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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의 무한에서부터 낙양까지 올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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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나라보다 거대한 땅이었다. 거쳐야 할 도시가 한둘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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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자락에 닿았을 무렵, 제자들은 비연천공을 펼치며 달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완숙의 경지에 올랐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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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호북과 하남은 천하의 풍문이 모이는 곳이었다. 길목마다 정세를 논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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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에 선녀가 나타났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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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팔가주가 하나 더 객사했다고 하지 그러나? 무슨 그런 해괴망측한 헛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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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언이 아니네. 동호에 살던 내 지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야. 유람선도 같이 탔다는데,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벌써 신당을 짓는다고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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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선녀는 유람선도 타는 모양이군. 잘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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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이 사람이 정말! 참말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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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성 사이의 거리가 워낙 멀어 소문이 와전되는 일은 흔했다. 무림인들의 이야기는 본디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었으니, 민초들 또한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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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하남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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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에서 신녀문주가 보인 이적이 하나둘씩 퍼져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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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문주가 글쎄, 단칼에 재해를 참했다더군! 믿지 못하겠거든 운남으로 직접 가보게. 채석장의 광부들이 당시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었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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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에서 나타난 선녀가 신녀문주라는 소문이 있네. 그런 복식은 흔치 않지. 예전에야 신의 타령하던 여식들이 비슷하게 행세하고 다녔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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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림의 왕족 중 하나라는 소문이 있소. 머리색깔이 인세의 것과는 거리가 멀다던데. 몇몇 권세가에서 온갖 염색약을 써도 그 빛깔을 흉내낼 수 없다고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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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의 거지들도 같은 말을 하더군. 허공답보라면, 구파의 장문인들과도 동일 선상에 놓을 만한 경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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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강자이기는 하나, 어찌 구파가 쌓아온 세월에 비할 수 있겠소? 당장 무당파만 해도 개파 이래로 배출한 절세고수가 몇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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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은 아니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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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오. 대월국의 제일고수가 반으로 갈려 죽었다는 풍문이 있소. 전투의 여파로 일대가 사람이 살 수 없다는 불모지가 되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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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의 방장대사께서 마침내 폐관을 깨고 나오셨다는군. 필시 더없는 성취를 이루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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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행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천하의 정세를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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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강자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풍문을 몰고 다닌다고 하였다. 자신 역시 그만한 반열에 올랐다고 보아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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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야 제자들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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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주에게서 한 단체의 수장이 가져야 할 태도를 배웠다. 명목상이나마 일문의 문주가 되었으니, 그에 걸맞는 행실을 보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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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끝날 줄 몰랐고, 민심은 예년보다 더욱 흉흉했다. 제자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귀를 열어두어야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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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도시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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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 긴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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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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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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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저에 듣기로, 용문석굴의 노사나불을 복원하셨다 들었습니다. 천하에서 견줄 작품이 드물다던데, 이번 기회에 한 번 견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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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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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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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최대한 늦게 복귀하고 싶은 것은 서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소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근처에서 주전부리를 사들고 용문석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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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4대 석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과거에도 사람이 많은 편이었으나, 지금은 그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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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무지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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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관람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냐! 내 부친이 무려 현승(縣丞)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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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는 없소. 낙양 부윤께서 세우신 원칙이외다. 정 불만이면 그분께 가서 직접 말씀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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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그깟 불상이 뭐가 대수라고! 형편없기라도 하면 네놈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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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발대발하며 석굴 내부로 들어갔던 사내는 일 각이 지나기도 전에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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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척이는 발걸음이 느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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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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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원들의 손길마저 뿌리친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모습이, 혼백이라도 빠져나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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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늦겨울의 추위를 생각하면 믿기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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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그런 얼굴을 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석굴로 막 들어가는 사람들과 빠져나온 사람들의 면면이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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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이 넓을수록 깨닫는 바가 큰 것일까. 이름난 석공들은 아예 넋이 나간 채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 나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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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장인은 또 끌려가는군. 올해에만 저 꼴을 스무 번도 넘게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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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이 모자라서 그런가, 나는 노사나불이 그 정도로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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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사나불의 모습 자체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네. 진짜는 그 배경에 피어오른 만다라에 있다네. 얄팍한 견식으로 만다라를 살핀 이들은 그저 단순한 실선으로 알고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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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뜨거운 찬사들이 서연의 귓가를 스쳤다. 서연은 괜히 죽립을 깊게 눌러쓴 후에야 석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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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나불의 전신에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중후한 파동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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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장은 무공보다 각예의 경지가 높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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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과 벽에 새겨진 만다라를 타고 흐르는 기운을 보며 그리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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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를 매만지려는 순간, 코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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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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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대를 바닥에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체구가 몹시 작고 다부진 사내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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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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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달막한 풍채에 근육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돌덩이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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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에서 만났던 산정들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쪽이 장인의 기운에 가까웠다면, 눈앞의 사내는 영락없는 무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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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만지지 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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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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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단호했다. 처음에는 관병인 줄 알았으나, 복식에서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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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병이라기에는 과할 정도로 고풍스러웠다. 고위 관리라도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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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흠결이라도 생겼다간 지맥의 흐름이 흐트러진다. 