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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371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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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가방과 함께 탑 14층에 들어섰다.
오늘따라 모든 감각이 유달리 생생하게 느껴졌다.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 섞인 미세한 독기의 흐름이 보였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이 역시 새로 얻은 통찰안의 효과 덕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스킬 설명답게, 정말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이 독기도 결국 마나의 일종이었네.”
세상 만물에 깃들어 있다는 신.
그것은 마나의 다른 표현이다.
10층대의 독기 또한 마나의 뒤틀린 형태일 뿐이었다.
나는 품속에서 축구공만 한 크기로 자라난 세계수의 씨앗을 꺼내 들었다.
이제는 씨앗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크기.
씨앗을 꺼내자 주변 공기의 흐름이 변했다.
독기 섞인 마나가 씨앗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 반대편에서는 정화된 순수한 마나가 흘러나왔다.
마치 거대한 공기청정기 필터 같았다.
“혹시 이걸 심으면 나중에 세계수가 열리는 건가…?”
순간 동네 뒷산에 심어서 길러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동네 명물이라고는 빵집 하나뿐인 노잼 도시 대전에는 좋은 랜드마크가 될지도 몰랐다.
세계수가 있는 도시라니.
전 세계에서 연구진들과 관광객이 몰릴 것이다.
침체된 대전의 경제도 살아나겠지.
“하지만 내 거는 20층 히든피스로 써야 하니까…. 아, 어디서 세계수 하나 더 안주나?”
쓸데없고 따분한 상상을 마치고 나는 슬슬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등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마법 수련.
내 수련을 방해할 몬스터들은 미리 치워둬야 했다.
나는 익숙하게 사막화를 펼치고, 위장이 싹 사라져 바보가 된 고블린들을 처리했다.
탑의 시스템 상, 몬스터를 전부 잡아버리면 자동으로 클리어가 되어버린다.
이번엔 탑에서 최대한 오래 머무르며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몇 놈은 살려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모래 분신을 몇 마리 만들어 고블린 한 마리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그다음 사방을 높은 모래 벽으로 둘러쌓았다.
완벽한 모래 감옥이 만들어졌다.
“아, 숨구멍은 뚫어줘야겠군.”
혹시 질식사라도 하면 매우 곤란했다.
나는 벽 한쪽에 작은 구멍을 뚫어주었다.
“으음, 이래도 안심이 안되는데….”
어릴 때 키우던 구피라는 물고기가 있었다.
녀석들은 이유도 없이 툭툭 죽고는 했다.
가끔씩 몇 마리는 수조의 물을 가는 와중에 실수로 하수구에 빨려 들어가 버리기도 했고.
고블린도 마찬가지다.
이제 내게는 너무나 약한 몬스터라 툭 쳐도 죽어버린다.
덧없는 죽음이었다.
나는 주변에서 고블린 두 마리를 예비로 더 잡아와 똑같은 방식으로 가두었다.
이제 한 마리가 어쩌다 돌연사를 하더라도 갑자기 클리어가 될 걱정은 없었다.
그제야 좀 안심이 되었다.
다음 목표는 트렌트였다.
나는 사막화로 땅을 갈아엎으며 정글을 탐색했다.
금세 숨어있던 트렌트들이 드러났다.
나는 익숙해진 손짓으로 열매를 수확했다.
수확한 열매는 모두 세계수의 씨앗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 쓰레기가 아니었네.”
세계수의 씨앗이 먹고 뱉어낸 쪼그라든 열매.
이전의 나는 이것이 쓰레기라고 생각해서 그냥 버렸었다.
하지만 통찰안으로 본 열매는 달랐다.
트랜트의 열매에는 마나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독기도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트렌트는 이 정글에 가득한 마나와 독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마나는 자신의 영양분으로 삼고, 남은 독기는 모아서 열매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열매의 정체였던 것이다.
“아니, 그럼 사람들은 지금까지 트렌트의 똥을 먹고 있었던 거야?”
열매를 떼어가도 중립이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나?
인간들은 트렌트의 비데역할을 해준 것뿐이었고?
뭔가 기분이 불쾌해졌다.
“나중에 열매도 좀 사 먹어볼까 했는데….”
그러나 씨앗이 먹고 뱉어낸 쭈글쭈글한 열매는 달랐다.
독기는 완벽하게 걸러지고 순수한 생명력만이 응축되어 있었다.
“똥을 먹고 싼 똥이라 좀 찝찝하긴 한데….”
나는 정화된 열매를 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걸 먹으면 무조건 도움이 될 거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 외형과 출처가 영 마음에 걸렸다.
“에이, 까짓 거 그냥 먹지 뭐. 딱 봐도 좋아 보이는데….”
그래, 난 길바닥 흙도 퍼먹었다.
이제 와서 못 먹을게 뭐가 있겠는가.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열매를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0.1초 만에 그대로 뱉어냈다.
“퉤! 으엑…. 존나 맛없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맛이었다. 떫고 비린 맛이 내 혀를 유린했다.
이건 도저히 인간이 먹을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물로 입안을 몇 번이나 헹궈냈음에도 끔찍한 맛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최후의 방법이 있었다.
“맛이 없으면 맛을 없애면 그만이잖아?”
