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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깊은 강, 넘을 수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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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의 뒤를 이어 ST의 미드라이너를 덜컥 맡게 된 내가 얻었던 별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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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식어를 이용해 나를 놀려먹는 인간들이 퍽 많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나는 어찌 됐든 산이고, 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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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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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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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 월드컵을 2회 이상 우승한 미드라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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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이틀을 보유한 선수조차 게임의 수명이 다해갈 때까지 채 다섯 명도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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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티어가 어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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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친구들이 보기에는 그냥 내가 프로 도전 선언을 한 것 자체가 그저 흔히 있는 공부라는 길에서의 일탈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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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랭크 게임 돌리기 시작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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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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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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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채야, 너 록 티어가 어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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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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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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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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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아니, 일주일 내내 해서 저 티어인 것도 아니고, 피시방에서 5인 큐를 돌린 이후 집에서 근육통만 끙끙 앓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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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 아직 채 세 판도 못 돌렸을 뿐이지, 내 실력이 어디로 사라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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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남자애들이 나를 보는 시선만 해도 그냥 예쁜 무언가를 보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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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하는 대상을 바라볼 때 보이는 눈빛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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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시절 팬들에게서 자주 보던 모습이었으니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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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자애들 무리 사이에선 나는 그냥 타격감 좋은 인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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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프로 하기 전에 체력부터 길러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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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녀린 우리 은설이가 대체 어떻게 운동을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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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나를 진짜 인형처럼 이리저리 주물러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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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점은 그 만져지는 감각 속에서 근육의 흔적만 느껴졌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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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태로 록 하겠답시고 VR 기기 끼고 게임을 당장 하루 종일 했다간 등교는 고사하고 방에서 나오는 것조차 힘들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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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그걸 아는 만큼, 근육통에 끙끙대던 지난 며칠간 이미 계획을 세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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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안 나오면 그게 자퇴랑 비슷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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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장 학교에 안 나오겠다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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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걱정은 안 시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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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내 선언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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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객관적으로 재능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때가 된다면 말이라도 약간 꺼내 볼 수 있으려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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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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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세워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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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또 혼자 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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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은설이는 진짜 자기 얼굴 뜯어먹고 살면 되는데 이상한 거에 꽂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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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리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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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놔둬. 어차피 전에 선수 만나고 싶다고 유명 스트리머 되겠다면서 방송도 하다가 한 달도 안 돼서 때려치웠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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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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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송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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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홍은설 진짜 해본 적도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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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우리한테 방송 꼭 보라고 해놓고 뜸해지다가 그만 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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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전체적으로 록에 대한 지식이 있다 싶더니, 시청자 수 품앗이를 하면서 나름대로 주워들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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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설은(는) 친구들의 우정에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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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봐. 저렇게 입 닫고 딱 앉아있으면 그냥 화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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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해 연솔아. 우리가 아무리 말해봤자 아이돌 오디션도 안 보는 앤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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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아이돌 티켓팅할 때 록 보러 가는 것부터 이미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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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가 이렇게 또 별을 잃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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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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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위대한 선수들의 기본 학력은 고등학교 자퇴지만, 내가 고점을 갱신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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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점인지 저점인지는 넘어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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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방에서 했던 첫 1인칭 플레이의 기억은 아직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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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했었던 만큼 미숙한 부분도 있었으니 프로들은 나보다 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걸 전제하는 게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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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랭크 게임에서 만나는 상대는 프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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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금 내가 있는 랭크부터 최소 마스터까지는 굳이 1인칭을 위해 VR 기기를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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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이 전생보다 훨씬 더 유명한 게임인 만큼 관련 영상들도 넘쳐난 덕에 판단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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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프로 1인칭 영상은 반응 속도를 감으로밖에 잴 수 없어서 그런지 내 예상보다 느려서 약간 애매했지만. 그건 나중에 티어가 오르든, 프로가 되어 서로 칼을 맞대든 할 때 확인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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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요한 건 랭크 게임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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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티어를 올려야 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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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부모님과의 약속 문제가 아니더라도, 낮은 티어에서 연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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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어별 1인칭 반응 평균 속도와 플레이 영상을 보니 VR 기기에 대한 적응은 차라리 최대한 높은 티어에서 몸을 박으며 해보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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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인 만큼 몰입도가 더 높은 터라 괜히 낮은 티어와 비비다가 나쁜 습관이라도 들면 답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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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든 나는 LOC라는 게임 자체면 모를까, 인게임의 1인칭 시점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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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빠르게 티어를 올리기 위해 집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컴퓨터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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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가 켜지기 전, 화면에 보이는 익숙한 아이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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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위한 프로그램 바로가기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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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이렇게 된 거 방송도 켜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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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프로란 실력도 중요하지만, 경기 외 퍼포먼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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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나같이 아직 지망생 단계도 못 밟은 이들이 스카우터의 시야에 들기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나 인터넷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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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생 같은 경우에는 그냥 3달 제한 조건 따위 없이 착실히 티어를 올리고 ST 아카데미부터 입단해 데뷔까지의 단계를 밟아갔지만, 이번에는 좀 화려한 