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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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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으로 진실을 추궁하는 집요정의 날카로운 시선.

말없이도 느껴지는 진실을 추궁하는 눈빛

카렘과 고든은 수상할 정도로 그런 적 없다는 듯 노골적으로 뻔뻔하리만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튼, 마음속으로만 나눴던 공감이다.

입 밖으로 나온 적은 없으니 그들은 결백했다.

수상할 정도로 무구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는 카렘과 태연하게 치킨을 뜯어 먹는 고든은 부외자가 보기에도 과할 정도로 자연스러워 역으로 수상했다.

메리 또한 이걸 느꼈다.

그렇지만 일단은 한 발자국 물러나기로 했다.

"뭐, 추궁은 나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호출?"

"예. 호출입니다."

"그러면 바로-"

"단."

메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카렘을 제지했다.

"카렘 후배가 아니라 스타크 경을 호출하셨습니다."

"음. 나를? 뭐, 호위라도 하라는 건가."

고든은 수염에 튀김 가루가 묻은 것도 모르는 채로 태연하게 치킨을 뜯었다.

"예. 가계약을 하기에 앞서 변경백 각하가 오시기 전에 하트먼 경과 함께 부지를 둘러보고 만나시겠다고 하십니다."

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서 호위가 필요하시다고 하셨습니다."

"호위는 언제부터 필요하다고 하셨나?"

"지금 바로 함께 가시면 됩니다."

"지금? 뭐, 딱히 상관은 없는데."

고든은 통에 뼈다귀만 남은 치킨을 툭 하고 던져넣고 아직 치킨이 한가득 담긴 나무 양동이를 두드렸다.

"이거 들고 가도 상관없나? 한창 먹는 중이었는데."

"어, 호위 중인데 치킨을 뜯으시려고요?"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는데."

"...호위하는데 당연히 문제가 생기지 않겠어요?"

호위가 호위 대상자와 주변에 집중하지 않고 치킨 뜯는 데나 집중하겠다는 소린데, 이젠 남작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사람이? 그 전에 예의가 아닌 거 아닌가?

카렘은 속마음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고든과 양동이에 담긴 치킨을 번갈아 보며 그게 맞냐는 무언의 암시를 보냈다.

"하, 별걱정을 다하냐."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눈, 그 눈으로 다 말하고 있잖아. 고작 치킨 좀 뜯는다고 호위에 문제가 생기면 소드마스터는 때려치워야지.

고든은 입구에서 멀뚱히 서 있는 메리를 뼈다귀로 가리켰다.

"게다가 마법사님 본인을 누구보다 주의 깊게 지켜볼 저쪽도 있는데. 치킨 좀 뜯는다고 문제가 될까? 무엇보다 시종장 쪽에서도 호위가 있을 텐데."

"그으...렇게 말씀하시면 또 제가 할 말이 없는데요."

결국 일은 시가지에서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저번에 숲에서 그리즐리 비버를 상대할 때의 난전을 떠올리면 있던 걱정도 사라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메리도 뭔가 자신만만해 보이고.

"스타크 경. 계약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바로-"

"아니, 그러면. 전 뭔가 따로 할 일이 없나요?"

카렘은 곧바로 나가려는 메리를 붙잡고 물었다.

일단 전속 요리사고 (명목상) 전속 시종인데, 이런 곳에서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되는 건가?

물론 여기 와서 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방을 빌려 캐서린의 아침과 점심을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메리와 함께 간식도 만들었다.

다만 이틀간 한 일이 그게 전부였다.

메리는 그게 뭐가 문제라도 되냐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마법사의 탑에서 하던 일과 같지 않습니까?"

"같을 리가 있겠습니까. 거."

비록 여러 사정, 주로 메리 때문에 맡은 일은 줄어들었다.

그래도 카렘이 하는 일은 여전히 많았다.

마법사의 탑에선 침입하는 알리시아나 방문하는 손님을 위해 요리하고, 지그메서의 교류회에서 본성의 요리사들과 관계를 나누기도 하며, 혼자서 반쯤 도박 겸 심심풀이로 하는 요리 연구와 기타 등등.

아니, 그중 처음을 빼고 나머지는 전부 사적인 일이기는 한데.

그렇다.

까놓고 말해서 카렘은 심심했다.

이를 짐작한 메리는 허리춤에 양손을 얹었다.

"정말이지. 저도 이것저것 일을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데. 카렘 후배도 참을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쪽이 지금 저한테 그 말을 한다고요?"

