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85 lines
11 KiB
Markdown
285 lines
11 KiB
Markdown
|
||
백은서가 내뱉은 조용하다는 말은 그 어떤 고대 신의 저주보다도 강력하고 즉각적이었다.
|
||
|
||
아마도 하나님과 부처님, 알라신을 향해 동시에 쌍욕을 박더라도 이것보다 강렬한 저주가 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
||
|
||
응급실의 짧은 평화가 산산조각 났다.
|
||
|
||
간호사가 수화기를 들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고성이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
||
|
||
간호사의 얼굴이 점점 썩어갔다.
|
||
|
||
“네, 네, 위치는요? 트럭 대 승용차… 네… 환자 상태는요? 네, 잠시만요. 바로 의사 쌤 연결해 드릴게요.”
|
||
|
||
트럭 대 승용차?
|
||
|
||
여기서라도 일단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
||
|
||
트럭 운전자가 실려 오는가, 승용차 운전자가 실려 오는가.
|
||
|
||
동승자는 있었는가.
|
||
|
||
“한 쌤! 선생님이 받아보세요! 트라우마 콜이에요!”
|
||
|
||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
||
|
||
“네, 응급의학과 한현재입니다.”
|
||
|
||
[네, 선생님! 동래 사직 구급대입니다! 만덕터널 입구에서 트럭 대 승용차 TA 났습니다!]
|
||
|
||
수화기 너머로 사이렌 소리와 온갖 소음이 뒤섞여 들려왔다.
|
||
|
||
되게 큰 사고인가 본데.
|
||
|
||
“환자 나이는요? 구조에 얼마나 걸렸어요? 바로 뺀 거예요?”
|
||
|
||
[20대 남성 환자분, 승용차 운전자고요! 차량에 끼어있다가 20분 만에 구조됐습니다]
|
||
|
||
나는 반사적으로 펜을 집어 들고 눈앞에 보이는 빈 A4 용지 위에 미친 듯이 들은 모든 것들을 갈겨쓰기 시작했다.
|
||
|
||
“환자 상태는 어때요? 바이탈은요?”
|
||
|
||
[환자 멘탈 stupor(* 혼미)하고 BP 70에 40, 맥박 140회 이상으로 빠릅니다! 골반 부위 오픈 프렉쳐(* 개방성 골절) 의심 소견과 함께 출혈이 심합니다! GCS는 현장에서 E1V2M4, 7점입니다! ETA 5분 걸립니다!]
|
||
|
||
GCS 7점.
|
||
|
||
거의 혼수상태.
|
||
|
||
혈압 70/40.
|
||
|
||
으흠, 쇼크 상태.
|
||
|
||
그리고 개방성 골반 골절.
|
||
|
||
최악 중의 최악.
|
||
|
||
대동맥이나 대정맥이 손상되었을 가능성?
|
||
|
||
O.
|
||
|
||
사망률이 50%를 가볍게 넘는 지옥 같은 손상.
|
||
|
||
최악인데, 이거.
|
||
|
||
내 손이 용지 위를 날아다녔다.
|
||
|
||
- Open Pelvic Fx / GCS 7 / 70/40, HR 140+ / ETA 5min
|
||
|
||
그 글자들을 쓰는 동안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용지를 쳐다보는 1년 차들이 보였다.
|
||
|
||
그래, 응급실에 온 걸 환영한단다 베이비들아.
|
||
|
||
나는 종이의 한 귀퉁이를 찢어 그 위에 휘갈겨 썼다.
|
||
|
||
‘아무 전문의 선생님 빨리 호출.’
|
||
|
||
그리고 그 종이를 말없이 박성정의 손에 쥐여주었다.
|
||
|
||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내 의도를 깨닫고 의국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
||
|
||
나는 여전히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다른 손으로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
어디 보자… 중환자실… 중환자실…
|
||
|
||
[외상 중환자실 (TICU-01)]
|
||
|
||
[19/20]
|
||
|
||
‘중환자실… TICU 베드 하나 비어 있다. 오케이. 수술방… 지금 진행 중인 응급 수술 없고.’
|
||
|
||
나는 구급대원에게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머릿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
|
||
|
||
“환자 양팔에 라인 확보됐습니까? 수액은 얼마나 들어갔죠?”
|
||
|
||
[18게이지로 한쪽 잡았고, 수액 1리터 풀 드랍 중인데 혈압 반응 거의 없습니다!]
|
||
|
||
바로 그때 이민재가 스테이션으로 뛰어 들어왔다.
