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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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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하인 세드릭(Cedric) (7) - 이미지 개선. 저택 편.
저택의 메이드인 네리아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주인 아가씨’였다.
「아얏! …야, 너 지금 장난해!?」
계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주인 아가씨의 아침 단장을 도우며 빗질을 하던 도중, 실수로 머리카락 일부가 빗에 엉켰다.
빗질을 하다보면 으레 있을 수 있는, 그저 그런 사소한 해프닝.
하지만 그 사소한 실수를 저지른 대가로, 네리아는 얼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두들겨 맞고 하루 동안 끙끙 앓아야 했다.
그 뒤로는 끝없는 악순환이었다.
주인 아가씨의 얼굴이 보이거나 그 기척이 느껴지기만 해도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고, 그 상태에서 집안일을 하려 하니 자연스레 실수가 늘어났다.
그러면 또다시 아가씨에게 심한 질책을 받고, 다음에는 더더욱 몸이 움츠러든다.
동료 메이드 중에는 신참인 그녀를 안타까워하며 어떻게든 자리를 바꿔주려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 역시도 한계는 있었다.
주인 아가씨의 행패를 견디지 못한 하인들이 걸핏하면 일을 그만두는 탓에 가용 인력은 늘 빠듯했기 때문이다.
네리아 역시 몇 번이나 일을 그만둘지 고민했지만, 막상 사표를 내지는 못했다.
일찍이 부모님을 잃고 어린 동생들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그녀로서는, 이곳에서 주는 파격적인 수준의 급여를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 네리아에게 있어서, 최근 저택의 변화는 무척이나 기꺼운 것이었다.
주인 아가씨의 관심이 온통 새로 들어온 남자 하인에게 쏠린 결과, 그녀의 심신에도 조금이나마 여유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네리아는 그 여유를 조심스레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을 느꼈다.
주인 아가씨의 무시무시한 성격을 알고 있는 네리아로서는, 이 평화가 언제까지고 이어지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미안해. 저번에는 내가 너무 심했어.”
그래서, 갑작스레 주인 아가씨가 고개를 숙여 사과했을 때, 네리아는 그저 멍하니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충격을 받은 건 네리아뿐만이 아닌지, 주변에 있는 다른 동료들 역시 숨을 삼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아가씨가 힐끔힐끔 네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그제야 자기가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는 걸 자각한 네리아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괘, 괜찮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전부 제 실수이니 아가씨께서 사죄하실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네리아는 다급히, 아가씨가 숙인 고개보다도 더욱 깊게 허리를 굽혔다.
그 행동에 섞인 감정은 송구함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두려움이 더 컸다.
아가씨의 사죄를 진짜 사죄가 아닌, 일종의 시험으로 인식한 탓이다.
여기서 괜히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며 ‘그래요, 정말 너무하셨어요. 따위의 말을 내뱉었다가 아가씨가 손바닥을 뒤집으면, 그 뒷감당을 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니, 그….”
아가씨는 네리아의 잔뜩 위축된 모습을 보고는 말끝을 흐린 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리고 사죄의 뜻으로 이번 급여는 더 많이 넣어놨으니까, 부디 받아줘.”
그걸로 끝이었다.
아가씨는 그 이상 말을 거는 일도, 꼬투리를 잡는 일도 없이, 그대로 네리아의 곁을 떠나 다른 메이드들에게 차례차례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잔뜩 얼어붙어 있던 네리아는, 아가씨가 그 자리를 완전히 떠난 후에야 겨우 몸에서 긴장을 풀었다.
평소 네리아를 자주 도와주던 선배 메이드가 다가와 말했다.
“네리아, 괜찮아?”
“네, 어떻게든….”
“그나저나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레드벨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 가문에서 봉사해 본 경험도 있다고 하는 선배 메이드는, 클라우디아의 행동에 무척이나 놀란 기색이었다.
