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383409/25.md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4 KiB

하늘과 땅이 채 나누어지기도 전, 빛이 있기 전에 여명조차 도래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드래곤은 존재했다.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생명을 관조하고, 때로는 조율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도록 창조된 여신의 피조물.

그것이 바로 위대한 드래곤이었으며, 그 위대한 혈통을 곧이곧대로 계승한 고귀한 드래곤께서는.

“왜! 왜애애! 왜 벌써 완결인 건데에에!”

오늘도 누렁이 행동을 하고 있었다.

“뭐가 이리 시끄러──”

연립 주택의 공용 로비에서 발생한 소란이었기에, 소음에 항의하고자 입주민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지만.

뿔과 꼬리가 돋아난 에스테아의 모습을 관측하자마자 곧바로 문을 닫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묵에 빠져들었다.

실수라도 고귀하고 위대하신 존재에게 밉보이기라도 한다면, 가문 전체에 큰 재앙이 내릴 것이니.

하지만 그런 미천한 인간의 시선 따위에는 개의치 않으시며.

꼬리를 연신 바닥에 팡 팡 내리치면서, 굳이 키를 키우지도 않은 채 폴짝 뛰어올라 김율의 멱살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에스테아는 아르랑거리며 김율을 위협했다.

“500화까지 연재하는 게 어려워? 150화 완결 작품을 누구 코에 붙여어어!”

본편 98화, 외전 포함 103화로 불세출의 명작을 빚어낸 인천이 낳은 21세기의 대문호가 들었다면 혀를 찼을 이야기였지만.

에스테아는 당당했다.

애초에 인간과는 시간적 관념이 다른 존재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인간의 일평생 또한, 과장 조금 덧대자면 그녀에겐 찰나에 불과했으니.

그 찰나를 최대한 디테일하게 묘사하여 양질의 사료를 말아주기는커녕, 이렇게 찝찝하게 마무리하다니!

“카이사르가 죽었으면, 그 아들 이야기라도 써야 할 거 아니야! 카이사리온은! 하다못해 옥타비아누스라도!”

옥타비아누스라는 말에 김율이 살짝 움찔했지만, 에스테아는 그러한 반응에 개의치 않은 채 연신 짤짤 김율의 몸을 흔들어댔다.

결국.

“크르랑!”

“에스테아. 우리, 조금 더 어른스럽게 대화합시다. 이러한 소통 태도는 옳지 못합니다.”

제발 좀 어떻게 해달라는 눈빛을 받은 히스토리에가, 에스테아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들어 올렸다.

.

.

.

한동안 발작하며 아이처럼 떼를 쓰던 에스테아가 비로소 진정한 이후.

“그래서, 왜 그런 결말이야?”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김율을 즉석에서 김율 구이로 만들어버릴 기세였지만.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비로소 누렁이와 이성적 소통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선 김율의 혓바닥이, 요사스럽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헤르메스의 설득력을 본받아.

그리고 키케로의 웅변을 본받아.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명대사 표절로 한 번 재미를 본 탓인지, 서두부터 표절을 깔고 들어간 후.

“카이사르는 삶 전체에서 공화정을 타파하기 위해 투쟁하였지만, 그 과업이 결코 자신의 생애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인지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극단주의자들이 시기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역으로 노려서──”

장르문학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

작가의 집필 동기와 주제 의식을 설파하다가, 결국.

“커헉──”

“그런 건 알고 싶지 않아아아!”

분기탱천한 에스테아의 꼬리치기에 그대로 옆구리를 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에스테아? 그러면 제가 후일담을 조금 더 써서 보여줄까요?”

그 빈틈을 틈타, 히스토리에가 끼어들어서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을 입증하고자 했지만.

“그치만, 히토리가 써주는 건 김율의 소설이랑 비교하면 조금 맛이 떨어지는걸.”

“……네?”

저급 사료 취급당해버린 충격으로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꼬리로 한 명.

혓바닥으로 한 명.

과연 위대하신 드래곤답게도 순식간에 두 명을 동시에 제압한 후.

“다음에는! 장편! 더욱 장편으로 준비하도록!”

에스테아는 당당하게 ‘독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선언했다.

