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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시선은 변함이 없다. 농담이 아니라는 듯한 담대한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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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망울은 정확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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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목울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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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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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은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움직이다. 치마 끝자락을 살짝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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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혼란한 심정 속에서, 그녀가 한 말을 다시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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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한테 고백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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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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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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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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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슥 벌어졌다. 이솔의 얼굴 위로 멍한 표정이 점차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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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얘한테 뭔가 실수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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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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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런 게 아니고선, 그런 말을 할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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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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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뻐금거리던 이솔은, 눈매가 추욱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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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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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룩. 조금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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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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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본 이승아가 당황하며 양손을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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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백하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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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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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다시 생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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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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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하라면 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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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려면 안 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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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하지 말라는 것은, 대체 무슨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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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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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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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곤란한 듯,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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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꾸물거리며 시선은 바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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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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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눈을 감은 이승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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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고 있냐며, 불만 어린 어투로 중얼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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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냥 빠르게 말할게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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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을 확 찌푸리며, 이승아는 벽에 탁 손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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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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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그 기세에 끌려가듯이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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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저희 오빠가 엄청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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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그 언젠가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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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때가 이승호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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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도 모를 고열에 시달려서, 밤중에 응급실로 실려 간 적이 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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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열은 금방 내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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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때쯤부터였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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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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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저희 오빠는 연애 감정 같은 걸, 거의 못 느끼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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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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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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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행동이 그대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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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에도 놀라지 않을 만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도저히 안 놀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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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놀랐다기보다. 현실감을 잃고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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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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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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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시선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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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말하면서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이승아였지만. 그 어투만큼은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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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거짓말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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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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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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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말없이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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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썸녀가 고백한 걸, 그대로 차 버렸거든요. 둘이 원래 되게 좋은 사이였는데··· 아무튼 그렇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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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증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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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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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이지만, 신경 쓰이는 화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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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금은 잠시 넘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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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서 어디 문제 생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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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병원에서 그런 건 아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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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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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또 멀쩡하거든요. 화날 때 화내고, 맛있는 거 먹으면 좋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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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자체는 크게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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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감정의 기준치가 높아졌다고 해야 하나··· 흐려졌다고 해야 하나··· 그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런 상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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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후로 성향 자체가 뒤바뀐 느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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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로맨스로 점철된 드라마도 잘 보던 사람이, 그날 이후로는 어딘가 재미없다며 영화를 선호하기 시작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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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이하였던 성적은 갑자기 올라가고, 안 하던 운동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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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만화에 나올법한 등가교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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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얻은 대가로, 감정의 한 부분이 흐릿해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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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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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섣부르게 고백해 봤자. 좋은 답은 못 들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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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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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결론은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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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걸로는 꿈적도 안 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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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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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라면 언니랑 단둘이 약속 잡았을 때부터 호들갑 떨었을 텐데. 저 인간은 미동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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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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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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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학습지를 꺼내 들던 이승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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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백하지 말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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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통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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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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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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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갑작스러운 화제에 아직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탓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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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귈 상대로는 오빠는 추천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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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그런 조언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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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을 보답받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언니도 아직 호감일 뿐이라면,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찾는 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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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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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이승아의 목소리가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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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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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고개를 슬그머니 치켜들었다. 어딘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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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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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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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알아차린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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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내린 선택에 다른 사람이 참견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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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때도 그렇고, 수학여행의 아쿠아리움에서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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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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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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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한순간, 숨을 후— 들이키며. 내뱉을 말을 일부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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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대로, 이쪽에서 보낸 고백으로 잘 안될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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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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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가 내게 고백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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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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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머리끝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말하고 나니 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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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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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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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자신은 점진적인 연애를 하고자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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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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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방 안. 이승아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얼굴을 양손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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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이로 비치는 눈이 깜빡거렸다. 발가락이 꾸욱 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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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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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표정이 부끄러움으로, 미약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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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보는 이쪽이 다 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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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스푼을 그대로 퍼먹은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로맨스 드라마가 굉장히 보고 싶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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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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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의 광경이 머릿속에서 다시금 재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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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살짝 떨어진 회색빛 머리카락. 그 사이로 보이는 동공으로 비치는 풋풋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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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죽삐죽 튀어나오는 미묘한 음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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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나하나가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차고도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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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물 한 편 뚝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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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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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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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서 삑삑거리는 소음과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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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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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가 태연한 표정으로 걸어들어왔다. 한 손에는 흰 봉투가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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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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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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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혼자 애니메이션 보던 중, 부모님이 방에 들어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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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색하며 그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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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은 새끼. 넌 용돈 절반으로 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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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보고 있자면,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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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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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는 어이없다는 듯 의문 부호를 떠올렸다. 손가락 끝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중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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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 온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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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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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그걸 보고 눈빛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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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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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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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콧노래를 부르며 냉큼 그걸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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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에 든 간식이 이것저것 많았다. 뒤적거리다가 매콤 감자칩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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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눈치껏 사 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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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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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을 살피던 이승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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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집중 안 될 것 같다고, 먼저 돌아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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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이솔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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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말하던 그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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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뽀짝한 모습으로 돌아와선, 다다다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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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가면서 안 마주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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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물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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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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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는 간식을 선반 위에 정리하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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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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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부끄러움이 많은 언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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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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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선반을 정리하던 이승호가 떠보듯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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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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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선은 여전히 선반 위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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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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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도 괜히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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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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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돼서 말하는 것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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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지금 내가 말하는 편이 더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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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정신 상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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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받았을 때 이리저리 설명하며 거절하는 것보다는. 구차하게 이승호가 직접 말하는 것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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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다른 사람이 말하는 편이 신빙성이 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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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상처를 주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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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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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도 동의한다는 듯 조용히 있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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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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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에 손을 괸 이승아가 헛웃음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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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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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중에 연애 감정만 흐릿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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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인가 생겨난, 저 이상할 정도로 기민한 눈치와 등가교환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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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어디 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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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제 방으로 들어가려는 이승호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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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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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뭘 당당하게 지나가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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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눈을 찌푸리며 그를 추궁했다. 당당하게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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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도와줬으니까, 너도 나 좀 도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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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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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는 잠시 침묵했다가, 주춤주춤 몸을 돌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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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어려운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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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휴대폰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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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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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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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본 이승호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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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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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다음 주 주말에 여기에 부스 열 생각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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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축제. 일정 기간마다 여는, 모든 오타쿠들의 오프라인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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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물들을 사고팔거나, 코스프레를 볼 수 있는 이벤트 회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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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행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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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장래 희망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주기적으로 이곳에 참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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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기로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이 갑자기 입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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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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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행사 뛰는 거 도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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