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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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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하인 세드릭(Cedric) (19) - 합리적 추론
클라우디아는 두 다리로 힘껏 뛰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애초에 몸을 움직이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걷는 동작 하나조차도 ‘예절’의 범주에 들어가는 귀족 영애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과거가 무색하게 그녀는 힘껏 달리고 있었다.
저택의 하인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턱 끝까지 차오른 호흡조차도 뒷전이었다.
「세드릭 씨 말인데요. 요즘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해 일하는 양도 크게 줄었고, 속도도 비교적 느려졌고, 그래도 여전히 한 사람 몫은 하고 남았지만, 뭐라고 할까, 이전에는 ‘따라잡을 수 있다는 생각도 못 할 만큼’이었다면 이제는 ‘같은 사람 중에 유능한’ 수준까지 내려온 느낌이었어요.」
「저는 그냥 이제 저택이랑 영지 상태도 안정적으로 변했으니까 조금 쉬엄쉬엄하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번에 보니까, 그… 피를, 토하고 계시더라고요.」
「그것도 특별히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하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흔적을 지우는 모습을 보니까 세드릭 씨 본인도 자기 상태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았어요.」
「남의 개인사 같은 거니까 말해도 될지 어떨지 망설였지만, 그래도 아가씨께서는 알아두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귓가에 들려오는 메이드의 증언을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며, 클라우디아는 서툰 솜씨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세드릭이 머무는 방에 도착하고는 그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니, 열어젖히려 했다.
덜컥! 덜컥!
“세드릭! 문 열어! 세드릭!!”
잠겨 있는 문을 연신 두드리고 잡아당기자, 잠시 후 안쪽에서 문이 열리며 세드릭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유의 강아지 같은 얼굴로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세드릭은,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클라우디아를 보고는 의아해했다.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
“너, 너…! 후우, 그러니까, 후우!”
“일단 좀 진정하시고, 호흡부터 가다듬으시지요. 자, 천천히, 천천히.”
세드릭의 도움에 따라 겨우 숨을 안정시킨 클라우디아는, 따지는 것처럼 세드릭을 다그쳤다.
“세드릭, 너, 혹시 어디 아파? 응?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
클라우디아의 채근에, 세드릭은 순간 눈을 가늘게 하더니, 이내 상황을 짐작했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가씨께서 걱정하실 만한 일은 아닙니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어디야, 어디가 아픈 거야? 의사한텐 가봤어? 내가 불러줄까? 응?”
“아가씨.”
“대체 왜 아픈데 아무 말도 안 했어! 혹시 그만둔다는 것도 그것 때문이야? 아파서 일 못 하면 쫓겨날까 봐?”
“아가씨.”
“내가 너를 그런 거로 내버릴 리가 없잖아! 일 같은 거 안 해도 괜찮아. 오므라이스도, 홍차도, 다 괜찮으니까, 그냥 곁에만 있으면…”
“클라우디아 아가씨!”
평소의 세드릭처럼 장난스레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꾸짖는 듯한 말투에 클라우디아의 몸이 움찔하고 크게 떨렸다.
“말을 억지로 끊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서 무언가를 착각하고 계신 듯하여 그것만큼은 정정하고자 했습니다.”
떨리는 눈으로 불안한 듯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주인을 향해, 하인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우선, 제가 몸이 좀 안 좋은 건 맞습니다만, 아가씨께서 이리 걱정하실 만큼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이었다.
“그리고 제가 일을 그만두려는 것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떠나려 할 뿐. 아가씨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부정적인 일 때문에 떠나려는 게 아닙니다.”
이 또한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주인의 자비에 기대어 곁을 머무를 뿐인 존재는 결코 ‘하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존재가 되는 건 저의 긍지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세드릭은 무엇 하나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틀림없이 클라우디아에게 사실만을 고했다.
그 태도가 너무나도 확고하고 단호한 나머지, 틀림없이 세드릭이 중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던 클라우디아 역시 잠시 혼란을 느낄 정도였다.
