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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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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여기 한 여고수가 있다. 서연의 상상 속에서 방금 만들어 낸 여고수다.

이 여고수는 언제나 삿갓과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탓에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뿐이랴, 무기도 차고 다니지 않는 탓에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그녀의 특징이라곤 오직 영물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중원 무림에 영물을 대동하고 다니는 여고수가 있었다면 소문이 나도 진작에 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모순을 해결할까.

서연은 이 여고수가 사실 일인 전승 신비문파의 일원이었다고 설정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속세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을 테니 위명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어쩌면 먼 과거에는 유명했으나, 금분세수(金盆洗手)를 마치고 강호 무림에서 벗어난 노강호일 수도 있겠다.

젊은 용모야 반로환동했다고 여기면 될 것이다.

이 여고수는 기본적으로 선한 성향을 가졌지만, 속세에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굳이 소속을 따지면 백도에 속한 무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금분세수를 마치고 강호 무림에서 벗어난 노강호 쪽 설정이 더 나아 보였다. 속세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배경을 결정했으니 이제 사용하는 무공과 무기를 정해야 한다. 본래 이런 것은 상세할 수록 좋았다.

근력이나 골격 구조 같은 기본적인 면에서 사내가 여인보다 우위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강맹한 외공이나 중병기를 다루는 데 있어 이러한 차이는 더욱 두드러지니, 여고수들은 힘보다는 기술과 속도, 정교함을 살릴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곤 했다. 상상 속 신비의 여고수 또한 그러할 터였다.

세검(細劍), 연검(軟劍), 비도, 암기, 채찍, 편(鞭), 쌍검, 선(扇)…….

서연은 채찍과 편은 제쳤다. 경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쌍검은 조금 끌렸으나, 서연 자신이 그만한 길이의 검을 차고 다닐 자신이 없었기에 제했다. 검과 연검도 같은 이유로 제하니, 결국 남은 것은 비도와 암기, 그리고 부채뿐이었다.

비도와 암기는 어느 정도 다룰 자신이 있었다. 조각칼과 길이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허나 여고수가 비도와 암기를 다룬다면, 기품이 없어 보일 뿐만 아니라 자칫 사파나 마도의 인물로 비춰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남은 것은 부채뿐이다.

부채는 장점이 많았다. 평상시에 들고 다녀도 시선이 끌리지 않았으며, 얼굴을 반쯤 가리고 부채질만 해도 고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검은 한 번만 휘둘러도 허접함이 훤하게 드러나지만, 부채는 아무래도 그럴 일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부채를 무기로 쓰는 무림인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 부채질하는 척 손끝에 기운을 모아 두꺼운 나무 한두 그루만 베어내도 굳이 고수 연기를 할 필요도 없을 터였다.

‘그러면 진짜 고수 아닌가?

서연은 문득 드는 생각에 미간을 좁혔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어디 강호 무림이 나무 한두 그루 베어 넘길 줄 안다고 끝나는 곳이던가. 무림과 엮이면 온갖 사건 사고에 연루되기 마련이며, 이때의 사건사고란 해결하지 못하면 불구가 되거나 죽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성공하면 좋으냐?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사건 사고에 엮이는 시발점이 되곤 했다. 고로 무림이란 한 번 발을 담그면 죽거나 불구가 될 때까지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도(地獄圖)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겠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서연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실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몸의 떨림도 잦아들고, 긴장도 풀렸다. 심신의 평안을 되찾은 채로 무림인들을 내려다보자, 진짜 자신이 상상 속 여고수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진짜로 거짓말로 속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고로 거짓말은 언젠가 발각되기 마련이었으니, 끝까지 속일 자신이 없다면 아예 시작도 않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저들이 멋대로 착각하는 것까지는 막을 생각이 없는 서연이었다.

마침 품속에 부채 하나가 있었다. 대나무를 잘라 직접 만든 죽선(竹扇)이었다. 서연은 다른 것은 몰라도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자부했다. 실제로 여고수를 본 적은 없었으나, 이만한 부채라면 여고수가 들고 다니기에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마침 새벽비도 멎었겠다, 서연은 품속에서 부채를 꺼내 가볍게 쥐었다. 이내 바로 옆에 있던 두꺼운 소나무를 향해 부채를 휘저으니, 소나무들이 두부처럼 숭덩숭덩 잘려 나갔다. 이는 서연 나름의 기선제압이었다.

