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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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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하인 세드릭(Cedric) (3) - 갑을역전
클라우디아의 아침은 늦다.
그리고 그녀를 보좌하는 하인들의 아침은 빠르다.
그녀가 비몽사몽 상태로 멍하니 잠에 취해 있으면, 저택의 메이드들이 정해진 시간에 들어와 그녀를 씻기고 머리나 옷차림 따위를 정돈한다.
몽롱한 얼굴로 반쯤 눈을 감은 클라우디아의 모습은 화가가 혼신을 기울여 그려낸 명화처럼 아름답지만, 정작 그녀를 보좌하는 메이드들의 얼굴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이 상태의 클라우디아는 아주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에 가깝기 때문이다.
빗질 도중 머리가 엉키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도중 피부가 쓸리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져 그녀가 눈을 뜨는 순간.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그녀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지며 실수를 저지른 메이드를 즉각 ‘처벌’한다.
처벌 중 가장 흔한 것이 뺨을 때리는 것이고, 심하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혀 나가거나 아예 피멍이 생길 때까지 두들겨 맞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클라우디아를 내버려 두거나 아침 준비를 대충 할 수도 없는 것이, 온전히 정신을 차린 클라우디아가 자기 모습을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경우 그건 그것대로 처벌의 빌미가 된다.
결국 메이드들이 할 수 있는 건 조금의 실수도 저지르지 않도록 온 신경을 기울여 작업에 임하는 것뿐.
“으음….”
클라우디아의 의식이 본격적으로 각성한 것은, 그런 준비 작업이 거의 끝마무리에 들어갈 무렵의 일이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눈가를 찌푸렸다.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 잠들었지? 뭔가 마지막 기억이 애매….
「술수라, 하하하. 아가씨께서 그리도 격찬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 세드릭, 입의 무거움 하나만큼은 정평이 나 있으니까요! 아가씨께서 식사에 정신없이 몰두하셨다는 사실은 제 마음속에 평생 묻어두고 가겠습니다!」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부디 필요한 일이 있다면 다시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새로 고용된 하인. 요리. 맑은 눈. 경쾌한 어조.
어젯밤에 있었던 모든 일들과 본인이 지나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기절하듯이 잠들었다는 것까지 떠올린 클라우디아는 저도 몰래 입을 벌려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
“아가씨?”
“아아, 아아아아아아!?”
“아가씨!? 왜, 왜 그러시나요? 클라우디아 님!?”
***
주방이란 생각보다 서열 문화가 강한 공간이다.
불이나 식칼 등 위험한 물건을 다루는 곳이기에 그럴 수도 있고, 자칫 음식에 문제라도 생겼다간 주방 인원 전체가 책임을 분담해야 하는 구조 탓에 그럴 수도 있다.
특히 세드릭처럼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참이 느닷없이 혼자서 주방을 차지한 채 높으신 분에게 바칠 요리를 만들고, 기존 구성원들을 건너뛴 채 주방장에게 직접 칭찬을 받으면 당연히 중간에 끼인 이들에게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없지만.
“이봐, 세드릭! 감자 다 깎았냐!”
“네, 여기 있습니다!”
“양파는-”
“전부 채 썰어 놨습니다!”
“샐러드용 채소는-”
“깔끔하게 씻어서 정리했습니다!”
“좋아, 훌륭해!”
본래 대개의 불만이란, 압도적인 성과 앞에서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는 법이다.
하물며 그 성과라는 게 직접적으로 본인 몸이 편해지는 종류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물론, 아무리 이렇게 해도 세드릭이 혼자서 나 잘났소, 라는 식으로 콧대를 세웠다면 대놓고 말을 못 할 뿐 은근히 아니꼽게 보는 이들은 있었겠지만.
“이야, 넌 진짜 타고났다. 어떻게 그걸 그렇게 빨리하냐?”
“아휴, 이게 어떻게 저 혼자만의 재주겠습니까? 다 선배님께서 친절하게 요령을 알려주신 덕분이지요.”
“으흠, 그, 그래. 내가 가르치는 게 좀 능숙하긴 하지.”
“아, 그리고 물 긷기라면 이미 끝내놨으니, 조금 쉬셔도 괜찮습니다. 제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어? 아니, 그럴 것까진 없는데….”
“가끔은 이런 행운도 있어야 일할 맛이 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음,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고. 하하! 역시 마음에 들어!”
