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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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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정녕 사람인가?

남궁설화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한순간에 경악으로 질린 얼굴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눈에 띄게 굳은 얼굴로 담벼락 너머를 응시했다.

남궁세가는 검가로도 유명했지만, 기관진식과 진법을 다루는 뇌가로도 적잖은 명성을 떨친 명문이었다.

남궁설화는 둘 중 진법을 익히는 것에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았다. 재능도 타고났다. 바둑돌 몇 개만으로도 온갖 종류의 진법을 구사할 줄 알았다.

진법을 다루기 위해서는 삼라만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아야 했다. 당연히 안법이 발달했을 수밖에 없었다.

검존 남궁세인이 직접 전수해준 안법인 탓에, 당연히 절세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먼 운남까지 차출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웬만한 중견고수보다 그녀의 안목이 뛰어났다. 발걸음과 같은 사소한 몸짓에서 근본을 유추하여 잡아낸 사파 고수가 적지 않았다.

저렇게 흐릿하게 보여서는 안 된단 말이다.

“……!”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파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기예였다.

“남궁 소저는 아까부터 어딜 그렇게 쳐다보시는 건가요?”

“담벼락에 걸린 거미줄이라도 보았나 보오. 우리와 달리 안법이 특출나지 않은가. 같은 풍광을 마주해도 거슬릴 것이 곱절은 많겠지.”

옆에 있는 후기지수들이 상대를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 자신조차도 절세의 안법이 없었다면 자연지물이라 생각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뿐이랴.

‘대체, 아까부터 왜 이렇게 흔들리냔 말이야.

방금 전부터 절세고수에게 건네받았던 목검이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최고급 흑단으로 깎아낸 목검이었다.

절세고수의 손이 닿은 탓인지 신령스러운 기운이 깃들었다. 제갈가의 고수들이 쥘부채로 진법을 다루는 것처럼, 그녀 역시 목검을 방위침처럼 활용하여 진법을 펼쳤다.

애병이 되었다는 것이다. 근래 들어서는 진검보다 이 목검을 자주 활용할 정도였다.

검존의 차녀인 만큼 마주하는 인사들도 하나같이 거물이었다. 대문파의 수장들을 마주했을 때도 한 번을 떤 적이 없었다.

우우웅!

헌데 지금은 불안할 정도로 떨어댔다. 오죽했으면 떨림을 감추기 위해 손목에 힘을 주고 있어야 했을 정도다.

곧 근처의 후기지수들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남궁설화가 양 손으로 목검을 굳세게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삭막한 분위기 따위에 긴장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았다. 그녀가 진법의 매개로 사용하는 목검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알았다.

화악!

곧 모두가 태세를 전환했다. 주변을 세찬 눈으로 응시하는 이들은 예사요, 아예 검집에 손을 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실상 기수식을 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혈기왕성한 무인이기에 그렇게 반응했다.

철저한 훈련을 거친 맹원들은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했다.

“경계하되, 지나치게 내색하지는 마라. 이런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가는 후환을 감당하기 힘들다.”

유독 연륜이 느껴지는 중년인이 중얼거렸다.

섬전은창(閃電銀槍) 악천승. 산동악가 출신의 무인이자, 무림맹 오대주였다.

주변을 둘러싼 인파가 동요하기라도 하면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을 직감했다.

태연함을 가장하며 곧장 남궁설화에게 전음을 보냈다. 기세를 갈무리하고 정면으로 걸으라는 전성을 보낸 직후였다.

―상황을 설명하라.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어요. 자칫 삿된 정보로 대주의 눈을 흐릴까 저어됩니다.

전음을 보낼 때 생기는 목울대의 울렁임조차 조심하는 듯했다.

남궁가의 검봉은 작은 행동 하나에 수십가지 뜻을 숨기는 기재다. 절세고수의 딸이기 전에, 스스로의 능력으로 위치를 증명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무림에는 수십 장 너머에서도 입매의 떨림과 심장의 박동의 변화를 인지하는 기인이사들이 즐비했다. 악천승은 남궁설화의 반응으로부터 전음조차 조심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이해했다.

곧장 경로를 틀었다. 점창 속가로 향하려는 것이다. 신녀문주가 기거하고 있다는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신녀문주의 위명을 익히 들었다. 보기 드문 협사라고 하던가. 운남 최대 규모의 채석장에서 그녀가 산사태를 갈아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운남의 민초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그녀의 덕이 컸다. 도화신녀라는 별호에서부터 더없는 경외가 드러났다.

의지하기 충분한 강자이자 협사라는 것이다.

