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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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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인에 관한 소문은 열의 아홉이 과장이라는 말이 있다.
견문이 넓지 않은 민초들의 눈에는 그저 지붕을 한 번에 몇 개씩 넘나드는 무림인들조차 신선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천하에 무력을 증명해 온 구파나 세가가 아닌 이상에야, 일반적인 무림고수에 관한 풍문은 성 하나를 넘어서는 순간 와전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 절세고수인 사마련주조차 어떤 지역에서는 잔혹한 패자라는 소문과 황실이 두려워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비겁자라는 소문이 공존했으니.
장강 이남이었다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혈귀와 살수, 그리고 온 천하의 광인들을 힘으로 무릎 꿇려 휘하에 둔 작자다. 장강 이남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민초들은 사마련주라는 직책조차 함부로 입에 담지 못했다.
허나 섬서만 와도 이야기가 달라졌다. 사마련주를 그저 한 명의 절세고수라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천하가 끝도 없이 넓은 까닭이다.
화양현 같은 현의 민초들에게 절세고수는 너무나 먼 곳의 이야기였다.
하루 살아 하루 벌어 먹기도 바빴다. 사마련주보다 몽둥이와 칼 따위를 들고 약탈을 일삼는 흑도가 더 두려운 법이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은 풍년이 이어지기 전 찾아왔던 가뭄을 기억했다. 피어오르는 새싹의 크기를 보고 한해 농사의 길흉을 점쳤다.
수백 수천 리를 걸어 소림사까지 찾아가 공양을 드렸다. 토속 신앙 따위에 의지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시대다.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헌데.
우우우웅―!
눈 앞에서 성인 남성의 수 배는 되는 나무 기둥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굵기였다.
너른 공터에 서 있는 여인의 손짓 한 번에 그 육중한 기둥이 깃털처럼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그때마다 손끝에서 옅게 휘날리는 도화색 진기가 꼭 날개옷처럼 아련하게 보였다.
민초들은 입을 다물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산신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초고수의 전유물이라는 허공섭물이었다. 내공이 어지간히 많지 않고서는 시도조차 힘들었다.
허나 일평생 농사만 지어왔던 민초들이 자세한 내막을 알겠는가. 당연히 선녀가 부리는 조화로 이해했다.
그새 너른 공터를 둘러싸듯 자리한 민초들의 숫자만 보아도 소문이 퍼진 속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성인 남성 정도는 한입에 삼킬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산군이 큰 송곳니를 드러내고 다가왔을 때에는 비명을 지르거나 엎어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허나 산군이 시선조차 주지 않고 석재 따위를 들고 돌아가자 모두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졌다.
그런 산군을 향해 미소지으며 털을 가볍게 쓰다듬는 여인을 보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예로부터 백호는 상서로운 동물이라 불렸다. 사방신(四方神)의 기원인 영수 중 한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백호를 부리는 존재다.
천상의 가장 높은 곳에 거니는 선녀라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공양을 드리면 한 해 농사가…….”
밭을 갈다 왔는지 쟁기를 들고 있던 사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드높은 금룡상단의 무인들조차 넋을 놓고 지켜보는 것이 민초들의 눈에 훤히 들어왔다. 평소에는 곁눈질로만 쳐다봐야 했던 자들이다.
하나같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백의 장포를 하나 걸친 여인만 못했다.
땅을 갈아야 할 아들을 찾아온 아비가 걸음을 멈추고, 그런 아비를 찾아나선 조부의 걸음이 멈췄다.
선녀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기적을 지켜보는 것에 정신이 팔린 것이다.
선유후부가(仙遊朽斧柯)라는 말이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소리다.
작금의 민초들이 그러했다.
툭, 투툭.
육중한 기둥 위에 기와가 하나 둘 쌓여간다. 마치 편경으로 연주하듯, 서로 맞닿을 때마다 청아한 소리를 뱉어냈다.
민초들은 허공을 딛고 올라선 여인을 그저 올려다볼 뿐이었다. 더 이상 드러낼 경악이 남아있지 않았다.
배우지 못한 몸가짐이 폐가 될까 두려워 그저 몸을 낮출 뿐이었다.
사락.
마지막 기와가 끝단에 내려앉았다. 어느새 지면으로 내려온 서연의 옷자락이 땅 위로 솟아오른 풀잎에 스친 것이다.
그녀는 멍하니 서 있는 총책임자를 향해 고요히 입을 열었다.
“제가 홀로 모든 것을 이루어버리면, 인부들의 생계가 끊어지겠지요.”
“…….”
“그러하니, 제자들과 함께 머무를 거처만을 마련하고 손을 거두겠습니다. 혹여 도움이 필요한 때가 온다면 언제든 불러주시어요. 늘 산봉우리에 머물고 있을 터이니.”
