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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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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화련은 근래 들어 스승님의 외유가 잦아졌음을 깨달았다. 서연은 사흘에 한 번꼴로 저자로 나섰고, 그럴 때마다 그림자처럼 화련을 데리고 다녔다.

화련이 서연의 손을 꼭 붙든 채 당과를 오물거리고 있게 된 것 또한 같은 연유라고 할 수 있겠다.

스승님께서 숨기는 것이 없음을 보이고자 이러시는지, 아니면 진정 어린아이 취급을 하시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화련은 왠지 모르게 후자일 것이라 짐작했다.

“당과 더 먹고 싶니?”

“괜찮아요.”

마치 노인이 장성한 손주를 어린아이처럼 대하듯, 스승님 또한 그러하시리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옆집보다 여기가 더 달콤하네. 앞으로는 여기서 사달라 졸라야겠어.

생각의 관점이 바뀌어서인지, 혹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화련은 이제 서연이 자신을 아이 취급하는 것을 당연한 이치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고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였다. 스승님께 입은 은혜를 생각건대, 아이처럼 행동하는 것 자체를 나름의 효도라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예 마음가짐 자체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다.

화련은 작아진 육신에도 완전히 적응했다. 처음에는 팔다리가 전체적으로 짧아져 별 고생을 다 겪었으나, 이제는 가동범위가 작은 것 또한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일단 몸이 가벼워서 움직이는데 힘이 덜 들었다. 적게 먹어도 금세 배가 불렀고, 온종일 움직여도 기운이 팔팔했다. 단점은 이따금 단것이 당긴다는 것인데, 그럴 때면 지금처럼 당과 한두 개를 집어먹으면 금세 괜찮아졌다.

이는 기존의 둔형천은술에 유혼의 몇몇 술법이 추가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술법은 훨씬 정교해졌으나, 화련은 더는 그 때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했다.

영유아강술(嬰幼兒降術)이나 역린동심술(逆鱗童心術)처럼 이름에서부터 무언가 음습하고 불길한 내력이 느껴지는 술법들을 잔뜩 들고왔던 유혼의 얼굴이 자꾸만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화련은 살다살다 올빼미가 그리도 음험한 동물로 느껴질 줄은 몰랐다.

그때는 질색했지만, 결과적으로 화련의 외형은 이전보다 더 소녀다워졌다. 유혼의 말을 옮겨 표현하자면 앙증맞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당장 당과를 입에 물고 걷는 지금도 그러했다. 그녀가 걸음할 때마다 사내아이들의 시선이 쏟아지니, 그 효험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화련은 그런 시선들을 일절 개의치 않았다. 당과를 먹는 데 온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스승님, 근데 오늘은 어디로 가시나요?”

“일단은 청풍무관에 갈 생각이란다.”

“무관이요……?”

뜬금없는 서연의 말에 화련은 그저 눈만 껌벅였다. 천하에서 무관이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를 꼽으라면, 스승님이 능히 세 손가락 안에 들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스승님의 성정 상 문파의 현판을 뜯으러 가실 리는 만무할 터. 그렇다면 필시 다른 연유가 있을 터인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마땅한 까닭이 떠오르지 않았다.

‘청풍무관은 또 뭔데.

이름부터 동네에서 흔히 볼법한 삼류 무관처럼 들렸다. 필시 관장의 이름은 청풍일 것이요, 그 실력 또한 검기조차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는 허접한 무인일 것 같았다.

물론 그 청풍이라는 자가 스승님처럼 은거했던 고수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기에, 화련은 묵묵히 서연의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풍무관의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대로 낡고 빛바랜 나무 현판에는 ‘청풍무관’이라는 글자가 거칠게 쓰여 있었다. 문이 활짝 열린 무관 안에서는 앳된 소년들이 목검을 휘두르며 어설픈 초식을 익히고 있었다.

서연의 등장에 목검을 휘두르던 아이들은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이들을 응시했다. 그들의 시선은 서연보다 화련에게 더 오래 머물렀다. 동네에서 보지 못했던 이쁘장한 아이가 나타나서 신기했던 모양이다.

곧 안쪽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덩치 큰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사내가 경계어린 눈빛으로 서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관장님 되시나요?”

“제가 관장이긴 합니다만.”

“검법을 배워보려 하는데, 혹시 여인도 받으시는지요?”

