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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받은 나는, 그 즉시 루크에게 연락을 넣었다.
[Belief_]: 당장 내일 가도 될까요?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다.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빠른 응답이었다.
[루크]: 언제든지 오셔도 좋습니다.
입장 시간은 늦은 저녁.
그 전까지는 딱히 할 일도 없었고, 굳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대충 흘려보내기로 했다.
늦잠을 자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교내 부지를 산책하고.
평소처럼 일정을 분 단위로 쪼개고 분석하고 훈련으로 채워 넣는 날들과는 달랐다.
하루 정도는, 이렇게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조용히 가온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올 만한 연락도 없었기에, 아예 워치를 벗어두고 다녔는데 오랜만에 꺼낸 워치를 켜자마자, 진동이 우르르 몰려왔다.
“……뭐야 이거.”
[Summer 님으로부터 온 부재중 연락]
[Summer] 모
[Summer] 해
[Summer] ?
[Summer 님으로부터 온 부재중 연락]
[Summer 님으로부터 온 부재중 연락]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순식간에 화면을 가득 메운 알림창.
나는 그 중 음성 메세지를 클릭했다.
이어폰도 없이, 워치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
- … 뭐해? 흠흠. 좋아. 이렇게만……. 해인아, 어디야? 주말인데 뭐해? 밥 먹자.
처음엔 뭔가 혼잣말 같았다가, 자연스럽게 내게 말을 건다.
앞부분엔 자신도 모르게 녹음된 소리인지, 어색한 기침 소리와 중얼거림이 섞여 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워치 자판에 손가락을 올리고, 짧게 답장을 남겼다.
[Belief_]: 나중에. 오늘은 나 약속 있어서.
잠시 후, 읽음 표시.
곧바로 한 줄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굳이 답장하지는 않았다.
이제 곧,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쁜가 ….”
윤채하는 침대에 엎드린 채, 옆에 펼쳐둔 책에 곁눈질을 보냈다.
표지는 여전히 화려하다.
[방구석 마법사도 궁금해하는 관계의 법칙~ 궁극의 필살 플러팅 199선!]
저번에 반쯤 장난으로 사용해봤던 책.
처음엔 그냥 심심풀이, 어쩌면 가벼운 호기심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윤채하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이 감정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더 신중하게, 더 진지하게.
진짜, 고서를 읽듯이 차분히 활용하려 들었다.
이제 막 4번째 전화를 걸기 직전, 그녀의 눈에 한 문장이 들어왔다.
‘너무 당기기만 하면, 당신에게 질릴 수도 있어요! 적당한 밀당은 필수!’
“그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그녀는 워치를 천천히 내려두었다.
“…….”
가만히 기다렸다.
“……이 정도면 됐겠지?”
윤채하는 시선을 돌려 시각을 확인했으나.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
역시 안 맞는다.
밀고 당기는 건, 그녀의 적성이 아니었다.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외투를 걸치고, 숙소 문을 열고 나섰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정해인의 기숙사 앞. 정신없이 가다 보니 어느새 여기.
주말의 늦은 오후, 복도는 조용하다.
교류전도 끝났고, 대부분의 인원이 본가로 향한 듯 했다.
그러나, 그가 떠나지 않은 것쯤은 알고 있었다.
원래 남자 기숙사는 여학생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감시가 심한 것도 아니었고, 주말이기도 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모자를 눌러쓰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걸리면 혼나겠지.’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아주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문을 똑똑 두드렸다.
‘뭐라고 말하지? 마법 질문? 진로 질문? 아니면 그냥….’
솔직히, 보고 싶었다고?
- 우당탕!
안에서 무언가가 덜컹거리며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침대에서 막 일어난 사람이 허둥지둥하는 몸짓.
아무래도 침대에 누워있던 듯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러다가.
- 끼익….
조용히 열리는 방문 틈새.
그러나 그곳에서 새어 나온 것은, 후끈한 열기였다.
게다가, 정해인의 향에 기분 나쁘게 섞인 이질적인 체향까지.
그녀는 즉시 손을 휘저었다. 냄새를 밀어내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문 사이로, 고개를 내민 얼굴.
“어?”
어깨선을 타고 흘러내린 느슨한 옷과, 눕다 일어난 듯 흐트러진 땋은 머리칼의 여성.
볼은 희미하게 상기되어있다.
윤채하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
모의 단체전.
정해인에게 사이드에서 작살났던 그의 소꿉친구.
하시온.
윤채하의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이 상황이 어지러운 것은 시온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해인이는 아르카디아 교단을 방문해, 지금쯤 성지에 입장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 빈 시간을 이용해 그녀 나름의 해피 타임을 즐기러 온 것이었는데.
당연히 방문자도 강아린 유하나 중 하나일 줄 알았다.
슬슬 걸릴 때가 되긴 했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니까.
그런데, 눈앞에 있는 여성은 그녀가 예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
시온은 순간, 꽤 귀찮아질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윤채하는 순간적으로 이를 꽉 깨물고 단숨에 문을 열어젖혔다.
- 화악.
‘··· 뜨거워.’
갇혀 있던 열기와 습기 섞인 공기가 복도를 따라 확 퍼졌다.
그녀는 급하게 방 안을 훑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정해인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가 돌아간다.
마치 삐걱거리는 인형처럼.
윤채하의 시선이 시온을 향했다.
“하….”
시온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아르카디아 교단, 외곽 지하 접견실.
나는 지정된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은은한 촛불과 신성력이 어우러진 공간.
나는, 성지 입성을 위해 대기하는 중이다.
내가 입성할 수 있는 것은 천여울의 시간대였기에.
