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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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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서연은 가까운 객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도시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탓인지, 객잔은 온갖 강호인들로 왁자지껄했다.

“맛집인가 봐요.”

옆에 있던 화련이 중얼거렸다.

손님이 워낙 많아 잠시 기다려야 했다. 점소이가 다급히 다가와 주문부터 먼저 받겠다고 하기에, 화련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 몇 가지를 주문했다.

“요즘 병사로 지원하면 돈을 그리 많이 번다면서? 서쪽 오랑캐들이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던데. 이번 기회에 나도 병사나 지원해볼까?”

“나는 전쟁이 너무 커지지는 않을까 걱정되는데, 자네는 아닌가 보군.”

세상 소문 논하기를 좋아하는 행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빈 자리가 났다.

객잔 일층에는 흉악한 인상을 지닌 낭인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서연의 범상치 않은 분위기와 허리춤에 매인 검을 보고 이내 시선을 내리깔았다.

서연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낭인들을 쳐다봤다.

“…….”

낭인들은 서연의 시선을 느꼈는지 저들끼리 수근거리다가, 도망치듯 거리를 벌려 객잔 바깥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아시는 분이세요?”

“잠시 착각했단다.”

서연은 당과를 먹는 화련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어떠했을까. 사내들과 눈을 마주칠까 두려워 고개를 푹 내리깔고 도망칠 생각부터 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타고난 본성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찌 변했단 말인가?

오랜 세월 세상과 등지고 살아온 스스로가 한심하여? 아니면 용기를 내고자 결심했기에? 지켜야 할 인연이 생겨서?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혹은 흔히 말하는 깨달음을 얻어서인가?

아니다.

화전민 여자아이에게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연은 무심코 화련을 내려다보았다. 땡글맹글한 눈동자가 고스란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서연은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었으나, 동시에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번개와 같은 깨달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할지 모르나, 정기신의 균형이 기이할 정도로 뒤틀려있던 서연에게는 사소하지 않았다.

고금을 통틀어 다신 없을 재능을 가졌기에, 정(精)과 기(氣)의 타고난 능력만으로 이미 천상의 경지에 닿아 있었던 서연이었다. 허나 신(神)은 그렇지 못했다. 절대자의 것이라기엔 유약했고, 어렸으며, 미숙했다.

인간의 정신은 오직 자기성찰과 참오를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을 닫고 외진 곳에 틀어박혀 살았기에 세속의 경험을 쌓지 못했고, 조각에 몰두하며 심신을 다스렸기에 번뇌할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깨달음을 얻을 계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달랐다.

번뇌했고, 행동했으며, 작게나마 이루었다.

서연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심득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보통 이럴 때는 가부좌 자세로 운기조식(運氣調息)하는 것이 보통이나, 아직 그러한 경험이 없어 쉽사리 행하지 못했다. 다만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집중할 뿐이었다.

시끄럽고 변수도 많은 객잔에서 운기조식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무협지에서 본 적은 있었으나, 제가 하는 행동이 운기조식의 일종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찰나였다. 서연의 육신을 타고 옅은 바람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반인들은 그저 바람이라 생각하고 넘겼지만, 무공을 익힌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달랐다.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이건……?”

“몸이 갑자기 왜.”

본능적으로 경직되었고, 갑자기 제 몸을 떠는 이도 적지 않았다.

허나 무공 수위가 그리 높지 않았기에, 그 기이한 현상의 원인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허나 화련은 달랐다. 경외심을 느꼈다.

“스승님…….”

남들보다 훨씬 무공 수위가 높았기 때문이다.

자연지기가 몰아치며 온 몸을 따스하게 감싸안는 것이 느껴졌다. 온화한 기운이 혈맥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화련은 감격으로 가빠지는 숨을 가까스로 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스승의 호법을 서려는 것이다.

하수와 고수를 막론하고 모든 무인은 운기조식 중 가장 취약해진다. 온 정신을 내부를 관조하는데 쏟아붓기에, 자칫 사소한 변수 하나에 주화입마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스승님 정도 되는 고수가 그것을 모를리 없으나, 본래 깨달음이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

그렇기에 화련은 세찬 시선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서연은.