“…….”

남궁설화는 침음을 삼켰다. 악천승의 발걸음에서부터 목적지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일전에 느꼈던 인기척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허나 그녀가 남긴 기파만큼은 여전히 점창 속가의 담벼락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렸다. 전신의 감각이 일전에 보았던 것이 실체가 맞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만한 고수가 작정하였다면 인지하기도 전에 고혼이 되었을 것이다. 고의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냈다고 봐야 옳았다.

그녀가 순순히 점창 속가로 향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신녀문주, 아니면 그녀와 연이 있는 다른 여인일 가능성도 있었다.

도문답지 않게 검격이 패도적이라고 하였다. 견문이 부족하여 자신이 오해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보통 그 정도 되는 절대자들은 하수들에게 자신의 몸가짐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기파를 휘장처럼 펼쳐 음영으로만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저 흥미만 드러내신 것을 내가 오해하였을 수도.

검이 멋대로 반응한 탓에 판단이 늦었다.

남궁설화를 비롯한 맹원들은 곧장 점창의 속가로 들어섰다. 무림맹이 점창에 방문하는 일이다. 이상함을 느끼는 민초는 없었다.

점창 속가는 맹원들을 기쁘게 맞이했다.

앞으로 운남에서 벌어질 전투의 대부분은 소모전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무림맹이 찾아온 것을 기꺼이 여길 수 밖에 없었다.

“환대에 감사하오.”

오대주 악천승이 속가주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남궁설화는 속가의 내부를 천천히 흝어보았다.

속가치고는 내부가 굉장히 넓었다. 족히 열 장을 넘는 방이 다섯이 넘었다.

남궁설화는 곧장 후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궁 소저, 지금은 괜찮으세요?”

“그렇게 떠는 것을 처음 보았소. 힘들면 의지해도 좋소이다. 같은 동료 아니요.”

“……모용 공자. 지금 남궁 소저에게 흑심을 드러내는 건가요?”

“그쪽이 쓸데없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하오만?”

보기 좋게 깔린 돌바닥을 거닐며 담소를 나눈다.

다들 긴장이 어느정도 풀린 상태였다.

후원의 마루에 웬 여인이 누워 있었다.

다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이쪽을 향해 눈동자만 돌리는 모습.

아름다운 외양 탓일까, 그조차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남궁설화는 영민한 머리로 뭇 고수와 후기지수들의 용모파기를 모두 암기하고 있었다.

당연히 여인의 신분을 곧장 알아차렸다. 녹색 눈동자가 유독 선명한 여인이었다.

“남궁세가의 남궁설화에요. 그쪽은 당랑암화가 맞으시죠?”

“……예.”

붉은 입술을 힘겹게 달싹였다. 눈동자에서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옆에는 어린 소녀가 앉아서 당랑암화의 입에 설탕 조각 따위를 넣어주고 있었다.

“당랑암화? 사천당문의 직계를 이런 곳에서 다 뵙게 되네요.”

옆에 있던 후기지수가 아양을 떨었다. 황보세가의 여식이었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무심했다.

“후원은 현재 신녀문주께서 사용하고 계시니, 외인들은 자리를 비켜주십시오.”

“사매, 무림맹 분들이래.”

“그렇군요. 맹원 분들은 나가주십시오.”

“…….”

얼핏 보면 무례하다 느끼기에 충분한 언행이었다. 당소소의 전신에 탈력감이 깃들어 있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예의를 차리기는커녕 손가락을 까딱할 힘조차 없는 듯했다.

그때 당소소의 입에 설탕을 넣어주던 소녀가 일어섰다.

“죄송해요. 사매가 새벽부터 고되게 수련해서, 무림맹 분들을 맞이할 힘이 없네요. 저는 신녀문의 화련이라 해요.”

낭랑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어린 나이의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씩씩했다.

“점창의 은인이신 스승님께서는 이따금 화원에서 검술을 펼치시고는 하신답니다. 무림맹 분들께서 스승님의 검술을 견식하고자 하셨다면, 이리 걸음하시면 아니되어요. 마땅히 허락부터 받으셔야지요.”

똑부러지는 목소리로 저리 말하는 것이 귀여웠다.

‘쓰다듬고 싶은데.

오죽했으면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한 남궁설화조차 그리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토록 어린 나이에. 신녀문주께서 제자로 들인 연유를 알겠어요. 신녀문의 미래가 밝겠군요.”

사악.

황보세가의 여식이 손을 뻗었다. 신력을 타고난 세가의 여식답게, 단순한 움직임에도 금나수의 묘리가 깃들어 있었다.

