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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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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그렇게 웃고 나니, 어색했던 공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김수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튼, 이왕 이렇게 만난 거. 내가 연구소까지 데려다줄게. 혼자 가게 둘 수는 없지.”
“네? 괜찮은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또 땅 파면서 가다가 사고 치려고?”
그는 내 이마를 가볍게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아까 꿀밤에 대한 보답. S급 헌터가 돼서 어린애 이마 하나 못 뚫는 체면을 세워줘야지.”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S급 헌터의 에스코트를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일 테니까.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래. 꽉 잡아.”
김수호가 내 허리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다음 순간, 발밑의 땅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몸이 허공으로 붕 뜨는 감각.
그제야 나는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잠깐, 잠깐!”
“왜, 왜 그래?”
“내려줘! 나 높은 거 무서워한단 말이야!”
“뭐라고? 이런….”
나는 거의 울부짖다시피 소리쳤다.
김수호는 내 예상치 못한 반응에 크게 당황한 듯했다.
“알았어, 알았어! 바로 내릴게!”
그는 허둥지둥 고도를 낮췄다.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흐으으윽….”
“괜찮아? 얼굴이 새하얗네.”
김수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나는 한참 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였다. 김수호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잠깐 눈 좀 감아볼래?”
“네?”
“내가 바람을 아주 세심하게 조종해서, 움직이는 느낌이 전혀 안 들게 해 줄게. 그냥 잠깐 눈 감았다 뜨면 도착해 있을 거야.”
김수호의 목소리는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 상태로 다시 하늘을 날 용기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김수호가 다시 마력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부유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 소리도,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고요한 방 안에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눈 떠도 돼.”
약간의 피곤이 섞인 목소리.
눈을 뜨자, 나는 완전히 다른 장소에 와 있었다.
발밑에는 커다란 H가 그려져 있었다.
지평선으로 도시의 마천루들이 보였다.
연구소 옥상. 헬기 주차장이었다.
***
우리는 옥상에 위치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연구소는 조용했다. 마치 종합 병원처럼 느껴지는 풍경.
김수호가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자, 그를 알아본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S급 헌터의 방문은 이곳에서도 흔한 일은 아닌 모양.
간단한 신원 확인 절차를 마친 후, 우리는 방문객용 소파에 앉아 은미래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갑고 차분한 표정.
몸의 곡선을 강조하는 원피스와, 그 위에 대충 걸친 연구용 가운.
흐트러짐 하나 없이 깔끔하게 올려 묶은 짙은 청발.
그녀가 바로 A급 빙결 마법사, 은미래.
은미래가 우리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무표정한 얼굴에 아주 희미한 의문이 스쳤다.
“김수호? 여긴 어쩐 일이야?”
“근처 지나갈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별일이네.”
은미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내게로 옮겼다.
그 순간, 은미래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
은미래는 나와 김수호를 몇 번이나 번갈아 쳐다보았다.
고민에 빠진 듯한 눈빛.
잠시 후, 은미래는 결론을 내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김수호.”
“응?”
“벌써 그렇게 큰 아이가 있었어?”
은미래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탄했지만, 담긴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결혼 안 했잖아. 언제 낳은 거야?”
“푸흡…!”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김수호는 방금 전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듯,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헛소리야? 내 애일 리가 없잖아!”
격렬한 부정.
갑자기 나는 장난기가 동했다.
나는 그의 소매 끝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최대한 순수하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빠…?”
김수호가 고장 난 것처럼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그러니까 얘는….”
김수호는 필사적으로 무언가 해명하려 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푸하하하하!”
“… 어휴, 어이가 없어서…. 하여튼, 얘가 너랑 오늘 만나기로 했던 그 뉴비야.”
김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 와중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은미래.
김수호의 패닉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내게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허리를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나를 더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
은미래의 차가운 눈이 현미경처럼 내 얼굴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었다.
부담스러운 시선.
나는 웃음을 뚝 그치고 뒷걸음질을 쳤다.
“뭐, 뭐예요….”
은미래의 입술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귀엽네.”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
너무 작아서 바람 소리에 섞여 사라질 정도.
나는 똑바로 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네? 뭐라고요?”
은미래는 즉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아니야. 아무것도.”
은미래는 짧게 헛기침을 하더니, 나와 김수호의 머리카락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가닥씩 뽑았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빠른 움직임.
“아얏! 뭐예요!”
“따거! 뭐야?”