|
||
|
||
나는 말없이 내가 휘갈겨 쓴 메모지를 쓱 밀었다.
|
||
|
||
이민재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곤 이내 나를, 그리고 내가 띄워놓은 전산 화면을 번갈아 쳐다봤다.
|
||
|
||
나는 펜으로 메모지 여백에 짧게 두 단어를 썼다.
|
||
|
||
‘수용 OK?’
|
||
|
||
이민재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곧장 나를 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
||
|
||
나는 다시 수화기를 입에 가져다 댔다.
|
||
|
||
“네, 저희가 수용하겠습니다.”
|
||
|
||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는 동시에 내 뒤에 서 있는 이민재를 쳐다봤다.
|
||
|
||
“환자 도착 5분 전! 지금부터 팀 짠다? 대가리는… 내가 맡을게. 팀 리더는 내가 맡고, 지금부터 역할 분배한다!”
|
||
|
||
손가락이 한 명 한 명을 정확히 지목하기 시작했다.
|
||
|
||
“한재언!”
|
||
|
||
“네 선생님.”
|
||
|
||
“네가 제일 고참이니까 Airway(*기도) 맡아. 환자 들어오면 C-spine(*경추) 보호하면서 기도 상태부터 보고, 필요하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인튜베이션 준비하고.”
|
||
|
||
“알겠습니다.”
|
||
|
||
한재언은 짧게 대답하고는 기관 삽관에 필요한 후두경과 튜브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
||
|
||
“한현재!”
|
||
|
||
“네, 선생님.”
|
||
|
||
“너는 Circulation(*순환). 환자 오면 나랑 같이 양쪽으로 붙어서 눈에 보이는 출혈점부터 찾아서 막는다. 그리고 내가 FAST(* 초음파) 보는 동안 너는 복부나 골반 쪽 압박하면서 혈압 유지하는 거 도와. 정신 똑바로 차려.”
|
||
|
||
“네!”
|
||
|
||
“백은서!”
|
||
|
||
“네 선생님!”
|
||
|
||
막 1년 차가 된 백은서의 얼굴이, 극도의 긴장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
||
|
||
“너는 각종 시술. IV 라인 양팔에 18게이지로 잡을 준비 하고, ABGA(*동맥혈 가스 분석) 키트, 폴리(*소변줄) 카테터 세트 미리 다 꺼내놔. 우리가 시키는 대로 바로바로 실행한다. 알겠어?”
|
||
|
||
“네! 알겠습니다!”
|
||
|
||
“마지막, 박성정!”
|
||
|
||
“네, 네!”
|
||
|
||
박성정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
||
|
||
참아.
|
||
|
||
니 워라밸을 위해선 출근한 시간 동안의 지옥 정도는 감당하라고.
|
||
|
||
“너는 기록 담당. 저기 화이트보드 앞에 서.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모든 처치, 환자 바이탈, 우리가 쓰는 약물 이름이랑 용량, 그리고 시간을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기록해. 오케이?”
|
||
|
||
“네!”
|
||
|
||
그렇게, 오합지졸처럼 보였던 우리는 순식간에 하나의 팀이 되었다.
|
||
|
||
각자의 역할이 정해졌다.
|
||
|
||
나는 서둘러 소생실 복도로 달려가 찝찝한 납 조끼를 껴입었다.
|
||
|
||
그 위로 비닐 가운을 덧입고, 글러브를 끼고, 마지막으로 얼굴에 페이스 쉴드를 착용했다.
|
||
|
||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이민재의 불호령이 터져 나왔다.
|
||
|
||
“야야, 박성정! 페이스 쉴드!”
|
||
|
||
“아, 네네! 죄송합니다!”
|
||
|
||
박성정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가장 기본적인 보호 장비 착용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
||
|
||
그는 허둥지둥 페이스 쉴드를 찾아 머리에 썼다.
|
||
|
||
“전쟁터 나가는데 총 안 들고 나갈래? 정신 똑바로 안 차리냐!”
|
||
|
||
이민재의 갈굼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테이션 쪽에서 백은서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외쳤다.
|
||
|
||
“쌤! 방금 외상외과랑 정형외과 당직의한테 콜 다 돌렸고요, 지금 하는 거 끝나면 바로 내려오신답니다!”
|
||
|
||
“좋아!”
|
||
|
||
간호사들이 뛰어다니며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
||
|
||
한 명은 응급 카트를 끌고 왔고, 다른 한 명은 수액과 수혈 세트를 준비했다.