기본적으로, 귀족이란 아랫것들을 향한 사죄에 인색한 이들이다.
자기보다 밑 사람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 자체가, 귀족으로서 체면을 깎아 먹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예 사죄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사죄의 말 자체는 입에 담지 않고 물질적 보상으로 때우기’ ‘다른 사람을 통해 말을 대신 전하기’ ‘저번에는 오해가 있었다, 처럼 돌려 말하기’ 등으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클라우디아가 방금 저지른 행동은 거의 파격이라고 해도 좋았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클라우디아 본인이 고개를 숙이며, 돌려 말하는 것 없이 직접적으로 사과의 말을 입에 담은 거니까.
“아가씨께서 많이 바뀌신 것 같네.”
선배 메이드의 말에, 네리아는 방금까지 클라우디아가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주인 아가씨의 사죄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에 입은 상처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그저, 한 가지.
아주 약간.
정말로 조금 정도이지만.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긴 것만은 사실이었다.
***
풀썩.
클라우디아는 옷조차 제대로 갈아입지 않은 채, 거의 쓰러지듯이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저택에 있는 하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그동안의 일을 사죄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육체적으로 그리 고된 일은 아니었지만, 클라우디아가 느낀 정신적 피로는 상상 이상으로 막대했다.
평소 하찮게만 여기던 하인들에게 사죄를 건넨다는 굴욕.
남들이 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수치심.
무엇보다도,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사죄 한 번 한다고 끝이 아니다. 그걸 절절히 느끼신 듯하군요.”
“윽.”
옆에서 들려온 하인의 한마디에, 클라우디아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그녀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세드릭을 응시했다.
흐트러진 의복과 어리광이 섞인 눈매로 치켜올려 보는 클라우디아의 모습은 뭇 남성들의 심정을 울릴 만큼 매혹적이었으나, 그를 마주하는 세드릭의 얼굴은 늘 그러하듯 철판이 따로 없었다.
“하인들은 정말로 아가씨를 용서했기에 사과를 받아 준 게 아닙니다. 아가씨가 귀족이기에, 레드벨의 영애이기에, 그들의 고용주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아마 아가씨 역시 그걸 느끼셨을 겁니다.”
클라우디아는 입을 열지 못했다.
세드릭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사과를 건네도 하인들은 여전히 그녀를 두려워했고, 그녀가 어떤 꿍꿍이를 숨긴 건 아닐까 경계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의미가 있는 거야? 어차피 다들 안 믿는 눈치고, 그다지 내켜 하는 것 같지도 않던데.”
“아가씨, 용서라는 건 매대에 올라가 있는 상품이 아닙니다.”
“뭐?”
“내가 사과했으니까, 상대는 반드시 용서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 자체가 착각이자 오만이라는 뜻입니다.”
클라우디아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닥을 쓸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말로 의지를 표명했으니, 남은 건 행동으로 증명할 뿐이지요. 그리고 이런 면에서 아가씨는 제법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여태까지가 워낙에 바닥이었던 만큼, 그냥 ‘평범하게’ 아니면 ‘조금 우호적으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요.”
본래 선인으로 유명하던 이가 작은 일탈을 저질렀을 때, 사람들은 그 선인에게 어마어마하게 비난을 퍼붓는다.
본래 악인으로 유명하던 이가 작은 선행을 베풀었을 때, 사람들은 그 악인에게 의외의 면모가 있다며 재평가한다.
클라우디아의 평판은 틀림 없이 바닥이고, 그녀를 향한 주변의 기대치는 한없이 낮다.
허나, 그런 그녀이기에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아주 강렬한 인상을 새길 수 있다.
“특히 아가씨는 외모가 아름답고, 그 혈통 또한 고귀합니다. 아가씨 본인에게는 내키지 않는 일일지 몰라도, 이는 아가씨가 하려는 일에서 큰 강점이 될 겁니다.”
