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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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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갑작스러운 기습에 카렘은 배럴을 놓칠 뻔했다.

카렘이 다리를 쭉 뻗어 양손으로 간신히 떠받쳐 들고 한숨을 내뱉자, 등을 후려친 장본인이 그대로 매끈한 대머리를 긁적였다.

"아차. 카렘 공. 이거 너무 반가운 나머지 실례를 해버렸구려."

"첫날에도 말했지만, 전 이제 겨우 11살이거든요!"

"아니, 뭐. 소문이 소문이니까 소문인 줄로만 알았지 진짜인 줄은 누가 알았겠소?"

카렘의 등을 손바닥으로 내려친 장본인은 붉은 송충이 눈썹과 날카로운 카이저수염이 인상적인 대머리 거한 중년이었다.

"그리고 편하게 반말하시라니까요."

"아니, 콜던에서의 그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경의를 받을 자격은 있는 법! 안 그러냐 얘들아!"

그 외친에 거대 화로에서 땀 흘리던 요리사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AI!!!!"

"아무렴! 실력이 있으면 어려도 존중받아야지!"

"기름에 완전히 잠겨 튀긴다니! 덕분에 개안했소이다!"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또 어떻고!"

강당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치는 야만 전사 같은 요리사들의 만창에 카렘은 배럴을 땅에 놓고 띵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첫날도 이러했다.

'으응? 꼬마야, 모시는 분이 뭐 주문하셨느냐? 응? 아타니타스면...최고 마법 고문...으응? 네가 그 윈터홈의 꼬마 요리사라고!?'

'뭐!? 꼬마 요리사!? 난 드워프라고 들었는데'

'진짜 인간 꼬마라고!?'

물론 그들도 카렘의 말을 처음부터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카렘이 땀내나는 야만 전사 같은 요리사들에게 하오체이기는 해도 존칭과 함께 부담스러운 대우를 받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니, 그래도 좀. 출신 이전에 나이 차가 수십 년은 나는데-"

"그렇다고 해도 그거 오만하고 까다로운 다크엘프 귀족들을 애원하게 하고, 최연소로 콜던 윈터센드의 번제자가 된 요리사가 있는데, 그런 자가 요리사에게 존중받지 않으면 대체 어느 요리사가 존중받을 자격이 있겠소?"

물론 카렘도 이건 이해했다.

윈터홈에서 받는 대우가 날이 갈수록 좋아진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상대가 상대 나름이죠!"

문제는 그 일원 중 하나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직위상으론 윈터홈의 총주방장 지그메서와 동격.

이름은 보르고. 성은 없다.

직책은 애프터글로우 요새의 총주방장.

조금 전 카렘의 등짝을 두드린 인물의 정체였다.

"게다가 대대로 귀족 가문에서 비밀리에 전승될만한 각종 요리 레시피를 온 아이스랜드 전체에 뿌리는 배포!"

"크으으으! 이거에 감동하지 않는다면 개구리나 처먹는 베르생제토의 좀생이들이나 다름없겠지!"

"게다가 각종 향신료를 재발견했으니 우리에게 존중받을 자격은 충분하오!"

"...크흠흠."

보기만 해도 열기가 느껴지는 근육질 남정네들의 뜨거운 반응에 카렘은 무심코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이 다 붉어졌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카렘은 부끄러웠다.

이 많은 사람이 일제히 노골적인 호의를 보낸다니.

연예인이나 아이돌도 아니고서야 내성이 있을 리가 있나.

지그메서의 노골적인 손 비비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입꼬리가 절로 씰룩이고 전신에 열이 올라왔다.

'아니, 부담스러워서 뭔 말을 못 꺼내겠네.'

그 모습이 재밌어서 요리사들이 더욱 찬양(진심)하고 환호(일단 진심)하는 것이지만 당사자는 알 길이 없었다.

"어휴, 화끈거려."

"위명은 금방 익숙해질 것이오."

"아무튼, 주방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이전에도 말했지만 얼마든지 쓰시오! 어제처럼 오늘도 모시는 분과 일행을 위해서?"

"아뇨. 오늘은 저 혼자입니다."

으응? 전속요리사를 두고? 왜?

보르고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사업 때문에 월레스 경과 함께 관계자분들과 만남을 가지며 식사를 하실 예정이라고 하시던데요."

"점심에 만찬 준비를 하라는 말은 따로 없었소만."

"내성 밖 시가지에서요."

"아, 그러면 말이 다르지."