.

.

.

화풀이를 마치고, 좋아하던 소설이 조기 완결당해버렸다는 슬픈 마음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레어로 쓸쓸히 돌아가면서.

“신기하네…….”

아까 전의 기억을 되살렸다.

드래곤의 정신은 본디 가장 완벽하여, 어떠한 마법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인간의 행동에 관여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김율과 히스토리에를 마주하고 있을 때면, 마치 동족을 대할 때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했으며.

자칫 잠깐 정신을 놔버렸다면, 그대로 설득당했을 수도 있을 정도로.

김율의 언어에는 마력이 넘쳤다.

마치, 듣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설득당해버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마력이.

뭔가 특별한 거라도 있는 걸까.

에스테아의 호기심이 조금씩 쫑긋거리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히스토리에가 처음으로 ‘배신감’이라는 감정을 깨우치고, CPU가 뜨끈하게 오버클럭되는 감각을 느끼고 있을 때.

“어머, 이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

김율이 입막음을 위해 써주었던, 결코 신문에 연재되지 못할 수위의 클레오파트라 외전을 읽고 있던 성녀는 손님을 맞이했다.

“……말의 앞뒤가 바뀐 것 같네만.”

“아하하! 회심의 농담이었답니다. 베르투스 공작님, 어찌하여 교회에 발을 들이셨나이까? 여신교를 믿진 않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물론, 로젤린은 베르투스 공작이 왜 엉덩이에 불붙은 것처럼 자신을 황급히 찾아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전, 김율의 요청으로 인해 연회에 동석한 이후.

로젤린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첩보망을 풀어 베르투스 공작과 관련된 정보를 긁어모았다.

파편 속에서 그녀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

베르투스 공작이, 몹시 음험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

물론…….

로젤린은 딱히 그 음모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다.

극단적으로.

제국이 혼란에 빠져서 김율이 자신에게 의탁해온다면?

오히려 성국에 감금…… 아니, 좋은 곳에 모셔다 놓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김율의 신상에 위협이 닥쳐서는 안 된다.

여신교를 위해서.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라도.

“아무래도, 고해성사가 필요하시겠군요?”

로젤린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베르투스 공작을 고해소로 안내했다.


“그, 히토리?”

“……그렇게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으음.

고장 났구나.

에스테아가 떠난 후, 실의에 빠진 채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먹어서 해치우겠다는 기세로 폭식 투쟁을 시작한 히스토리에를 잠깐 내버려 두었다.

아무래도.

본인의 문학적 성취를 인정한 1호 독자가, ‘넌 걔보다 글 못 써!’하고 면전에서 박혀버리면 멘탈이 나갈 만도 하지.

내가 대체역사 소설 작가의 꿈을 접은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하늘은 왜!

김율을 낳고 코덱스를 낳고 원명을 낳고 온다오른쪽을 낳고 부드럽스키를 낳고 그 외에 무수히 많은 대체역사 작가들을 낳았단 말인가!

“그래서 이세계에 트립시켰군.”

적어도 내가 여기에서는 지구 역사계의 학계 일인자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인자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만 먹어. 원고료 들어오려면 한 달은 더 걸려.”

“김율…….”

이인자는 현실에서 몰려오는 카타르시스를 극한으로 느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째려보았다.

일단.

히스토리에의 성장통은 스스로 극복하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니, 잠깐 내버려 두고.

이번 회차의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조금 더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첫 신문 연재의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운세를 점칠 수 있는 카이사르의 주사위와.

완결 직전에 간신히 조건을 달성해서 얻은 A급 스킬, 키케로의 웅변까지.

……누렁이한테는 딱히 통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드래곤이라는 종족적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별도로 출간한 ‘갈리아 연대기’ 외전을 통해 얻은 C급 스킬 베르킨게토릭스의 의지도 있었지만.

헥토르 하위 호환이었기 때문에, 다음번 합성 파티의 제물로 예약해두었다.

“아쉽긴 하네.”

“배가 불렀군요, 김율…….”

차마 누렁이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카이사르 이야기를 더 질질 끌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전, 연재 중일 때.