베이스로 삼은 모 카나리아 남자 이상으로 연마된 딸랑 스킬은, 그런 이들의 불만까지도 완벽하게 녹아내리도록 만들었다.
세드릭이 있는 것만으로 자기 몸이 편해지고, 선배로서의 권위 역시 충분하게 존중받는데 구태여 날을 세울 필요가 없지 않은가.
허나, 그런 주방의 화기애애한 평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신입!! 어디 있어!? 당장 튀어나오지 못해!?”
저택 중앙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날카롭고 앙칼진 목소리.
하인들에게는 공포의 대명사로 통하는 ‘아가씨’의 외침에, 편안한 얼굴로 요리를 진행하던 주방 하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이 서로 불안한 듯이 눈빛을 교환하고 있던 그때.
“…세드릭. 지금 당장 날 따라오게.”
집사장 베스티앙.
이 저택의 넘버 2라고 할 수 있는 남자가, 침울함이 담긴 표정으로 주방에 있던 세드릭을 호출했다.
“네, 집사장님.”
세드릭은 이유 한 번 묻지 않은 채, 곧바로 집사장의 뒤를 따라 저택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십여 명이 조금 넘는 하인들이 잔뜩 긴장한 상태로 대기 중이었는데, 그들의 눈에는 세드릭을 향한 연민과 그 불똥이 언제 자기에게 튈지 모른다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중심.
표독스러운 눈빛을 번뜩이며, 클라우디아가 세드릭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왔구나.”
얼음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살벌한 목소리는, 차라리 짐승의 으르렁거림과 닮아 있었다.
아니, 단순히 닮았다는 말로 끝날 문제는 아니었다.
실제로 클라우디아의 주변에는 피를 재료 삼아 뼈와 살을 이룬 것 같은 이형의 늑대 다섯 마리가 주인의 명령만 기다리듯 이빨을 번뜩이고 있었으니까.
베스티앙의 얼굴이 한층 어두워졌다.
이대로면 정말로 시체 하나 치울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그는 흘끗 세드릭의 얼굴을 살펴보았고, 이내 탄식했다.
당장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어도 될지 어떨지 장담할 수 없는 판에, 그냥 멀뚱멀뚱 눈만 껌뻑이고 있는 세드릭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클라우디아의 눈매가 더욱 일그러졌다.
“야.”
“네, 아가씨.”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모두가 긴장 상태로 세드릭의 대답을 기다렸다.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정적 속, 그가 입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모처럼 날이 맑으니, 산책이라도 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게 아니잖아!!
그 자리에 있던 하인들의 속마음이 한순간 일치했다.
-그르르르르!
주변에 있던 혈마수 다섯 중 네 마리가 불쾌하다는 듯이 으르렁거림을 키웠다.
하지만 이내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그들은 남은 한 마리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 시선을 인간의 언어로 형용하자면, ‘넌 왜 가만히 있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터.
-끼잉….
허나 마지막 한 마리는 그런 동료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할 뿐, 절대 세드릭을 향해 덤벼들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겁을 먹은 듯한 그 모습에, 클라우디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레드벨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의식을 통해 만들어 내는 혈마수는, 단 한 마리만으로도 3급의 무인과 버금가는 레드벨만의 특별한 종복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치명상만 입지 않으면 얼마든지 클라우디아의 체내로 돌아와 몸을 회복할 수 있기에, 평범한 맹수라면 몸을 사릴 상황에서도 거침없이 달려들 만큼 과감하고 용맹했다.
그런 혈마수가 주인의 불편한 심기를 알면서도 전투를 기피 한다는 건, 눈앞에 있는 인간이 그럴 기분만 들면 자기를 단숨에 소멸시킬 수 있는 강적이라고 판단했다는 뜻.
만약, 정말로 만약의 일이지만.
정말로 저 하인이 그런 괴물이라서, 덤벼드는 혈마수들을 전부 제압할 수 있다면?
그 모습을 다른 하인들이 전부 실시간으로 보게 된다면?
그래서, ‘에이, 아가씨도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물론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혈마수를 통한 물리적인 위협은 그녀의 권위를 보충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 그녀의 근본적인 권력은 레드벨이라는 혈통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체면을 구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찌할까 고민하던 클라우디아의 머릿속에, 순간 섬광이 번뜩였다.