눈을 감고 몰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커먼 공간에 당도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공간이었으나, 왠지 모를 편안함이 그녀를 감쌌다.

“…….”

자세히 보니 완전히 시커먼 공간은 아니었다. 마치 잠을 잘 때 눈꺼풀 사이로 살색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처럼, 그 내부 또한 그러했다. 다만 빛이 너무나 미약하여 집중하지 않으면 어둠이라 착각할 뿐이다.

마치 계란 껍데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다가려고 하니 무슨 벽 같은 게 만져졌다. 서연은 별다른 고민 없이 주먹을 들어서 벽을 두드렸다.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서연은 벽을 몇 번 더 두드려보다가, 편안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가 여기에 떨어졌을까.

서연은 여기가 심상 속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나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일반적인 고수들이라면 지금 같을 때에 막혀 있는 혈도를 재정비하거나, 새로 얻은 기운을 갈무리하거나, 혹은 소주천과 대주천을 반복하며 단전에 내공을 쌓고는 했다.

허나 십이정경(十二正經)과 기경팔맥이 뚫리다 못해 자연과 완전히 동화된 서연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육체와 내공은 이미 하늘에 닿았다. 더 나아가고자 한다면 결국 정신이 성장해야 했다.

허나 누구도 그러한 사실을 일러주지 않았기에, 서연은 편안한 공간 속에서 그저 호흡만을 계속할 뿐이었다.

'편안하구나.'

겁쟁이처럼 살았을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그대로다.

바뀐 것은 마음가짐 뿐이다.

시간이 엄청나게 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반쯤 무아지경에 빠진 상황. 호흡을 반복하고 정신이 평안해지자, 서연을 가로막고 있던 단단한 껍질에도 마침내 미세한 실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연도 그것을 눈치챘다. 허나 이어지던 실금은 어느 순간 퍼져나가기를 멈췄다.

‘뭐지?

마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것이라니, 심득을 말하는 것일까?

그러다 정신이 몽롱해지며 무아지경에서 벗어난 순간, 찬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눈이 번쩍 떠졌다.

“아…….”

아쉬움과 탈력감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화련이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시켰던 음식들이 전부 식어 있었다. 화련에게 물으니, 그새 반 시진이 넘게 흘렀다고 했다.

“왜 먼저 먹지 않고.”

“당연히 스승님이 먼저 드셔야죠. 그리고 저는 당과를 먹어서 괜찮았어요.”

서연은 픽 웃고는 근처를 지나가는 점소이를 불러세웠다. 음식을 먹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꼴이 되었기에, 점소이의 얼굴에는 불퉁함이 잔뜩 드러나 있었다.

“식은 음식은 다시 데워서 포장하고, 음식도 새로 내주실 수 있을까요?”

서연은 그러면서 돈을 두둑이 내밀었다. 잔돈은 가지라는 뜻이다.

“금방 내오겠습니다 여협!”

순식간에 대역죄인에서 협객 대접이다. 점소이는 능숙하게 주문을 받은 다음, 대나무로 된 통에 따끈따근한 음식들을 포장해 내밀었다. 저것도 다 값에 포함되어 있었다.

화련이 물었다.

“이건 나중에 드시려고요?”

“저분들 드리려 한단다. 그 사이에 음식이 나오면 먼저 먹으렴.”

서연은 음식을 들고 객잔 바깥으로 나섰다. 들어오기 전 보았던 거지들에게로 향하는 길이었다.

갑자기 연민이 들어 나누어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거지들이었다면 점소이가 벌써 쫓아내고도 남았을 터. 저리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개방(丐幫)에 정식으로 소속된 거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서연이 여태껏 만났던 정파 인사들은 하나같이 도리를 아는 이들이었다. 이 정도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개방 소속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이리 여유로울 때 베풀어서 나쁠 일은 없지 않은가.

서연이 다가오는 것을 본 노년 거지가 넌지시 말했다.

“우리 주시려고?”

“네.”