천하를 주유하는 여타 고수들과는 태도부터 달랐다. 거리낌 없이 존대를 입에 담는데, 속마음을 비쳐보기라도 하는 듯 눈동자가 현기로 가득했다.
신녀문주. 누가 보더라도 신선이라 부를 만한 자였다.
일전까지만 해도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총책임자의 얼굴에 음영이 졌다.
족히 몇 달은 걸릴 일을 반나절도 되지 않아 마무리했다. 건축에 소양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초반에는 어디 해보라는 듯한 마음도 없잖아 있었는데, 지금은 깊은 부끄러움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역으로 시험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이 눈치챌 수 있도록 조용히 꾸짖은 것에서 그녀의 자비로운 심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에 두루 이름을 알린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내려놓은 것이다.
‘어떻게든 일 년 안에 끝내야겠구나.
천천히 멀어지는 신녀문주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그리 생각했다.
*****
신녀문의 공사터 앞으로 공양을 드리려는 인파가 장사진을 이루었다.
천상에서나 볼 법한 조화를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한 까닭이다.
대문파가 자리 잡을 것이라던 소문이 삽시간에 가라앉고, 그 자리를 신녀문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대신했다.
민초들은 차마 신녀문주가 머문다는 산까지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 화를 입을 것을 염려한 것이다.
구파의 장문인들이 기거하는 곳에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없는 살림에 소박한 물건들을 들고 와, 현장 책임자들이 머무는 천막 앞에 놓고 가기를 반복했다.
신녀문주께 공양할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거들려고 한 것이다.
건축가들은 난감해하면서도 감히 그 정성을 거부하지 못했다.
“자고로 공양을 드릴 때는 정성이 제일이라고 했네. 어찌 귀천이 중요하겠는가? 천상에서 보면 금은보화도 흙에 불과할 걸세.”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닐 것 같다만…….”
“헌데, 선녀님께서도 육식을 즐기시려나?”
“자네 그러다 큰 변을 당할 수도 있네. 드높은 구파의 신선 분들도 육고기는 함부로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어.”
하루 이틀에 끝날 행렬처럼 보이지 않았다.
뭇 다른 문파들은 이를 개파식을 열기도 전에 세를 과시하는 행사로 받아들였으나, 제대로 항의할 수조차 없었다.
신녀문주 정도 되는 고수는 성 단위를 통틀어서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서연은 새로운 거처로 완전히 이사를 마친 참이었다.
오두막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챙기고, 일대를 처음 자리 잡았을 때의 모습으로 원상복구한 후였다.
화련을 가르칠 때 시험 삼아 거목에 새겨두었던 천수관음만 남겨둔 채였다.
서연의 거처는 일대가 완전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지어졌다. 드넓은 중원을 놓고 보면 낮고 완만한 산에 속했으나, 화양현을 한 눈이 품기에는 충분했다.
“보통 새 문파가 자리 잡을 때면 근처 문파에서 서찰을 보내기도 합니다만, 세 차이가 워낙 막대하니 감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나무 조각을 깎아내던 소녀가 말했다.
손놀림이 각예에 완전히 익숙해진 모양새였다. 손에서 형상을 잡아가는 작(雀: 참새)은 당장이라도 허공을 박차고 날아갈 듯했다.
당소소였다.
사천당문의 직계였던 탓에 문파를 운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서연보다 경험이 많았다.
대사저인 화련도 따지고 보면 모산파의 후계자였으나, 사천당문과의 체급 차가 워낙 막대했기에 이럴 때는 그저 입을 닫고 있는 편이 현명함을 알았다.
근래 당소소의 각예 실력이 일취월장 하는 것에서 위기감을 느꼈던 탓도 있었다.
‘내가, 내가 언니인데……!
대사저로서의 자존심이 뭉개지기 직전이었다.
“스승님께선 예전처럼 편히 돌아다니는 것도 힘드시겠습니다. 죽립을 써도 알아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니.”
제가 깎아낸 작품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당소소가 말을 이었다.
“부친께서도 그 탓에 사천 땅에 가문 밖으로 사사로이 걸음할 수 없으셨지요. 초고수들의 움직임이 그 자체로 온갖 뒷말을 자아내는 탓입니다.”
근래 서연의 무위를 보고 언행이 더더욱 정갈해졌다. 공손히 양손을 모은 몸가짐에서 아미파의 여승에게서나 느낄 법한 절제미와 단단함이 흘러나왔다.
신녀문의 제자된 자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막중한 듯했다.
서연으로 하여금 일문의 집법당주(執法堂主)를 떠올리게 만드는 분위기였다. 어린 제자에게서 문파의 규율을 세우고 처벌을 집행하는 최고 책임자의 기백을 느꼈다.
이럴 때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고는 했다.