“…….”

무림맹 단원들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서연은 소나무를 마저 자른 다음, 큼지막한 통나무들을 의자라도 되는 양 모닥불 주변에 절묘하게 떨어뜨렸다.

탁! 탁! 탁!

나무토막들은 오죽 무거웠는지 땅바닥에 놓이자마자 땅을 깊이 파고들었다.

이쯤 기다렸는데도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자, 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 한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그제야 백호가 기운을 거두었다.

화악!

짓눌릴 듯한 위압감에서 벗어난 무림맹 단원들을 헛숨을 뱉어내며 서연을 노려보았다. 이 와중에도 공포감에 사로잡히기보다 싸울 준비부터 하는 걸 보니, 과연 무림맹의 정예라 할 만했다.

“서서 이야기할까요?”

무림맹 단원들은 장산을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 것이다. 장산은 서연을 위아래로 살피다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

‘터무니없구나.

당최 뭐 하는 여인이길래 저만한 기운을 쉬지 않고 뿜어댄단 말인가? 다른 건 몰라도 내공 하나만큼은 맹주님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나무의 단면도 마치 종잇장처럼 깔끔했다. 저것을 검도 아닌 부채로 저렇게 만들려면 도대체 얼마나 심후한 내공이 있어야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뿜어져 나온 기운에서 패도적이거나 사악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투도 정중하니, 사마외도나 흑도일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화산의 검후(劍后). 허나 검후가 부채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애초에 목소리부터 달랐다. 그 외에도 몇몇 고수들이 장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으나, 마땅한 답은 찾지 못했다.

‘인명부에도 기록이 없는 여고수.

장산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을 노강호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였다.

‘반로환동, 어쩌면 이종(異種)의 혼혈일 수도 있겠다.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반로환동한 고수라면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경어를 쓰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다.

‘꼭 그렇지도 않나?

곧 결심을 마친 장산은 한숨을 내쉬다가 납검(納劍)했다. 소림부터 들를 것을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공연한 직업병이 도져 호랑이굴, 아니. 용둥지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셈이었다.

“……앉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대로 계속 서 있다간 어디 한 군데라도 잘려 나갈 것만 같았다. 백도의 고수라고 어디 자비롭기만 하겠는가. 오히려 백도야말로 이런 면에서는 칼 같은 법이었다.

곧 맹원들이 꺼진 모닥불 앞에 둥글게 둘러앉았다. 장산은 예를 갖춰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는 무림맹 칠조 조장, 장산이라고 합니다.”

“무림맹……?”

“예, 선배님. 여기 맹원임을 상징하는 징표와 맹주께서 주신 명령서도 있습니다.”

“그, 이 깊은 산골에는 무슨 연유로?”

어쩐지 말소리가 작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장산은 애써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소림사에서 맹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방장대사께서 폐관에 드셨고, 나한들 또한 대부분 하남 바깥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라 하니, 그때까지만이라도 도움을 달라 청하여 이리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일월상단 분들을 잡고 심문했던 건.”

“사마외도(邪魔外道)와 연루된 줄 착각하여, 저희가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

서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맹원들을 바라보았다. 어째 폭력을 쓰지 않을 때부터 이상하다 했더니, 설마 무림맹이었을 줄은 몰랐다.

서연이 침묵하고 있자, 눈치를 보던 장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실례되지 않는다면,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예상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서연은 정신이 아찔해져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장산은 그런 깊은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다. 여고수가 입을 닫고 있으니 화가 난 것이라 착각하여 사과부터 했다.

“죄송합니다. 금분세수 하셨을 선배님의 존함을 여쭙는 것이 무례였음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서연은 눈만 껌뻑였다. 이쯤 되니 그녀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선배님이라니. 어쩌다 보니 무림맹을 기만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러다 자칫 사기꾼으로 몰려 옥살이라도 하게 될까 염려부터 앞섰다.