나와 김수호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은미래는 우리의 반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뽑아낸 두 가닥의 머리카락을 투명한 샘플 봉투에 소중하게 넣었다.
은미래가 지극히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친자 검사용.”
“친자겠냐고!”
김수호의 절규가 로비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은미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은미래는 샘플 봉투를 가운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뭐, 모르는 일이니까. 확실하게 데이터를 확보하고 넘어가는 게 좋아.”
그 말에는 한 치의 농담기도 섞여 있지 않았다.
김수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은미래는 모든 용무를 마쳤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김수호를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도 좋아. 여기까지 데려다준 건 고맙네.”
“어, 그래…. 잘 있어….”
“그리고 너.”
은미래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따라와. 일단… 기초 신체 데이터부터 측정할 테니.”
“응? 저는 유물 보려고 온 건데 왜 신체검사를 해요?”
많은 일들이 있어 나조차도 순간 까먹었지만, 애초에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드워프의 유물.
내 반지의 효과로 유물을 복원할 수 있는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검사라면, 예전에 서울 왔을 때 협회에서 이미 전부 다 했어요. 김수호 씨랑 같이.”
내 말에 은미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나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정밀 검사는 필요해. 네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작고 어리거든.”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검사가 100배는 더 정확해. 문외한이 기계 몇 번 딸깍거리면서 측정한 거랑, 대한민국의 최고 천재인 내가 직접 정밀하게 분석하는 건 차원이 달라.”
은미래의 말에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묻어 있었다.
나는 그 자신감에 압도당했다.
‘그래. 똑똑한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생각해 보니까, 최고의 천재가 직접 봐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그때랑은 몸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그녀를 따라 들어간 곳은 온통 새하얀 방이었다.
사방의 벽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기계들이 가득했다.
방 중앙에는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은미래는 내게 침대 위에 누우라고 지시했다.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 확인해 보자.”
은미래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차가운 금속 패치가 팔과 다리에 붙었다.
그러나 은미래의 차가운 손이 옷 속으로 들어와 배까지 올라왔을 때, 나는 기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아니, 이런 곳까지 붙이는 거예요?”
“응? 당연한 소리를.”
은미래는 내 반응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심장 소리를 들으려면 당연히 가슴에 청진기를 대야지?라고 하는 듯한 표정.
아무래도 그녀에게 이것은 의료행위에 가까운 지극히 당연한 절차일 뿐인 모양이었다.
나는 결국 저항을 포기했다.
검사는 계속 이어졌다.
모니터에 나는 알아볼 수 없는 그래프가 요동쳤다.
은미래는 그 데이터들을 잠시 훑어보더니, 이번에는 내 손을 잡았다.
“마력 전도율 측정이야.”
은미래의 시선이 잠시 내 손가락 끝에 머물렀다.
내 새끼손가락을 확인한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민감하게 여길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 모양.
은미래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손등과 손바닥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나는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엄청 부드럽네….”
은미래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엄지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내 손등을 부드럽게 쓸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바로 그때, 그녀의 다른 쪽 손이 뻗어 와 내 볼을 콕, 하고 찔렀다.
내 볼이 그녀의 손가락에 눌렸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 이거, 검사 맞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지적에 은미래는 손을 뗐다.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표정은 여전히 너무나 진지해서,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빙결 마법사라 그런지 그녀의 손이 엄청나게 차갑다는 것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 부분을 입에 담았다.
“손이 엄청 차갑네요?”
그 순간, 은미래의 움직임이 화들짝 놀란 듯 멈췄다.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
나는 그녀가 당황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랏다.
“아…. 미안. 내가 빙결 계열이라….”
“괜찮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살짝 떨렸다.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은미래는 정신을 차린 듯 헛기침을 하더니, 이전보다 훨씬 더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진짜 검사를 시작해 볼까. 일단 내시경을 하면서 몸을 모래로 만드는 것부터….”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아니, 그럼 지금까지 한 건 뭐였는데요?”
내 외침에 은미래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녀의 시선이 허공을 방황하며 초점을 잃었다.
“그, 그거…? 그건… 그러니까, 예비 측정…?”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해부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만! 그만하고! 그 물건이나 보여줘요! 저 그거 때문에 온 거잖아요!”
내 단호한 외침에 은미래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음… 아직 연구하고 싶은 건 시작도 못 했는데….”
그 목소리에는 진한 미련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더 이상 억지를 부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
“알겠어.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은미래는 마침내 나를 유물이 있는 방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