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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금진송과 나란히 다탁에 앉았다. 금진송은 시종에게 조심스레 다병을 넘겨받고는, 굳이 자신이 직접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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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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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예대회가 열리기까지는 시일이 조금 남아 별채에서 대접받는 중이었다. 서연은 본래 거절할 생각이었으나, 금진송이 너무나 간곡하여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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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제 앞에 놓인 유리잔과 화려하기 그지없는 별채의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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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어지간히 많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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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황금을 산처럼 쌓아두고 살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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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금력만 놓고 보면 중원에서 첫손에 든다고 했다. 어느 정도 과장 섞인 말일 터이나, 아예 헛소리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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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자기 돈으로 산 별채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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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자금을 지원받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불린 것은 본인의 능력이라고 했다. 상재가 타고 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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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을 겪으신 데에는 제 잘못이 큽니다. 적어도 각예대회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제가 도울 수 있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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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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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폐가 아닙니다.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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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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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대답에 금진송은 됐다는 얼굴을 하며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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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는 꿰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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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길을 잘 아는 시종을 붙여드릴테니, 제자 분과 함께 구경하고 오시지요. 저는 가야할 곳이 있어서 함께 따라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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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피했다.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부담이 될까 싶어 자리를 파한 것이었다. 자고로 인연을 맺고자 할 때는 신중해야 했다. 급하게 굴었다간 가까워질 인연도 멀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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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금진송은 바깥으로 나가기 무섭게, 신임하는 수하 하나를 붙잡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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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넉넉히 들고가고, 가문의 귀빈이라 생각하고 대접하거라. 만약 돈이 부족하면, 전장에 내 이름으로 얼마든지 달아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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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는 눈을 껌뻑거렸다. 여인을 만나는 것보다 돈을 버는 것을 좋아하여, 온갖 핑계를 대며 혼사 자리도 거절하던 금진송이었다. 그런 금진송이 갑자기 이리 나오니 낯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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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는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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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이 누구시길래 그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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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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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뱃놀이를 가셨을 때 수적이 습격하기라도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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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는 제가 말 하면서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낙양에 수적이라니. 지나가는 개도 안믿을 헛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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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은 황홀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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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견문을 넓혀주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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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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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도 넉넉히 데려가거라. 거절하신다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가게 해. 신분을 숨기고 계신 분이시다. 직접 힘을 쓰시는 일은 없어야 해. 곤란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너라도 미리 나서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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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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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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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들이 기루에 뼈빠지게 들락거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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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던 금진송은 제 뺨을 몇 번이고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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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소저를 기루의 여인들과 비교하다니! 너도 똑같은 사내였구나. 멍청한 놈! 무례하다고 뺨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다. 맞아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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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은 다시 한숨을 내쉬다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수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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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뺨을 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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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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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게 때려라. 발칙한 생각을 한 내게 벌을 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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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는 눈치를 보다가 금진송의 뺨을 툭 쳤다. 도련님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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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세게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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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정신이 단단히 나가신 듯 했다. 이쯤 되니 수하도 겁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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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혹시 제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어찌 도련님을 때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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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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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러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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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는 넙죽 엎드렸다. 주인이 때리라고 진짜 때리는 시종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모셔서 때리는 척이라도 했던 것이지, 다른 시종이었다면 때리라는 말이 나오는 즉시 넙죽 엎드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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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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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은 바닥에 넙죽 엎드린 제 수하를 보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제 뺨을 계속 때린 탓인지 얼굴 한쪽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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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한 번 봤다고 사랑에 빠지는 것들은 멍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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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으나,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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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재미에 빠져 제대로 사귄 친구가 몇 없던 탓도 있었고, 기루를 들락거리는 형님들이 한심해 보여 여인을 멀리했던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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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금진송의 눈에는 마을에서 이쁘다는 여인들도 다 비슷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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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입이 달려있으면 그러려니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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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연은 달랐다. 본 순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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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은 한숨만 푹푹 쉬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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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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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지독할 정도로 높아서 생긴 일이었으나, 금진송은 끝까지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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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일행은 용문석굴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인산인해를 뚫고 입구에 도착했을 때, 서연은 비로소 용문석굴이 어찌 그리 유명한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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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옛 왕조가 수만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석굴이라 했다. 그 웅장한 크기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석굴의 갯수만 수천 개가 거뜬히 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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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돌아보시려면 열흘은 걸리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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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이 붙여준 시종이 입을 열었다. 짧은 흑발과 흑안을 가진 여인이었는데, 풍기는 분위기만 보면 마치 오랜 세월 살수로 살아온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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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여인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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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嬌巧)라 합니다. 성은 없고, 금진송 도련님을 모신지는 십오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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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눈치를 보던 교교가 자백하듯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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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호위 살수 일을 하긴 했습니다. 