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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 103호, 저주의 방 - ‘동물농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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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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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지금처럼 두려운 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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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채로 털을 뽑히다가 죽을 위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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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깔끔하게 목을 비틀어서 죽고 끝이라면, 그저 남은 오빠 언니들이 잘해결해주기만 믿고 마음 편히 죽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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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사육장 상태를 확인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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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넓은 양계장 느낌의 공간에 거위의 숫자도 무척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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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내가 뽑힐 확률은 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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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혹시 몰라서 문에서 최대한 거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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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뚱뒤뚱 걸어가다가 다른 거위의 부리나 엉덩이를 툭툭 치자 신경질 섞인 꽥 하는 소리가 나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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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하지만 나 대신 죽어 주렴. 그래도 생각하는 거위는 살아야 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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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거위의 털을 뽑는다고 꼭 죽 는 건 아니고, 오히려 대부분은 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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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든 내 털을 뜯길 수야 없다. 부리로 툭툭 쳐봐도 이렇게 보송보송한데. 절대 뜯길 생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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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멍멍(엘레나) : 지금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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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소년(박승엽) :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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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이 감돈다. 괜찮겠지. 이렇게 거위가 많고, 나는 심지어 구석에 있는데 굳이 날 찾으려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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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숭부숭한 털을 가진 아저씨 한 명이 들어왔다. 보자마자 솔직히 좀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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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털이나 뽑으라고 좀! 애먼 거위 털 뜯을 생각 하지 말고! 거위도 겨울엔 춥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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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구석에 엉덩이를 끼워 넣고, 부리로 다른 거위를 물어서 내 앞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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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해. 친구야. 날 지켜 주리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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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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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애애애애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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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천둥같은 거위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변을 둘러보던 농부의 시선이 바로 나에게 와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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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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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봤는데, 앞에 아이를 물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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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이고, 입버릇이 안 좋은 놈이 구만. 피터, 잘 봐두거라. 저런 녀석을 내버려 두면 사육장 안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다쳐서 난리가 나요. 저런 건 딱딱 솎아내야 된다.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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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잡아 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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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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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앞의 소년이 대놓고 날 쳐다보며 일직선으로 걸어오는 걸 보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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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구나. 숨이 멎을 것 같아서 대화를 시도해 봤는데, 반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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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화량도 전부 소진된 거구나. 이제 정말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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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소년의 단단한 손길이 내 몸뚱이를 붙잡아 들어 올리더니 나무상자에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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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기서 털 뽑히다 죽겠구나. 심지어 언뜻 듣기로는, ‘솎아낸다?’ 털 뽑히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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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호에서의 끝은 거위고기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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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에 사로잡힌 순간, 구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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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 왈! 으르르르르 왈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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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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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미친 듯이 짖는 소리, 늑대의 하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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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명확한 상황에 농장 가족은 표정이 급변하며 거위 따위는 잊은 채로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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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네 방으로 들어가라! 메이는 방에서 나오지 말게 해라. 에이미! 내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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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고 가요! 당신 조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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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보니까 외톨이 늑대 한두 마리인 것 같은데, 오늘 혼쭐을 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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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 것 같다. 아마도 엘레나 언니와 승엽이가 호흡을 맞춘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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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살았다. 그치만... 어차피 상자 안에 있는데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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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늑대를 쫓아내고 와서 날 다시 잡아가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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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울음소리. 개의 울음소리. 허공을 가르는 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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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로 가득 찬 농부의 외침, 비명 지르는 소녀, 흥분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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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 난 여러 사육장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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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전체에 혼란스러운 시간이 30분 이상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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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 혼란의 시간 속에서 다시금 도움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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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카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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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위쪽이 열리는 순간, 깨달았다. 나,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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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는 듯이 황금색 개가 내 목을 살짝 물더니 밖으로 밀어냈고, 근처에서 대충 비슷한 덩치의 거위 하나와 힘 싸움을 하다가 결국은 그냥 죽인 후 상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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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신 죽을 친구구나. 조금 미안 하네. 그래도 이해하렴. 생각하는 거위는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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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까 엘레나가 내 목을 들어서 옮길 때, 뭔가 빠직? 하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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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살짝 금이 가는 듯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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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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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엔 딱히 그런 소리가 날 만한 게 없는데... 잘못 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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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날 위해서 이렇게나 열심히 최선을 다 했다. 특히 승엽이는 까딱하면 농부의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게 아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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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진짜 맞은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기만 바란다. 모두에게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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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음머어어어어 하는 소리도 들렸다. 