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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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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기습에 카렘은 배럴을 놓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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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이 다리를 쭉 뻗어 양손으로 간신히 떠받쳐 들고 한숨을 내뱉자, 등을 후려친 장본인이 그대로 매끈한 대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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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카렘 공. 이거 너무 반가운 나머지 실례를 해버렸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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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에도 말했지만, 전 이제 겨우 11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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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소문이 소문이니까 소문인 줄로만 알았지 진짜인 줄은 누가 알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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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의 등을 손바닥으로 내려친 장본인은 붉은 송충이 눈썹과 날카로운 카이저수염이 인상적인 대머리 거한 중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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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편하게 반말하시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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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콜던에서의 그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경의를 받을 자격은 있는 법! 안 그러냐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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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친에 거대 화로에서 땀 흘리던 요리사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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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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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실력이 있으면 어려도 존중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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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에 완전히 잠겨 튀긴다니! 덕분에 개안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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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또 어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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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치는 야만 전사 같은 요리사들의 만창에 카렘은 배럴을 땅에 놓고 띵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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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도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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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꼬마야, 모시는 분이 뭐 주문하셨느냐? 응? 아타니타스면...최고 마법 고문...으응? 네가 그 윈터홈의 꼬마 요리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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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꼬마 요리사!? 난 드워프라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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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인간 꼬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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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들도 카렘의 말을 처음부터 믿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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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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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이 땀내나는 야만 전사 같은 요리사들에게 하오체이기는 해도 존칭과 함께 부담스러운 대우를 받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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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도 좀. 출신 이전에 나이 차가 수십 년은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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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도 그거 오만하고 까다로운 다크엘프 귀족들을 애원하게 하고, 최연소로 콜던 윈터센드의 번제자가 된 요리사가 있는데, 그런 자가 요리사에게 존중받지 않으면 대체 어느 요리사가 존중받을 자격이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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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카렘도 이건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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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홈에서 받는 대우가 날이 갈수록 좋아진 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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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도 상대가 상대 나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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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일원 중 하나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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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상으론 윈터홈의 총주방장 지그메서와 동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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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보르고. 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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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은 애프터글로우 요새의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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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카렘의 등짝을 두드린 인물의 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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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대대로 귀족 가문에서 비밀리에 전승될만한 각종 요리 레시피를 온 아이스랜드 전체에 뿌리는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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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으으! 이거에 감동하지 않는다면 개구리나 처먹는 베르생제토의 좀생이들이나 다름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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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각종 향신료를 재발견했으니 우리에게 존중받을 자격은 충분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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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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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열기가 느껴지는 근육질 남정네들의 뜨거운 반응에 카렘은 무심코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이 다 붉어졌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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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해서 카렘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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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사람이 일제히 노골적인 호의를 보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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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나 아이돌도 아니고서야 내성이 있을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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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메서의 노골적인 손 비비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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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가 절로 씰룩이고 전신에 열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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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부담스러워서 뭔 말을 못 꺼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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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이 재밌어서 요리사들이 더욱 찬양(진심)하고 환호(일단 진심)하는 것이지만 당사자는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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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화끈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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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명은 금방 익숙해질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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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방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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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말했지만 얼마든지 쓰시오! 어제처럼 오늘도 모시는 분과 일행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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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오늘은 저 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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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전속요리사를 두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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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고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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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때문에 월레스 경과 함께 관계자분들과 만남을 가지며 식사를 하실 예정이라고 하시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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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만찬 준비를 하라는 말은 따로 없었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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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 밖 시가지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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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면 말이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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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고는 그렇게 이해하며 힐긋 카렘의 옆에 놓인 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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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부터 배럴을 조심스럽게 들고 다니던 게 신경 쓰였는데. 혹시 그 내용물을 사용할 예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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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리고 그 통을 누구 때문에 놓칠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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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이거 미안하게 됐소.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하는 버릇이라! 그래서, 그렇게 내용물이 뭔데 그렇게 소중하게 싸매고 다닌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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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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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카렘은 숨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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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배럴을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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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걸 여기서 된장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적당히 이름을 붙여야 할 텐데...일단 발효시킨 거고...감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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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룸이에요. 가룸. 콩으로 만든 가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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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룸. 음? 방금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재료가 뭐라고 말하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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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요. 완두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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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뻑끔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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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로 뭐를 만들어? 콩? 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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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고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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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두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회전기를 돌리던 요리사들의 손도 멈춰 화로의 열기에 노릇노릇하고 바삭할 껍질이 그을리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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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고는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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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덩어리 새끼들아! 회전기! 회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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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어! 껍질 탄다! 껍질! 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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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새벽부터 계속 돌리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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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고의 외침에 정신 차린 요리사들은 허겁지겁 멈췄던 손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지만, 일부가 그을리는 건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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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 씨. 그을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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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정도면...칼로 긁어내는 선에서 수습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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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옆에 식칼 쥔 놈. 그래. 너는 가서 식칼 좀 건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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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소란에 조금 놀란 카렘은 잠시 기다리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현장을 수습하는 보르고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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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주방을 좀 빌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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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편하게 사용하시오. 