쓰다듬으려는 것이다.

화련은 질색하며 상체를 틀었다. 반사적으로 연화비영보를 펼친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는 것으로 몹시 자연스럽게 손짓을 피했다. 황보세가 여식의 손은 애꿎은 허공을 흝었다.

“어…….”

화련은 미간을 거세게 좁혔다. 후기지수들을 올려다보면서였다.

곧장 머릿속으로 어린아이나 떠올릴 법한 저주를 퍼부었다.

주제도 모르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해? 일평생 어머니와 스승님에게만 허락했던 머리라고. 망할 올빼미도 내 머리는 못 건드려.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배분으로 치면 여러분보다 낮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문의 장문제자로 대해주셔야 옳다고 생각해요.”

너희들 최고 상관이라고 해야 맹주잖아. 우리 스승님은 무려 절세고수라고.

“곧 스승님이 돌아오실거에요. 그때까지도 떠나지 않으신다면 상황 설명을 잘 하셔야 할거에요.”

후환을 감당해야 할거야. 분명 입에 당과를 가득 채운 다음 너희의 뺨을 치실거라고.

그러는 중에도 입으로는 대문파의 후계자나 보일 법한 언행을 담았다.

공과 사를 명백히 구분한다는 뜻이었다.

“어어…….”

어린 소녀에게 한 방 먹을 줄 몰랐던 황보세가 여식의 눈동자가 커진 순간이었다.

사박.

“화련아. 맹에서 오신 분들께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단다.”

한켠에서 하얀 장포가 펄럭였다. 일전에 후기지수들이 밟고 건넜던 돌바닥에 여인이 서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서 고결함이 느껴졌다. 은은한 도기가 일대에 퍼져나갔다.

인세에 내려온 선녀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찬바람에 옅게 휘날리는 연홍발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저잣거리에서 흔히 볼법한 죽립조차 신비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후기지수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입을 틀어막고 경악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 정도로 인세와 동떨어진 용모였다.

남궁설화 역시 놀란 눈으로 자신에게 걸어오는 여인을 응시했다.

“예전에 뵈었었지요?”

신녀문주가 말했다. 목소리가 익숙했다. 남궁설화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누구지?'

도화를 머금은 눈동자가 호선을 그렸다.

“언젠가 다시 뵙게 되면, 이 각패를 돌려드리기로 하였는데.”

곧 신녀문주의 손 끝에 청옥으로 정갈히 깎아낸 각패가 들렸다. 남궁의 이름이 흔들림 없이 새겨진 각패였다.

“……!”

일대가 다른 의미의 경악으로 물들었다. 오죽했으면 적막이 맴돌 정도였다.

“신녀……문주님?”

남궁설화가 말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곧장 받아들일 수 없어서였다.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군요. 이름으로 부르지 않은건 절 배려하려 그런 것이겠지요?”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에요? 남궁설화는 애써 뒷말을 삼켰다.

일년 만에 만난 신녀문주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품이 흘렀다.

걸음걸이에서 알 수 없는 초월성을 느꼈다.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탓일까.

누구라도 매료될 법한 외모였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야기한 것이다.

“하남에, 가셨다고 들었는데. 이런 곳에서 다시 뵙게 될. 아니, 그러니까.”

서연은 사천당문에서 강호의 사정을 면밀히 전해들었다. 눈앞의 소녀가 사실은 검존의 여식이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절세고수의 자식인데도 오만함을 드러내기는커녕 자신을 한없이 낮췄다. 심지어 그때 선물해줬던 목검을 여태 애지중지하고 있었다.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횡설수설하는 것조차 장점으로 느껴졌다.

서연은 남궁설화와 그녀의 뒤편에 있는 후기지수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녀의 동료라면 품행은 따로 검증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그녀는 이제 후기지수들에게 가르침을 베풀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다. 그녀 스스로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운남을 떠나기 전에 호의를 베풀면 될 듯싶었다.

그리고, 서연은 무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방법을 안다고 자부했다.

“제자들이 무례를 저지른 듯한데. 사과해야 옳겠지요.”

서연은 뒷짐을 진 채 후기지수들 앞에 섰다.

하수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모양새였는데, 그 오연한 자세를 보고도 입을 여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남궁 소저부터 들어오시겠어요? 무학으로 교분을 나눠본 적은 없는 듯한데.”

동시에 도화를 띤 진기가 사방으로 이지러졌다. 사방을 흩날리는 꽃잎들이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했다.

“어어……?”

남궁설화의 음성에 다시금 경악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