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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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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벌써 3번째로 방문하는 오피스텔.

나는 묵직한 가방을 멘 채로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선글라스 너머 험상궂은 기운이 느껴지는 브로커가 나를 맞았다.

“왔군.”

나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 위에 자루를 툭, 하고 내려놓았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자루 입구가 살짝 풀리며 안에서 영롱한 빛을 내는 마석 몇 개가 굴러 나왔다.

브로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는 선글라스를 살짝 고쳐 쓰며 자루를 훑어보았다.

“…이게 다 뭐지?”

그의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한 놀라움이 묻어 있었다.

8kg이나 되는 양이다.

이 정도 양의 마석은 그에게도 당황스럽겠지.

“설마 이걸 전부 혼자서 모았다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당연히 나 혼자 모은 거지. 누가 나한테 이걸 덥석 맡기기라도 하겠어?”

“그것도 그렇긴 하다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브로커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어서 앉아. 오늘은 이것만 팔러 온 게 아니니까.”

나는 의자에 앉으며 본론을 꺼냈다.

브로커는 말없이 내 맞은편에 앉아 나를 응시했다.

“살 게 있거든.”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신분이 필요해. 완전한 새 신분이.”

“그래,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왜?”

“집도 사고 싶고, 정식 헌터로 등록도 하고 싶은데…. 미성년자라 불가능하거든. 그래서 성인 신분을 만들고 싶어.”

내 말에 브로커의 입꼬리가 피식, 하고 올라갔다.

“꼬마야. 이제 미성년자도 헌터 할 수 있게 법이 바뀌었다. 세상이 그만큼 팍팍해졌거든.”

“어, 응? 뭐?”

“처음엔 17세, 그 다음엔 15세로 점차 낮아졌지. 몇 년 뒤면 10세가 될 지도 모르겠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브로커는 그런 내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꼈다.

“어쨌든, 더 자세히 말해봐. 왜 신분이 없는데?”

날카로운 질문.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것도 예상한 질문.

미리 준비해 온 시나리오가 있었으니까.

나는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 존댓말을 장착했다.

어제 경찰을 상대로 해봤더니 입에서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제가요, 사실 5년 전에 부모님을 잃었거든요…. 탑이 처음 생겨났을 때요.”

“그래도 출생신고는 되어있을 텐데?”

브로커가 내 말을 차갑게 끊었다.

아니, 이 아저씨 이런 이야기에 약한 것 아니었나?

왜 이렇게 가차 없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당한 나는 말을 더듬으며 변명을 이어나갔다.

“그, 그게. 사실 그때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거든요? 부모님 이름도 까먹었고요…. 아니, 5년 전이면 내가 8살…? 아무튼 그 정도였을 테니 기억 못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나는 필사적으로 둘러댔다.

하지만 내 변명은 누가 들어도 어설펐다.

브로커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 이게 진짜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의 차가운 한마디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도 괜찮다.

사람이 할 말이 없을 땐 화를 내면 된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아! 그래서 해줄 거야, 말 거야!”

나는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당신 브로커잖아! 돈만 주면 다 해주는!”

“착각하지 마라. 나는 그런 싸구려가 아니니까.”

“뭣….”

그리 말한 브로커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내 어설픈 분노는 그의 묵직한 선글라스에 부딪혀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는 잠시 동안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는 더 초조해졌다.


한편 브로커의 머릿속은 복잡한 가설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체 뭐 하는 녀석일까?

아이의 말은 그야말로 조잡했다.

그야말로 어린애의 거짓말.

문제는 눈앞의 꼬마가 자꾸 말도 안 되는 양의 마석과 아이템을 들고 온다는 것이었다.

‘이 마석들은 다 어디서 구했을까.

테이블 위에 놓인 마석 자루. 저건 개인이 구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다.

C급 길드, 다시 말해 조직 폭력배 집단 하나가 한 달 내내 모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양.

‘어디서 들고 튀었나?

가장 합리적인 추론.

그렇다면 지금 추격에 쫓기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새 신분이 필요한 것이고?

하지만 그렇다기엔 이상했다.

현상금 따위가 걸리면 브로커인 자신에게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까.

‘… 생각해 봐야 별 수 없군.

결국 브로커는 이해를 포기했다.

이 아이의 과거를 추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퍼즐 조각이 너무 부족했고, 있는 조각마저 서로 맞지 않았다.

복잡한 생각을 지워낸 그의 시선이 다시 눈앞의 소녀에게로 향했다.

그래,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쪽 손이 없는 가녀린 몸.

자신의 딸과 비슷한 나이의 소녀.

브로커는 아이의 처지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집이 필요하단 거라면…. 지금까지는 노숙이라도 한 건가?

아이가 길거리에서 밤을 보냈을 모습을 상상하자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졌다.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낯빛이 더 어두워진 것도 그 탓일지도 몰랐다.

‘역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브로커는 이 아이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이 아이의 과거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아이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였다.

미성년자. 신분 없음.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거금.

이 세 가지 조합이 만들어낼 미래는 뻔했다.

저 돈은 아이에게 족쇄가 될 테다.

D급이나 C급 헌터, 다시 말해 어중간한 날건달 놈들이 아이를 노릴 것이다.