빈자리가...저쪽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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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을 들어 올린 카렘을 구석지지만, 한산한 자리로 안내한 보르고는 재료와 향신료의 위치를 알려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요청하라는 말과 함께 불 앞에서 한눈팔고 실수를 해버린 이들을 응징하러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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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고의 미소가 떠나가지 않던 호감상이 화로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콧수염 달마의 형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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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시끄러운 고함과 폭력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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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내 일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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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받은 냄비에 육수용 말린 다시마를 퐁당 빠트린 카렘은 오면서 생각한 된장찌개 레시피의 재료와 대체품을 주변에서 끌어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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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마늘, 양파는 기존의 것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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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대신하고 무를 겸할 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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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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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니 과감하게 빼버리고...고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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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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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는 주로 돼지고기와 소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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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도 나름의 맛이 있으며, 소고기를 넣은 것도 또 나름의 맛이 있었던 터라 고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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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맛은 소, 깔끔한 건 돼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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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텅! 스걱,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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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소리가 카렘의 귀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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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가자 카렘이 본 것은, 중식도를 닮은 도축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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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버로 커다란 통 소고기의 반쪽을 부위별로 자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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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슴의 납작한 부위를 통으로 잘라내 뼈와 기타 잡고기가 가득 담긴 양동이에 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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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버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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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도축에 집중하는 요리사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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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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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깜짝이야!? 아니 칼 들고 있는데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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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요전부터 잠시 신세 지게 된 카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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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콜던의 꼬마 요리사님이었소? 휴, 근육 빠지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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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인가 싶었던 카렘은 소의 척추 부근에 대각선으로 박힌 클리버를 보고 연신 고개숙여 사과하며 요리사를 부담스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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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계속 이어지자 느껴지기 시작한 총주방장의 뜨거운 시선에 요리사는 카렘의 양 겨드랑이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려 사과를 제지하고는 땅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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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이제야 살겠네. 꼬마 요리사님은 고기가 필요하셔서 오셨소? 마침 질 좋은 게 들어왔으니 부드러운 안심을 추천할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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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끌리기는 하는데, 그것보다 원하는 부위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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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하시오. 얼마든지 드릴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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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저기. 저 부위를 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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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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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는 카렘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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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끝엔, 빈민들에게 돌아갈 양동이에 담긴 잡육 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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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브리스킷(brisket)이 척 얹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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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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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나머지 반말이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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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그러거나 진지하게 표정을 굳히고는 다시 한번 브리스킷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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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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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기 다른 고기가 얼마나 많은데. 자, 보시오. 여기 가을 동안 기름기가 잔뜩 오른 립아이나 진하고 부드러운 안심도 있고, 묵직하고 담백한 채끝살도 좋은 선택이오. 등심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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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는 카렘에게 다른 맛있는 부위를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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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킷이라니. 요리사는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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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수프나 스튜를 해 먹기엔 앞다릿살이나 뒷다릿살도 나쁘지 않지. 쫀득한 맛이 일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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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질기고 먹기 힘든 부위를 일부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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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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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부족하던 옛날이라면 모를까, 이젠 빈자들의 고기를? 아무리 잘 구워도 질기기만 하고 한참을 오래 푹 끓여야 그나마 먹을 만해지는 물건인데 대체 왜? 육수 우리기에는 이만한 물건이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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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킷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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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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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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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는 카렘에게 계속 다른 부위를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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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저런 부위를 손님한테 드리기에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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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렘은 브리스킷을 고집했고 이해할 수 없는 요리사의 눈빛을 뒤로 한 채 기어이 한 덩어리를 통째로 가져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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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로 돌아온 카렘은 브리스킷을 도마에 내동댕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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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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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는, 차돌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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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애용하는 펠윈터의 거짓말을 뽑아 든 카렘은 브리스킷을 차돌과 양지로 단칼에 분리하고 단면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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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퍄, 그렇지. 마블링 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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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소기름 위로 강의 물결처럼 박힌 붉은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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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의 질이 좋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는지 차돌박이의 고기와 기름 비율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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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엔 차돌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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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를 넣더라도 다 같은 소고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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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박이는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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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찌개에 들어가는 순간 가격의 자릿수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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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얇게 저민 접시 하나를 비싼 가격에 팔기 일수인 데다 전생엔 동서양을 통틀어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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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맛있는 부위를 대체 왜 버리려고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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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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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래 브리스킷, 차돌양지는 사람들이 기피하다 못해 천대 받았던 대표적인 고기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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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큐 요리법이 퍼진 후 서양에서는 먹는 빈도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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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저도 주류가 된 건 대공황 같은 여러 대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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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도 바비큐가 전래하기 전까지는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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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가 고기 먹을 줄 모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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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전 국민이 소고기에 환장한 한반도가 이상한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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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어느 나라가 소고기라면 문자 의미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장 하나 버리지 않고 모조리 먹어 치운단 말인가? 도리어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인데. 이런 나라는 전 세계를 뒤져봐도 얼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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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를 건진 냄비를 불에 올리고 한입 크기로 썬 채소를 투입한 카렘은 연신 차돌을 얇게 저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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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히 된장찌개에 넣기엔 많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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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전부 다 넣으면 찌개가 아니라 기름탕이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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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구워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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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올라오는 뜨거운 철판 위에서 눈 깜빡할 사이에 기름을 뱉어내며 오그라들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차돌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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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차돌박이의 손질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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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종잇장보다 조금 두꺼운 차돌이 수북하게 쌓인 도마를 식칼과 함께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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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닥에 놓았던 배럴을 들고 테이블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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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열자 깊은 저 머릿속에 파묻혀있던 맛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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