[세간의 평가: 매우 긍정적] [일일 독자 수: 4,014명]

[예상 획득 스킬: [A급] 키■로의 웅■]

[1달 이상 유지해야 합니다. (현재 1일)]

계속 보아왔던 일반적인 내용에 덧대어──

[일일 독자 수를 10,000명 이상으로 끌어올리면 보상을 S급 스킬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을 엿보았다.

하지만 결국 완결 날 때까지 4천 명을 아슬아슬하게 디펜스했었던 것으로 보면, 1만 명은 아직 내게 요원한 일.

그리고.

소설은 보통 장기 연재에 접어들면, 성적이 천천히 우하향하는 그래프를 그리기 마련이다.

당장 나도 최고점인 5,400명까지 봤다가 점차 사람들이 하차해서 성적이 하루하루 떨어지는 걸 보면서 매일 밤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던 적이 있었다.

“크흠.”

아픈 상처를 잠깐 달래고.

즉, 바꿔 말해서.

처음부터 고점을 1만 명 이상 찍을 수 있는 대작을 만들어내야, 비로소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스킬을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

일단 똥을 싸라. 그러면 유명해질 것이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이게 아니었나?

어쨌든.

‘몰락 귀족이 정치를 잘함’으로 인지도를 쌓았으니, 다음 작품은 반드시 메가 히트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서 내 인기를 궤도에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어중간한 소재로는 불가능할 터.

역사 이야기로 그만한 고점을 찍을 수 있는 소재는 그렇게 많지 않다.

당연히 내 결론은…….

“삼국지밖에 없지.”

“근데 그건 소설이잖습니까.”

핵심을 찌른 히스토리에의 말대꾸에, 상으로 깡통의 연료 주입구에 사탕을 하나 물려주었다.

“음뇸.”

확실히.

진수의 삼국지와 비교했을 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소설적 각색이 들어가 있다.

특히 가장 미화된 것이 목만 오신 관공이시다.

미화된 행적만 해도 몇 개인가.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잘라 온 적, 없음.

조조에게 3가지 약속받고 항복, 한 적 없음.

적토마를 하사받은 적, 없음.

문추를 죽인 적, 없음.

오관참육, 당연히 없음.

화용도에서 조조를 풀어준 적, 없음.

노숙이랑 말싸움에서, 개같이 쳐발림.

죽어서도 여몽 이놈! 하고 뒤끝 부린 적도 없음.

그야말로 나관중 자캐딸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역사 왜곡 수준이 들어갔으니, 당연하게도 내가 소설로 써봤자 ‘고증에 부합하지 않음’ 판정이나 받을 터.

그나마 오히려 정사가 더 나은 지점이라면.

마취조차 하지 않은 채 화타에게 치료받으며 오목 뜨다가 삼삼이라고 화를 내며 바둑판을 엎어버린 적은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화타는 적벽대전 이전에 이미 사망했으니까.

뭐, 관우뿐만 아니다.

특히 유비 측 인물들의 행적은 소설적 과장이 꽤 많이 들어가 있는데, 문제는 그걸 빼면 재미도 같이 사라진다는 점.

“삼국지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것도 조금 우려됩니다.”

혈당 스파이크가 돋은 나머지, 다시 부드러워진 히스토리에의 지적에도 물론 일리가 있었다.

연재소설의 형태를 취하려면 명확한 주인공이 있어야 하는데, 누굴 다룬단 말인가.

거기에 생각이 닿은 순간.

“그거다……!”

나는 아르키메데스처럼 크게 외쳤다.

발상을 조금 바꾸면.

정사 삼국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위나라의 이야기, 위지魏志다.

귀 큰 놈 중심의 촉지蜀志가 15권임에 비해, 위지는 30권으로 무려 두 배 분량.

그리고, 진수는 촉한에서 태어났으되 사마씨가 통일한 이후 서진의 관리로 재임할 때 삼국지를 집필했기에, 알게 모르게 위빠적 면모가 도드라진다.

그러니.

차기작은.

연의 속 유비가 주인공인 삼국지 영걸전과.

정사 속 조조가 주인공인 삼국지 조조전.

더블 주인공이 아니라, 아예 소설을 둘로 쪼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