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31 lines
12 KiB
Markdown
331 lines
12 KiB
Markdown
|
|
나는 여관홀에 앉아 녹은 치즈를 스푼으로 떠 입에 넣었다.
|
|
|
|
수도가 봉쇄된 상황에 맞지 않는 느긋한 모습이었지만, 일반인 입장에선 사실 이게 당연했다.
|
|
|
|
나는 황위 계승 싸움의 관련자도 아니고 심지어 귀족도 아니었다.
|
|
|
|
평상시야 귀족이 압도적으로 편하고 평민은 바닥에 깔린 돌무더기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일종의 비상시국.
|
|
|
|
잘못 찍혀 목숨이 날아갈까 벌벌 떠는 건 어디까지나 높으신 분들인 것이다.
|
|
|
|
한낱 평민은 일상을 영유하면 됐다.
|
|
|
|
수도를 봉쇄한 명분이 황제 독살 의혹이니 더더욱 그랬다.
|
|
|
|
황제 독살을 해도 높으신 분들이 하지, 평민이 황제 독살을 왜 하겠는가. 해도 그 어떤 득도 안 생기는데.
|
|
|
|
거기에 2황자도 진짜 황제가 독살됐다고 믿어 수도를 봉쇄한 게 아닐 거였다.
|
|
|
|
그건 어디까지나 명분이고 지금쯤 다른 계승자들을 잡아다 숙청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
|
|
|
|
즉 이건 이해관계자가 아니면 신경을 꺼도 되는 일이었다.
|
|
|
|
우리는 우유나 마시고 치즈나 먹으면 됐다.
|
|
|
|
나는 우유를 한잔 들이켰다.
|
|
|
|
그러자 크리스가 속삭였다.
|
|
|
|
“루이나 님. 우리 어떻게 해?”
|
|
|
|
“제가 아까 설명했잖아요. 저희는 수상한 짓만 안 하면 괜찮다니까요.”
|
|
|
|
“그거 말고, 이러면 악신의 사제와 혈투를 벌인 루이나 님의 인기가 식어버려.”
|
|
|
|
“그 얘기였나요.”
|
|
|
|
확실히 황제 독살 소문이 돌고, 수도가 봉쇄된 지금 내 이야기는 가십거리도 못 됐다.
|
|
|
|
압도적인 충격 앞에선 모든 게 의미 없어지는 이치였다.
|
|
|
|
“이미 투자 다 끝냈는데….”
|
|
|
|
“가끔은 돈을 날릴 때도 있는 법이죠.”
|
|
|
|
“잉잉.”
|
|
|
|
크리스가 우는 소리를 냈다.
|
|
|
|
“잉잉잉.”
|
|
|
|
아니, 진짜로 우는 거였다.
|
|
|
|
이 돈에 미친 서큐버스는 돈을 잃어버리면 우는구나.
|
|
|
|
덕분에 플로라가 죽었을 때 크리스가 얼마나 슬펐는지 대충 알게 됐다.
|
|
|
|
돈을 잃어버렸을 때만큼 슬펐던 거구나?
|
|
|
|
확인.
|
|
|
|
“혹시 제2 황자가 황제를 암살한 건 아닐까요?”
|
|
|
|
제리가 작게 중얼거린다.
|
|
|
|
나는 방음 마법의 상태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
|
|
|
“아닐걸요. 이번 반란은 우연히 황제가 죽은 상황에 탑승한 거예요.”
|
|
|
|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
|
|
|
“만약 그 정도로 계획적이었으면 수도 봉쇄를 할 리가 없잖아요. 일이 터지기도 전에 계승권자부터 확보할 테니까요.”
|
|
|
|
간단했다.
|
|
|
|
그만큼 치밀하게 준비했으면 일이 시작과 동시에 끝났을 테니까.
|
|
|
|
즉 혼란스러운 이 상황 자체가 제2 황자의 결백을 증명했다.
|
|
|
|
“게다가 2황자 입장에서는 황제가 최대한 오래 사는 게 좋죠. 시간이 지날수록 유능한 2황자가 유리해지니까요. 하던 대로 하면 황위를 계승 받을 확률이 높은데, 굳이 리스크를 짊어지고 황제를 암살한 후 반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잖아요.”
|
|
|
|
“그렇군요.”
|
|
|
|
제리는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
|
|
|
그리고 조용히 듣고 있던 레온이 말했다.
|
|
|
|
“수도 봉쇄는 언제쯤 풀릴 거 같습니까?”
|
|
|
|
“글쎄요.”
|
|
|
|
레온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
|
|
|
쿠데타는 속도가 중요했다.
|
|
|
|
현대에서는 국회를 빠르게 장악하는 게 중요했고, 이런 해피 중세랜드에서는 계승권자를 빠르게 없애는 게 중요했다.
|
|
|
|
그렇기에 아무리 길어도 며칠이면 봉쇄가 풀릴 거였지만, 나도 정확히는 몰랐다.
|
|
|
|
워낙 변수가 많은 일이라.