그리 되면 노사나불을 수리한 귀인이 직접 자리하지 않는 한 수리가 불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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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한족의 눈썰미로는 백 번 천 번 설명하여도 이해하지 못할 걸세. 관병들도 마찬가지야. 손길을 타서 닳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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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한둘이 아니었다. 족히 열 명이 넘는 산정들이 노사나불 주변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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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모르는 행인들은 그들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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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족이 어찌하여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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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족? 관복을 떡하니 입고 있는데도 감히 모욕을 입에 담아? 여봐라! 본관을 능멸한 이놈을 당장 끌고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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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이고……! 소인의 눈이 침침하여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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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한족 관병들이 산정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한 마디로 신분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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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행인들은 그 광경을 익숙하다는 듯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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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사람 끌려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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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견문이 모자랐기에 면전에서 저런 말을 할까. 아무리 산정이 드물다 해도, 북경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봤다면 저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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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불같다더니. 그 소문이 틀리지 않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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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도면 양반이네. 듣자 하니 예술작품 앞에서는 성격이 유해진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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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유해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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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서연의 시야에 산정들의 모습이 제대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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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날카로운 눈매와 외골수 같은 기질을 품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고집이 몹시 셀 듯한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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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드문 예외일 뿐, 본디 중원에서는 고집이 강할수록 실력이 뛰어난 장인으로 인정받는 기조가 존재했다. 겸손한 자보다 호탕하고 오만한 자가 더 고수로 대접받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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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산정들은 외양만으로도 천하에서 손에 꼽는 장인들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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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에서 일한다는 석공들이 이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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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 부윤이 황실의 장인들을 입에 담았던 이유를 알 듯했다. 아무리 지역에서 이름을 날린 석공이라 한들, 날 때부터 장인으로 태어난 씨족에 비하기는 힘들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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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는 또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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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주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심득을 얻었던 탓일까, 각예의 견문을 넓힐 좋은 기회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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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그리 생각하며 정면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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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씨족들은 예로부터 황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교룡마저 탐내는 신묘한 손재주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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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적, 태조가 교룡의 둥지에서 그들을 구했을 때부터 충성을 맹세했다던가. 수명이 긴 편에 속하는 산정들에게도 이제는 전설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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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가장 가까운 산자락에 자리를 틀었다. 대장군들은 물론이고, 천명검 말단의 무기까지 그들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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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은둔을 즐기는 성정 탓에, 그들의 외출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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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의 복원을 확인하라는 황실의 명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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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났던 산정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를 이상히 여겨 뒤따라간 두 번째 산정 역시 소식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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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봐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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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이틀 걸릴 일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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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구로 고작 한 줄씩을 적어 올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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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 터에서 귀한 광맥이라도 발견되었나 싶었다. 허나 달포가 지나도 돌아가지 못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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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그들을 데려오겠다던 산정들도 소식이 끊겼다. 다시 잡아오겠다며 떠나가고 소식이 끊기기를 수 차례나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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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상황이 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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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정녕 한족의 솜씨라고?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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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 부윤에게 몇 번이고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끝끝내 소림사로 들어가 삼신세불을 목도하고 나서야 진실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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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장신의 축복이라도 받지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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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족의 자존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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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장인 특유의 옹고집이 발동했다. 이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때까지 이곳에 틀어박히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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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중간에 낀 관리들의 속만 타들어갔다. 산정들이 하나같이 황실에 수십 년 동안 몸담은 중진이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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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모르는 한족들이 작품을 훼손할까 염려한 산정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석굴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관리자들 역시 자연스레 구석자리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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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좀 보게. 곡면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깎아냈어. 누가 보면 석굴 전체를 거푸집에 넣어 굳혔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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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히 십 년은 걸릴 작업을 어찌 한 달 만에, 그것도 홀로 끝냈단 말인가? 낙양 부윤의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내 눈으로 직접 볼 때까지는 믿지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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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복원록을 가장 많이 읽은 작자가 퍽이나 불신하겠군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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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환장하는 곡주조차 입에 대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작품을 경건한 자세로 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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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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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를 그리 열심히 나누고 계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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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노사나불을 구경하던 여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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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분들의 솜씨가 천하제일이라는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 또한 각예에 관심이 있어, 혹 조언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욕심에 걸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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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인의 손으로 향했다. 마치 갓 깎은 백옥처럼 희고 부드러운 손은 평생 칼자루 한 번 제대로 쥐어본 적 없는 듯 섬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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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혀를 차는 산정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한족 여인의 태도가 정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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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언하면 자네가 알아들을 수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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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해 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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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아붙이는 말에도 여인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또렷했다. 얄팍한 호기심이나 허세를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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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개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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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예에 관한 아무 질문이나 해보게. 그것으로 수준을 가늠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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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이 뒤떨어지면 축객령을 내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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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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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몇몇 산정들이 실소를 머금은 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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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에 대한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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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손가락이 복원록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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