가인오빠도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소가 놀라서 내지르는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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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죽인 채로 기다리고 기다렸다. 2시간 정도 지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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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된 후로는 시간 감각도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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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가족이 하나둘 돌아왔다. 대단히 짜증 난 기색. 대충 듣기로는 늑대가 도망갔다는 말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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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엽이는 잘 피했구나. 천만다행이다. 날 구하려다가 총에 맞아 죽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비극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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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사육장 구석에 숨어서, 농장 가족들이 상자에 다가가는걸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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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 녀석이 왜 목이 꺾여 있지? 피터, 혹시 죽여서 담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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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냥 목만 잡아다가 상자에 넣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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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꺾여서 죽었구나. 아마 갑자기 늑대가 와서 네가 실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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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상하네요. 다음엔 조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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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별일 아니다. 어차피 죽일 놈이었어. 입질이 심하니 별수 없지.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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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어떻게 어떻게 살았구나. 나 대신 죽어서 상자로 들어간 거위에겐 미안 하지만, 농장 부부는 나와 다른 거위를 구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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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가 다른 거위를 죽여서 바꿔치기한다는 이상한 일은 보통 상상도 못 할테니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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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카톡이 회복되면 모두에게 짧게나마 감사를 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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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이겨 내자 긴장이 탁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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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해는 진작에 사라졌고, 슬슬 달빛이 세상을 감싸 안으며 구석구석 빛을 흩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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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리가 전하기로는 이 세계에선 밤마다 도깨비가 나온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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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슬슬 모두에게 도움이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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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 기묘한 가족이야 승엽이 혼자 해결했다 쳐도, 그 후 수영장은 물론이고 탐색 임무나 102호 – 공포의 저택 에서도 내가 한 게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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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저택에 들어가자마자 빙의돼서 미친 짓만 하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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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103호에 와서도 이 모양이다. 누군가는 밤낮으로 정보를 모으고, 누군가는 거위가 털뽑히는 걸 구하겠다고 하울링으로 농부까지 끌어내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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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사육장 안의 거위일 뿐.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역할만 주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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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원망만 할 때가 아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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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고통스러운 죽음의 위기를 막 피해서인지, 잠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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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도깨비나 살펴보기로 했다. 아리의 말대로라면, 우리에게 별다른 관심은 없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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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다른 거위를 부리로 툭툭 찔러서 밀치며 사육장 외곽의 바람이 통하는 장소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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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나는 듯한 거위들의 불쾌한 반응. 미안 해 친구들. 근데 생각하는 거위는 할 일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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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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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천지가 새카맣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까 달빛이 있던 것 같은데, 구름이 가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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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거위의 시각이 생각보다 안좋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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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니으아아꽤애애애애애애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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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거대한 형체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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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꽤애애액 소리를 내지르며 깨달았다. 구름이 달을 가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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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의 눈으로 보기엔 한없이 거대한 무언가가 사육장 바로 앞에 서 있던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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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라서, 너무 무서워서 그냥 온몸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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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 거인의 얼굴과도 같은 검은 형상이 내려와서 사육장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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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육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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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나’를 본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알았다. 저것은 나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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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덜덜 떨린다. 이제서야 내가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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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살려 줘.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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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일은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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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형체에서 뻗어난 촉수 같은 것이 흐물거리며 내려와 사육장 안쪽으로 뻗더니, 밖으로 삐져나온 나를 툭 밀어 넣고 머리를 톡 치더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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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친근감이 느껴지는 행동. 흡사 애완동물이 집에서 나오려고 할 때 쓰다듬고 집어넣는 주인의 모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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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정도 지나자 그제야 정신이 든다. 새인데도 뭔가 온몸이 긴장으로 흠뻑 젖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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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한 사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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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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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개, 고양이, 앵무새까지 전부 길러봤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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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물들은 얼마나 겁이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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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걸이만 떨어져도 비명을 내지르며 어깨에 날아와 붙는 앵무새, 로봇 청소기만 돌아가도 사람 다리에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강아지, 샤워 소리만 나도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가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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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물들은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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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년에 걸쳐 선조로부터 받은 유전자가 그들에게 알려 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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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 광대무량한 세계의 한없이 작은 모래알이니, 세상 전체가 곧 위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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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가진 거위조차 두려워서 숨을 쉴 수가 없는 저런 공포스러운 것이 사육장 바로 옆까지 와서 촉수를 밀어 넣는데, 왜 이 사육장은 이렇게 조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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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거위가 다 잠든 것도 아니다. 상당수 거위가 깨어 있는데도... 마치 아무 일 없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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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이야기해 봐야겠구나. 하지만 이야기한다고 해서 뭔가 결론이 나오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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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수수께끼가 많아진다는 생각하면서 부리를 날개 사이로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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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거위의 삶에도 익숙해지는구나. 그래도 내 털이 보송보송한 건 참 좋았다. 절대 뽑히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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