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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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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화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any one can cook.)

하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요리에 능숙할 수는 없다.

요리의 사전적인 정의는 동물, 식물 등의 재료를 먹을 수 있게 가공하는 행위지만, 그것을 먹기 좋게 가공하는 것은 더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재료의 굵기, 얇기에 따라 변하는 식감과 맛, 익는 시간과 정도.

배합과 발효, 굽기 등 사용되는 기술에 따른 세포, 영양분의 변화.

미각뿐만이 아닌 시각, 후각, 촉각 등 다채로운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변화에 이르기까지.

한발 더 나아가 요리는 다양한 방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공유한다.

접대의 관습은 손님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각기 다른 성질의 재료를 배합하는 과정은 연금술.

본래의 형태를 가공해 원하는 레시피로 가공하는 것은 마법.

그 외의 서로 다른 재료를 가공 및 배합하는 수많은 분야.

허나 그 모든 것에 앞서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무엇'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탐구심.

저 하늘의 별의 정체와 존재유무 같은 우주 진리의 끄트머리에 닿는 거창한 것에 대한 탐구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물건을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을까?

안전하게 배를 불리기 위한 생존 본능.

그리고 가능하다면 더 맛있게 먹을 수는 없을까?

그로 인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번영하는 생물이 되었고, 요리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재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해 수많은 분야에서 활용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카렘은 떳떳했다.

보글보글보글-

"...독이라고 하셨습니까?"

"정확히는 독이었던 물건이지."

메리의 물음에 로완은 미묘한 인상으로 답했다.

"알라우네는 무분별하게 버려진 시체가 방치된 장소에서 발생하는 식물형 몬스터지. 줄기와 이파리, 뿌리는 맹독이라 굶주린 곰도 더러워서 피할 정도고."

"머리와 열매는 맹독이지만, 가공하면 활용도가 높아 다방면으로 쓰인다지요. 저도 압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묻겠네만."

로완은 미묘한 표정 그대로 말린 알라우네의 부산물 부스러기를 약포에 소분해 냄비에 넣고 끓이는 중인 카렘을 가리키며 물었다.

"한 번 볶아서 독성이 사라졌기는 하다지만. 그걸, 저렇게? 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무려 계약자의 선택인-"

그녀는 단언하려고 했지만, 순간 그녀의 입은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확답을 내리기에는 전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

그래도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흔히 독이라고 알려진 것이 재발견되는 일은 종종 있다.

요리를 위해 각종 실험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몬스터 부산물의 활용도를 발견해 요리에 투입하는 것도 아무렴 맛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먹는 게 사람인데. 그 과정이 심히 기이해서 그렇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귀족 공작가의 후계자와 막내딸에게 귀리를, 말먹이로나 쓰던 귀리를 먹이는 건 메리도 한순간이나마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드래곤의 주둥이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거나 마찬가지.

대체 간덩이가 얼마나 부었으면?

그리고 지금 카렘은 방향제를 물에 팔팔 끓이고 있었다.

"거 참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요."

"이보게. 처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 꼬마 제정신이 아니야."

"지금 이건 독이 없다고 하셨죠?"

"그래. 말린 다음 가열하면 독이 사라진다."

"이거 냄새 좋지 않나요?"

"...확실히 냄새는 좋습니다."

그건...메리는 차마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기에는 냄비에서 약포가 끓을 때마다 점점 흑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액체는 너무나도 향기로웠다.

얼핏 아몬드를 농축해 볶는 것 같은 고소한 냄새.

하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고급스러우면서 고혹적인 손길이 코를 통해 눈과 머릿속을 쓰다듬은 후 목구멍과 폐부 안쪽으로 들어가 차갑게 식은 속을 따뜻하게 데우고는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여운은 그대로 남았다.

무엇보다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잠을 깨우는 중독적인 향기.

탄 것도, 볶은 것도, 잘 익은 고소한 견과류도, 얼핏 태운 캐러멜이나 오래 구운 버터 쿠키 같으면서 그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향기.

"아니, 좋은 정도는 아니군요. 훌륭합니다."

"그렇죠?"

"그래서, 이걸로 뭘 하실 겁니까?"

"그쪽에 준비된 재료가 있잖아요?"

카렘은 고개를 쭉 빼고 냄비를 보는 메리와 로완 사이를 가리켰다.

메리는 카렘의 말에 따라 접시와 그릇, 바구니에 담긴 재료들을 내려다봤다.

진한 풍미가 일품인 크림치즈가 커다란 그릇으로 하나.

휘핑크림에 녹인 버터를 섞어 만든 헤비 크림이 또 하나.

버터의 풍미가 가득한 쇼트브레드 쿠키가 한 바구니.

마지막으로, 처리를 끝낸 알라우네 부산물을 곱게 간 부스러기가 든 주머니.