화련은 제 스승이 진짜로 도장깨기를 하러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급히 서연을 쳐다봤다.

“……!”

청풍무관 관장, 청풍이 대꾸했다.

“남녀를 가려 받지는 않습니다만, 기준이 남성에게 맞춰져 있어 따라오기 쉽지는 않을겁니다.”

“적당히 호신용으로만 배울 생각이어서요.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청풍의 미간이 좁혀졌다. 명색이 무관을 운용하는 무인인지라,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허나 먹고사는 일 앞에서 어디 자존심을 세우겠는가. 청풍은 최대한 내색하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은 사시(巳時)에 시작합니다. 기간은 달포 단위이고, 가격은 팔십 냥입니다만……마침 검법을 시작할 시간인데 일단 구경부터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할게요.”

청풍은 무관에 배우겠다고 찾아온 여인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적지 않았다. 보통 이럴 때 기합차고 힘들고 지루한 자세를 반복하여 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면 제풀에 겁을 먹고 나가떨어지곤 했다.

청풍은 자리에서 일어나 관원들에게 훈련 명령을 하달했다.

“관원들은 모두 응격검(鷹擊劍) 실시! 교관들은 목검을 들고 내려가서 자세가 틀어진 관원이 있으면 즉시 열외시켜라. 자세 한 번 틀릴 때마다 동네 한 바퀴 씩이다.”

곧 우렁찬 대답과 함께 관원들이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청풍은 흐뭇한 표정으로 관원들을 지켜보다가, 단상 위에 올라가 검법을 펼쳤다.

“타핫!”

응격검은 날카로운 매가 먹이를 덮치듯 빠르고 맹렬하게 공격하는 검법이다. 쉽게 말해 잔재주를 배제한 묵직한 검이라는 것이다.

그랬기에 청풍은 나름대로 제 검에 자부심이 있었다. 실속은 없고 화려하기만 한 검법으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기나 하는 다른 무관들보다는 자신이 배는 낫다고 여겼다.

‘제대로 안 할 거면 차라리 빠르게 포기하는 편이 낫다.

청풍은 이것을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정녕 호신이 목적이라면 어중간한 마음으로 시작해서는 안됐다. 어디 흑도들이 여인이라고 사정을 봐주던가. 위협으로부터 몸을 지키려면 끝장을 볼 생각으로 임하던가, 아니면 돈을 들여 호위를 구하는 편이 낫다.

청풍은 가열차게 검을 휘둘러 몰아치기 시작했다.

“흐음.”

청풍을 지켜보던 교관 하나가 미소를 지었다.

“관장님께서 오늘따라 진지하시다. 검에 실린 내력이 심상치 않구나.”

“또 손님 겁주시려나 봅니다. 안 그래도 이번 달도 빠듯할 것 같은데.”

“다들 한눈팔지 말고 똑바로 따라해라! 관장님처럼 검법을 펼치려면 매일 전심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것을! 거기 너! 열외!”

교관은 자세가 흔들리던 관원 하나를 열외시킨 다음 말을 이었다.

“어련히 하시겠지. 솔직히 자네도 알잖는가. 응격검은 여인이 배울만한 검은 아니야.”

“그렇긴 하죠.”

그러나 교관들의 감상과는 달리, 뒤에서 지켜보던 화련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음.

허접하다.

이렇게 허접하면 안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청풍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화련은 응격검을 보면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왜 저기서 저렇게 움직이지?

너무 허접해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비록 검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으나, 명색이 중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방파의 대공녀였다. 이렇다 할 고수들을 직접 물리친 경험도 적지 않았고, 그중에 검수가 가장 많았기에 검법이 눈에 익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허나 저 검법을 보아라.

맹렬하게 내리꽂혀야 할 지점에선 느려지고, 힘을 실어야 할 부분에서는 힘이 빠져버린다. 오죽했으면 스승님이 자신을 여기에 데리고 온 이유가 잘못된 검법의 예시를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동네 무관이라는 간판을 놓고 보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허나 딱 그 정도였다. 검깨나 다룬다는 흑도를 만난다면 세 합도 버티지 못하고 모가지가 날아갈 그런 수준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서연이 입을 열었다.

“화련아.”

“네, 스승님.”

“저 검법은 어떠하니?”

화련은 별로라고 대답하려다가, 서연의 진중한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화련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신중한 표정으로 청풍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저라면 저기서 이렇게. 아, 잠시만요.”

