터를 섞어 만든 헤비 크림이 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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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의 풍미가 가득한 쇼트브레드 쿠키가 한 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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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처리를 끝낸 알라우네 부산물을 곱게 간 부스러기가 든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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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것과 저걸 어떻게 조합해 디저트를 만들겠다는 건가? 그냥 찍어 먹고 달여서 마시기라도 하나? 게다가 뭐가 이렇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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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로완은 배를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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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만 가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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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거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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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하면 더 주지. 방향제로나 쓰던 거. 나중에 결과물이나 나오면 알려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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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배나 좀 채워야겠다고 중얼거리며 로완은 청소가 거의 끝나가는 요리사들에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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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와중에도 냄비 속의 액체는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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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거릴 때마다 검은색에서 갈색이 그라데이션이 보였던 유사 커피는 이젠 중심부로 갈수록 심연을 옮겨 담아놓은 것 같은 진한 농도를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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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층 더 진해진 냄새에 메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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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발동했다면서 투덜거리시더니,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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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짚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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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 모양새가 딱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을 때랑 똑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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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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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때문에라도 정신 차리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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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관심을 돌리는 거야? 네 본래 마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냄새 맡는 것 정도야 어때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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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처음 맡아보는 매혹적인 냄새는 계속해서 그녀의 우유와 버터, 밀가루에 대한 충절을 지키려는 마음을 시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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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가 요정생 최초로 겪는 마음의 위기에 갈팡질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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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또 무슨 괴상한 짓거리를 계획하면 신호를 좀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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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갑자기 이러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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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후배의 전적이 어땠습니까. 없던 날개가 도로 자라날 것 같지 않습니까. 생각한 걸 주변에 좀 말을 한 다음에 행동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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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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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이 문자 의미 그대로 그대로 말하자 무표정한 메리는 눈을 감고 이마를 붙잡았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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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졸였으면 충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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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신비한 디저트의 정체를 볼 수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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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만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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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아래쪽 선반에서 쟁반과 속이 깊은 네모난 파이 용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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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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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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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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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등 뒤에서 들려온 비명과 충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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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과 메리는 획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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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이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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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잠. 로완! 노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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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어. 독, 미친, 알라우네 그걸 잔뜩 들고 돌아다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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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말리고 볶았다며! 애초에 산성 맹독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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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상황에 요리사들은 어쩔 줄 몰랐으며 움직이려고 하다가도 비명을 지르는 로완과 가까워지기를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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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끼야아아아아아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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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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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의미 그대로 로완은 자기가 쓴 로브 밑으로 불타오르는 것처럼 진흙처럼 녹아내리며 땅에 닿는 순간 그 자리에서 끓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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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에 둘러싸여 있던 구부정한 체격은 밑으로 가라앉아 로브 자락이 밑으로 쓸렸고, 어느새 바닥에 닿아 우툴두툴하게 덮인 로브 위로 세찬 연기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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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 밑에서 녹아내린 검은 액괴는 바닥에 고인 된장찌개에 닿아 치지직거리며 타들어가며 말라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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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를 쥐고 있던 요리사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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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들 차려! 비상사태! 당장 총주방장을 불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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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당장 요새 경비대 새끼들을 불러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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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니, 그래. 경비대를 부르고 시종장님까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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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주방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전부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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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걸레를 쥔 요리사는 빠르게 주변 요리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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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렘, 메리와 눈을 마주치자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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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군. 카렘 공. 아무래도 당장 방으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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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로완 님이죠?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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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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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을 찾고 상황을 대처하는 것 같았지만, 요리사가 고개를 젓는 동안 대걸레를 쥔 손은 계속해서 달달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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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글로우 요새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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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저희는 그러면 바로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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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나중에 조사를 위해 경비대가 찾아갈 수도 있겠소. 부디 양해를 구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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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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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의 주인인 변경백 본인이 주력을 이끌고 외부로 출정한 상황인데 돌연 눈앞에서 사람이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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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사람과 연관자는 모두 경계하는 게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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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과 메리는 군말 없이 주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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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좀 아는 사람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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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며칠 전 간이 신전에서 처음 보고 그 후로는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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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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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어안이 벙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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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감이 들지 않기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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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눈앞에서 그렇게 연기 풀풀 나며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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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죽은 것이 분명하겠지. 