|
||
|
||
박성정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마커 뚜껑을 여는 것조차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
|
||
저거 저렇게 쫄아 가지고 응급의학과 의사 하겠나 저거.
|
||
|
||
모든 준비가 끝났다.
|
||
|
||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소생실 1번 베드 주위로 각자의 위치에 섰다.
|
||
|
||
침묵.
|
||
|
||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
|
||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만이 점점 더 가까워지며 우리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
||
|
||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
||
|
||
사이렌 소리가, 이제는 응급실 바로 앞에서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
||
|
||
지이이이잉-
|
||
|
||
자동문이 열렸다.
|
||
|
||
끼이이익- 쾅!
|
||
|
||
스트레쳐 카트가 거의 문을 부술 듯한 기세로 소생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
||
|
||
“20대 남자 환자! 트럭 TA입니다! 구조에 20분 소요됐고 이송 중에 의식 레벨 한 번 더 떨어졌습니다!”
|
||
|
||
구급대원의 다급한 브리핑 소리.
|
||
|
||
스트레쳐 바퀴가 바닥에 갈리는 굉음.
|
||
|
||
그리고 환자의 입에서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끔찍한 신음 소리.
|
||
|
||
“으… 으… 아… 아….”
|
||
|
||
모니터를 연결하는 날카로운 기계음까지 그 모든 소리 위로 뒤엉켜 소생실은 순식간에 소음의 지옥으로 변했다.
|
||
|
||
“하나, 둘, 셋!”
|
||
|
||
우리는 환자를 침대로 옮겼다.
|
||
|
||
“바로 석션 할게요 석션 팁 좀!”
|
||
|
||
한재언이 환자의 머리맡에서 후두경을 들고 외쳤다.
|
||
|
||
“호흡음 좌측에서 감소한다! 체스트 포터블!(*이동식 흉부 엑스레이) 빨리!”
|
||
|
||
이민재가 청진기를 가슴에 댄 채 소리쳤다.
|
||
|
||
“맥박 진짜 얕고, 말초는 아예 안 잡혀요! 혈압 계속 떨어져요!”
|
||
|
||
백은서가 환자의 손목을 잡은 채 거의 울먹이며 외쳤다.
|
||
|
||
“야, 야! 라인 하나 더 잡아! 대퇴정맥으로라도 찔러 넣어! 수액 풀 드랍으로 때려 넣고!”
|
||
|
||
나는 인턴과 함께 가위로 환자의 피와 흙먼지로 뒤덮인 옷을 갈기갈기 찢어내기 시작했다.
|
||
|
||
세상에. 이게 뭐야.
|
||
|
||
찢겨 나간 바지 아래로 부서진 뼈가 피부를 뚫고 튀어나온 골반 상태가 보였다.
|
||
|
||
그 주변은 이미 검붉은 피로 흥건했고.
|
||
|
||
그리고 환자의 배.
|
||
|
||
전체적으로 시퍼렇게 멍이 든 배.
|
||
|
||
외견상 심하게 붓지는 않았지만, 손으로 눌러보니 꽤 단단했다.
|
||
|
||
“씨발… Open pelvic fracture(* 개방성 골반 골절)에 massive hemoperitoneum(* 대량 혈복강)….”
|
||
|
||
이민재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
||
|
||
“MTP! MTP(*대량 수혈 프로토콜)! 혈액은행에 전화해서 Rh- O형 혈액 지금 당장 4팩 올리고 나머지 혈액 팩 10개 더 대기시키라고 하고, 빨리!”
|
||
|
||
순간 박성정이 당황해서 물었다.
|
||
|
||
“선생님, 아직 혈액형 검사도…”
|
||
|
||
“크로스 매칭이고 나발이고 그냥 올리라고 해! MTP라고! 환자 죽고 나서 혈액형 찾으면 뭐 할 건데!”
|
||
|
||
모든 것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
||
|
||
환자의 혈압은 수액을 들이붓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떨어졌다.
|
||
|
||
어렵게 잡은 IV 라인 하나는 혈압이 너무 낮아 피가 역류하며 막혀버렸다.
|
||
|
||
포터블 엑스레이 기계는 다른 응급 환자 때문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
||
|
||
“개판이네 아주 그냥! 되는 게 하나도 없어!”
|
||
|
||
이민재가 수술용 글러브를 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
||
|
||
선배, 그거 컨타(* 오염)…됐는데요… 글러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