스스로를 지킬 힘도, 세상을 살아갈 지혜도 없는 아이는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고 버려지게 될 것이다.

브로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결심을 굳혔다.


긴 침묵 끝에 브로커가 마침내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그는 잠시 동안 나를 말없이 바라보더니, 이내 깊은 한숨과 함께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처음으로 그의 맨눈을 마주했다.

날카롭고 지친 눈.

하지만 그 안에는 의외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알겠다. 도와주지.”

그의 차분한 한마디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우선 그 마석부터 처리하자.”

그는 테이블 위로 굴러 나온 마석 하나를 집어 들어 꼼꼼히 살폈다.

전문가의 눈빛이었다.

잠시 후, 그는 자루 전체의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가격을 말했다.

“1억 8천. 시세보다 조금 더 쳐준 거야.”

상상한 것과 비슷한 금액.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로커는 곧바로 자신의 핸드폰으로 금액을 이체했다.

내 핸드폰에 입금 알림이 뜨는 것을 확인한 그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집도 내가 알아봐 주지. 원하는 조건이라도 있나?”

“탑에서 가까운 단독주택이면 좋겠는데.”

“흠, 헌터 전용 주택? 까다롭군….”

“안되나?”

“아니, 그렇진 않아. 네가 모아둔 돈 대부분을 써야겠지만.”

“그건 각오했고….”

“하긴, 나도 그 편을 추천한다. 그게 좀 더 안전할 테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 신분.

“신분증은… 5년 전 탑 붕괴 때 실종된 사람 기록을 뒤지면 된다. 그중에서 너랑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을 찾으면 돼. 솔직히, 네 체형을 봤을 때 좀 많이 힘들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브로커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체형이라…. 체형 바꾸기 연습이라도 해야 하나?

아직 해 본 적은 없는 일이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모래로 키랑 가슴을 키우면 성인 여성처럼 보일지도.

남자로 돌아가는 건 아직 무리겠지만.

‘아, 아직 다리 길이 밖에 못 늘리겠네. 그럼 좀 이상해 보이긴 하겠다.

잠깐 멍하니 공상을 할 때였다.

브로커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 생각을 끊었다.

“하지만 미리 경고하는데….”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이런 걸로는 기껏해야 편의점에서 술이나 담배 뚫는 정도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네가 말한 헌터 협회 등록이나 부동산 거래, 은행 업무…. 이런 건 어림도 없어. 전산망에 조회하는 순간 바로 가짜인 거 들통날 거다.”

“역시 그렇겠지…?”

“부동산 거래는 내가 대리해 줄 수 있지만…. 헌터 등록은 그런 게 안되니까.”

“괜찮아. 생각해 둔 방법이 있어.”

“그 방법이 란 거, 나한테 알려줄 생각은 없겠지?”

“그건….”

“됐어. 이유가 있겠지. 나중에라도 말하고 싶어지면 그때 말해.”

“….”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묘하게 가슴이 찔렸다.

생각해 보면 눈앞의 이 남자는 불법 브로커 주제에 선한 사람이었다.

내게 일관되게 호의를 보내주고 있으니.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한국 유일의 S급 헌터가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예정이라고 해도 선뜻 믿기 힘들건 그렇다 치자.

풍뎅이, 김수호의 허락 없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마구 발설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 모든 것이 끝나고 등록이 마무리가 되면 사실을 말해주자.

이 아저씨가 그때에도 내 이야기를 안 믿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역시 선택지는 하나뿐.

나는 마법사 갤러리에 접속했다.

그리고 여전한 망설임 끝에, 새로운 글을 작성했다.

[제목: 풍뎅이 님. 어제 했던 말 기억하심?]

작성자: ㅇㅇ(33K.333)

헌터 등록 도와준다고 했던 거. 지금도 가능?

내 글이 올라가자마자, 1초도 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ㄴ 풍뎅이 : 당연하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어?

마치 내 글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신속한 반응에 놀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ㄴ ㅇㅇ(33K.333) : 근데 내가 좀, 남들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은데.

ㄴ 풍뎅이: 걱정할 것 없어. 네가 올 날짜랑 시간만 알려줘. 그 시간에 맞춰서 협회 반경 3km 이내를 전부 비워둘 테니.

“아니 3km요?”

나는 모니터에 찍힌 댓글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서울에 있는 협회 주변을 전부 비워?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새삼 S급 헌터라는 존재가 가진 권력의 크기를 실감했다.

단순한 전투력이 아니다.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댓글들도 하나같이 놀란 반응이었다.

ㄴ 마법은화력 : S급 클라스….

ㄴ p깟쮸 : S급이라고 막나간다에요. 투쟁해야한다에요.

ㄴ 냉장고 : 3km면 우리 집도 포함이겠다. 그날은 집에서 못 나가는 거야 그럼?

ㄴ 풍뎅이: 그럴 지도? 미안하게 됐네.

ㄴ 냉장고 : 아니, 농담이니까 그냥 받아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었다.

ㄴ ㅇㅇ(33K.333) : ㅇㅋ. 그럼 오늘내일 중으로 20층 뚫고 다시 연락드림.

이제 정말로 눈앞이었다. 나는 20층을 뚫기 위해 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