아니라면 요리사들이 그렇게 반응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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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당장 드는 의문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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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범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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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목적은 어떤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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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돌아가서 보고부터 하는 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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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도 제가 옮기겠습니다. 바구니를 들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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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에 동의한 메리는 바구니를 카렘에게 건네고 쟁반을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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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비경과 마경 그리고 자기들끼리 소위 말하는 문명 세계의 바깥을 야만이라고 치부하고 멸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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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런 곳에서도 생명은 살아 숨쉬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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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겨울인 산맥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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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세계의 지척에 들키지 않도록 비밀리에 똬리를 튼 그리즐리 비버 무리의 조악하고 원시적인 야영지에서 한 마리가 야영지 바깥으로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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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울프 가죽 위로 다양한 해골을 트로피처럼 걸친 그리즐리 비버는 곰 만한 덩치와 비견되는 볼품없는 비쩍 마른 체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눈바람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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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즐리 비버가 지팡이로 눈 바닥을 짚을 때마다 위에 걸린 마른 인간 전사의 시체가 달그락거리며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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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 때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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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버가 멈춰섰을 땐 거인,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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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형태로 빚어낸 산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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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산이 생명력을 얻은 듯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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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보다는 골렘에 더 어울리는 존재는 시체 같은 눈을 족장에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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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은 머리를 굽히며 주둥이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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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끼이이이익-킥! 삐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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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규칙성이 느껴지는 울음소리의 연속. 동족 이외엔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데도 두 눈에서 오로지 죽음만이 느껴지는 산은 머리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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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더 기다릴 필요는 없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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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기기기긱- 삐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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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선행하겠다. 뒤따라오도록. 계획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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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하소서. 라는 듯이 바닥에 엎드렸던 그리즐리 비버는 지팡이로 눈 바닥을 짚으며 일어나 왔던 길을 되돌아 야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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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증스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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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은 그를 죽음에서 깨운 이들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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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산의 자식이요, 이 대지의 진정한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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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가증스러운 배신자, 영구동토의 겨울이 억제한다지만 눈송이같이 남은 권능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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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대륙과 섬을 불태웠지만 결국은 실패했을 뿐인 실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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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필멸자들 따위가 자신을 이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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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당찮았지만 거인은 기꺼이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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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작은 흙먼지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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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그에게 군대를, 훔친 죽음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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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내민 거인이 손아귀를 움켜쥐자 새 찬 눈보라 사이로 또렷한 검은 기운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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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정당한 계승자가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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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문도 없이 그저 명령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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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인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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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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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앞의 눈 덮인 들, 언덕, 숲 바닥이 일제히 들썩이며 용솟음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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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처럼 새하얗게 솟구친 눈은 눈보라에 금세 날아간 밑에서 수많은 언데드가 부름에 응답했다. 아니, 언데드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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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의, 순록의, 말의, 멧돼지의, 사슴의, 여우의, 뒤틀려버린 부족 전사의, 드워프 기사의, 엘프 궁수의, 모험가의, 오크의, 오우거의, 아이스 트롤의, 매머드의, 다이어 울프의, 아울 베어의, 그리즐리 비버의, 스노우러너의, 아이스 드레이크의, 린드부름의, 와이번의, 의, 의, 의, 의, 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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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의 법칙 아래 산맥 너머에서 죽어간 시체가 하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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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일제히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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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시체의 대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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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군세를 일으킨 거인은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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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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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도 준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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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은 지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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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거인의 손에서 펼쳐지는 힘은 신화 시대의 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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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 요새에 가로막혀 죽어간 수많은 몬스터와 맹수의 떼거지, 무리의 기억은 진작에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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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시체 군단은 규모가 지금의 곱절이라도 공략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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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은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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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으로 물든 하늘 아래에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눈보라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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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비의 시체 사이에 자리 잡은 배신자들의 후예의 묘비 요새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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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부에 협력자가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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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은 그다음이 무척이나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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