대체 이것과 저걸 어떻게 조합해 디저트를 만들겠다는 건가? 그냥 찍어 먹고 달여서 마시기라도 하나? 게다가 뭐가 이렇게 많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로완은 배를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만 가보겠네."

"주신 거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말만 하면 더 주지. 방향제로나 쓰던 거. 나중에 결과물이나 나오면 알려주게."

난 배나 좀 채워야겠다고 중얼거리며 로완은 청소가 거의 끝나가는 요리사들에게 걸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냄비 속의 액체는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찰랑거릴 때마다 검은색에서 갈색이 그라데이션이 보였던 유사 커피는 이젠 중심부로 갈수록 심연을 옮겨 담아놓은 것 같은 진한 농도를 내보였다.

그리고 한층 더 진해진 냄새에 메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또 발동했다면서 투덜거리시더니,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넘겨짚지 마십시오."

"그쪽 모양새가 딱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을 때랑 똑같은데요?"

"착각입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정신 차리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어라, 관심을 돌리는 거야? 네 본래 마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냄새 맡는 것 정도야 어때서 그래?'

하지만 이 처음 맡아보는 매혹적인 냄새는 계속해서 그녀의 우유와 버터, 밀가루에 대한 충절을 지키려는 마음을 시험하고 있었다.

메리가 요정생 최초로 겪는 마음의 위기에 갈팡질팡했다.

"제발 또 무슨 괴상한 짓거리를 계획하면 신호를 좀 보내주십시오."

"아니, 갑자기 이러신다고요?"

"그동안 후배의 전적이 어땠습니까. 없던 날개가 도로 자라날 것 같지 않습니까. 생각한 걸 주변에 좀 말을 한 다음에 행동하시지요."

"생각해보겠습니다."

카렘이 문자 의미 그대로 그대로 말하자 무표정한 메리는 눈을 감고 이마를 붙잡았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만큼 졸였으면 충분하겠지."

"드디어 그 신비한 디저트의 정체를 볼 수 있는 겁니까?"

"네. 만드는 건."

카렘은 아래쪽 선반에서 쟁반과 속이 깊은 네모난 파이 용기를 꺼냈다.

"돌아가서-"

"끄아아아아아아악-!!!"

덜그럭.

돌연 등 뒤에서 들려온 비명과 충돌음.

카렘과 메리는 획 고개를 돌렸다.

치이이이이이-

"아니, 잠. 로완! 노친네!"

"어, 어어어. 독, 미친, 알라우네 그걸 잔뜩 들고 돌아다니더니!"

"그거 말리고 볶았다며! 애초에 산성 맹독이 아니잖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요리사들은 어쩔 줄 몰랐으며 움직이려고 하다가도 비명을 지르는 로완과 가까워지기를 꺼렸다.

"흐끼야아아아아아어어-"

사람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문자 의미 그대로 로완은 자기가 쓴 로브 밑으로 불타오르는 것처럼 진흙처럼 녹아내리며 땅에 닿는 순간 그 자리에서 끓어올랐다.

로브에 둘러싸여 있던 구부정한 체격은 밑으로 가라앉아 로브 자락이 밑으로 쓸렸고, 어느새 바닥에 닿아 우툴두툴하게 덮인 로브 위로 세찬 연기가 발생했다.

로브 밑에서 녹아내린 검은 액괴는 바닥에 고인 된장찌개에 닿아 치지직거리며 타들어가며 말라 붙었다.

국자를 쥐고 있던 요리사가 소리쳤다.

"정신들 차려! 비상사태! 당장 총주방장을 불러와!"

"저, 저는 당장 요새 경비대 새끼들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래! 아니, 그래. 경비대를 부르고 시종장님까지 같이!"

"지금부터 주방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전부 막아!"

대걸레를 쥔 요리사는 빠르게 주변 요리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카렘, 메리와 눈을 마주치자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미안하군. 카렘 공. 아무래도 당장 방으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소."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로완 님이죠? 방금-"

"우리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소."

평정심을 찾고 상황을 대처하는 것 같았지만, 요리사가 고개를 젓는 동안 대걸레를 쥔 손은 계속해서 달달 떨렸다.

"애프터글로우 요새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라."

"아무튼, 저희는 그러면 바로 가보겠습니다."

"부디. 나중에 조사를 위해 경비대가 찾아갈 수도 있겠소. 부디 양해를 구하겠소."

"아무렴요."

요새의 주인인 변경백 본인이 주력을 이끌고 외부로 출정한 상황인데 돌연 눈앞에서 사람이 녹아내렸다.

수상한 사람과 연관자는 모두 경계하는 게 정상.

카렘과 메리는 군말 없이 주방을 나왔다.

"흠, 좀 아는 사람이었습니까?"

"글쎄요. 며칠 전 간이 신전에서 처음 보고 그 후로는 잘."

"그렇습니까?"

카렘은 어안이 벙벙했다.

현실감이 들지 않기도 할까.