문파를 어찌 운영할지는 어느 정도 구상해두었다. 회화루의 여인들과 근처의 고아들을 데려와 간단한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문파가 크다고 하여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기초를 제대로 다지는 것을 더 중요하다 여겼다.
도에 근간을 둔 문파다. 정종무공을 대하듯 접근하는 것이 옳다.
신녀문의 무공은 보통의 재능과 노력으로는 입문조차 버거웠다. 구파나 세가가 그러하듯, 단계별로 가르칠 무학을 구상해야 했다.
‘천녀유검과 비연천공, 연화비영보는 자질이 출중한 장문제자들에게만 가르쳐야겠지.
종남파만 해도 절기에 속하는 천하삼십육검을 제하고도 무려 스무 가지가 넘는 검법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본이 되는 중검의 묘리를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갈래로 발전시켜 온 것이다.
종남에 머물렀을 때 검법을 직접 배웠던 탓일까, 서연은 스스로 중검의 묘리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사람마다 어울리는 검법이 다른 법이니.
언젠가 입문할 문도에게 가르쳐 줄 요량으로 만들어 두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신녀문의 근본은 각예에서 비롯된 정교함이다. 새로 창안하는 검법 역시 그 근본에서 벗어나서는 아니 될 터.
“…….”
서연은 말없이 일어섰다. 초식을 궁리하면서다.
자질을 크게 타고나지 않아도 되는 검법이어야 하니, 삼재검법에서 응용해야 했다.
‘어찌해야 무거우면서 동시에 정교할 수 있을까.
청강석을 떠올렸다. 무림인들이 검격의 깊음을 드러내고자 할 때 사용하는, 단단하기로 이름난 암석이었다.
과거에 한 번 다뤄본 적이 있었다. 단단할수록 힘조절을 세심히 해야 했다. 자칫하면 진흙처럼 덩어리진 채로 부서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때 느꼈던 감각에 종남파에서 배웠던 여러 중검의 투로를 덧씌웠다
기초에 충실하고자 했다. 조금이라도 복잡한 부분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전부 덜어냈다.
사아아―
검을 쥔 손아귀 끝에서 평소와 다른 묵직함을 느꼈다.
천녀유검에 비하면 한없이 투박했으나, 그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투로의 형태를 결정한 이후로는 거침없이 검법을 이어나갔다.
몹시 담담한 형태의 검격이 풀려나왔다.
‘이것도 좋구나.
수비일변도라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럴듯한 보법을 더하면, 제 한 몸 지킬 수단으로는 충분할 듯했다.
서연은 이것이 자만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사천당문의 가주가 열반을 깨달은 육체라 칭하지 않았던가.
이 정도는 응당 해내야 한다고 여겼다.
움직임이 더해질 때마다 검격이 더욱 짙어졌다. 서연은 검로와 방향을 일필휘지로 빈 서책에 써 내려갔다.
나흘 후.
신녀문에 검법이 하나 더해졌다.
*****
“어떻느냐?”
“어…….”
화련은 입을 다물었다.
스승님이 나흘 동안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검을 다루시는 모습을 봤다.
이따금 자신들을 지도해 주시면서도 서책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곤 하셨는데, 설마 그 짧은 시간에 검법을 창안하셨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농부들이 심은 작물이 싹을 틔우지도 못할 시간이다.
대종사라는 말에 틀림이 없다.
“이름이 뭔가요?”
“마땅한 이름은 없단다. 일단은 중검의 묘리를 담았으니, 중검결(重劍訣)이라 부를 계획이란다.”
후일 환검과 유검(柔劍), 첨검(尖劍)같은 검식들을 더할 생각이라는 것처럼 들렸다.
화련은 곁눈질로 스승의 눈치를 살폈다. 입술을 부리처럼 내민 채였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느끼는 것이 있다.
스승님께서는 무학의 이름을 짓는 데 있어 유독 단촐함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으셨다.
스스로를 드러내시기를 꺼리는 성정 때문인지, 아니면 민망함을 느끼셔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화련은 그래서야 아니 된다고 생각했다.
자고로 무학이란 자신은 물론이요, 남들의 눈에도 멋지고 아름다워야 하는 법이다.
무림인들이 괜히 이름에 온갖 거창한 미사여구를 다 붙이겠는가.
종남파가 결코 화산파에 비해 약하지 않거늘, 단지 검법의 화려함이 덜하다는 이유로 화산파보다 세가 약해진 것만 봐도 알 만했다.
문파가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세를 키우려면, 그 이름부터 멋지고 아름다워야 했다.
그러니 신녀검결이다.
‘천하의 모든 검식을 품고 있는 궁극의 검인 거지.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이 웬 말이냐.
그때가 되면 신녀문을 칭하는 말로 바뀌게 될 터였다.
캬!
감탄을 내뱉는 화련의 머릿속엔 더 이상 모산파는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