용사인 요한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잠시 뒤, 복도를 따라 로브를 입은 신관 한 명이 조용히 다가왔다.
“형제님, 성지로의 인도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 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한 것이 많다.
수련 효율 뻠핑을 감안한 모래주머니부터, 이것저것 한 보따리 싸 왔다.
그때였다.
“왔어?”
신관의 옆에서, 천여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 와.’
처음 보는 분위기였다.
그녀의 복장은 평소와는 달랐다.
전통적인 문양이 금으로 수놓아진 성지용 의복.
몸에 꼭 맞게 디자인된 옷은 그녀의 신체의 곡선을 여실히 드러내며 여러 느낌을 동시에 자아냈다.
“미안, 이거 옷 입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
천여울은 민망한 듯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안에선 다 벗어야 하는데…참.”
나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벗어? 뭘 벗어. 왜 벗어.”
나는 다급하게 물었으나, 그녀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건 들어가면 알 일이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농담이겠지. 그래도 성녀인데···.
우리는 천천히 성지로 향하는 복도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지 입구에 다다랐다.
거대한 문은 닫혀있고, 그 앞에는 용사의 문양을 달은 신도 두 명이 서있었다.
그때.
- 우르르르….
두꺼운 문이 천천히 진동하며 열렸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이 묘하게 무겁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요한이었다.
“하….”
훈련에 지친 듯, 온몸이 땀에 젖어 있다.
그가 나오자 대기 중이던 신도들이 일제히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의 땀을 닦아내고 수건을 건넸다.
정적을 깨듯 옆의 신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제, 두 분이 들어가실 차례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여울 역시 짧게 숨을 들이쉬고, 옆으로 걸음을 맞췄다.
신전 천장 너머, 유리 채광창을 통해 달빛이 스며든다.
이미 달이 중천이었다.
“자, 잠깐.”
그때, 막 나가려던 요한이 우리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우리를 본 듯, 그 얼굴에 당혹감이 퍼졌다.
그의 시선이 천여울에게 잠시 머문다.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로 옮겨진다.
“둘, 둘이 들어가는 거야?”
“그렇습니다.”
신관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요한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천여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끝이 조심스럽게 소매를 더듬더니, 망설임 없는 손길로 내 팔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요한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들어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이끄는 대로 발을 뗐다.
“어.”
성지의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턱을 넘는 순간, 성지 내부에서 퍼지는 신성력이 피부에 와닿는다.
숨을 들이쉬자, 폐 깊숙이까지 차오르는 차갑고 맑은 기운.
- 우르르르르….
문이 닫히며,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밀실이 완성되었다.
고요하게 내려앉은 빛줄기.
빛은 오직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달빛뿐.
은은한 빛이 성지 내부를 감쌌다.
성스러운 기운이 사방에 스며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마치 차가운 신성력이 폐 깊숙이 스며드는 듯한 기분.
경건함보다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두 발로 땅을 가볍게 디뎠다.
그리고 몇 번의 점프.
“미쳤네.”
느낌이 다르다.
나도 설정만 하고, 이용할 생각은 단 한 번도 못 해봤다.
철저히 성녀와 용사의 전유물이었으니까.
신체가 활성화 되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난 싸 온 짐들을 풀어헤쳤다.
모래주머니에, 근력밴드를 비롯한 여러 도구들.
내게 허락된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 짧은 시간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선 효율적인 분배가 필요했다.
지금부터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 지금부터 좀 바쁠 것 같아서, 각자 할 거 열심히….”
천여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때.
- 스르륵….
천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
“야, 너 뭐….”
그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고 있던 성스러운 예복을, 천천히, 한 겹씩 벗고 있었다.
소매를 풀고, 허리끈을 느슨히 하고, 자연스럽게 옷이 어깨에서 미끄러졌다.
진짜 벗는 거였어?
- 스르륵….
이제 슬슬 위험하다.
나는 고개를 재빠르게 반대로 돌렸다.
"옷 좀 여며. 눈 둘 곳이 없잖아."
“그게 아니고, 성지 내부에 떠다니는 신성력을 더 잘 받아들이려면… 피부를 최대한 노출해야 하거든.”
아?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오히려 내가 예민한 건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작 천여울은 별 생각없는데, 나만 유난인 느낌.
“그래…?”
이론상으로는 이해가 됐다.
실제로, 손등처럼 드러난 피부에 좀 더 느껴지는 것 같긴 하다.
옷으로 덮인 부위는 상대적으로 둔한 느낌이고.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다 벗을 건 아니야, 너도 조금은 벗는 게 좋을걸?”
천여울의 말에 설득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왕 온 거 좀 더 잘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나는 웃옷을 살짝 벗어 넘기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련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할 건 해야지.
그때.
“해인아.”
“어.”
무심코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그대로 숨을 삼켰다.
스르륵.
천이 흘러내리며 드러난 그녀의 반 나신.
목덜미를 타고 내려온 예복 아래, 옆구리의 선이 고요히 드러났다.
달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타고 내려와, 그녀의 어깨와 골반을 따라 부드럽게 번진다.
예복 아래, 그녀가 걸친 복장은 예상 밖이었다.
성스러움보단, 신성력을 흡수하는 데 특화된 기능성 복장.
가릴 곳은 정확히 가리되, 노출되는 피부 면적은 최대.
어찌 보면 성지에서 입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옷이었다.
성스러운 공간의 기운과 그녀의 대비되는 모습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그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엔 익숙한 장난기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겹쳐 있었다.
“어때, 나 예뻐?”
얼굴이 뜨거워진다.
뭔가를 대답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눈 둘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 어.”
아무래도, 오늘 훈련에 집중하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