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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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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마검 포르테(Forte) (22) - 도달해 버린 경지

인간이란 무척이나 유용한 재료다.

예를 들어 ‘생물의 소화 기관’을 마법적으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저택 한 채를 지을만한 금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물’을 가져와서 사용한다면, 기껏해야 동전 몇 닢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가난한 이들은 어디에나 있고, 개중에는 제 아이를 팔아서라도 생을 이어가려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자는 그렇게 팔린 아이였다.

현자를 구매한 마법사는 골렘 특유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인간을 재료로 사용하는 게 유용하다는 걸 깨달은 인물이었고, 다른 마법사들이 그 짓거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걸 이해하지 못할 만큼 편협한 인물이기도 했다.

마법사의 거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자처럼 부모에게 팔린 아이들도 있었고, 배불리 먹여주겠다는 유혹에 넘어온 거지도 있었으며, 어디에서 납치라도 해 온 건지 손발이 꽁꽁 묶인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개중 현자는 나름대로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

다른 이들이 맛도 향도 최악인 점액질 비슷한 무언가를 먹을 때 현자에게는 제대로 된 빵과 스프가 주어졌다.

다른 이들이 좁은 우리에 갇혀 먹고 싸기를 반복할 때, 현자에게는 적어도 ‘방’이라고 부를만한 공간과 자유가 주어졌다.

다른 이들이 마법사의 연구 재료로서 팔다리나 장기가 적출되어 강제로 숨만 붙어 있을 때, 현자만큼은 온전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극히 당연한 흐름으로, 현자는 다른 이들의 증오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현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자는 이 상황에 기여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태어난 것도, 팔린 것도, 특별 취급을 받는 것도, 모두 주변에서 멋대로 한 것뿐이다. 현자가 먼저 요구한 건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아무도 현자의 변명을 들어주지 않았다.

모두가 현자를 원망하고 비난하고 저주했다.

그리고 결국엔 그 목소리마저 사라졌다.

현자 이외의 재료가 모두 소진된 탓이었다.

적막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현자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왜 자신을 특별 취급하는 것이냐고.

왜 자신을 재료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냐고.

대답을 기대한 질문은 아니었다.

현자는 이전에도 마법사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아이야, 네가 만약 보석 세공사라고 하자. 네 손에 다시 손에 넣기 어려운 귀한 원석이 들어왔다면, 그걸 곧바로 가공하겠느냐, 아니면 그저 그런 잡석들로 충분히 실력을 쌓은 뒤에 가공하겠느냐?」

빈민 출신이었던 현자는 보석 세공사라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문장의 맥락을 통해 그 내용을 이해했다.

그리고 겁에 질렸다.

마법사의 태도로부터, 그가 충분한 연습을 끝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이제 현자 외에 다른 재료는 없다.

마법사는 이미 충분한 연습을 끝냈다.

허나,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깨닫는 것과 그에 저항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마법사는 현자의 발버둥을 아무렇지도 않게 제압한 뒤에 현자를 재료로 사용한 생체 골렘을 만들었고, 그 완성도에 기뻐했다.

「하하하! 좋군! 좋아! 훌륭한 마력이다! 훌륭한 계산 성능이야! 새로운 몸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구나!」

영생을 꿈꾸는 이들은 많고, 그를 위한 수단 역시 다양하다.

마법사가 선택한 것은 육체의 교환이었다.

낡은 육체가 번거롭다면, 싱싱하고 강력한 육체를 만들어내 거기로 옮겨타면 된다는 발상.

마법사의 연구는 지극히 성공적이었고, 그는 다가온 영생을 기뻐하며 광소했다.

콰직!

그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은 한 가지였다.

현자의 재능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뛰어났던 나머지, 본래 사라져야 했을 자아가 남아있었다는 것.

방심했던 마법사는 머리가 터져 죽었고, 현자는 그 마법사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마법사의 공방에 틀어박힌 채 수년.

한 사람 몫의 마법사로 성장한 현자가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자신의 본래 육체를 되찾는 것이었다.

실력은 부족하지 않았다. 지식도 충분했다. 마법사와는 달리 굳이 살아 있는 인간을 재료로 써도 되지 않을 만큼의 센스도 있었다.

하지만 현자는 자신의 바람을 이뤄낼 수 없었다.