장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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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 대한 설득과 더불어, 온 이목을 끌어야 프로 데뷔까지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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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내가 당장 노리는 게 프라우드, 그러니까 1군 미드 라이너 자리도 아니고 그랜드 리그—2부리그—의 미드 라이너 자리였으니 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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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에서 물갈이가 가장 많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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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1군에는 프라우드라는 신이 버티고 있는 탓에, 실력이 넘치는 선수는 다른 팀 1군으로 데뷔하고, 그 빈자리를 계속해서 채워 올리느라 언제나 변화가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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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번 자리를 차지하고 유지하는 건 전혀 걱정이 없지만, 거기까지 올라가기에 장애물이 좀 많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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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내가 할 일은 체급을 키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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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싫어하는 리그 관계자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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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조차 뜸한 그랜드 리그라면 더 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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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조급해진 이유는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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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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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의 부상은 마치 그 재능에 대한 저주라도 되는지, 어느 세상에서나 그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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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의 손목은 낫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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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할 뿐...일상생활이 힘들다면 은퇴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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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의 이상 연결인지 뭔지, 게임할 때마다 기기에서 가해지는 전기 자극에 과민반응하는 손목으로 인해 프라우드는 생활에 큰 불편을 겪는 수준이라고 언론에 이미 관련 기사 십수 개가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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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게임을 기기를 통해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이 할 수 있다지만, 저렇게 신경 자체를 자극해버리면 인게임에서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고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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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프로 생활 이전에 한 사람의 팬으로서 프라우드가 차라리 멀쩡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나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나를 이렇게 만들어 과거로 돌려보낸 녀석은 그걸 허락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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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세상은 내가 여자가 되어버린 것 이외에는 큰 역사대로 흘러간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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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달라진 것.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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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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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데뷔전은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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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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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에서 챌까지 :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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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방제에, 이전 방송 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하꼬의 방송이었지만, 시청자들은 홀린 듯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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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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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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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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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와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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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방송 말고 딴 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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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평소 하던 버릇 못 버리고 실시간 채팅을 치던 인간들은 방송화면 한구석에 메모장으로 대충 적어놓은 ‘중학생입니다’라는 공지에 갑자기 바른 생활 인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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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진짜 잘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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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스킬 다피한거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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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딩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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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이기면 골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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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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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전적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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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 끝나고 9승 1패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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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방송인의 외모에 홀려 왔다가, 압도적인 전적에 약간의 흥미를 느낀 시청자들이 오늘의 저녁 볼거리로 골랐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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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위화감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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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잠만 손 왜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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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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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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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키보드랑 마우스로 록하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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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 록은 키보드랑 마우스로 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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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거 캠 ㅂ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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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가상현실 공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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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1발 진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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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시점 아예 안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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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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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랭크 등반이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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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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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피들도 안하는 짓을 중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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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큰일은 청소년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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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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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있는 기능을 안 쓰는 건 족쇄 차는 것과 다름이 없거니와, 논타겟 스킬을 피하고 세밀한 조작을 위해서는 기왕이면 교전에서는 1인칭 시점으로 게임하는 게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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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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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라 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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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화면 속에 보이는 여자아이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오직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한 조작으로 상대 팀 전체를 박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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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 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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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타가 끝난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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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사람들 왜 이렇게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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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다운 앳된 미성(美聲)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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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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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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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구독박음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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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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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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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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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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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1친새끼들아 중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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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블라인드 처리된 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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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대체 마우스랑 키보드로 어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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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ㄱㅈㅉ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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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까지 등반할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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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다행히 은설은 필요한 질문을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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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챌까지 갈거고, 지금 쓰는 거 키보드랑 마우스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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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발언이 클립으로 만들어지고 온 갤러리를 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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