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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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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서연은 금진송과 나란히 다탁에 앉았다. 금진송은 시종에게 조심스레 다병을 넘겨받고는, 굳이 자신이 직접 따랐다.

“용정차입니다.”

각예대회가 열리기까지는 시일이 조금 남아 별채에서 대접받는 중이었다. 서연은 본래 거절할 생각이었으나, 금진송이 너무나 간곡하여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서연은 제 앞에 놓인 유리잔과 화려하기 그지없는 별채의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돈이 어지간히 많나 보다.

진짜 황금을 산처럼 쌓아두고 살 듯 싶었다.

단순히 금력만 놓고 보면 중원에서 첫손에 든다고 했다. 어느 정도 과장 섞인 말일 터이나, 아예 헛소리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이것도 자기 돈으로 산 별채라고 했지.

초기에 자금을 지원받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불린 것은 본인의 능력이라고 했다. 상재가 타고 났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겪으신 데에는 제 잘못이 큽니다. 적어도 각예대회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제가 도울 수 있게 해주십시오.”

“너무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지…….”

“전혀 폐가 아닙니다.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서연의 대답에 금진송은 됐다는 얼굴을 하며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첫 단추는 꿰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문석굴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길을 잘 아는 시종을 붙여드릴테니, 제자 분과 함께 구경하고 오시지요. 저는 가야할 곳이 있어서 함께 따라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금진송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피했다.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부담이 될까 싶어 자리를 파한 것이었다. 자고로 인연을 맺고자 할 때는 신중해야 했다. 급하게 굴었다간 가까워질 인연도 멀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금진송은 바깥으로 나가기 무섭게, 신임하는 수하 하나를 붙잡고 말했다.

“돈은 넉넉히 들고가고, 가문의 귀빈이라 생각하고 대접하거라. 만약 돈이 부족하면, 전장에 내 이름으로 얼마든지 달아두고.”

수하는 눈을 껌뻑거렸다. 여인을 만나는 것보다 돈을 버는 것을 좋아하여, 온갖 핑계를 대며 혼사 자리도 거절하던 금진송이었다. 그런 금진송이 갑자기 이리 나오니 낯설 수 밖에 없었다.

수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저분이 누구시길래 그러십니까?”

“은인이시다.”

“혹시 뱃놀이를 가셨을 때 수적이 습격하기라도 했습니까?”

수하는 제가 말 하면서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낙양에 수적이라니. 지나가는 개도 안믿을 헛소리였다.

금진송은 황홀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내 견문을 넓혀주셨지.”

“……예?”

“호위도 넉넉히 데려가거라. 거절하신다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가게 해. 신분을 숨기고 계신 분이시다. 직접 힘을 쓰시는 일은 없어야 해. 곤란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너라도 미리 나서도록 해라.”

금진송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따라가고 싶다.

형님들이 기루에 뼈빠지게 들락거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금진송은 제 뺨을 몇 번이고 내리쳤다.

‘서연 소저를 기루의 여인들과 비교하다니! 너도 똑같은 사내였구나. 멍청한 놈! 무례하다고 뺨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다. 맞아도 싸다!

금진송은 다시 한숨을 내쉬다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수하에게 말했다.

“내 뺨을 때려라.”

“……예?”

“세게 때려라. 발칙한 생각을 한 내게 벌을 주려는 것이다.”

수하는 눈치를 보다가 금진송의 뺨을 툭 쳤다. 도련님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싶었다.

“더 세게 쳐라!”

진짜 정신이 단단히 나가신 듯 했다. 이쯤 되니 수하도 겁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도련님. 혹시 제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어찌 도련님을 때리겠습니까.”

“때리라니깐!”

“아이고, 이러지 마시고요.”

수하는 넙죽 엎드렸다. 주인이 때리라고 진짜 때리는 시종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모셔서 때리는 척이라도 했던 것이지, 다른 시종이었다면 때리라는 말이 나오는 즉시 넙죽 엎드렸을 것이다.

“하아…….”

금진송은 바닥에 넙죽 엎드린 제 수하를 보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제 뺨을 계속 때린 탓인지 얼굴 한쪽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굴 한 번 봤다고 사랑에 빠지는 것들은 멍청이라고 했다.

금진송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으나,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제대로 사귄 친구가 몇 없던 탓도 있었고, 기루를 들락거리는 형님들이 한심해 보여 여인을 멀리했던 것도 있었다.

여인들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금진송의 눈에는 마을에서 이쁘다는 여인들도 다 비슷해 보였다.

눈코입이 달려있으면 그러려니 했다는 것이다.

허나 서연은 달랐다. 본 순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금진송은 한숨만 푹푹 쉬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다.

‘중증이구나.

눈이 지독할 정도로 높아서 생긴 일이었으나, 금진송은 끝까지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서연 일행은 용문석굴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인산인해를 뚫고 입구에 도착했을 때, 서연은 비로소 용문석굴이 어찌 그리 유명한지를 깨달았다.

멸망한 옛 왕조가 수만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석굴이라 했다. 그 웅장한 크기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석굴의 갯수만 수천 개가 거뜬히 넘었으니 말이다.

“전부 돌아보시려면 열흘은 걸리실 겁니다.”

금진송이 붙여준 시종이 입을 열었다. 짧은 흑발과 흑안을 가진 여인이었는데, 풍기는 분위기만 보면 마치 오랜 세월 살수로 살아온 사람 같았다.

그러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여인이 입을 열었다.

“교교(嬌巧)라 합니다. 성은 없고, 금진송 도련님을 모신지는 십오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슥 눈치를 보던 교교가 자백하듯 덧붙였다.