거슬리신다면 사람을 바꿔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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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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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계속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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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석굴을 거니는데, 어디선가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명과 함께 누군가를 향한 험악한 욕설이 뒤섞여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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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이 서연에게 물었다. 키가 작아 인파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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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무슨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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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비명이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다 눈살을 찌푸렸다. 용문석굴의 자랑이라던 노사나불(盧舍那佛)의 머리가 뚝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던 것이다. 워낙 크고 무게도 무거웠던지라, 도저히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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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이 부서진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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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광경에 행인들이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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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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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근래 얕은 지진이 났다지만 어찌 노사나불이, 그것도 머리가 박살이 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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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부터 옮겨! 이러다 다친 사람들 다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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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악! 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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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께서 전쟁을 일으켜 천존(天尊)께서 노하신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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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어떤 정신 나간 놈이 황상을 모욕한거냐! 역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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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툼은 순식간에 싸움으로 번져나갔다. 염불을 외우던 스님들조차 일어나 싸움에 돌입한 행인들을 말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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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에 맞아 사경을 해매는 행인들이 적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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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하얀 의복에 피가 묻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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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파편을 단숨에 밀어낸 다음, 혈맥을 두드려 출혈을 틀어막았다. 점혈을 응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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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분위기를 뒤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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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공황이 섞인 얼굴로 제 상처를 보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가락이 몇 번 닿았을 뿐인데 피가 멎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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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표정변화가 극미한 교교마저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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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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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을 잠시 틀어막았을 뿐입니다. 길어야 두 시진이니, 그 안에 의원에게 데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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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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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을 틀어막았단다. 석불에 깔려 뭉개지고 산산이 찢어졌을 혈맥을 말이다. 도대체 내공 운용이 얼마나 섬세해야 그것이 가능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적어도 후기지수라 불릴 급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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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수십 년 강호를 주유하며 산전수전을 겪은 내가고수(內家高手)는 되어야 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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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도련님. 도대체 누굴 데려오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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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력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건만, 이제보니 격의 차이가 너무 심해 인지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반박귀진(返璞歸眞)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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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그만 싸우고 저길 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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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신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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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다툼을 멈추고 수군거렸다. 싸움에 휘말릴 것을 염려하던 민초들도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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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지켜보던 금룡상단의 호위들도 다가왔다. 그들은 교교의 지시를 받고 부상자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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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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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일전에 신의가 하남에 있다더니, 금룡상단에 몸을 담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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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죽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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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했던 부상자들의 가족들이 서연에게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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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참으로, 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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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제 지아비를 살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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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가 따로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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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자신이 의원이 아니라 말하려다가 그저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겸손으로 비춰졌는지, 환성은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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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실려나가는 부상자들을 지켜보다가 교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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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들도 책임지고 치료해주세요. 비용은 제가 따로 지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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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금 도련님께서 비용을 지불할 일이 생기면 원 없이 지원하라 하셨습니다. 애초에 그리 손해도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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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군문으로 끌려간 이들이 적지 않아 민심이 흉흉해지려던 참이었다. 사람 목숨 몇을 구한 것으로 세간의 민심을 얻는다면 금룡상단으로서는 실로 남는 장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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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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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은인이라 하셨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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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과연 상재를 타고난 도련님이다 싶었다. 상가가 심성이 선한 고수와 연을 맺어두어 손해 볼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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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야겠어. 내공을 생각하면 못해도 불혹은 넘었다고 봐야겠지. 그런데도 손만 보면 약관의 젊은이 같으니, 본 실력을 숨기기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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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는 냉혹한 살수의 시선으로 서연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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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목소리와 외양으로 방심을 일으켜 하수는 물론이고 고수에게도 일격을 먹일 생각을 하다니……. 심성은 선한 듯 보이나, 매우 신중하고 계산적이겠다. 적으로 두면 매우 위험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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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도문 소속일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교교는 서연이 정사지간에 속한 무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살수라는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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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진짜로 신의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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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도, 외양도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바로 신의다. 그렇다고 헛소문으로 치부하기에는 이름난 고수들이 하나같이 칭송하는 것을 보면 분명 실존하는 인물이기는 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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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한 실력자라면 웬만한 고수들도 아래로 보일 터이니 저리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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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힘드니 급료나 올려달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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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생각이 복잡해지니 가슴만 답답해졌다. 교교는 다시 본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금 도련님의 은인께서 용문석굴을 편히 관람하실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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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당분간 용문석굴에도 발길이 뜸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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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5장이 훌쩍 넘는 노사나불의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으니, 흉흉한 소문이 돌기 전에 관에서 나서서 출입을 막을 것 분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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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며 서연을 바라봤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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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망가진 노사나불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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