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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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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아슬아슬했다. 최대한 빨리 뛰어오긴 했는데, 살짝 늦었다.

적절한 발판이 없었다면 좀 힘들었을 수도.

광장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메두사의 잘려 나간 머리는 바닥을 구르다 멈췄고, 그 주변에는 뱀의 사체가 흩어져 있었다.

그 너머로 교수들과 영웅들이 나를 주시한다. 그들의 시선에는 놀람과 경계가 뒤섞여 있었다.

놀랄 만도 했다.

메두사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우우웅

손에 쥔 하르페가 미세한 진동을 내며, 점차 빛을 잃어갔다.

‘끝인가.

전에 하르페가 사실상 일회용에 가깝다고 했었다.

그 이유가 이거다. 오랜 시간 돌 속에 잠들어 있던 녀석은, 단 한 번 사용하면 힘을 잃는다.

그만큼 강력한 무기였고, 메두사의 목을 단번에 벨 수 있었던 것도 이 녀석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만간 무기를 하나 구하는 게 좋아보인다.

나는 하르페를 허리에 차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사실상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가장 익숙한 인물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속한 B반의 담당 교관, 도한성이었다.

“교관님.”

그는 전장을 정리하며 여러 영웅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부상자를 후송하고, 잔여 병력을 정비하며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

내가 다가가자, 그는 곧장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를 향해 묻듯이 말했다.

“해인 학생. 대체 어떻게….”

나는 그의 말을 끊으며 곧장 본론을 던졌다.

“양동작전입니다. 메두사는 어디까지나 미끼였습니다.”

도한성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네?”

그리고 내 말을 곱씹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의 반응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조금 전, 한 마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놈은 제 욕망을 꿰뚫어 보며 속삭였어요. ‘전부 줄 수 있다’고.”

그의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떠졌다.

그리곤 조용히 중얼거렸다.

“…모라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모라스는 그만큼 인지도가 있는 마인이기도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여기 인원 전부가 가야 할 겁니다.”

맞는 말이다, 녀석은 분신을 사용한다. 많은 분신을 잡아도 본체를 잡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으니까.

“잠시만요!”

뒤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한 남성.

그의 견장에는 어떤 길드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단호하게 외쳤다.

“모라스가 정말 찾아왔다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전원이 움직일 순 없습니다. 메두사를 소환한 자들을 역추적하는 게 우선입니다.”

“만약 숨어있던 그들이 또 다른 마물을 소환한다면? 그땐 대응할 수 없게 됩니다.”

나는 고민했다. 그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마물은 메두사 하나다. 그들이 추가로 소환할 수 있도록 준비된 마물은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증거도 없고, 설득할 논리도 빈약하다.

‘어떡할까.

나는 짧게 고민했다.

전원이 모라스를 쫓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저 말도 틀린 건 아니니, 적절히 타협하고 빠르게….

그때였다.

“인형술사의 추격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

그와 동시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인물들을 확인했다.

은빛 갑주를 입은 여성. 그리고 그녀를 따르는 사제들.

교단의 또 다른 무력 집단.

팔라딘.

용사를 따르는 ‘크루세이더’가 있다면, 성녀를 따르는 ‘팔라딘’이 있다.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차분히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했다.

“우리가 인형술사들을 추적합니다.”

“그러니 나머지 분들은 모라스를 쫓아주세요.”

그녀의 말에 반박하던 남성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모라스를 찾는 것이 인형사를 역추적하는 것보다 쉽다.

게다가 팔라딘은 마인 추적에 특화된 집단이다. 그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도한성이 다른 영웅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부상자는 병동으로 빠르게 후송하고, 전투 가능한 인원은 바로 해산해 모라스를 추격합니다.”

그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인 학생….”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가 내뱉은 짧은 한숨 뒤, 무거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방금, 그 모습을 보고도 가지 말라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겠죠.”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강조하듯 덧붙였다.

“그러나 조심해 주세요.”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모라스를 죽이고, 본체까지 찾아낸다. 그게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소란스럽던 외부와는 달리, 이곳은 신성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촉촉한 공기가 감도는 내부,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희미한 촛불의 빛이 아른거린다.

그 중심에는 자애로운 표정을 지닌 여신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그 눈길이 마치,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감싸는 듯했다.

가온 부지 내에 있는 아르카디아의 교회였다.

천여울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그녀의 피부를 스치며 서늘한 감각을 전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그 손에는 누군가가 준 십자가가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여신님….”

고요한 마음으로, 천천히 기도를 올렸다.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은은한 빛이 퍼졌다. 각색의 빛줄기들이 교회 내부를 물들였다.

신성한 향이 공간을 감쌌다.

은은하게 타들어 가는 향초의 향기, 오래된 목재에서 풍겨 나오는 묵직한 기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바깥이 고요해지고, 교회 내부도 한층 더 깊은 정적에 잠겼다.

그리고—

-또각, 또각.

낯선 기척.

아니.

예상했던 기척.

천여울은 시선은 여신상에 고정한 채,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길을 잃으셨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자애롭고 따뜻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곳은 성녀나 주교 이상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으니, 나가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침입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또각.