“……예전에 호위 살수 일을 하긴 했습니다. 거슬리신다면 사람을 바꿔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그러면 계속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석굴을 거니는데, 어디선가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명과 함께 누군가를 향한 험악한 욕설이 뒤섞여 들려왔다.

화련이 서연에게 물었다. 키가 작아 인파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스승님, 무슨 일이에요?”

서연은 비명이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다 눈살을 찌푸렸다. 용문석굴의 자랑이라던 노사나불(盧舍那佛)의 머리가 뚝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던 것이다. 워낙 크고 무게도 무거웠던지라, 도저히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나 있었다.

“불상이 부서진 모양이구나.”

참담한 광경에 행인들이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무리 근래 얕은 지진이 났다지만 어찌 노사나불이, 그것도 머리가 박살이 난단 말인가?”

“사람부터 옮겨! 이러다 다친 사람들 다 죽겠다!”

“끄아아악! 끄아아아악!”

“황상께서 전쟁을 일으켜 천존(天尊)께서 노하신 게야!”

“누구야! 어떤 정신 나간 놈이 황상을 모욕한거냐! 역모다!”

말다툼은 순식간에 싸움으로 번져나갔다. 염불을 외우던 스님들조차 일어나 싸움에 돌입한 행인들을 말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파편에 맞아 사경을 해매는 행인들이 적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서연은 하얀 의복에 피가 묻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섰다.

무거운 파편을 단숨에 밀어낸 다음, 혈맥을 두드려 출혈을 틀어막았다. 점혈을 응용한 것이었다.

어디서나 분위기를 뒤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두려움과 공황이 섞인 얼굴로 제 상처를 보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가락이 몇 번 닿았을 뿐인데 피가 멎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표정변화가 극미한 교교마저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을 정도였다.

“……의원이셨습니까?”

“혈맥을 잠시 틀어막았을 뿐입니다. 길어야 두 시진이니, 그 안에 의원에게 데려가야 합니다.”

교교는 입을 다물었다.

혈맥을 틀어막았단다. 석불에 깔려 뭉개지고 산산이 찢어졌을 혈맥을 말이다. 도대체 내공 운용이 얼마나 섬세해야 그것이 가능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적어도 후기지수라 불릴 급은 아니었다.

최소한 수십 년 강호를 주유하며 산전수전을 겪은 내가고수(內家高手)는 되어야 할 터였다.

‘금 도련님. 도대체 누굴 데려오신 겁니까.

내력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건만, 이제보니 격의 차이가 너무 심해 인지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반박귀진(返璞歸眞)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모두들 그만 싸우고 저길 보시게!”

“신의……신의다……!”

사람들이 다툼을 멈추고 수군거렸다. 싸움에 휘말릴 것을 염려하던 민초들도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금룡상단의 호위들도 다가왔다. 그들은 교교의 지시를 받고 부상자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금룡상단이다!”

“어쩐지……일전에 신의가 하남에 있다더니, 금룡상단에 몸을 담았었단 말인가?”

곧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죽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긴장했던 부상자들의 가족들이 서연에게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의원님! 참으로, 참으로 감사합니다!”

“흑, 제 지아비를 살려주셨습니다.”

“선녀가 따로 없구나……!”

서연은 자신이 의원이 아니라 말하려다가 그저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겸손으로 비춰졌는지, 환성은 더욱 커졌다.

서연은 실려나가는 부상자들을 지켜보다가 교교에게 말했다.

“저분들도 책임지고 치료해주세요. 비용은 제가 따로 지불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금 도련님께서 비용을 지불할 일이 생기면 원 없이 지원하라 하셨습니다. 애초에 그리 손해도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근래 군문으로 끌려간 이들이 적지 않아 민심이 흉흉해지려던 참이었다. 사람 목숨 몇을 구한 것으로 세간의 민심을 얻는다면 금룡상단으로서는 실로 남는 장사였다.

교교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은인이라 하셨던 건가?

물론 아직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과연 상재를 타고난 도련님이다 싶었다. 상가가 심성이 선한 고수와 연을 맺어두어 손해 볼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보기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야겠어. 내공을 생각하면 못해도 불혹은 넘었다고 봐야겠지. 그런데도 손만 보면 약관의 젊은이 같으니, 본 실력을 숨기기 좋겠어.

교교는 냉혹한 살수의 시선으로 서연을 분석했다.

‘젊은 목소리와 외양으로 방심을 일으켜 하수는 물론이고 고수에게도 일격을 먹일 생각을 하다니……. 심성은 선한 듯 보이나, 매우 신중하고 계산적이겠다. 적으로 두면 매우 위험하겠어.

물론 도문 소속일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교교는 서연이 정사지간에 속한 무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살수라는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겼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짜로 신의일 수도 있겠다.

성별도, 외양도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바로 신의다. 그렇다고 헛소문으로 치부하기에는 이름난 고수들이 하나같이 칭송하는 것을 보면 분명 실존하는 인물이기는 할 터였다.

저만한 실력자라면 웬만한 고수들도 아래로 보일 터이니 저리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르겠다. 힘드니 급료나 올려달라 해야겠다.

괜히 생각이 복잡해지니 가슴만 답답해졌다. 교교는 다시 본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금 도련님의 은인께서 용문석굴을 편히 관람하실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 말이다.

‘그건 그렇고, 당분간 용문석굴에도 발길이 뜸하겠구나.

크기가 5장이 훌쩍 넘는 노사나불의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으니, 흉흉한 소문이 돌기 전에 관에서 나서서 출입을 막을 것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서연을 바라봤을 때였다.

서연이 망가진 노사나불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