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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에는 매일같이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복을 빌거나 시주를 올리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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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요 근래 분위기는 조금 이상했다. 소림 방장께서 폐관수련에 드셨음에도 방문객의 수가 예년보다 이할 내지 삼할은 족히 늘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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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들의 얼굴에 만족의 기색이 아닌, 묘한 아쉬움만 서려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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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역시 그 신물에는 미치지 못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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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너무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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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솜씨로는 정녕 신선의 경지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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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의 자랑이자 대웅보전의 주존불(主尊佛)을 친견한 방문객들마다 하나같이 이런 탄식을 내뱉고 사라지니, 승려들은 당최 영문을 몰라 좌불안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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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못한 몇몇 승려들이 조심스레 연유를 물으니,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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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에서 열린 각예대회에서 선녀가 삼신세불을 직접 빚어냈는데, 그 신비로운 불상을 보고 난 후로는 소림의 주존불이 한낱 평범한 조각상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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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의 십팔나한과 사대금강을 제외하고는, 여타 승려들은 방장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산문을 벗어날 수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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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소문의 진위를 직접 확인할 길이 없으니, 며칠째 방문객들의 탄식에 시달리며 번뇌에 휩싸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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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명이라면 그러려니 넘겼겠으나, 찾아오는 이들마다 한결같이 선녀니, 신선이니 지껄여대니, 무시하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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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한 그러했다. 해가 미처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임에도 산문 밖이 소란스러운 기척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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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을 지키던 나한들이 눈을 들어 앞을 주시하니, 무명천을 걸친 무인들이 웬 마차 한 대를 조심스레 호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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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신분의 인물들이 제 신분을 감추고자 호위들에게 평범한 옷을 입히는 것은 강호에서 나름 흔한 일이었기에, 나한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허나, 그 무리 맨 앞에 선 무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나한들은 감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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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 금벽산의 동생, 금벽운(金碧雲)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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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동생이지, 금룡표국을 운용하는 실질적인 주인이나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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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표국주께선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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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긴히 부탁하여 이리 찾아오게 되었소. 지급(至急)이라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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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급한 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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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국에게 급한 일이란 한가지뿐이니, 바로 대단한 표물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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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표국주가 직접 나설 정도라면 보통 표물은 아닐 터. 어쩌면 물건이 아닌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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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들의 표정이 복잡해지는 것을 읽었는지, 금벽운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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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각예대회를 열었다는 소문은 들었을 것이오. 그때 만장일치로 수석을 차지한 걸작이 마차 안에 들어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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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들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며칠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각예대회 이야기에 이미 지긋지긋할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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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곳까지 와서 자랑이라도 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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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표국, 아니. 그 뒤에 있을 금룡상단의 파렴치한 행각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려던 찰나, 금벽운이 다급히 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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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작품은 제작자에게 귀속되는 법이나, 그 분께서 소림에 전해드리면 좋겠다 말씀하시어 이리 찾아오게 되었소이다. 내 확실치는 않으나, 소림 방장대사와 깊은 연이 있으신 분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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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넘기기 힘든 말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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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벽운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림의 나한당주(羅漢堂主)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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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예대회에서 있었던 일은 익히 들었습니다. 약관이 겨우 넘었을 법한 여인이 삼신삼세불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말입니다. 실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겠으나, 그만한 연배에 방장님과 연이 있다는 말은 믿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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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교류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준이 되어야 깊은 연이라 부를 만 했다. 그리고 방장대사와 그만한 연을 쌓으려면, 못해도 고희(古稀)는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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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면 그 여인은 육신의 세월을 되돌리는 노화순청은 물론이고, 인체의 시간을 거스르는 반로환동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인데, 그만한 여고수가 존재했다면 천하에 이름이 알려져도 진작 알려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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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벽운은 답답함을 느꼈다. 허나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다. 서연의 기행을 직접 보지 못했더라면 그도 같은 생각을 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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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들어오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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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당주는 표사들을 이끌고 내부로 향했다. 그때, 듬직한 체구의 승려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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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한당주에게 정중히 반장(半掌)하고는, 금벽운과 표사들에게도 차례로 반장하며 예를 표했다. 표사 하나가 놀란 얼굴로 나지막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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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제자 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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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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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율은 곧 금벽운에게 다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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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께서 참으로 좋은 선물을 받았다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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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금벽운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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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드디어 폐관을 깨고 나오셨다는 뜻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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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무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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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들으니, 이따금 소림의 각주들과 제자들에게 전음을 보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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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침음을 삼키던 금벽운은 표사들에게 손짓했다. 