결국, 그녀는 일단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 괜찮다면, 됐어. 재고용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답변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 세드릭을 뒤로 한 채, 클라우디아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방에서 멀어졌다.
그녀가 이곳에 있으면 세드릭이 아픈 몸으로 쉬지도 못할 테니 마지못해하는 행동이었다.
주변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묘한 시선들을 눈치채지 못한 채, 클라우디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세드릭의 몸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걸까? 하지만 피를 토했다고 했는데….
클라우디아에게 보는 것만으로 상대의 수준이나 몸 상태를 짐작하는 통찰력 같은 건 없다.
혈마수가 짐승 특유의 감각으로 상대를 파악하고 그걸 클라우디아에게 전달해 줄 수는 있겠지만, 이 또한 그리 믿음직하지는 않다.
강력한 소수 정예로 뭉쳐있을 때도 세드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자잘하게 쪼개서 뿔뿔이 흩어놓은 지금이라면 오죽하겠는가.
그냥 의사를 불러와서 검사하게 해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왠지 세드릭이라면 이것 또한 능숙하게 속여넘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의사가 괜찮다고 말해도, 이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을 터.
그때 문득, 클라우디아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전의 클라우디아였다면 차라리 혀를 깨물었으면 깨물었지 절대로 도움 요청 같은 건 시도하지 않았을 상대였지만, 그게 세드릭에 관한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클라우디아는 각오를 다졌다.
***
“허어, 그러니까, 나보고 그 하인의 상태를 알아봐 달라,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건가?”
레드벨 후작의 얼굴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감정이 스쳤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근 정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터라 일거수일투족을 신중히 움직여야 하는 막내딸이 별다른 약속 하나 없이 대뜸 쳐들어온 것만으로도 기막힌 일인데, 심지어 그렇게 찾아와서 하는 요구라는 게 레드벨의 가주를 일개 하인의 건강 상태 판독기로 쓰고 싶다는 것이었으니 오죽하겠는가.
“농담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평가해 주마. 본래 너무 어이가 없으면 오히려 헛웃음일지언정 웃음이 새어 나오는 법이지.”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여?”
후작의 너스레에도, 클라우디아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고로, 후작 역시 조금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농담이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명색이 내 딸이라는 녀석이 일개 하인의 거처 탓에 이리도 경거망동한다는 뜻이 되니까.”
그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만약 후작의 다른 자식들이 이곳에 있었다면, 창백하게 얼굴을 굳힌 채 머리를 숙이거나, 혹은 속내를 억누르고 한 발 뒤로 물러날 터.
허나 클라우디아의 대응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나한테는 당신의 인정 같은 것보다, 세드릭 쪽이 더 중요해.”
“네가 지닌 모든 것들이, 내 인정 없이 유지되리라 여기느냐?”
“땅에 씨앗 하나 뿌렸다고 그 땅에 생겨난 숲이 모두 자기 소유물인 것처럼 굴지 마. 언제까지 우려먹을 건데?”
가장의 권위가 강력하고,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한 비르카 왕국의 기풍상,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기겁하거나 격노를 드러낼 발언이었다.
그리고 레드벨 후작은 절대로 권력과 권위에 초탈한 인물이 아니었다.
아니었지만.
“흐음.”
동시에 그는 유능했기에, 더 큰 권위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잠깐의 분노나 불쾌함 정도는 얼마든지 억누를 수 있었다.
여기서 클라우디아를 쳐내는 것과 타협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이익인지를 저울에 매단 그는, 이내 결론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몸 상태를 알아봐 주는 것 정도는 해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래 봐야 큰 의미는 없을 거다.”
“무슨 뜻이야?”
“그자가 말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정해진 이상, 네가 무얼 하든 바뀌는 건 없다. 그자는 떠나겠지.”
