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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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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서가 내뱉은 조용하다는 말은 그 어떤 고대 신의 저주보다도 강력하고 즉각적이었다.
아마도 하나님과 부처님, 알라신을 향해 동시에 쌍욕을 박더라도 이것보다 강렬한 저주가 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응급실의 짧은 평화가 산산조각 났다.
간호사가 수화기를 들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고성이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간호사의 얼굴이 점점 썩어갔다.
“네, 네, 위치는요? 트럭 대 승용차… 네… 환자 상태는요? 네, 잠시만요. 바로 의사 쌤 연결해 드릴게요.”
트럭 대 승용차?
여기서라도 일단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트럭 운전자가 실려 오는가, 승용차 운전자가 실려 오는가.
동승자는 있었는가.
“한 쌤! 선생님이 받아보세요! 트라우마 콜이에요!”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네, 응급의학과 한현재입니다.”
[네, 선생님! 동래 사직 구급대입니다! 만덕터널 입구에서 트럭 대 승용차 TA 났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사이렌 소리와 온갖 소음이 뒤섞여 들려왔다.
되게 큰 사고인가 본데.
“환자 나이는요? 구조에 얼마나 걸렸어요? 바로 뺀 거예요?”
[20대 남성 환자분, 승용차 운전자고요! 차량에 끼어있다가 20분 만에 구조됐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펜을 집어 들고 눈앞에 보이는 빈 A4 용지 위에 미친 듯이 들은 모든 것들을 갈겨쓰기 시작했다.
“환자 상태는 어때요? 바이탈은요?”
[환자 멘탈 stupor(* 혼미)하고 BP 70에 40, 맥박 140회 이상으로 빠릅니다! 골반 부위 오픈 프렉쳐(* 개방성 골절) 의심 소견과 함께 출혈이 심합니다! GCS는 현장에서 E1V2M4, 7점입니다! ETA 5분 걸립니다!]
GCS 7점.
거의 혼수상태.
혈압 70/40.
으흠, 쇼크 상태.
그리고 개방성 골반 골절.
최악 중의 최악.
대동맥이나 대정맥이 손상되었을 가능성?
O.
사망률이 50%를 가볍게 넘는 지옥 같은 손상.
최악인데, 이거.
내 손이 용지 위를 날아다녔다.
- Open Pelvic Fx / GCS 7 / 70/40, HR 140+ / ETA 5min
그 글자들을 쓰는 동안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용지를 쳐다보는 1년 차들이 보였다.
그래, 응급실에 온 걸 환영한단다 베이비들아.
나는 종이의 한 귀퉁이를 찢어 그 위에 휘갈겨 썼다.
‘아무 전문의 선생님 빨리 호출.
그리고 그 종이를 말없이 박성정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내 의도를 깨닫고 의국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나는 여전히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다른 손으로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중환자실… 중환자실…
[외상 중환자실 (TICU-01)]
[19/20]
‘중환자실… TICU 베드 하나 비어 있다. 오케이. 수술방… 지금 진행 중인 응급 수술 없고.
나는 구급대원에게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머릿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
“환자 양팔에 라인 확보됐습니까? 수액은 얼마나 들어갔죠?”
[18게이지로 한쪽 잡았고, 수액 1리터 풀 드랍 중인데 혈압 반응 거의 없습니다!]
바로 그때 이민재가 스테이션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는 말없이 내가 휘갈겨 쓴 메모지를 쓱 밀었다.
이민재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곤 이내 나를, 그리고 내가 띄워놓은 전산 화면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펜으로 메모지 여백에 짧게 두 단어를 썼다.
‘수용 OK?
이민재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곧장 나를 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나는 다시 수화기를 입에 가져다 댔다.
“네, 저희가 수용하겠습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는 동시에 내 뒤에 서 있는 이민재를 쳐다봤다.
“환자 도착 5분 전! 지금부터 팀 짠다? 대가리는… 내가 맡을게. 팀 리더는 내가 맡고, 지금부터 역할 분배한다!”
손가락이 한 명 한 명을 정확히 지목하기 시작했다.
“한재언!”
“네 선생님.”
“네가 제일 고참이니까 Airway(*기도) 맡아. 환자 들어오면 C-spine(*경추) 보호하면서 기도 상태부터 보고, 필요하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인튜베이션 준비하고.”
“알겠습니다.”
한재언은 짧게 대답하고는 기관 삽관에 필요한 후두경과 튜브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한현재!”
“네, 선생님.”
“너는 Circulation(*순환). 환자 오면 나랑 같이 양쪽으로 붙어서 눈에 보이는 출혈점부터 찾아서 막는다. 그리고 내가 FAST(* 초음파) 보는 동안 너는 복부나 골반 쪽 압박하면서 혈압 유지하는 거 도와. 정신 똑바로 차려.”
“네!”
“백은서!”
“네 선생님!”
