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363368/105.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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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과의 대화가 끝난 후 나는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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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도 맛있게 먹고.
 
간만의 휴식을 조금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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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녁, 자기 전이 되었고.
 
나는 서재의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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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내일 상담소에 대한 예약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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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륵. 스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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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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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닫지는 않았기 때문에 예약 신청은 계속 열려 있었지만….
 
신청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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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혹시 예약 기능을 잘못 만든 건가?
 
딱히 신청하는 사람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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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이후로는 신청하는 사람을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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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가끔 상담소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많아 상담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내담자들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약을 했으면 그럴 일이 없었을 터였다.
 
무언가 다른 방법을 만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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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만큼은 텅 빈 예약 창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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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협회에서 연락이 왔었다.
 
내일, 나를 좀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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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를 열어야 한다고 하니, 차까지 보내줄 테니 제발 와달라고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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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상담소로 출근하지 말고 쉬라는 뜻이겠지.
 
협회의 호출이 아니었으면 나는 내일도 상담소로 출근하려 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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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에 대한 보상과 정식으로 사과의 말을 드리고 싶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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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하는 게 조금 그렇기는 한데, 사실 납치를 당한 게 처음이라···.
 
나 또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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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러모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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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정신 상담사로서 PTSD의 초기 증상을 경계하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문제는 없었다.
 
악몽을 꾸지도 않았고, 갑작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플래시백 현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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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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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상담사는 자기 자신을 진단할 수 없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의사가 자신의 배를 가를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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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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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생각의 꼬리를 잘라냈다.
 
원래 밤 9시 이후에 떠오르는 생각은 믿지 말라는 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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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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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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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면을 좀 미루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상담사가 된 이후 너무 바빠서 이렇게 누워서 핸드폰을 하는 게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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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일에만 치여 살았다는 생각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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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우연히 익숙한 이름의 링크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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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여전히 시끄럽고 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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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밌는 글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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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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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스 수영복 화보 B컷 공개 [121]
 
작성자: 완장 | 조회: 86,995 | 추천: 1012 | 댓글: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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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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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수가 매우 높은 글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별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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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본 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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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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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어울린다.
 
솔직히 말해서, 다소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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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의 동생이 찍은 화보를 품평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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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기 위해 휴대폰을 끄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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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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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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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운 상태에서 고개만 들어 내 다리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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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존재감을 미친 듯이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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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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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 사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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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을 수 없어서 휴대폰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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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 사진이니, 노출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 친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사진이면 뿔이 잔뜩 나기에는 충분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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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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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
 
병원에서 의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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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게, 약효의 일부가 신체에 남아… 의지와는 관계없이 갑작스럽게 충동이 일거나 혹은 신체의 특정 부위가 멋대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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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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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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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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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가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PTSD 같은 고상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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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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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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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늦은 아침에 집 앞으로 나왔다.
 
어젯밤 일은 그냥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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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피로감을 안고 집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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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입구에 낯선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서 있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운전석에서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급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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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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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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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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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잠을 좀 못 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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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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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열어주는 뒷좌석으로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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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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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소리 없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협회 본부로 향했다. 그리고 익숙한 미팅룸에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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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앞에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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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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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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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원하시자마자, 상담 때문에 바로 설유월 이방인의 숙소로 향하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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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방 안에만 누워 있기에는 저도 좀 답답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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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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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대단하시네요. 정말.”
 
“그래서… 오늘, 제가 직접 모시게 된 겁니다. 오늘만큼은 꼭 쉬셨으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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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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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님은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유일의 헌터 정신 상담사이십니다. A급 헌터, S급 헌터들… 전부 엄청난 인력들이지만 그 분들과는 또 중요도가 다릅니다. 그런 분을 저희가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
 
“헌터 백시은의 건은 저희 협회의 완벽한 판단미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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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한번 내게 사과했다.
 
해태 길드 내부이기에 안전할 것이라, 너무나도 안일하게 생각했다고.
 
상담사님의 출신 길드이기도 했으니까.
 
​
 
앞으로는, 더 주의 깊게 신변 보호를 실시할 것이며.
 
이번 사건의 주범인 백시은은 현재 혼수상태로, 깨어나는 즉시 그 죗값을 단단히 치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사과를 들어줄 뿐이었다.
 
​
 
저번에도 말했지만,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한다.
 