나는 풍화 스킬을 사용, 열매를 모래로 만들었다.
모래 먹기라면 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
나는 모래를 물병에 넣고 흔들었다.
중요한 것은 모래가 다시 가라앉기 전에 들이키는 것.
나는 망설임 없이 모래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흠…. 평소에 먹는 모래랑 맛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원본이 따로 있는 모래라서 그런지 목 넘김이 다른 듯한 느낌.
곧이어 식도를 타고 묵직한 마력 덩어리가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곧이어 명치 부근에 따뜻한 무언가가 자리 잡았다.
직감이 왔다. 이건 영약이다.
나는 남아있던 다른 열매들도 전부 같은 방식으로 가공해 삼켰다.
꿀꺽, 꿀꺽.
“어… 이거 안 좋은 것 같은데….”
10개째를 삼켰을 때였다.
갑자기 속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급히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내면을 들여다보니, 통제되지 않은 막대한 마나가 내 몸속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제어하지?
마나는 마치 살아 날뛰는 뱀처럼 내 온 혈관을 휘저으며 날뛰었다.
“끄읍….”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
그대로 두면 내 몸이 안에서부터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의식을 집중해 마나의 흐름을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손바닥으로 홍수를 막으려는 것과 같은 난이도.
날뛰는 마나에 내 의식이 휩쓸렸다.
내 주변의 모래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모래 파도가 일고, 날카로운 모래 폭풍이 휘몰아쳤다.
내가 만들어 놓은 사막 전체가 살아 움직이며 주변의 모든 것을 갈아버렸다.
나는 그 폭풍의 한가운데 앉아 어떻게든 힘을 제어하려고 하고 있었다.
“안돼, 이대로라면 휩쓸려…!”
나는 이 거대한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마나는 더욱 거세게 반발할 뿐이었다.
“아니야, 이렇게 하는 게 아닐 거야.”
몸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문득 잊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모래 토템을 만들던 그 순간. 내 팔을 스스로 무너뜨려 한 줌의 모래로 되돌렸던 기억.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모래는 흩어져도 모래. 무엇이든 형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내 몸조차도 그렇다.
“그래, 이거였어.”
나는 지금 이 날뛰는 마나를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아니다, 이건 그런 게 아니다.
내면의 신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
그러나 내 몸도 마나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 또한 나의 일부다.
나는 마나의 격류에 맞서는 둑이 되기를 포기했다.
대신 물길을 터주기로 했다.
통찰안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나는 내면의 신에 집중했다.
그것은 내 마력의 중심, 나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
나는 날뛰는 생명력을 억지로 그릇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릇에 구멍을 냈다.
정신을 집중해 작고 촘촘한 구멍을 하나씩 뚫는다.
그릇은 이제 체가 되어 마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내면의 신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희미했던 윤곽이 뚜렷해진다. 발끝부터 천천히 모래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영약의 마나가 내 원래의 마나와 섞이며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갔다.
“하아아아….”
나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나를 중심으로 미친 듯이 휘몰아치던 모래 폭풍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무질서하게 사방으로 날뛰던 모래알들이 일제히 정렬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허공에 떠오른 모래알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 것인지 모르겠다.
주변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고블린을 가뒀던 모래 감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익숙한 클리어 메시지가 떠 있었다.
아무래도 그 난리 통에 불쌍한 고블린들이 전부 죽어버린 모양이었다.
“…삼가 고블린의 명복을 빕니다.”
나는 짧게 애도를 표하고 탑을 나왔다.
수련 계획이 하루 만에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탑을 다시 오르려면 꼬박 하루를 기다려야 했으니.
하지만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스르륵, 양발이 고운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내면의 신이 아주 조금이지만 더 모래로 물들었다.
원래 목표에 훨씬 더 가까워진 셈.
하지만 아직 전신 모래화는 갈 길이 멀었다.
“…발을 모래로 만드는 능력을 어디다 써야 하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손가락이 다 떨어지면 발가락 탄환이라도 쏠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다리는 마법 재료로 쓰기도 어렵다.
도망칠 때 큰일이 나지 않는가.
기왕이면 머리나 심장부터 모래화가 진행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
그리고 남은 4일.
나는 같은 일을 네 번 더 반복했다.
14층을 돌며 열매를 수확하고, 그것을 영약으로 만들어 수련에 사용했다.
첫날의 폭주가 약이 되었는지, 영약을 흡수하고 마나를 제어하는 과정은 날이 갈수록 능숙해졌다.
마침내 닷새째가 되는 날.
나는 방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았다.
지난 닷새간의 성과를 확인할 시간.
정신을 집중하자 익숙한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피어올랐다.
스르륵.
양발이 고운 모래가 되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모래로 변하는 감각은 발목을 지나, 종아리를 타고, 무릎을 넘어 허벅지까지 거침없이 올라왔다.
나는 눈을 떴다.
내 하반신은 더 이상 살과 뼈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허리 아래로는 두 쌍의 모래 기둥만이 존재했다.
“성공이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모래로 변한 하반신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닷새간의 집중 수련은 끝났다.
이제 다음 목표는 명확했다.
15층. 마법 깎는 노인을 다시 만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