현자는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을 거듭해도, 현자가 만들어낸 생체 골렘의 외모는 똑같았다.

걍팍하고,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괴팍한 마법사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한 것 같은 중년의 남성.

현자의 원수이자 스승인 마법사의 모습.

수소문 끝에, 현자는 한때 자신의 부모였던 이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그들에게 돈을 쥐여주며 질문했다.

과거의 현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얼 좋아했고, 어떤 느낌의 목소리를 냈는지.

그들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 앞에 있는 상대가 그들의 자식이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고, 하다못해 한때 그들의 자식을 구매한 상대와 비슷한 외모라는 것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현자는 인간이 싫어졌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타인과 교류를 나눌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도 항상 주변을 경계했고, 의심했고, 거리를 두었다.

「음, 재수가 없는 얼굴이로군. 혹시 가면 쓴 건 아니지?」

어느 바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현자가 싫어하던 ‘인간’을 그대로 반전해 놓은 것 같은, 그런 멍청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현자는 인간 중에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싫어하는 요소를 갖춘 녀석이라고 해도, 시간이나 경험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만약 그들의 모험이 온전한 해피엔딩으로 끝났더라면, 현자는 자신이 짊어졌던 그 지긋지긋한 굴레를 끊어버릴 수 있었으리라.

허나, 그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현자가 싫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아니, 솔직히 말해서 사랑하고 아끼던 그의 동료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들의 찬란한 영광을 탐내듯이 구더기들이 기어 왔다.

「인류를 위한 자네들의 헌신과 공헌에, 진실된 감사의 말을 표하고 싶네.」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감사인가.

그들이 필사적으로 싸우는 동안 뒷전에서 구경하거나 적당한 생색만 내던 이들이, 전쟁이 끝나고 달콤한 과실을 취할 시간이 다가오자 뻔뻔한 태도로 손을 내밀어왔다.

현자는 그들을 전부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라 하나 정도라면 몰라도 여럿을 홀로 감당하는 건 무리일뿐더러, 구더기들의 손에는 현자와 함께 싸웠던 이들의 유족이 남아있었다.

무엇보다도 마왕은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었다.

마왕이 남긴 투구에는 여전히 강력한 힘이 잠재되어 있었고, 이를 지키고 봉인할 누군가가 없다면 모든 싸움은 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될 터.

그렇기에, 현자는 구더기들이 내민 손을 잡았다.

‘주인 없는 땅’을 그들이 각자의 명분과 술수로 나눠 가지는 꼴을 보았고, ‘대중의 혼란을 막기 위해’ 용사의 모험담을 저들이 입맛대로 각색하는 모습을 보았다.

용사가 구해낸 마을에서 용사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여인이 어린아이와 함께 현자를 찾아오는 일도 있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현자는 그게 진실인지 어떤지 알지 못했다.

확인하려고 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질 않았다.

만약 그것마저 가짜라면 남겨진 책무고 뭐고 모든 걸 다 몰살하고 싶어질 테니까.

세상과 교류를 끊은 채, 현자는 연구에 몰두했다.

마왕의 투구를 온전히 소멸시킬 방법을, 그들의 싸움을 마무리 지을 방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허나, 마음 한구석에선 끝없는 업화가 계속해서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째서 세상은 이렇게도 불합리한가.

노력한 이들은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고, 헌신한 이들은 헌신에 걸맞은 대가를 얻지 못하고, 고결한 이들은 그 고결함 때문에 자신을 더럽히길 주저하지 않는다.

왜 고통받고 괴로워하고 피를 토한 이들이 아니라, 눈치를 살피고 이익을 추구하며 타인을 이용하는 자들이 과실을 취하는가.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답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현자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이 투구를 소멸시키는 것이 옳은가?

마왕은 하나가 아니다.

저들의 세계에는 이 투구의 주인과 동격의 존재가 여럿 있다.

그들이 다시금 침공해 온다면, 그때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고결한 이들이 희생하고, 그 과실은 추악한 이들이 취하게 되는가?

현자의 이성은 자신의 사고 흐름이 비정상적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것이 자신이 보유한 투구의 영향이라는 걸, 마왕의 의지가 자신을 유혹한 결과라는 것도 짐작했다.

하지만 현자의 마음속 울분과 분노는 그 이성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아니, 그런 목소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지워 없앴다.