보르고는 그렇게 이해하며 힐긋 카렘의 옆에 놓인 통을 보았다.

"아까 전부터 배럴을 조심스럽게 들고 다니던 게 신경 쓰였는데. 혹시 그 내용물을 사용할 예정이오?"

"네. 그리고 그 통을 누구 때문에 놓칠 뻔했습니다."

"하하하! 이거 미안하게 됐소.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하는 버릇이라! 그래서, 그렇게 내용물이 뭔데 그렇게 소중하게 싸매고 다닌 것이오?"

"이건...어..."

질문에 카렘은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배럴을 내려다봤다.

아무튼 이걸 여기서 된장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적당히 이름을 붙여야 할 텐데...일단 발효시킨 거고...감칠맛...

"가룸이에요. 가룸. 콩으로 만든 가룸."

"아, 가룸. 음? 방금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재료가 뭐라고 말하셨소?"

"콩이요. 완두콩."

끔뻑끔뻑.

뭐로 뭐를 만들어? 콩? 가름?

보르고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슬쩍 두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회전기를 돌리던 요리사들의 손도 멈춰 화로의 열기에 노릇노릇하고 바삭할 껍질이 그을리려고 하-

보르고는 기겁했다.

"야, 이 덩어리 새끼들아! 회전기! 회전기!"

"어, 어어어! 껍질 탄다! 껍질! 껍질!"

"안돼! 새벽부터 계속 돌리고 있었는데!"

보르고의 외침에 정신 차린 요리사들은 허겁지겁 멈췄던 손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지만, 일부가 그을리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야이 씨. 그을렸잖아!"

"그래도 이 정도면...칼로 긁어내는 선에서 수습되겠군."

"어이, 옆에 식칼 쥔 놈. 그래. 너는 가서 식칼 좀 건네줘."

갑작스러운 소란에 조금 놀란 카렘은 잠시 기다리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현장을 수습하는 보르고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주방을 좀 빌려도 될까요?"

"아무렴. 편하게 사용하시오. 빈자리가...저쪽이로군."

통을 들어 올린 카렘을 구석지지만, 한산한 자리로 안내한 보르고는 재료와 향신료의 위치를 알려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요청하라는 말과 함께 불 앞에서 한눈팔고 실수를 해버린 이들을 응징하러 자리를 떠났다.

보르고의 미소가 떠나가지 않던 호감상이 화로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콧수염 달마의 형상으로 변했다.

카렘은 시끄러운 고함과 폭력을 뒤로했다.

아무튼, 내 일은 아닌 듯?

물을 받은 냄비에 육수용 말린 다시마를 퐁당 빠트린 카렘은 오면서 생각한 된장찌개 레시피의 재료와 대체품을 주변에서 끌어모았다.

파, 마늘, 양파는 기존의 것을 사용.

감자를 대신하고 무를 겸할 순무.

애호박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없으니 과감하게 빼버리고...고기는..."

카렘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는 주로 돼지고기와 소고기.

돼지고기도 나름의 맛이 있으며, 소고기를 넣은 것도 또 나름의 맛이 있었던 터라 고민되었다.

"진한 맛은 소, 깔끔한 건 돼지인데...'

텅! 텅! 스걱, 드르륵.

묵직한 소리가 카렘의 귀를 강타했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가자 카렘이 본 것은, 중식도를 닮은 도축칼.

클리버로 커다란 통 소고기의 반쪽을 부위별로 자르는 모습.

그리고, 가슴의 납작한 부위를 통으로 잘라내 뼈와 기타 잡고기가 가득 담긴 양동이에 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저걸 버린다고?

카렘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도축에 집중하는 요리사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이런 미친 깜짝이야!? 아니 칼 들고 있는데 누가-"

"죄송합니다. 요전부터 잠시 신세 지게 된 카렘입니다."

"아, 콜던의 꼬마 요리사님이었소? 휴, 근육 빠지는 줄 알았네."

호들갑인가 싶었던 카렘은 소의 척추 부근에 대각선으로 박힌 클리버를 보고 연신 고개숙여 사과하며 요리사를 부담스럽게 했다.

사과가 계속 이어지자 느껴지기 시작한 총주방장의 뜨거운 시선에 요리사는 카렘의 양 겨드랑이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려 사과를 제지하고는 땅에 내려놓았다.

"휴, 이제야 살겠네. 꼬마 요리사님은 고기가 필요하셔서 오셨소? 마침 질 좋은 게 들어왔으니 부드러운 안심을 추천할까 하는데-"

"그것도 끌리기는 하는데, 그것보다 원하는 부위가 있는데요."