"여기는 윈터홈의 마탑이 아닙니다. 여기저기 보이는 먼지와 처리되기만을 기다리는 일감이 어찌나 유혹-아니. 보기 힘든지."

"그쪽이 저보다 더 힘든 거 같은데요."

"그리고 계약자가 오늘 점심은 월레스 하트먼 경과 함께 사업 관계자들과 점심 식사를 가지시며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실 예정이라고 하십니다."

"어, 그 말은-"

"아무튼, 스타크 경. 바로 가시지요."

메리는 카렘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방을 나섰다. 멀뚱히 앉아 치킨을 뜯던 고든 또한 카렘을 보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양동이를 들고 방을 나섰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화려한 카렘이 묵는 손님방.

치킨 냄새와 깨끗한 닭 뼈만 남았다.

"흠..."

요새 밖에서 들려오는 어렴풋한 시가지의 소음만 들렸다.

카렘은 싱숭생숭하다 못해 뭔가 뻘쭘해져 의자에서 내려와 신발을 벗고는 옆에 있던 침대에 몸을 던졌다. 시트가 푹하고 잠기며 부드러운 비단 커버의 감촉이 전신을 감쌌다.

그러고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심심한데."

중요한 사업 자리에 관계자는커녕 포션과 요만큼도 연관이 없는 사람이 대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심심했다.

윈터홈에서는 앞서 생각했듯이 심심할 틈이 없었다.

허구한 날 잠입하는 알리시아나 난데없이 불쑥 찾아오는 고드윈같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만드는 식사와 간식, 드물게 온실을 들르거나, 지그메서와의 교류회에 그마저도 없으면 틀어박혀 요리 연구나 할 텐데...

지금 여기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카렘은 지금 갑작스럽게 할 일이 없어 오히려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점심은 혼자 조리해서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때까지 시간은 한참이나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푹신푹신한 건 마음에 드는데."

한참 침대 위에서 다리를 휘적거리거나, 발뒤꿈치로 침대 시트를 팡팡 두드리던 카렘은 그 반동으로 휙하고 빠르게 일어나 앉았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선은 방의 한구석으로 돌아갔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방에 전혀 그렇지 못한 구석에 처박은 다양한 향신료와 재료가 들어간 가방 곁에 나무 배럴이 두 개.

하나는 간장이 들어있었다.

다른 하나는...

"된장인데. 흠."

카렘은 한동안 게슴츠레한 눈으로 배럴을 응시했다. 잠시 후, 천천히 다리를 내려 신발을 신고 휙! 일어나 뚜벅뚜벅 배럴을 향해 걸어가 쪼그려 앉았다.

"흐음..."

카렘은 애초에 된장을 만들려는 목적은 없었다.

그냥 메주가 간장의 재료이며, 또한 된장의 재료였을 뿐.

일종의 어부지리, 일석이조의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다 같은 메주에서 비롯된 물건이니까.

기왕 만드는 김에 유사 고추장도 마찬가지라면 마찬가지.

전생에서도 외국에 나갈 때 향수병을 느끼기는커녕 다들 힘들어할 때 좋다며 현지 음식을 퍼먹었을 정도였고, 환생 한 후 시간이 훌쩍 지나 인제 와서 향수병 때문에 뭔가 만들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까 간장도 첫째 공자 다이어트 때문에 만들기 시작한 거 아니었던가?

아무튼, 적어도 아직은 그랬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그런 순간이 있다.

숨쉬기나 눈 깜빡이기처럼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던 자연스러운 행동을 생각한 나머지 도리어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 그런.

충동이라고 할 수도 있다.

1년 넘도록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다 돌연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을 흡입하게 되는 본능적인 충동.

"된장찌개...흠...에이, 두부도 애호박도 없는데 무슨."

라고 입으로는 말했지만, 머리는 맹렬하게 돌아가 육수 및 각종 부재료와 없는 재료의 대체품을 계산하고 있었다.

'육수로는 말린 다시마와 건어물. 설마 건어물이 없다고 해도 충분. 양파, 마늘, 대파, 고추가 없으니 붉마손 가루. 감자랑 맛은 달라도 질감은 비슷한 순무 고기는 당연히 있겠고-.'

점점 머릿속의 레시피가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된장찌개...만들어볼까?"

냄새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소위 된장, 고추장이 냄새난다는 소문의 근원은 그 장이 만들어질 때 미생물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내뿜는 냄새.