검은 투구를 뒤집어쓴 순간, 현자는 모든 것이 명쾌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노력하는 자가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법도라면, 보상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면 된다.

추악한 이들이 또다시 몸을 사리려고 한다면, 그들의 자원을 보다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이에게 몰아주면 된다.

자신이 혐오스럽다면, 이 비루한 육신마저도 제물로 바치면 된다.

그렇다면 그때야말로 용사는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올바른 결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자는 자신이 초월의 영역에 도달했음을 깨달았다.

그 초월이 무언가의 간섭으로 왜곡되고 변질되었다는 건 깨닫지 못했다.

쓰러트려야 할 ‘마왕’을 자신이 뒤집어쓰고 있다는 모순 역시 인지하지 못했다.

마왕과 현자가 뒤섞이며 하나가 된다.

일그러졌을지언정 드높은 경지가, 세상에 새로운 법칙을 새겨넣는다.

초월자, 『천공의 현자』가 탄생했다.

그리고.

《─슬슬 눈을 떠라. 계약자.》

피나 발레스티아는 눈을 떴다.


“윽…!”

바닥에 쓰러져 있던 피나가, 신음성과 함께 눈을 떴다.

여기저기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는 넓은 홀.

그곳이 한때 자신이 공략했던 탑의 정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사로서 현자와 성녀, 다른 동료들과 여행했던 기억들.

그리고 현자의 시점에서 그 인생을 다시 체험한 기억들까지.

중간중간 건너뛰는 부분이 있었기에 온전한 체험은 아니었다고 한들, 수백 년 치의 기억이 갑자기 몰려드는데 그야 정신이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피나 양, 괜찮으십니까!?”

그런 피나를 보고, 카일런이 다급한 얼굴로 안부를 물었다.

“정신을 잃은 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안 하셔서 놀랐습니다!!”

“어, 음, 죄, 죄송해요. 근데 제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죠?”

“10분 정도입니다!”

길다면 길지만, 피나가 체감상 느낀 것에 비하면 정말 터무니없이 짧은 순간이었다.

솔직히 아직도 현실감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느긋하게 상황에 적응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파직.

돌이 쪼개지는 소리.

그 근원을 향해 피나와 카일런이 시선을 돌리자, 현자의 석상 곳곳에서 균열이 생겨나는 모습이 보였다.

점점 커져 나가던 균열은 이내 석상을 완전히 파괴했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허공으로 떠올랐다.

검디검은 투구.

그 정체를, 피나는 알고 있었다.

한때 『학살』이라 불렸던 마왕의 잔재가, 음험한 안광을 뿜어내며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피나는 처음 그 시선의 대상이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아니다.

저것이 노려보는 진짜 대상은.

《흠, 내용에 이리저리 개입한 게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나?》

마검, 포르테가 그런 상대를 비웃듯이 비아냥댔다.

《남의 인생을 억지로 덮어쓰려고 했으면 자기 인생이 훔쳐봐질 각오 정도는 했어야지. 똑같은 내용만 끝없이 반복하는 연극이라니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고 한들 혹평을 피할 수 없을 터.》

그제야, 피나는 자신이 체험한 그 기이한 기억이 본래 시스템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시스템은 피나에게 ‘용사 페르난도’의 삶만을 체험하게 하려 했을 것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죽음을 반복하면서.

용사가 도달한 그 결말. 그 비탄과 아쉬움을 직접 경험하며, 그에 동조하도록.

하지만 포르테의 개입으로 상영 내용이 뒤바뀌었고, 본래 보여줄 생각이 없었던 현자의 기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은 시스템에게, 아니.

시스템이라는 존재로 변해버린 현자에게 터무니없이 불쾌한 일일 터.

그것을 증명하듯이, 시스템은 더 이상 메시지를 표시하지 않았다.

그를 대신하듯이, 검은 투구의 아래쪽으로부터 식물의 줄기 같은 것이 자라나, 사람의 형상을 이루었다.

동시에 투구에서 빠져나온 어둠이, 식물과 서로 얽혀 한 몸을 이루었다.

이윽고 완성된 것은, 인간의 형상을 취했으되 인간이 아닌 흑기사.

흑기사가 손을 뻗자, 어둠이 압축되며 검을 이루었다.

그가 그것을 휘둘렀고.

으직.

포르테의 검신에, 균열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