곧 마차 문이 열리며, 고운 비단에 감싸인 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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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비단을 치우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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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물을 제대로 옮겼다는 확인을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곧 표사들이 조심스럽게 비단을 걷어냈다. 곧 모습을 드러낸 삼신삼세불에, 금벽운은 내심 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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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감탄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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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돈으로 그 가치를 감히 매길 수 없는 물건들이 있다. 금벽운이 생각하기에, 지금 눈앞의 불상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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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나한당주와 무율이 멍청한 표정으로 삼신삼세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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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갑자기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염불을 외웠다.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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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이 무려 일다경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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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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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 못한 금벽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서야 두 승려는 깊은 숨을 토해내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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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율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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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태실산에 기거하는 분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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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삼세불을 만든 자의 거처를 묻는 것이었다. 금벽운은 이를 알려주어도 될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무율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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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이리 깊은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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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무율은 망설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한당주는 제 무지함을 한탄하듯, 그러면서도 더없이 후련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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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금룡표국주께서 하셨던 말씀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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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대사와 깊은 연을 맺은 사람이 맞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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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만한 귀물을 선뜻 내어주겠는가. 어쩌면 방장대사보다 배분이 높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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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당주는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무수한 깨달음과, 그 즐거움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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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이 잘 받았다고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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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금벽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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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듣기를, 둘 모두 깊은 깨달음을 얻어 폐관에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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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삼신삼세불을 조각한 후에도 계속 금진송의 집에 머물렀다. 금룡상단의 셋째 금진송 말이다. 나이 지긋한 금룡상단주와 계속 같은 자리에 있던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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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도 할아버지 뻘은 되는 이가 이쪽을 상전 모시듯 하니,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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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당과를 가져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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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은 때때로 달콤한 당과를 가져와 화련에게 건넸다. 화련은 평소 고양이처럼 새침하게 굴다가도, 그럴 때면 당과를 군말 없이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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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교교는 그런 도련님의 모습을 보며 내심 한탄했다. 스승인 서연의 호감을 얻고자 제자인 화련부터 구슬리려는 의도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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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쑥맥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끔찍한 나이차로 도련님이 괜히 상처받을까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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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직접 문 밖으로 나가 당과를 사올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택 문 앞에 인파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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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이를 한 번만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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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수도 떠놓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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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님, 선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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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벽산은 서연의 거처를 철저히 감췄고, 각예대회에 참가했을 때 기록했던 신상정보 또한 즉시 폐기했다. 허나, 서연을 각예대회에서 안전히 빼내고자 금룡상단의 마차에 태웠던 것이 화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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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민초들이 금룡상단의 저택에 물밀듯이 몰려들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식의 복을 빌어달라는 이는 예사요, 서연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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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런지라 도무지 문밖으로 나설 수 없었다. 만약 이대로 노사나불까지 고치러 나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에 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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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관리들이 용문석굴의 출입을 틀어막고 있다지만, 낙양에 사는 사람만 수백만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뚫고 용문석굴까지 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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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진 않겠으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나도 많았다. 마차를 타야 했고, 행인들의 시선을 속일 가짜 마차도 여러 대 구해야 했으며, 동시에 티 나지 않게 은밀히 재료를 실어 나를 사람들도 물색해야 했다. 그 모든 일에 관아가 적극적으로 협조해야만 가능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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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서연은 못해도 몇 개월은 금진송의 별장에서 머물러야겠다고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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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연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낙양 부윤의 일처리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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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이 머무는 곳으로 직접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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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을 모시는 관리인 탓에 섣불리 경어를 쓸 수 없는 것을 이해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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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편히 대해주시는게 제게도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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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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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말에 부윤은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겸손함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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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 부윤이 어떤 사람인가. 오도(五都)에서도 손꼽히는 낙양의 부윤은 지방관 중에서도 최고위직에 가까웠다. 