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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장 박상철은 차 뒷좌석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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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협회 본부에서 퇴근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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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정만호에게서 걸려 온 전화의 내용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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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 저절로 비웃음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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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탑을 오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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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호는 대전 탑 등반을 즉시 중단하고, 파업에 전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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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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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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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속으로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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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압박을 가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꿇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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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헌터의 자존심도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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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주제에 왜 감히 자신에게 대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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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배후에 누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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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럴싸한 결론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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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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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했다. 누군가가 정만호의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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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바람을 넣고, 탑을 오르도록 부추긴 배후.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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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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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자신을 꺾고 싶어 하는 사람이야 널리고 널렸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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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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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싹은 미리 잘라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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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이 되면 조사를 지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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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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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창밖을 무심코 바라보다,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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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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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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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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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가면 자신의 별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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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김 기사. 여기는 별장 가는 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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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사는 대답 없이 앞만 보고 운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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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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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들었나? 길 잘못 들었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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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 좌석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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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음성이 변조된 게 분명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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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이 참 좋아졌어요. 내비게이션만 키면 집이랑 직장이 어딘지 다 저장해 놨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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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차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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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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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는 김 기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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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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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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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을 뻗어 운전기사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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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손에 잡힌 것은 단단한 사람의 어깨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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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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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귀에 잡힌 어깨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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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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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자기가 사람의 어깨를 뜯어버린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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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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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남은 모래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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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의 형상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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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앉아 운전을 하고 있는 것은 모래로 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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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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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탈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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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헌터의 직감이 맹렬하게 경고등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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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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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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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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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잠긴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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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이 우습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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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주먹에 마력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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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헌터의 힘이 담긴 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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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자동차 문 따위는 종잇장처럼 찢겨나가야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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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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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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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은 멀쩡했다. 찌그러진 자국 하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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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자신의 주먹이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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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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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이 다시 공격을 준비하려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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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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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아래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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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모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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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밧줄처럼 그의 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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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틈도 없는 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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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밧줄이 시트에 몸을 강제로 고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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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거! 안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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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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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인 자신의 힘으로도 끊어지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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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정체가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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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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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의 그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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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지 마세요. 괜히 다치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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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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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평온함이 박상철의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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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새끼야! 정체를 밝혀! 중국이냐? 아니면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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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더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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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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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그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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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보다 위라고? 그럼 미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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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이 왜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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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정체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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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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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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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차가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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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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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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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지어진, 그가 가장 아끼는 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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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을 옭아매고 있던 모래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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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차 문을 열고, 몸을 거칠게 끌어내리는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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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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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무방비하게 흙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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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그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어깨를 짓눌러 강제로 무릎을 꿇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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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적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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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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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석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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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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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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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분명 차에서 내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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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을 밟는 소리, 공기의 미세한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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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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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씨? 반가워. 얼굴은 처음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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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앞에 선 투명한 존재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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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에 들었던, 특유의 변조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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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쪽의 별장말이야. 잘 보고 있어. 한번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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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인지 되물을 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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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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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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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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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앞의 잔디밭이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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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튀기는 흙과 잔디 파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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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와 함께 갈라진 대지 사이로 끔찍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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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갈래로 갈라진 입. 그리고 그 안으로 얼핏 보이는 수천 개의 강철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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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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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별장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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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득! 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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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통유리창이 박살 나고, 하얀 외벽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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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수십억을 들여 꾸민 사랑스러운 공간이 한순간에 거대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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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조차 지를 틈 없는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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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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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안락한 피난처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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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초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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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이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구덩이와 잔해만이 흉측하게 남아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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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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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게 도저히 현실 같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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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A급의 레벨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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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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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자신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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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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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일리는 없어. 애초에 이런 일에 관심도 없는 남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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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S급은 김수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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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성격이라면 자신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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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나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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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S급이 아무 말도 없는 것 덕분에, 자신이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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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만약의 만약. 김수호와 정면 대결을 하게 될 때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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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대비해서 그의 스킬과 파훼법은 몇 번씩이나 숙지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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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저런 괴물을 소환하는 스킬 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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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눈앞의 이 사람은 외국의 헌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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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지? 해외의 S급이 날 죽이러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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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투명 인간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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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원래는 당신네 협회 건물에 하려다가 참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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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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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인천 한복판에서 이런 걸 부르기는 좀 그렇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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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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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건물에 이 짓을 하려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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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정상인의 생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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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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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자신이 원한을 살 만한 일이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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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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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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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중에 어느 것도 귀하신 해외의 S급이 직접 나설만한 일은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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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봬도 자신은 리스크 관리에 철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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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자신에게 대들 수 없는 사람만 신중하게 골라서 채찍을 적절하게 들며 조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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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자신의 특기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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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에서 실수를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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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보복이 돌아올만한 곳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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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가능성이 추려지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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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인간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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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건드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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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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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깟게 함부로 건들 곳이 아니야.