“……참말로?”

“그럼요.”

노년 거지는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개방 출신이 아닌데?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해서.”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드릴 생각이었어요.”

“그렇다면야 감사히 먹겠소.”

노년 거지는 고맙다며 고개를 넙죽 숙이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리 와서들 먹어라! 이 분이 주신거니까 다들 고맙다고 하고!”

어디선가 슬금슬금 나타난 거지들이 서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서연은 그런 거지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품에서 조각칼을 꺼내더니, 나뭇가지를 꺾어 그 자리에서 수저를 만들기 시작했다.

“…….”

맨손으로 퍼먹으려던 거지들은 눈치껏 서연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솜씨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고는 감탄사를 뱉었다.

“보통 실력은 아닌데.”

“기가 막히네.”

“솜씨가 좋은데,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쇼?”

“잘해.”

“그게 끝이여?”

“잘하면 잘하는거지. 나같은 무지렁이가 봐서 뭘 알겠냐?”

서연은 근처 물가에서 수저를 헹군 다음 거지들에게 건넸다. 거지들은 양손으로 젓가락을 들고 혀를 내둘렀다.

“칠도 안했는데 광이 나네.”

“부자들한테 비싸게 팔아도 되겠어.”

“일다경은 걸렸나?”

서연은 그런 거지들을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편히 드세요. 저도 식사를 해야 해서.”

그렇게 말하며 객잔으로 들어가려는데, 처음에 만났던 노년 거지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일가친척이나 지인 중에 이립 쯤 된 사내가 많소?”

“그건 왜요?”

“혹여 군문에 몸담을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어서. 국경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갔다간 몸 성히 돌아오지는 못할 거야.”

방금 전까지 있던 장난기 가득한 노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듯, 분위기가 돌변해 있었다. 문득 너무 고요해진 터라 서연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인 중에 사내는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여기저기서 타박하는 듯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그러게, 딱 봐도 외동이라니까.”

“형님도 틀리는 때가 있구만.”

“미안합니다. 우리 형님이 가끔 이래. 노망났다니까?”

“가서 사과드려. 이 분위기 어떡할거야.”

“헛소리니까 너무 담아두진 마시고. 알겠지요?”

서연은 거지들이 낄낄대는 것을 보다가 따라 웃었다. 서연은 자신이 이런 초탈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일까, 괜히 한 번 더 물었다.

“혹시 어린 제자를 데리고 구경할 만한 곳이 있을까요?”

거지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숭산에서 칠주야 정도 뒤에 행사를 한다고 하던데.”

“지역은 상관 없는거요? 없으면 섬서는 어떠시오? 조만간 화산이랑 종남이 한 판 한다던데.”

“놀러가기에는 물놀이가 좋은데, 하남에는 마땅한 호수가 없으니…….”

그때 노인 거지가 입을 열었다.

“용문석굴(龍門石窟)에는 가보셨나? 보아하니 조각 솜씨가 아주 뛰어난 듯 한데, 가서 얻을 것이 아주 많을 걸세.”

들어본 적이 있었다. 십만 개에 이르는 불상과 벽화가 있는 깊은 석굴이었던가. 높이가 다섯 장도 넘는 거대한 조각상도 있다고 했던 것 같았다.

옆에 있던 거지가 이어 말했다.

“낙양이면 확실히 가깝긴 하지. 마차를 타면 이틀도 안 걸리겠어. 구경거리도 많아. 옛 왕조들의 수도라 그런가. 식도락 여행하듯이 가도 좋고.”

확실히 영감을 얻을 거리는 많을 것 같았다. 큼지막한 상단들도 자주 집결한다고 하니, 눈도 호강할 것 같았고 말이다.

고민하는 와중에, 골똘히 생각하던 거지 하나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금룡상단이 연다는 각예대회(刻藝大會)도 낙양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때 자네 정도 실력이면 입선도 어렵지 않을거야."

각예. 사물에 예술을 새긴다는 뜻이다. 조각도 각예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다.

거지가 물었다.

"이번 건 어떻소?"

서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밥 값을 치르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