사람이 눈앞에서 그렇게 연기 풀풀 나며 녹아내렸다.

분명 죽은 것이 분명하겠지. 아니라면 요리사들이 그렇게 반응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당장 드는 의문은 하나.

그래서 범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또 목적은 어떤 것이고?

"...일단 돌아가서 보고부터 하는 게 좋겠네요."

"쟁반도 제가 옮기겠습니다. 바구니를 들어주십시오."

제안에 동의한 메리는 바구니를 카렘에게 건네고 쟁반을 넘겨받았다.

문명은 비경과 마경 그리고 자기들끼리 소위 말하는 문명 세계의 바깥을 야만이라고 치부하고 멸시한다.

그렇지만 그런 곳에서도 생명은 살아 숨쉬기 마련.

사시사철 겨울인 산맥 너머.

문명 세계의 지척에 들키지 않도록 비밀리에 똬리를 튼 그리즐리 비버 무리의 조악하고 원시적인 야영지에서 한 마리가 야영지 바깥으로 나오고 있었다.

다이어울프 가죽 위로 다양한 해골을 트로피처럼 걸친 그리즐리 비버는 곰 만한 덩치와 비견되는 볼품없는 비쩍 마른 체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눈바람을 가로질렀다.

그리즐리 비버가 지팡이로 눈 바닥을 짚을 때마다 위에 걸린 마른 인간 전사의 시체가 달그락거리며 흔들렸다.

-족장. 때가 되었는가.-

비버가 멈춰섰을 땐 거인, 아니.

거인의 형태로 빚어낸 산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핏 산이 생명력을 얻은 듯한 모습.

거인보다는 골렘에 더 어울리는 존재는 시체 같은 눈을 족장에게 돌렸다.

족장은 머리를 굽히며 주둥이를 벌렸다.

삑! 끼이이이익-킥! 삐이이-익!

묘한 규칙성이 느껴지는 울음소리의 연속. 동족 이외엔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데도 두 눈에서 오로지 죽음만이 느껴지는 산은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면 더 기다릴 필요는 없겠군.-

삑! 기기기긱- 삐이익?

-그렇다. 선행하겠다. 뒤따라오도록. 계획대로.-

뜻대로 하소서. 라는 듯이 바닥에 엎드렸던 그리즐리 비버는 지팡이로 눈 바닥을 짚으며 일어나 왔던 길을 되돌아 야영지로 향했다.

-가증스러운 것들-

거인은 그를 죽음에서 깨운 이들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산의 자식이요, 이 대지의 진정한 후계자.

비록 가증스러운 배신자, 영구동토의 겨울이 억제한다지만 눈송이같이 남은 권능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충분했다.

온 대륙과 섬을 불태웠지만 결국은 실패했을 뿐인 실패자들.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필멸자들 따위가 자신을 이용하겠다.

가당찮았지만 거인은 기꺼이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아무렴, 작은 흙먼지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것들은 그에게 군대를, 훔친 죽음을 선물했다.

팔을 내민 거인이 손아귀를 움켜쥐자 새 찬 눈보라 사이로 또렷한 검은 기운이 모여들었다.

-이 땅의 정당한 계승자가 명령한다.-

어떤 주문도 없이 그저 명령할 뿐.

하지만 거인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일어나라.-

거인 앞의 눈 덮인 들, 언덕, 숲 바닥이 일제히 들썩이며 용솟음쳤다.

안개처럼 새하얗게 솟구친 눈은 눈보라에 금세 날아간 밑에서 수많은 언데드가 부름에 응답했다. 아니, 언데드만이 아니다.

쥐의, 순록의, 말의, 멧돼지의, 사슴의, 여우의, 뒤틀려버린 부족 전사의, 드워프 기사의, 엘프 궁수의, 모험가의, 오크의, 오우거의, 아이스 트롤의, 매머드의, 다이어 울프의, 아울 베어의, 그리즐리 비버의, 스노우러너의, 아이스 드레이크의, 린드부름의, 와이번의, 의, 의, 의, 의, 의, 의-

적자생존의 법칙 아래 산맥 너머에서 죽어간 시체가 하나, 둘.

이윽고 일제히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그야말로 시체의 대군세.

하지만 정작 군세를 일으킨 거인은 못마땅했다.

-지금은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썩어도 준치라고.

거인은 지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거인의 손에서 펼쳐지는 힘은 신화 시대의 일각.

묘비 요새에 가로막혀 죽어간 수많은 몬스터와 맹수의 떼거지, 무리의 기억은 진작에 분석했다.

단순히 시체 군단은 규모가 지금의 곱절이라도 공략은 불가능.

거인은 몸을 돌렸다.

회색으로 물든 하늘 아래에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눈보라 너머.

제 아비의 시체 사이에 자리 잡은 배신자들의 후예의 묘비 요새를 노려봤다.

-하지만, 내부에 협력자가 있다면 어떨까?-

거인은 그다음이 무척이나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