협회에 악감정은 없었다.
 
​
 
진세아에게는 포상이 지급될 것이며.
 
내게는 막대한 양의 위로금이 지급될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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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돈 준다는데 싫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감사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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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더 논의 중이라고.
 
보다 빈틈없이 하기 위해 꼼꼼히 검토 중이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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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백시은의 건이 워낙 이례적인 일이었고, 앞으로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길 만한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 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그렇다는 소리다.
 
​
 
직원은, 그 외에 다른 애로사항은 없는지 물었다.
 
​
 
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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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난 김에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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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예약 시스템을 조금 손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끔 상담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내담자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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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를 더 해서 여러 방향으로 알리면 좋을 것 같았다.
 
차라리 예약 시스템을 100%로 전환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또 조금 애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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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격해졌을 때 즉흥적으로 찾아오는 내담자들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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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제안에 직원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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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실 저희가 준비한 게 하나 있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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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죠?”
 
​
 
그는 설명을 시작했다.
 
협회는 내가 완전히 휴식을 취하는 것을 원하는 눈치였다.
 
상담사가 납치당하고 바로 다다음날, 일터로 내몰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
 
협회가 질타를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따라서 협회는 내게, 아예 당분간 휴식을 권장하지만.
 
​
 
“그렇다 하더라도 저희가 상담사님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습니다. 내담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시는 그 마음을, 저희가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요.”
 
​
 
“그래서, 저희가 절충안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
 
그는 자신의 패드를 켜서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주었다.
 
화면 속에는 메신저 형태의 프로그램 하나가 실행되고 있었다.
 
​
 
“온라인 상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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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라면, 예약 문제로 상담을 받지 못했던 내담자들의 문제 또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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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 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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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방식을 뜻하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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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비대면 상담이기 때문에 혹시 모를 나의 안위 또한 보장될 수 있다.
 
​
 
“… 좋은데요?”
 
​
 
상당히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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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스템을 어떻게 알려야….”
 
​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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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내 걱정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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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모든 공식 길드에, 해당 시스템에 대한 공문을 발송할 생각입니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안 될 이유가 없는데?
 
​
 
이걸 왜 망설였지?
 
​
 
물론, 분명 한계는 있다.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아이컨택.
 
시선을 직접 맞대고, 상대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너지가 나는 경우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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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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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건 맞다.
 
아예 기회를 받지 못하는 헌터들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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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안 그래도 과로가 심하신 상담사님께, 업무가 더 누적될 것이 염려되어 이 부분은 다른 일반 상담사분들께 넘기는 것을….”
 
​
 
“아, 그건 괜찮아요.”
 
​
 
나는 그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정말,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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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도 하고, 저도 하면 더 좋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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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나의 약간의 사명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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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그들보다 잘 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
 
​나는 헌터였었고.
 
그들이 겪는 그 고충 대부분을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헌터들의 상담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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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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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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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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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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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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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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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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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가 루나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
 
평소라면 노크도 없이 벌컥 열고 들어왔을 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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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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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흠칫했다.
 
아무래도 벌써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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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진짜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찍어볼까’ 하고, 아주 잠깐 고려한 후, 매니저에게 살짝만 얘기했을 뿐인데.
 
벌써, 엘리스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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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매니저가 말했을 리는 없고… 누군가 들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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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다급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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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야! 나는 그냥, 옷만 예쁘게 입고, 소장용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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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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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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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총깡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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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딘가로 뛰어가더니.
 
복도 저편에서부터, 무언가 다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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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루나의 문앞에 당도한 엘리스는 자신의 방에서 가져온 옷 한 벌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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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게 옷이 맞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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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옷이라기보다는 천 쪼가리에 가까웠다.
 
몸의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아슬아슬하게 가릴 수 있을 정도의 끈으로만 이루어진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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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그것을 루나의 눈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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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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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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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가 소장용으로 찍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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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아주 해맑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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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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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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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비명을 지르며 침대 위로 뛰어올라 이불 속으로 필사적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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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즉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도주 마법인 토끼굴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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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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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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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토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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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가 도망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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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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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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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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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으로는 작고 귀여운 동그란 꼬리만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엘리스는 그 꼬리를 아주 귀엽다는 듯,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이불 밖으로 질질…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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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아아아악! 선생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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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토끼굴에서는 오랫동안 한 마리 토끼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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