발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하하하….”

교회의 고요를 깨는 듯한, 낮고 불쾌한 웃음.

마치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기묘한 울림.

“성녀님, 저에게는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가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어둠에 녹아드는 검은 로브, 희미한 촛불에 번지는 가면의 윤곽.

모라스였다.

그는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가면의 입가 너머로, 조롱하듯 부드럽게 속삭였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욕망이 있습니다.”

그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건 성녀님도 예외가 아니겠지요.”

천여울은 다시금 시선을 여신상으로 돌렸다.

그리고 짧게 중얼거렸다.

“팔라딘을 호출하겠습니다.”

그러나 모라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습니다.”

그는 나직이 웃었다.

“외부에는 메두사가 있습니다.”

그 순간, 천여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모라스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입꼬리를 찢어질 듯 끌어올렸다.

“그럼 이만, 제게. 보여주시겠습니까? 그 욕망.”

그의 가면 너머, 검은색 동공이 붉게 물들었다.

순간, 공간이 흔들렸다.

모라스의 능력— 욕망의 개안(開眼).

그것은 상대의 마음 깊숙이 잠재된 진짜 욕망을 꺼내 보는 능력이었다.

설령 상대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욕망이라 할지라도.

그 붉은 눈빛이 천여울을 향해 번졌다.

-스스스슥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모라스의 몸이 굳었다.

“……?”

그의 웃음이 멈췄다.

그리고, 그의 가면 너머에서 번지는 동공이, 점차 떨리기 시작했다.

“……뭐야?”

그가 본 것은.

신앙의 흔들림도.

권력의 욕망도.

세속적인 갈망도 아니었다.

천여울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가장 원초적인 두 가지 욕망.

그중 하나는.

너무나도 ‘불순한 욕망’.

정해인이라는 자와의 육체적인 결합. 그러나 단순한 교감이 아니었다.

그 너머, 상상조차 적나라하고 짙게 물든— 차마, 말로 옮길 수도 없을 만큼 강렬한 욕망.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너무나도 ‘순수한 욕망’.

악신의 무조건적 말살.

너무나도 순결하여, 그 자체로 광기처럼 보일 정도로.

그 순수하고 염원에 가까울 정도로 신실한 의지에, 모라스의 입가가 경직됐다.

“이건….”

그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는, 욕망을 조종하고 유혹하는 자.

악신의 부활은, 인간이 절대 알고 있어서는 안 될 정보였다.

그럼에도.

천여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모라스는 한발짝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알려야 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천여울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아니.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부스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십자가가.

조용히,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드디어 됐네.”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아노의 성력.

오랜 세월 동안 신성력을 머금고 있던 그 힘을, 그녀가 온전히 흡수한 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 쿵.

공간이 일그러졌다.

교회의 내부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숨을 쉬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목재로 된 문들이 스스로 닫힌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붉게 물들며, 기존의 은은한 빛들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 빛은 곧 푸른빛으로 변했다.

신성한 푸른빛이 공간을 물들였다.

모라스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공간이 변화하고 있다. 아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재편성’되고 있었다.

“…뭐죠, 이건.”

그는 뒷걸음질 쳤다.

이 기운은, 마인으로서 결코 가까이 해야 할 기운이 아니었으니까.

“이게 뭐냐고!!”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직.

그 공간의 주인이.

느릿하게 일어나며, 자신의 이름을 선언할 뿐.

“성전(聖殿)이 열렸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교회의 바닥이 푸른 빛으로 빛나며 신성 문양이 새겨졌다.

모라스의 몸이 강제로 붙잡혔다.

중력의 방향이 뒤틀렸다.

공간 자체가 그녀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미래 언젠가,

수만 명의 마인을 묶고 태워버렸을 그 ‘성전(聖殿)’이—

이곳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이 움직였다.

천여울을 중심으로 허공에서 찬란한 휘장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운명처럼,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천여울의 복장이 서서히 바뀐다.

더 이상 수녀의 복장이 아니다.

대신, 그녀의 몸을 감싼 것은—

마치, 신의 대리자와도 같은 선녀(仙女)의 복장.

흰색과 푸른빛이 섞인 얇은 천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모라스의 몸이 저절로 꿇어앉았다.

마치, 신 앞에서 절을 강요당하는 것처럼.

그녀가 속삭였다.

“여기에는, 네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 촤아아악.

푸른빛이 성전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 빛은 기존의 신성력과는 본질이 달랐다.

그것은 오랜 신앙에서 비롯된 힘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을 향한,

오직 ‘한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가 지금 이 공간에서 모시는 존재는 여신이 아닌, 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였다.

“그러니, 조아려. 내가 모시는 신에게.”

그리고 천여울이 손을 내렸다.

그 순간.

-콰직!

모라스의 몸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비명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분신은, 본체로 기억을 전달할 틈도 없이, 완전한 ‘신성의 법칙’에 의해 소멸되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그녀가 모시는 단 하나의 신에게.

사랑하는 그 존재에게.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