이미 100배 마법통으로 숙성이 끝나다 못해 소위 종갓집에나 있다는 수십 년 된 명품 장은 구리구리하기 보다는 기름에 볶은 고소한 콩과 견과류, 갓 찐 보리같은 냄새가 더 강했다.

그야말로 메주 띄우는 데 성공한 스카디님 만세.

최소 년 단위의 시간을 단축한 마도구 만세.

'뭐, 기왕 된장도 가져왔으니까.'

누구 줄 것도 아니고 혼자 먹겠다는데.

안 먹을 이유도 없었다.

'그러면 슬슬 배도 고프겠다. 만들어 먹지 뭐.'

체내 시계가 알리기를 슬슬 점심시간.

침대 위에서 멍하니 휘적거리는데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다.

카렘은 힘을 줘서 나무 배럴을 가뿐하게 들었다.

'어디 보자. 주방이, 이쪽이었던가.'

당연하지만, 에프터글로우 요새의 구조는 잘 몰랐다.

도착한 지 일주일은커녕 며칠도 안 되는데 구조를 알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다만 요 이틀간 들른 곳이라곤 몇 군데가 되지를 않아 다른 건 몰라도 주방의 위치와 캐서린, 메리, 고든이 머무는 방의 위치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했다.

방을 나선 카렘은 주방을 향해 복도를 걸었다.

요새는 귀족이 머무는 거처라기보다는 이름대로 요새로서의 성질이 강한지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의 격식은 차리는지 각종 장식이 벽에 걸려있었다.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장비.

박물관에 걸릴 것 같은 인물화와 풍경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따로 있었다.

"허, 거 참 흉악하게 생겼네."

벽에 걸린 각종 맹수와 몬스터의 박제한 머리와 가죽 장식.

에프터글로우 요새 벽면에는 단연코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윈터홈에도 가죽과 박제 장식이 있었다고?

거긴 벽걸이 트로피로 머리가 셋 달린 코끼리만 한 늑대 가죽 벽걸이나 4천 년은 묵은 것 같은 (상아가 포함된) 고대 메머드의 대가리 같은 물건이 명패에 걸려있지는 않았다.

하나같이 생전의 위엄과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거대한 가죽과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머리는 박제사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추운 지방의 짐승은 덩치가 크다고 하다지."

열전도율이니, 지방이니 뭐니 하는 잡스러운 생각과 함께 벽의 가죽과 머리 박제 장식을 구경했다.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장식에 무심코 목적지를 지나칠 뻔했던 카렘은 얼른 뒤돌아 주방으로 들어갔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여기 주방은 진짜 넓네.'

애프터글로우 요새는 윈터홈과는 다르게 주방이 오직 하나였다.

하나뿐인 주방에서 요새의 수많은 거주자를 먹이기 위해선지 그 규모는 어지간한 강당보다 훨씬 넓었다. 거기에 갖춰진 화덕이고 오븐이고 냄비도 하나같이 거대했다.

가장 압권인 것은 주방의 중앙에 배치된 거대한 화로.

바이킹이 떠오르는 털북숭이 요리사들이 땀을 흘리며 회전기를 돌리거나 자리를 바꿔가며 위치를 조정했다.

그에 따라 꼬챙이에 꿰인 수많은 동물과 정체를 추측하기 힘든 다양한 크기의 몬스터가 연기가 뿜어지는 장작불 위에서 천천히 돌아가며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다.

기름과 육즙이 아래의 화덕으로 떨어져 통구이의 기름과 육즙이 지닌 풍미를 품은 연기가 피어올라 통구이를 감쌌다.

연기는 천장의 굴뚝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 전에 주렁주렁 매달린 다양한 소시지 다발에 닿았다.

장작불과 육즙, 기름의 연기는 소시지를 훈연시켰다.

천천히, 은은하게 훈연되는 소시지에는 수분과 육즙, 지방의 이슬이 맺혔다.

그렇게 맺힌 이슬은 화덕에 떨어져 다시금 연기를 일으켰다.

"윈터홈에도 이런 건 없었는데."

"그야 당연하오! 하이랜드 지방을 넘어 세오폰 왕국 전체에서도 이만큼 거대한 주방과 화덕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오!"

호의를 가득 담은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주인이 카렘의 등을 찰싹 후려쳤다.

자료첨부

-애프터 글로우 요새 주방 중앙 화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