막 1년 차가 된 백은서의 얼굴이, 극도의 긴장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너는 각종 시술. IV 라인 양팔에 18게이지로 잡을 준비 하고, ABGA(*동맥혈 가스 분석) 키트, 폴리(*소변줄) 카테터 세트 미리 다 꺼내놔. 우리가 시키는 대로 바로바로 실행한다.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 박성정!”
“네, 네!”
박성정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참아.
니 워라밸을 위해선 출근한 시간 동안의 지옥 정도는 감당하라고.
“너는 기록 담당. 저기 화이트보드 앞에 서.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모든 처치, 환자 바이탈, 우리가 쓰는 약물 이름이랑 용량, 그리고 시간을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기록해. 오케이?”
“네!”
그렇게, 오합지졸처럼 보였던 우리는 순식간에 하나의 팀이 되었다.
각자의 역할이 정해졌다.
나는 서둘러 소생실 복도로 달려가 찝찝한 납 조끼를 껴입었다.
그 위로 비닐 가운을 덧입고, 글러브를 끼고, 마지막으로 얼굴에 페이스 쉴드를 착용했다.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이민재의 불호령이 터져 나왔다.
“야야, 박성정! 페이스 쉴드!”
“아, 네네! 죄송합니다!”
박성정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가장 기본적인 보호 장비 착용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허둥지둥 페이스 쉴드를 찾아 머리에 썼다.
“전쟁터 나가는데 총 안 들고 나갈래? 정신 똑바로 안 차리냐!”
이민재의 갈굼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테이션 쪽에서 백은서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외쳤다.
“쌤! 방금 외상외과랑 정형외과 당직의한테 콜 다 돌렸고요, 지금 하는 거 끝나면 바로 내려오신답니다!”
“좋아!”
간호사들이 뛰어다니며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한 명은 응급 카트를 끌고 왔고, 다른 한 명은 수액과 수혈 세트를 준비했다.
박성정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마커 뚜껑을 여는 것조차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저거 저렇게 쫄아 가지고 응급의학과 의사 하겠나 저거.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소생실 1번 베드 주위로 각자의 위치에 섰다.
침묵.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만이 점점 더 가까워지며 우리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사이렌 소리가, 이제는 응급실 바로 앞에서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지이이이잉-
자동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쾅!
스트레쳐 카트가 거의 문을 부술 듯한 기세로 소생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20대 남자 환자! 트럭 TA입니다! 구조에 20분 소요됐고 이송 중에 의식 레벨 한 번 더 떨어졌습니다!”
구급대원의 다급한 브리핑 소리.
스트레쳐 바퀴가 바닥에 갈리는 굉음.
그리고 환자의 입에서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끔찍한 신음 소리.
“으… 으… 아… 아….”
모니터를 연결하는 날카로운 기계음까지 그 모든 소리 위로 뒤엉켜 소생실은 순식간에 소음의 지옥으로 변했다.
“하나, 둘, 셋!”
우리는 환자를 침대로 옮겼다.
“바로 석션 할게요 석션 팁 좀!”
한재언이 환자의 머리맡에서 후두경을 들고 외쳤다.
“호흡음 좌측에서 감소한다! 체스트 포터블!(*이동식 흉부 엑스레이) 빨리!”
이민재가 청진기를 가슴에 댄 채 소리쳤다.
“맥박 진짜 얕고, 말초는 아예 안 잡혀요! 혈압 계속 떨어져요!”
백은서가 환자의 손목을 잡은 채 거의 울먹이며 외쳤다.
“야, 야! 라인 하나 더 잡아! 대퇴정맥으로라도 찔러 넣어! 수액 풀 드랍으로 때려 넣고!”
나는 인턴과 함께 가위로 환자의 피와 흙먼지로 뒤덮인 옷을 갈기갈기 찢어내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게 뭐야.
찢겨 나간 바지 아래로 부서진 뼈가 피부를 뚫고 튀어나온 골반 상태가 보였다.
그 주변은 이미 검붉은 피로 흥건했고.
그리고 환자의 배.
전체적으로 시퍼렇게 멍이 든 배.
외견상 심하게 붓지는 않았지만, 손으로 눌러보니 꽤 단단했다.
“씨발… Open pelvic fracture(* 개방성 골반 골절)에 massive hemoperitoneum(* 대량 혈복강)….”
이민재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MTP! MTP(*대량 수혈 프로토콜)! 혈액은행에 전화해서 Rh- O형 혈액 지금 당장 4팩 올리고 나머지 혈액 팩 10개 더 대기시키라고 하고, 빨리!”
순간 박성정이 당황해서 물었다.
“선생님, 아직 혈액형 검사도…”
“크로스 매칭이고 나발이고 그냥 올리라고 해! MTP라고! 환자 죽고 나서 혈액형 찾으면 뭐 할 건데!”
모든 것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환자의 혈압은 수액을 들이붓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떨어졌다.
어렵게 잡은 IV 라인 하나는 혈압이 너무 낮아 피가 역류하며 막혀버렸다.
포터블 엑스레이 기계는 다른 응급 환자 때문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개판이네 아주 그냥!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이민재가 수술용 글러브를 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선배, 그거 컨타(* 오염)…됐는데요… 글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