"말만 하시오. 얼마든지 드릴 터이니."

"그러면 저기. 저 부위를 통으로."

"음?"

요리사는 카렘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 끝엔, 빈민들에게 돌아갈 양동이에 담긴 잡육 더미.

그 위에 브리스킷(brisket)이 척 얹어져 있었다.

"...저걸 말이냐?"

당황한 나머지 반말이 나와버렸다.

카렘은 그러거나 진지하게 표정을 굳히고는 다시 한번 브리스킷을 가리켰다.

"예."

"아니, 여기 다른 고기가 얼마나 많은데. 자, 보시오. 여기 가을 동안 기름기가 잔뜩 오른 립아이나 진하고 부드러운 안심도 있고, 묵직하고 담백한 채끝살도 좋은 선택이오. 등심도 있고."

요리사는 카렘에게 다른 맛있는 부위를 추천했다.

브리스킷이라니. 요리사는 진지했다.

"아니면, 수프나 스튜를 해 먹기엔 앞다릿살이나 뒷다릿살도 나쁘지 않지. 쫀득한 맛이 일품이니까."

아니, 저 질기고 먹기 힘든 부위를 일부러? 왜?

요리사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먹을 게 부족하던 옛날이라면 모를까, 이젠 빈자들의 고기를? 아무리 잘 구워도 질기기만 하고 한참을 오래 푹 끓여야 그나마 먹을 만해지는 물건인데 대체 왜? 육수 우리기에는 이만한 물건이 없긴 하지만.

"브리스킷을 원합니다."

"...정말이오?"

"넵."

요리사는 카렘에게 계속 다른 부위를 추천했다.

아무리 저런 부위를 손님한테 드리기에는 좀...

하지만 카렘은 브리스킷을 고집했고 이해할 수 없는 요리사의 눈빛을 뒤로 한 채 기어이 한 덩어리를 통째로 가져가 버렸다.

자리로 돌아온 카렘은 브리스킷을 도마에 내동댕이쳤다.

브리스킷.

다른 말로는, 차돌양지.

품에서 애용하는 펠윈터의 거짓말을 뽑아 든 카렘은 브리스킷을 차돌과 양지로 단칼에 분리하고 단면을 확인했다.

"퍄, 그렇지. 마블링 좀 봐라."

새하얀 소기름 위로 강의 물결처럼 박힌 붉은 고기.

고기의 질이 좋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는지 차돌박이의 고기와 기름 비율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된장찌개엔 차돌박이지."

소고기를 넣더라도 다 같은 소고기가 아니다.

차돌박이는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부위.

조금이라도 찌개에 들어가는 순간 가격의 자릿수가 달라졌다.

하물며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얇게 저민 접시 하나를 비싼 가격에 팔기 일수인 데다 전생엔 동서양을 통틀어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렇게 맛있는 부위를 대체 왜 버리려고 하는 건지.'

카렘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본래 브리스킷, 차돌양지는 사람들이 기피하다 못해 천대 받았던 대표적인 고기 중 하나.

바비큐 요리법이 퍼진 후 서양에서는 먹는 빈도가 늘었다.

그마저도 주류가 된 건 대공황 같은 여러 대사건 이후.

동양에서도 바비큐가 전래하기 전까지는 마찬가지.

다른 나라가 고기 먹을 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전 국민이 소고기에 환장한 한반도가 이상한 국가이다.

대저 어느 나라가 소고기라면 문자 의미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장 하나 버리지 않고 모조리 먹어 치운단 말인가? 도리어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인데. 이런 나라는 전 세계를 뒤져봐도 얼마 없었다.

다시마를 건진 냄비를 불에 올리고 한입 크기로 썬 채소를 투입한 카렘은 연신 차돌을 얇게 저몄다.

명백히 된장찌개에 넣기엔 많은 양.

이걸 전부 다 넣으면 찌개가 아니라 기름탕이 될 터.

"나머지는 구워 먹어야지."

연기가 올라오는 뜨거운 철판 위에서 눈 깜빡할 사이에 기름을 뱉어내며 오그라들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차돌박이.

어느새 차돌박이의 손질은 끝났다.

카렘은 종잇장보다 조금 두꺼운 차돌이 수북하게 쌓인 도마를 식칼과 함께 치웠다.

그리고 바닥에 놓았던 배럴을 들고 테이블에 놓았다.

뚜껑을 열자 깊은 저 머릿속에 파묻혀있던 맛이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