|
|
|
|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요? 느긋하게 있죠.”
|
|
|
|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 해봤자 하나였다.
|
|
|
|
빠르게 상황이 마무리되는 걸 기다리는 것.
|
|
|
|
그전에는 어차피 황도에서 벗어나는 것도 안 되는―.
|
|
|
|
“봉쇄가 풀렸다.”
|
|
|
|
“진짜?”
|
|
|
|
“진짜야.”
|
|
|
|
사람들이 웅성댄다.
|
|
|
|
대화 내용을 듣던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
|
|
|
벌써 봉쇄가 풀렸다고?
|
|
|
|
“아니. 봉쇄가 풀린 게 아니야. 사람들을 통제하던 병사들이 전부 성 밖으로 빠져나간 것뿐이잖아.”
|
|
|
|
“그게 그거잖아 이 인간아. 막을 사람이 없어졌으면 당연히 봉쇄가 풀린 거지.”
|
|
|
|
주변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감시하던 병사가 사라져 자유로워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말을 보태기 시작한 탓이었다.
|
|
|
|
병사들이 전부 성을 빠져나갔고? 흠.
|
|
|
|
“뭔가 일이 터졌나 보네요.”
|
|
|
|
“어떤 일?”
|
|
|
|
크리스의 질문에 나는 신중히 설명했다.
|
|
|
|
“수도를 봉쇄하는 건 제2 황자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야 원하는 사람들을 붙잡아둘 수 있으니까요.”
|
|
|
|
“근데 풀었잖아. 아.”
|
|
|
|
“네. 봉쇄할 이유가 사라진 거죠. 붙잡아둘 사람들이 더는 수도에 없어서요.”
|
|
|
|
풀어 설명하면 그거였다.
|
|
|
|
수도를 봉쇄하는 데 사용된 병사까지 빼갈 정도로 급한 일이 2황자에게 터진 거였다.
|
|
|
|
“1황자가 도주에 성공했나 보네요.”
|
|
|
|
“루이나 님. 이제 진짜 어쩔 거야?”
|
|
|
|
“네? 어쩌다니요?”
|
|
|
|
정말 이해가 안 돼 되물었다.
|
|
|
|
어쩔 거냐니, 그건 왜 묻지?
|
|
|
|
“상황이 달라졌잖아. 혹시 생각이 바뀌었나 해서.”
|
|
|
|
“2황자의 상황은 달라졌지만 제 상황은 그대로인데요?”
|
|
|
|
“그래?”
|
|
|
|
“그럼 제가 2황자에게 복수하겠다고 1황자를 돕기 위해 뛰쳐나갈 줄 알았나요.”
|
|
|
|
“…정말 솔직히 말하면 그럴 줄 알았어.”
|
|
|
|
나는 느긋하게 웃었다.
|
|
|
|
“그런 짓을 제가 왜 해요. 그래서 제게 무슨 득이 된다고요.”
|
|
|
|
“하지만 성은을 빼앗겨서 계속 중얼거렸잖아. 당연히 신경 쓴다고 생각하지.”
|
|
|
|
“크리스 님은 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대상인의 자질을 가졌어요.”
|
|
|
|
나는 입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
|
|
|
“저희는 살짝 더 눈치를 보다가 빠르게 황도를 벗어나요. 얼른 성배 찾으러 가야죠.”
|
|
|
|
*
|
|
|
|
헤이즈는 제2 황자를 싫어했다.
|
|
|
|
사실 제2 황자를 좋아하는 황실 인물은 드물었다.
|
|
|
|
2황자는 황위 계승을 향한 야욕을 숨기지 않았고, 그렇기에 2황자가 황위를 계승할 시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
|
|
|
|
단 하나의 불안도 남기지 않는 대대적인 숙청.
|
|
|
|
그런 성격이었다. 제2 황자는.
|
|
|
|
그래서 8황녀 타시아 에테르노를 모시는 헤이즈는 2황자의 일을 몰래 방해하곤 했다.
|
|
|
|
어떨 때는 대놓고 방해했다.
|
|
|
|
계승 순위가 한참 뒤인 타시아가 황위를 계승할 일은 없으니, 황제가 됐을 때 가장 위험한 인물을 견제한 것이다.
|
|
|
|
“타시아 님. 괜찮으십니까?”
|
|
|
|
“나는 괜찮아 헤이즈. 계속 달려.”
|
|
|
|
타시아를 뒤에 태운 헤이즈는 말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
|
|
|
헤이즈와 타시아가 황궁을 벗어날 수 있던 건 운이 좋아서기도 했고, 평소에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모의 훈련을 해본 덕이기도 했다.
|
|
|
|
사건이 터지자마자 헤이즈와 타시아는 1황자를 찾았다.
|
|
|
|
그리고 비밀 통로로 도망가려는 1황자와 함께 황궁을 벗어났다.
|
|
|
|
다른 인물도 몇 명 끼어들어서 꽤 규모가 커졌지만, 1황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줬다.
|
|
|
|
행적이 들킬 게 뻔하니 덩치라도 급하게 키운 것이다.