평민 병사가 상처를 입고 쓰러지자, 누군가가 그의 상처를 치료해 줬다.
시골 아낙네가 자투리 천으로 상처를 치유해 줬다면, 병사는 ‘고마운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아름다운 공주님이 손수건으로 상처를 치유해 줬다면, 병사는 ‘황송한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언뜻 우습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 실제 효과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계급관념이 강하게 뿌리박힌 사회라면 더더욱 그렇다.
비르카 왕국의 변방은 귀족들이 벌써 백여 년 가까이 무능을 뽐낸 탓에 이 계급관념이 많이 무너져 있지만, 레드벨의 영지가 있는 왕국 수도권은 여전히 귀족은 그저 귀족이기에 굉장하고, 고귀하다고 인식하는 평민들이 굉장히 많다.
이를 철저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세드릭은 말했다.
“가끔이라도 좋습니다. 본인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하인이 있다면, 그들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십시오. 특히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린 자에게는 적절한 포상을 주고, 그 공적을 다른 하인이 보는 앞에서 치하하시는 게 좋습니다.”
“잘못에는 관용을 베푸십시오. 허나, 이는 어떤 잘못이든 무조건 용서해 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 방식은 일시적으로는 하인들의 지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아가씨의 권위를 약화하는 일이니까요.”
“아가씨의 마음속에 명확한 상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하인들이 추측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드러내십시오. 단, 이를 공개적인 규칙으로 만들어선 안 됩니다. 기준을 명문화하는 순간, 하인들이 의식하는 대상은 아가씨가 아니라 그 기준으로 바뀔 테니까요.”
“반대로 기준을 일부 드러내되 전부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 모호한 부분은 아가씨가 뜻대로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될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세드릭이 말하는 내용을 클라우디아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하인들에게 한 일이 ‘잘못’이라는 건 막연히 인식했지만 그게 어느 정도로 심각한 일인지는 여전히 실감하지 못했고, 세드릭이 말하는 군주의 자세라는 것도 잘 지켜내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 세월 어리광쟁이 귀족 영애로 살아온 그녀가, 결심 한 번으로 그렇게 쉽게 바뀔 수는 없는 법이기에.
허나 상관없었다.
클라우디아가 실수를 저지르면 세드릭은 그 실수를 지적했고, 그에 대한 개선법을 알려주었으니까.
클라우디아가 의문을 느끼고 질문을 하면, 세드릭은 그에 대해 명쾌한 해법을 말해주었으니까.
클라우디아는 한 번 알려주면 열을 아는 천재가 아니었으나, 적어도 반복해서 가르치면 그것을 체득할 수 있는 수재 정도는 되었으니까.
“메이드장 파울라는 본인의 직책에 비해 경력이 짧은 것을 신경 쓰고 있습니다. 선임 메이드들이 연달아 저택을 떠난 결과 이제 3년 차인데 메이드를 총괄하는 직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아가씨께서 그녀의 권위를 인정해 주신다면, 그녀는 분명 아가씨에게 깊은 감명을 느낄 겁니다.”
“정원사 루돌페는 자기가 모처럼 가꾼 정원이 매번 혈마수들의 난동으로 엉망진창이 되는 탓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말은 안 했지만 노고를 알고 있다. 항상 고생해 줘서 고맙다.’라고 은근히 말을 흘려주시면 필시 기뻐할 겁니다.”
“주방장 크루알로는 아가씨께서 본인의 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무작정 요리를 칭찬하기보다, 그가 요리에 어떤 변화를 줬을 때 그 부분을 지적하시고, 그에 대한 호불호를 말씀해 주신다면 필시 더 큰 열의를 불태울 겁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주 신중한 태도로 아침 단장을 도와준 메이드를 향해, 클라우디아가 말했다.
“흐음. 좋네. 마음에 들어. 솜씨가 늘었구나, 네리아.”
메이드는 눈을 크게 뜬 뒤, 이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