서연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나무토막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는 이전보다 훨씬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

“소인은 서연이라 합니다."

서연은 맹원들을 차례로 돌아보며 나지막이 일렀다.

"맹원 분들께서 소인를 무어라 여기시는지는 모르오나, 소인은 그저 산중에 홀로 기거하는 여인일 뿐입니다. 무공도 익힌 적이 없으니, 여러분께 선배님이라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상인들을 따라나섰던 것도 여러분들께 해코지를 당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니, 부디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설명했음에도 맹원들의 표정은 여전히 괴상했다.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 서연은 덧붙였다.

“……궁금한 것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답해드리겠습니다.”

가장 왼쪽에 있던 여인이 손을 들었다.

“선배님, 후배는 제갈혜(諸葛慧)라고 합니다.”

“선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서연 님, 혹여 나무는 어찌 자르셨는지요?”

“별 볼일 없는 잡기(雜技)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시선을 현혹하여 고수 행세를 하려 했으나,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잡기요……?”

“예.”

“혹시, 한 번만 더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서서 소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속일 마음이 없었기에, 이번에는 부채도 없는 맨손이었다. 맹원들이라면 뛰어난 무인들일 터이니 알아서 잘 분별하리라는 마음도 있었다.

서연은 좌장으로 소나무를 친 다음에 잠시 기다렸다. 서연이 생각하기에, 그건 공격이라기보다는 엉망진창의 헛짓거리에 가까웠다.

의(意)도 없고, 형(形)은 지리멸렬(支離滅裂)했다. 거대한 나무가 쉽게 잘려나가니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나, 어찌 이따위 움직임을 무공이라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저잣거리에서 파는 삼류 무공이 이보다는 깊은 뜻을 품고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이것은 잡기(雜技)에 불과하다.

서연의 자조(自嘲)가 무색하게도, 소나무는 힘없이 동강났다.

“…….”

맹원들은 침묵에 잠겼다. 서연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질문 계속 하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다른 사내가 손을 들었다.

“……그러면 저 범은 선배님께서 직접 키우시는 것입니까?”

“키우는 범은 아닙니다. 어쩌다보니 인연이 닿아 함께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배라 부르는 것은 그만두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마침 백호가 다가와 서연의 얼굴에 거대한 머리를 마구 비벼댔다. 서연은 대화에 집중해야 했기에 백호를 적당히 쓰다듬다 밀어냈지만, 그 모습을 본 맹원들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아예 새파랗게 질려 버린 인원도 적지 않았다.

장산이 손을 들었다.

“그러면 서연 님께서는 태실산에 사시는 겁니까?”

“예. 제자 한 명, 백호 하나, 올빼미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습니다.”

“실례지만 혹 소림과는 이야기가 되어 있으신지요?”

서연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제가 소림을 잘 알지는 못하나, 소림의 청허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긴 했습니다.”

“…….”

이내 장산 역시 입을 다물었다. 서연은 얼마간 더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더는 질문 없으시다면, 저도 몇 가지 여쭈어도 될는지요?”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장산의 자세는 어쩐지 이전보다 더욱 공손해 보였다.

“하남에 파견 나오셨다 들었는데, 일이 그리 심각한가요? 듣자 하니 아랫동네에서는 어린아이가 서른 명도 넘게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장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굳은 얼굴로 답했다.

“문제가 있어도 없게 하겠습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장산은 놀랍게도 이마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서연은 감탄했다. 이 으스스한 날씨에 땀을 흘리는 장산을 보며 놀란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의 무림맹이 참으로 제대로 된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수하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맹주가 어떤 사람인지는 굳이 만나볼 필요도 없었다.

분명 중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협객일 것이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리 생각해주시니 저희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일월상단 분들을 깨워서 잘 돌려보내고, 따로 사과도 해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말하는 것은 아니오나, 무고함이 밝혀졌다면 사과하는 것이 인간된 도리라 생각합니다.”

“……예.”

"여러분들을 보니, 무림맹의 미래가 참으로 밝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 합니다."

고개를 열렬히 끄덕이는 장산과 맹원들을 보며, 서연은 이리 용기 내어 나서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