어떤 면에서는 하남성의 총독보다도 권한이 많았으니, 그 힘을 짐작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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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윤은 서연을 잠시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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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나불을 수리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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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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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다른 것을 바라진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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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돈이 부족한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새로운 조각 재료를 구하고 싶은 것 정도였는데, 곧 받게 될 각예대회 상금을 대신하여 재료를 구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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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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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눈빛과 부윤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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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 호흡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흘렀을 때, 부윤은 서연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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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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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윤은 서연이 삼신삼세불을 만드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끝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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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믿음직한 친우와 수하들에게서 소문을 전해 듣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간단한 문답을 통해 완전히 결론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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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을 사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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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꾸며낸 모습일 것이라 단정하여, 금은보화를 비롯한 온갖 진귀한 재료들을 예비해 왔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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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티 없는 진심 앞에 부윤은 내심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음을 직감한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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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이 준비는 모두 끝내놓았소. 재료는 이미 전부 옮겨두었고, 참장(參將)과 이야기도 마무리했소. 당시 기록이 담긴 문건들도 준비되어 있으니, 준비되면 언제든 출발하면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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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금룡상단의 것으로 위장한 마차 수십 대를 낙양 곳곳으로 보내놓았다. 서연과 비슷한 복장으로 위장시킨 여인들을 섬서를 비롯한 온갖 곳으로 보내 시선도 분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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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랴. 참장의 병사들이 민초로 변장하여 용문석굴 주변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으니, 적어도 달포 간은 그 누구도 감히 접근하지 못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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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해도, 금룡상단 문 바깥으로 나서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당장 지금도 문 앞에 수많은 민초들이 웅성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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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부윤은 그런 것조차 당연히 염두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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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의 모든 별장에는 외부와 연결되는 비밀통로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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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도 아닌 금룡상단주 본인에게 직접 전해들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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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윤은 자리에서 일어선 다음, 서재 한편에 빼곡히 쌓인 책들을 더듬었다. 이내 어느 책 한 권을 잡아당기자, 기관이 작동되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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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 천장 중간중간에는 값비싼 야명주(夜明珠)가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 길이가 못해도 백 장은 족히 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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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끝에 마차가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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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부윤과 함께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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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리에 준비된 마차를 타고 용문석굴 입구에 당도했을 때, 서연은 이미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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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을 수비하던 병사들의 얼굴에 묘한 두려움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잘 닦인 병장기에서부터 이들이 정예병임을 알 수 있었으나, 그들의 눈빛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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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무관 하나가 다급히 달려왔다. 그는 서연과 부윤을 번갈아 살피더니,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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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들어가시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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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말에 부윤이 미간을 좁혔다. 못해도 천 명은 족히 되는 병사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을텐데, 도대체 어찌하여 들어가지 못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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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인? 어불성설이다. 하남, 그것도 낙양에서 어떤 정신 나간 무림인이 감히 관부(官府)의 통제를 거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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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가능성은 오직 하나. 부윤보다 높은 자가 방문을 금한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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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군왕(郡王)께서 방문하시기라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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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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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노사나불 옆에 산군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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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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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소리에 부윤은 허탈한 숨을 토해냈다. 낙양을 지키는 정예병들이 고작 짐승 따위에 겁을 먹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무관은 변명하듯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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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세 장도 넘게 커졌다가, 그림자 속에 숨어 사라졌다가, 정신을 차리면 다시 전혀 다른 곳에서 튀어나오는 탓에 도저히 잡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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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만 들으면 병사들이 단체로 환각(幻覺)에 걸리기라도 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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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서연이 조용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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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백호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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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반말을 하려다, 서연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존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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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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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파란색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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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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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서연이 안도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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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 아는 범 같은데, 들어가서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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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범이라는게 성립이 가능한 문장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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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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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분위기가 묘해졌으나, 서연만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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