화련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목검을 집어들었다. 잠시 숨을 가다듬던 화련은, 순식간에 자세를 잡았다.

이내 화련의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처음에는 검 끝에 힘도 실리지 않았고, 무게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 일쑤였다. 검신은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몸의 움직임도 삐걱거렸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지켜보던 몇몇 관원들은 아예 보란 듯이 비웃기까지 했다.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것들이……!

화련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눈살을 찌푸렸다. 허나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서연과 눈을 마주한 순간, 마음속에서 깊은 파문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

화련은 목검을 고쳐 잡았다.

비록 검법을 펼쳐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나, 화련은 제 오성(悟性)이 여느 천재들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런 허접한 검법의 초식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자만했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집중하자.

화련의 표정은 이전과는 같은 사람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진중해졌다. 화련은 눈을 감고 기억하는 대로 초식들을 반복해서 펼쳐나갔다.

응격검의 초식은 총 다섯 개.

‘비상하고, 하강하고, 회오리치며, 꿰뚫다가,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초식마다 본래 이름이 있겠으나, 화련은 그저 그렇게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화련의 움직임은 여전히 삐걱거렸다. 곁에서 들려오는 비웃음 또한 여전했으나, 화련은 더는 신경쓰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로 응격검의 모든 초식을 다섯 번씩 반복했을 때, 화련은 제 움직임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다. 열 번을 반복했을 때는 모든 초식을 보다 정확하게 펼치게 되었으며, 검신에서 전해져오는 떨림 또한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스무 번을 반복했을 때는 초식들의 순서를 마음대로 뒤섞어가며 펼치기 시작했다. 화련은 이때쯤 응격검의 기원이 어디였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점창파?

서른 번을 반복했을 때, 화련은 응격검에 완전히 몰입했다. 초식에는 군더더기가 사라졌고, 공격들은 거듭할 때마다 묵직해졌다. 화련은 동시에 점창파를 떠올렸다.

섬전처럼 쾌속하고, 무겁고 강맹하며, 베기는 집어치우고 찌르기에 목숨을 거는 공격일변도의 검법을 펼치는 도문. 응격검은 분명 점창을 닮아 있었다. 모든 초식이 결국 무언가를 꿰뚫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먼 옛날 하산한 속가제자가 만든 검법이라도 되는 걸까? 아니면 세월이 흐르며 덜어내고 더해지는 과정에서 이렇게 변한 것일까?

그렇게 쉰 번을 반복했을 때, 화련은 더는 이것을 허접한 검법이라 폄하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초식도 변하고, 본래의 색도 대부분 잃어버렸지만, 저자의 집념만큼은 여전했다.

아마 응격검의 저자는 점창파를 동경했을 것이다. 무에 대한 재능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나, 집념만큼은 하늘을 뚫을 듯했을 터. 현실의 벽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을 알았음에도, 끈질기게 매달려 어설프게나마 점창의 형(形)을 모방했으리라.

“…….”

원류를 한없이 닮고자 했던 아류(亞流).

화련은 말없이 잠시 서 있었다.

화련의 눈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있었으나, 그 너머로 응격검을 창안한 무명의 무인을 보고 있는 듯했다.

형이 조잡하다고 한들, 그 속에 담긴 뜻까지 폄하할 수 있는가.

화련은 아무말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다,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문득 화련은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후우…….”

토해내듯 숨을 뱉어낸 화련은 다시금 서연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청풍과, 관원들을 응시했다.

화련은 청풍에게 포권을 취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청풍 관장님. 제 식견이 짧아 검법의 진의를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청컨대, 비무 한 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으음…….”

청풍은 신음성을 뱉어내면서 살살 주변 눈치를 봤다. 온 관원들의 시선이 청풍에게 쏠려 있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학관이 어떻게 될지는 불보듯 뻔했다.

평상시 같으면 나이대가 비슷한 관원을 대신 불렀을 것이나, 화련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교관들조차 못미더웠다. 어쩌겠는가, 직접 나설 수밖에.

“……들어오려무나. 내 다섯 수를 양보해주마.”

“감사합니다."

그날 청풍학관은 현판을 뜯겼고.

웬 여인과 소녀가 도장깨기를 하고 다닌다는 괴이한 소문이 하남 곳곳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