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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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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가람의 시련을 돌파하기가 어느새 10일.
불길 사이를 걷는 것이, 훨씬 평탄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혼자였을 때는 감당 못할 열기도 지금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여기!”
“응.”
순간순간의 단어로도 서로가 원하는 바를 완벽히 이해한다.
눈빛만 봐도 알 것 같다.
나침반을 쓰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같이 간다면 진짜로,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불길이 갈라지고 거대한 문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야가 탁하고 트인다.
정제되지 않은 불길은 더 이상 없다.
순수하고 완벽한 불길만이 다시 한번 뜨겁게 타오른다.
철제 바닥, 거대한 용광로가 부글부글 끓는다.
어둡고 깊은 대장간의 입구가 그곳에 있었다.
나, 아니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거대한 망치를 들고 불길을 뚫고 나온 불가람이 크게 한 번 웃었다.
“시련은 재밌었나?”
“전혀요.”
“네!”
나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옆의 윤채하는 격하게 반응했다.
“네 아이는 좋다는데.”
깊게 울리는 불가람의 목소리가 대장간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대체 얘가 왜 제 아이입니까?”
윤채하는 잠깐 망설이더니, 슬쩍 내 쪽을 바라봤다.
뺨에 묘한 붉은 기운이 떠올랐다.
“… 싫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이라고 하니까 어감이 좀 이상하다.
결혼도 안 한 총각한테 아이는 무슨 아이.
“별걸 다 신경 쓰는구나. 네가 정성들여 키우면 그게 네 아이지. 내 아이냐?”
“아, 예.”
딱히 반박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단어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일 뿐.
불가람은 대장간으로 안으로 들어서며 크게 한 번 손짓했다.
“자, 두 명 다 제대로 연대의 의미는 깨달은 것 같으니….”
- 콰과과광!!
한가운데로 타오르는 용암 기둥이 붉은 하늘을 뚫고 솟아올랐다.
“들어와라. 나의 공방으로.”
그가 한 발자국씩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망치가 바닥을 쿵, 쿵 울렸다.
그 진동이 바닥을 넘어, 뼛속까지 깊숙이 전해졌다.
천장에서 커다란 쇳물이 쏟아질 듯 출렁거린다.
대장간 전체가 거대한 화산처럼 진동한다.
용암이 사방에서 분출해 땅과 하늘을 만들고, 공간을 가득 채운 열기와 신성력이 피부를 찌르며 파고들었다.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두 눈으로는 다 담기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경이로웠다.
여기는, 더 이상 인간의 공간이 아니었다.
불가람.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철과 불의 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위대한 장인의 공방.
문이 서서히 열린다.
불가람(不伽藍)의 공방(工房)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와….”
“우와….”
나와 윤채하는 광활한 내부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세상 모든 신화와 전설이 아티팩트가 되어 벽마다, 선반마다 눈부시게 전시되어 있다.
나는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이곳은 신의 영역에 도달한 대장장이, 불가람의 공방, 즉, 성지였다.
아르카디아가 교단 내에 안배해둔 성지조차 여기 앞에서는 장난감처럼 느껴질 뿐.
“선택은 한 번이다.”
불가람의 목소리가 대장간 전체에 울렸다.
단 하나밖에 고를 수 없다니 아쉬울 법도 하겠으나, 어쩔 수 없다.
이곳은 이미 죽은 자의 공간이며, 저 무구들은 신적인 존재가 직접 만든 아티팩트들이다.
한 개 이상을 감당하기에는 인간은 너무 나약하다.
억제력이 이를 막는다.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했다.
불가람이 크게 한 번 웃으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원하는 무엇이든, 단 하나씩 고르도록.”
나와 윤채하는 조심스럽게 진열장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아티팩트가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어떤 것은 태양처럼 타오르고, 어떤 것은 달처럼 은은한 빛을 흘린다.
[헤라클래스의 곤봉]
[페르세우스의 방패]
[헤르메스의 신발]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전설적인 아티팩트들이 내 시야를 어지럽혔다.
“나… 뭐 골라?”
윤채하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왔다.
사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이미 오래전에 정해뒀다.
그러나, 윤채하는 아니다.
이곳에 오게 될지 아예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
따라서 윤채하의 건은, 같이 고심하며 고르면 편이 좋아 보였다.
“같이 봐줄까?”
“응.”
윤채하가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진열장을 하나씩 살피며 걷다가, 나는 문득 머릿속으로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윤채하는 허기의 탐구자로 아티팩트의 본질을 흡수하는 게 가능하다.
만약 여기 있는 아티팩트들의 알맹이만 쏙 빼먹는다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나는 슬쩍 불가람의 눈치를 살피며 윤채하를 공방의 사각지대 쪽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가능 불가능을 묻는다면, 불가능하다.”
그는 우리 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쯧.”
아무래도 들킨 모양.
이곳의 주인인 그가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진짜로 불가능한 거다.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아티팩트 사이를 거닐기 시작했다.
윤채하는 진열대 여기저기를 돌며 한 손엔 이상한 아티팩트를 들고 와선 내게 들이밀었다.
“이건 어때?”
[아르테미스의 속옷]
“… 진심이야?”