|
|
|
|
헤이즈는 선두에서 달리는 1황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
|
|
|
현재 1황자는 군데군데 배치된 2황자의 병사들을 요리조리 피해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방위군으로 이동 중이었다.
|
|
|
|
그곳에 도착만 하면 1황자의 승리였다.
|
|
|
|
제국군은 정당한 계승자인 1황자의 명령을 들을 테고, 아무리 남부군이 강력해도 제국군 전체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
|
|
|
빠르게 1황자를 확보해 2황자가 황위를 계승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은 이상 이건 애초에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
|
|
|
그걸 2황자와 남부군도 알았기에 1황자의 신변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 거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
|
|
|
그리고 이 일련의 흐름에서 헤이즈는 현재 발생한 반란이 계획된 게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
|
|
|
만약 사전에 계획됐다면 1황자의 신변부터 확보하고 일을 저질렀을 테니 말이다.
|
|
|
|
헤이즈는 말의 고삐를 꽉 쥐었다.
|
|
|
|
앞으로 조금이었다.
|
|
|
|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수도 방위군의 주둔지에―.
|
|
|
|
“오르핀 님. 계속 전진하십시오.”
|
|
|
|
헤이즈는 낮게, 허나 묵직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
|
|
|
오르핀의 옆에서 같이 달리던 기사 하나가 검을 뽑으며 말에서 내렸다.
|
|
|
|
기사가 읊조린다.
|
|
|
|
“다린. 감히 네가 황제 폐하를 배신하는 것이냐?”
|
|
|
|
“이봐 에즈론, 내 황제는 하나뿐이야. 몇 년 전부터 그랬어.”
|
|
|
|
“이, 반란자가.”
|
|
|
|
헤이즈는 말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 둘을 스쳐 지나갔다. 직후.
|
|
|
|
콰아아앙―! 황실 기사단장과 남부 사령관의 검이 맞부딪히며 세상이 울렸다.
|
|
|
|
몸이 떨리는 충격 속에서 헤이즈는 이를 악물었다.
|
|
|
|
스승님.
|
|
|
|
스승님이 있는 곳으로 가야 돼.
|
|
|
|
헤이즈는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
|
|
|
헤이즈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은 2황자가 황제가 되는 거였다.
|
|
|
|
그러나 봐라. 헤이즈가 생각했던 최악은 최악이 아니었고, 진짜 최악이 현실에 강림했다.
|
|
|
|
반란이라니.
|
|
|
|
어째서 이런 미친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것일까?
|
|
|
|
헤이즈는 현재 도주 중인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
|
|
|
1황자, 5황자, 7황자, 4황녀, 8황녀.
|
|
|
|
1황자 빼고는 계승 순위가 바닥에 박힌 사람들뿐이었다.
|
|
|
|
2황자는 이런 사람들마저 전부 죽이고 황위를 손에 넣어야 속이 풀리는 걸까?
|
|
|
|
헤이즈는 속으로 소망했다.
|
|
|
|
제발.
|
|
|
|
스승님에게 도착할 때까지 별일이 없기를.
|
|
|
|
“어딜 그리들 가시나.”
|
|
|
|
능글맞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
|
|
|
순간 헤이즈는 고삐를 잡은 손에서 힘이 빠질 뻔했다.
|
|
|
|
말의 속도를 늦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
|
|
|
앞을 가로막은 군대에 헤이즈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
|
|
|
제2 황자, 이사크 에테르노가 병사를 거느린 채 앞으로 나섰다.
|
|
|
|
“형은 황제에 어울리지 않아. 그 자리는 형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앉아도 되는 자리가 아니야.”
|
|
|
|
“이사크.”
|
|
|
|
제1 황자, 오르핀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
|
|
|
그에 맞춰 오르핀과 다른 황족을 따르던 기사들이 말에서 내려 검을 뽑았다.
|
|
|
|
헤이즈도 마찬가지였다.
|
|
|
|
“타시아 님. 잠시 기다리세요.”
|
|
|
|
“…….”
|
|
|
|
타시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
헤이즈는 타시아에게 고삐를 쥐여주고 몸을 돌렸다.
|
|
|
|
이사크를 따르는 남부의 기사들이 하나둘씩 전투태세를 갖추며 몸을 풀었다.
|
|
|
|
헤이즈는 그중 얼굴에 기다란 자상이 난 기사와 마주 보며 마법을 발동했다.
|
|
|
|
연단 마법이 검날을 덧씌우고, 갈색 눈동자가 초록색으로 물든다.
|
|
|
|
동시에 두 번째 검이 뽑혀 나와 허공에 떠올랐다.
|
|
|
|
그 광경에 흉터남이 사납게 웃었다.
|
|
|
|
“재밌는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
|
|
|
“…….”
|
|
|
|
그걸 기점으로 남부의 기사는 황도의 기사에게, 이사크는 오르핀에게 달려들었다.
|
|
|
|
아수라장의 한가운데에서 흉터남은 비스듬히 검을 내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
“우리도 시작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