“뭐?”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이 되묻는 클라우디아를 향해, 후작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단순한 부귀영화를 노린 것이라면, 그 세드릭이란 하인에게는 떠날 이유가 없다. 네 곁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남은 평생 어지간한 평민은 꿈도 못 꿀 생활을 누리며 살 수 있겠지. 적어도 네가 변심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세드릭은 클라우디아의 곁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이 뒤에 클라우디아가 세드릭을 우대한다고 해도, 누구도 불평을 말하지 못할 만큼 압도적인 공훈을.
그런데도 어째서 세드릭은 재계약을 종료하고 떠나려 하는가.
“너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을 텐데? 그 세드릭이라는 자는 절대 평범한 평민 따위가 아니다. 아니, 어지간한 귀족이라 한들 저 정도로 압도적인 능력을 발휘하진 못해. 저건 적어도 국가, 혹은 그에 필적할 만한 거대 세력에서 작정하고 키워낸 인재다.”
클라우디아는 반론하지 못했다.
그녀가 생각해도 지극히 타당한 논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 세드릭이라는 남자를 키워낸 세력은, 저런 고급 인재를 타국에 일개 하인으로서 파견했다. 그리고 피를 토할 정도로 험하게 굴렸지. 즉, 놈의 배후에 있는 존재에게 세드릭은 일개 말에 지나지 않는다. 함부로 낭비할 정도로 싸구려는 아니지만, 대체할 것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충 그 정도 취급이겠지.”
실제로 황태자가 제 분신을 다루는 취급이 딱 그 정도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과연 몰락 직전이었던 가문의 머리채를 붙잡고 다시 왕국 정상까지 올려놓은 후작의 식견은 남달랐다.
클라우디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대체, 대체 그게 누구야…? 어떤 녀석들이 세드릭을 자기들 뜻대로 험하게 부리는 건데?!”
“글쎄. 나도 점쟁이는 아니라서 확답은 못 하겠군. 하지만 만약 제국 출신이라는 그의 말이 단순한 위장이 아니라 ‘들켜도 상관없다’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라면, 그 배후는 황실이겠지. 제국 내의 다른 집단이라면 설령 능력이 있어도 함부로 제국의 존재를 암시할 만한 말을 하진 않았을 테니.”
대악마가 보았더라면 너 점쟁이 맞다고 단언해 줄 만한 추리력이었다.
“그런….”
클라우디아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대륙 남서부 끝자락에 자리 잡은 비르카 왕국과 북서부에 위치한 제국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기에, 비르카인들에게 제국이란 그리 잘 알려진 나라는 아니다.
그저 막연히 ‘먼 곳에 있는 강대국’이라는 인식만이 있을 뿐.
허나, 최근 영주로서 갖춰야 할 여러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는 알고 있었다.
현재 대륙 내에 단독 체급으로 제국과 맞서 승리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고, 2위와 3위 국가들이 힘을 합쳐야 겨우 승산을 논할 수준이라는 것을.
하물며 10위권 내에도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비르카 왕국은, 설령 그 총력을 기울여도 작은 반항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터였다.
“이제 알겠느냐? 네가 그 세드릭이라는 하인을 정말로 손안에 두고 싶다면, 적어도 제국의 황태자와 얼굴을 맞대고 교섭이 가능할 정도의 권력과 권세를 손에 넣어야만 한다. 지금의 너 따위로는, 감히 논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영역이지.”
비르카 왕국에서는 왕조차 함부로 하지 못할 권력자인 레드벨 후작조차, 제국에서는 그저 그런 시골 권력자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 막 날개를 펼친 클라우디아에 이르러서는 말할 필요조차도 없다.
넘어야 할 벽의 높이에 절망한 듯한 딸을 향해, 후작은 약간의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말년에 외롭지 않으려면 조심하라는 세드릭의 충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애써 붙잡으려 하지 말고, 적어도 남은 시간을 소중히 보내도록 해라.”
클라우디아의 그 말을 부정하려는 듯이 덜덜 떨면서 몇 번이나 입을 뻥긋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푹 떨궜다.
후작의 너무나 합리적인 추론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정도가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