윤채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르테미스는 사냥의 신, 활을 잘 쏜다. 따라서 시온이 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윤채하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한참을 돌아다니던 중, 내 시야에 유독 강렬한 아티팩트 하나가 들어왔다.
[헬리오스의 화관]
[태양 가까이에서도 결코 녹지 않을 헬리오스의 화관.]
[특수 효과]
[인페르노]
[모든 것을 집어삼킬 파멸의 불꽃]
인페르노.
원래라면 윤채하가 허기의 탐구자 대신 각성했어야 할 세 번째 권능이었다.
현재, 윤채하가 추가적인 각성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화관은 예외였다.
장착만 해도 인페르노를 사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반드시 장착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윤채하는 이를 흡수할 수도 있었다.
화관 앞에 멈춰선 윤채하는 마음에 들었는지 말없이 한참을 그 붉은 왕관을 바라봤다.
불길이 살아 움직이듯 화관 위에서 일렁인다.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 먹을 수 있겠어?”
질문이 좀 이상하긴 하다.
윤채하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불가람은 그제야 선택이 끝났다는 듯, 화관을 진열장에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꼭꼭 씹어 먹어라.”
따뜻한 한마디까지.
의외로 상당히 친절하다.
윤채하는 화관을 받아들고, 손끝에 닿은 불꽃에 살짝 화들짝 놀랐다.
“앗… 뜨거.”
한입에 넣기에는 좀 크다.
그래도 머뭇거림은 길지 않았다.
윤채하는 화관의 테두리부터 작은 햄스터처럼 야금야금 베어 물기 시작했다.
- 아작, 아작.
신화의 불길이 입 안에서 사라지는 광경.
헬리오스가 보면 기절할만한 장면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제법 귀여웠다.
그렇게 몇분간 씹어먹더니, 손에 들린 화관은 어느새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윤채하는 배가 부른 듯 아랫배를 살살 문질렀다.
“맛있….”
나직하게 한마디 남기고는, 그대로 푹,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윤채하?!”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받쳐 안았다.
그러나 윤채하는 깊이 잠에 빠진 듯, 곱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다.”
불가람의 굵은 목소리가 공방 안에 울렸다.
“신들의 보구, 그중에서도 불꽃이라는 근원에 닿은 힘이다. 네 아이가 그것을 흡수했다면, 그만큼 큰 변화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조심스레 윤채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뜨거워.
혹여 몸에 무리가 온 것은 아닌지, 불가람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제는, 없는 거죠?”
불가람은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릇이 부족했다면, 이미 이 자리에서 모두 불타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저러고 있는 건, 이미 자격은 충분히 갖췄다는 증거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잠시 기다려라. 곧, 눈을 뜰 테니. 뭐… 대화가 잘 된다면 말이지.”
긴장으로 굳었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좀 안도가 된다.
나는 그녀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렇게 쓰러질 거였으면 권하지도 않았을 텐데.
“아이는 아니라더니, 걱정은 되나 보군.”
불가람이 묘하게 흥이 실린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는 작게 웃었다.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부디, 탈 없이 이겨냈으면 좋겠다.
***
윤채하는 눈을 떴다.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은 고급스럽고,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방이었다.
은은한 조명이 벽을 따라 흘러내리고, 바닥엔 빛나는 대리석이 깔려 있다.
곳곳에 놓인 골동품과 묵직한 고서, 숨 막히도록 무거운 공기.
마탑.
가장 높은 층, 예전에 한 번 방문했던 바로 그 접대실이었다.
차기 마탑 입성 후보로서, 마탑주가 직접 그녀를 초대했던 자리.
그리고, 빛나는 대리석 테이블 건너편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문제는, 마탑주가 아니었다.
주황색, 아니 오렌지에 가까운 머리칼이 살짝 어깨를 스친다.
기품 있고 부드럽게 빛나는 눈동자, 지루하다는 듯, 그러나 어딘가 짙은 애정을 담은 시선이 윤채하를 바라보고 있다.
“… 어?”
윤채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 피부도, 눈빛도, 모든 것이 조금 더 성숙해 보인다.
그러나 틀림없이, 자신이 아는 얼굴이다.
오렌지빛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가슴 한쪽이 떨렸다.
“나…?”
윤채하, 자신이었다.
믿기지 않는 현실.
책상에 앉은 그녀, 아니 윤채하는 입을 열었다.
“안녕? 여기에 앉을래?”
윤채하, 그러니까 작은 윤채하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이내 큰 윤채하가 손을 내밀어 작은 윤채하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미묘하게 따스한 손길. 이상하게 싫지 않다.
오히려, 살짝 위로받는 느낌에 가까웠다.
“우리 이야기 좀 할까?”
대화를 하고 싶은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윤채하는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좋아, 역시 나 닮아서 똑똑하네. 음…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큰 윤채하가 작은 윤채하에게 다가왔다.
몸을 바짝 붙이며 속삭이듯 질문했다.
“—— 묵귀 씨를 사랑해?”
예상하지 못한 질문.
심장 한쪽이 세차게 두근거린다.
그 사이로, 큰 윤채하의 눈동자는 아까보다 조금 더 진한 붉은 빛을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