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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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정만호를 부추겨 탑을 오르게 한 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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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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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에 묻은 서늘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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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박상철의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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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분노, 계획. 그런 것은 지금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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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살아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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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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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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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겠습니다! 다, 다시는…! 다시는 대전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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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땅에 이마를 박을 기세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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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하게 떨리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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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지켜보던 투명인간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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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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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방금 전까지 박상철을 태우고 왔던 차가 순식간에 모래가 되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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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더 내 사람 건드리면…. 이렇게 시체도 못 남기고 사라지는 거야.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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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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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거의 경련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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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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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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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아서 집에 걸어가.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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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을 짓누르던 압도적인 존재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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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그 즉시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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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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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발이 꼬여 비탈길에서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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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를 몇 바퀴나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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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 아니라 일반인이었으면 분명한 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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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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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상철은 곧장 일어나 다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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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양복이 찢어지고, 손바닥과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통증을 느낄 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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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살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그를 움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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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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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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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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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한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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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어둑하던 하늘에 동이 터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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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은 그제야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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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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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벌벌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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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기를 몇 번이나 놓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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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휴대폰을 귀에 가져가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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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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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열음과 함께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이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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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방금, 자신의 귀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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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의 파편들이 그의 뺨과 손등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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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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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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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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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존재가 더 무서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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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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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생각이 들자 박상철은 이성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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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으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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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철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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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투성이가 된 손은 아무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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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그저 어디 안전한 곳으로 숨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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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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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만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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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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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처럼 소파에 늘어져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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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디에서도 A급 헌터의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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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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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어떻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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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박상철에게 전화를 걸어 비굴할 정도로 납작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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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는 협회장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고, 파업에 누구보다 앞장서겠다고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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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거짓말도 아니잖아? 난 계속 탑 안 오르고 파업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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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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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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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철은 그런 말뿐인 맹세를 곧이곧대로 들어줄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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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성격은 치밀하고 집요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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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추가적인 액션이 이어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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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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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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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만호는 소파에서 거의 굴러 떨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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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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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신자는 협회장 박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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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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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뭔가 새로운 요구를 하기 위해 전화한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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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만호는 심호흡을 몇 번이고 반복한 뒤, 겨우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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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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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 공손하고 비굴한 목소리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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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여보하십니까! 협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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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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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처구니없는 말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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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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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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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윽고, 박상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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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길드장님. 바쁘시죠? 새벽부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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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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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목소리는 정만호가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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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조심스럽고 심지어는 공손하기까지 한 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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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야, 이 양반. 원래 이런 식으로 사람 돌리는 걸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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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협회장님께서 전화 주셨는데 제가 새벽이라도 당연히 받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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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심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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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만호는 일단 몸에 밴 아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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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슨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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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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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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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만호의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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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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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정 길드장님의 깊은 뜻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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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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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호의 입이 멍청하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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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뜻?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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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박상철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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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섣부른 행동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부디 한 번만 자비롭게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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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한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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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헌터이자 대한민국 헌터 사회의 정점인 협회장 박상철이, 지금 자신에게 비굴할 정도의 사과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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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협회장님? 이게 대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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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제가 감히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무식함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분명히 반성하고 있다는 걸 그분께 반드시 전해주십시오…. 약소하지만 선물도 하나 보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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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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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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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호는 한동안 휴대폰을 든 채 멍하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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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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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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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호의 머릿속에 한 줄기 번개가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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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감히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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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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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옆 집. 커다란 담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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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머에 사는 정체불명의 헌터.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딸이 하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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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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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을 받은 것은 정만호, 자신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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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타 매니지먼트. 그 부대표도 습격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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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옆집 사람이 그 조치를 취한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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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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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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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였다. 박상철이 보낸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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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호는 잠시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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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박상철에게 건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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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표님? 저 정만홉니다. 앞으로도 대전의 충실한 바지가 되어 일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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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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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어젯밤에 대체 뭘 하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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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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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의 드라이브 때문에 늦잠을 자던 나는 갑자기 울린 전화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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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자마자 들린 것은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목소리. 브로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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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했길래 정만호 씨가 충성 맹세를 하고, 협회장이 선물을 바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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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선물도 줬어요?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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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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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한숨을 내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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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전부 포기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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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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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그래도 의와 도리가 살아있는 사람이었네. 그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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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제가 받았으니까,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때 설명도 반드시 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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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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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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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에게 먹였던 바로 그 희귀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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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고 싶어도 매물이 없어서 못 구하던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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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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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선물이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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