그녀는 사악한 미소를 지은 후, 세드릭을 향해 말했다.
“정말 네 잘못을 모르겠다 이거지?”
“잘못, 입니까? 혹여 제가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가씨.”
“하! 그걸 주인 입으로 말하게 하는 것 부터가 이미 하인 실격이야. 너 같은 건 여기 고용할 가치도 없으니까, 썩 꺼져!!”
클라우디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은 이 저택에 하인으로 들어왔다.
혈마수를 겁먹게 할 정도의 능력자가 구태여 하인이란 입장으로 들어왔다면, 거기에는 그에 합당한 목적이 있을 터.
목적을 이루기 전에 내쫓기는 건 곤란할 테니, 필시 그녀에게 매달려 애걸할 수밖에는─
“알겠습니다.”
“어?”
클라우디아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드릭은 어깨가 추욱 내려간 채, 얼굴에 낙담과 좌절을 숨기지 않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가씨의 뜻이 그러시다면 저도 어쩔 도리가 없군요. 짧은 시간이나마 아가씨를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렇게 작별 인사를 건넨 세드릭은, 이내 다른 하인들에게도 연신 고개를 숙이며 하나둘씩 작별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클라우디아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자, 잠깐! 뭐야, 그걸로 끝이야? 정말 잘려도 돼!?”
“그야 제가 맺은 고용 계약에는 ‘주인이 마음대로 하인을 해고할 수 없다’라는 내용은 없었으니까요. 후우, 다음에는 더 조심해야겠습니다. 아, 집사장님 그런데 이 경우 제 급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 음, 그게 말일세.”
베스티앙 역시 지금 돌아가는 판이 이해가 안 가는 건 마찬가지인지, 난감하다는 듯이 클라우디아의 안색을 흘끗흘끗 살폈다.
평소 같으면 세드릭의 언행을 불경죄로 꾸짖고 클라우디아의 권위를 세워줬을 그였겠지만, 이번만큼은 클라우디아의 반응도 세드릭의 반응도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그 역시 대응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한편, 클라우디아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지금 이 녀석이 그냥 그만두고 나가버리면… 내 복수는?
일개 하인 따위에게 그토록 농락당하고, 그 하인을 그냥 사지 멀쩡히 내보내다니, 귀족 영애로서든 클라우디아 본인의 성격 때문이든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해코지를 하려고 하니, 혈마수조차 가볍게 제압해 버리는 세드릭의 무력이 껄끄럽다.
레드벨 본가에 연락을 취하면 지원을 받을 수는 있겠지. 근데 뭐라고 지원 요청을 한단 말인가.
-내 하인이 나를 농락했는데,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처벌할 수 없으니까 기사단 좀 보내줘요.
레드벨 후작은 딸의 정신 건강을 염려하겠지.
원수 같은 남매들은 배를 잡고 폭소할 것이다.
어쨌든 이대로 세드릭을 놓쳐선 안 된다.
‘그래, 어쨌든 고용하고 있는 동안에는 이 녀석은 내 하인이잖아? 그러면 골탕 먹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클라우디아는, 헛기침을 한 뒤에 말했다.
“뭐, 정 아쉽다면 해고를 취소해 줄 수도 있어.”
그러자 세드릭의 우울하게 가라앉은 눈망울이 클라우디아를 향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래, 괜찮구나, 뭐?”
“언제 이런 식으로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차마 전처럼 진지하게 업무에 몰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출근하는 것은 같은 직장의 동료들에게도 큰 폐가 되는 일이니, 저는 여기서 물러나는 게 맞을 듯합니다.”
“…….”
클라우디아의 뺨이 부들부들 떨렸다.
팟!
넓게 펼친 부채로 입가를 가린 그녀는, 재차 말했다.
“안심해. 이번처럼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는 없을 테니까.”
그제야 세드릭의 눈망울이 다시 맑아졌다.
어딘지 모르게 감동한 듯한 표정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세드릭의 눈빛에, 클라우디아 역시 왠지 모를 충족감을 느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주인의 사소한 자비에도 감격을 금치 못하는, 바로 이런 게 올바른 하인의 태도 아니겠는가!
“아가씨.”
“흥, 감사 인사 따위는 집어치워.”
“아뇨, 그게 아니라. 계약서에도 그 내용을 적어주셨으면 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