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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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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황자, 이사크 에테르노는 후처의 아들이었다.

제국은 법률상 후처의 아들에게도 계승권이 존재했다. 오히려 본처의 아들과 큰 차이가 없었고, 때문에 이사크는 존중받는 삶을 살았다.

계승권이 존재하는 황자란 언젠가 황제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이니까. 존중받는 삶을 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이사크는 꿈이 컸다. 하고 싶은 게 뚜렷했다.

제국을 살아가는 남자라면, 특히 초대 황제의 일화를 접한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그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나도 초대 황제처럼 되고 싶다.

물론 다른 이들과 다르게 이사크는 초대 황제의 피를 정당하게 이었다. 무려 계승권 2위로 진하게.

이건 굉장히 큰 차이였다.

망상이 망상으로만 끝나는가, 현실성을 갖추는가의 차이였으니까.

제국에게 남방의 야만족은 늘 골칫거리였다. 시도 때도 없이 국경을 넘어와 약탈을 시도하는 야만족이 제국은 상당히 거슬렸고, 이사크는 그 점을 정확히 이용했다.

제국 남방에 가 군대를 직접 지휘하고, 때때로 선봉에 서 야만족을 박살 낸 것이다.

그 덕에 이사크는 제국 남부군의 강력한 지지를 얻게 됐다.

수년간 야전에서 구르며 얻은 값진 성과였다.

기어코 야만족의 나라를 반으로 쪼개고, 앞으로 수십 년간 야만족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든 이사크는 백마에 올라탄 채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거리를 메운다.

개선 행진은 이걸로 두 번째였지만,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저 환호성을 계속 받고 싶다.

영원히.

“이사크 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로데릭도 고생 많았어.”

이사크는 수도에 남겨놨던 가신의 도움을 받아 배정받은 별궁으로 돌아갔다.

별궁의 방에 들어간 이사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쉬고는, 이내 방에 쌓인 물건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건?”

“성금(星金)으로 만든 잔입니다. 위성배라는 별명으로도 부르죠.”

“정말 개나 소나 성배라는 이름을 가져다 쓰는구나. 특징은?”

“그곳에 물을 담아 마시면 종일 몸이 따뜻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밤에 빛납니다.”

“정말 쓸데가 없구나.”

이사크는 위성배를 대충 던져서 물건 더미에 쌓으려다, 살포시 테이블에 올렸다.

이 물건의 용도를 떠올린 것이다.

입맛을 다시던 이사크는 물건들을 훑어보다가, 한 곳에 시선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건?”

“성은(星銀)입니다.”

“성은이라고? 저게?”

색을 보고 혹시나 하긴 했지만 정말 성은이었을 줄이야.

이사크는 나직이 감탄했다.

“저런 크기의 성은이 존재하긴 했어?”

“저도 놀랐습니다.”

“용케 구했네. 어떻게 구했어?”

“…….”

“설마 훔쳤어?”

이사크는 로데릭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로데릭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어디서 훔친 거야.”

“연금술 길드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걸렸습니다.”

“연금술 길드? 허어.”

이사크는 턱을 쓰다듬었다.

“로데릭 너도 알지? 아무리 나라도 연금술 길드 같은 곳을 계속 건드리면 정치적 부담이 상당해.”

“몇 년간 조심히 준비한 꼬리를 썼습니다. 증거가 전혀 남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아니 뭐, 그래. 어차피 지금은 긴급 상황이니까. 조금 과격해도 수를 쓰긴 해야지.”

오히려 지금 쓸 게 아니면 꼬리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이사크는 테이블을 툭툭 치며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물었다.

“제1 황자는?”

“여전합니다.”

“무능하단 소리네.”

이사크는 신랄한 평가를 내리고 혀를 찼다.

솔직히 제1 황자, 오르핀 입장에서는 이사크의 평가가 억울할 수 있었다.

그는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모든 일은 상대적인바.

평범과 수재 어딘가에 있는 오르핀은 이사크에 비하면 확실히 무능한 게 맞았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황위를 이어받다니. 제국을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이사크 님이라면 제국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이사크는 제국을 위대하게 만들고 싶었다.

먼 옛날 초대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확실하게.

자신도 있었다.

비록 초대 황제처럼은 힘들어도, 그 언저리는 따라갈 자신이 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원하는 대로 안 되기에 세상이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선택이 없다면 그 모든 건 한낱 꿈에 불과했다.

“아버지를 봬야지.”

“준비하겠습니다.”

이사크는 방에 쌓인 선물을 들고 황제를 만나기 위해 별궁을 나섰다.

본궁은 황궁의 중앙에 위치했다.

본궁을 가로지른 이사크는 알현실을 지나, 집무실을 넘어, 한 방에 도착했다.

킁. 숨을 들이쉰 이사크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날카로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들어오시랍니다.”

시종장의 말에 이사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굉장히 넓은 방 안엔 거대한 침대가 있었는데, 그 위에 누운 한 남자가 이사크에게 말을 걸었다.

“원정은 어땠지.”

“제국이 왜 제국인지 야만인들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왔습니다.”

“잘했다.”

힘없는 목소리에 이사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좋지 않았다.

이사크는 천천히 물었다.

“병상에 누우신 지 며칠째입니까.”

“며칠 안 됐다.”

“최근 드러눕는 일이 많아지셨는데, 정말 괜찮으십니까? 아버지.”

“당연히 괜찮고 말고, 콜록.”

기침을 하는 황제에게 사람들이 달라붙어 약을 먹인다.

약과 물을 식도로 넘긴 황제는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뭘 그리 잔뜩 가져왔느냐.”

“아버지의 건강을 기원하는 물건들입니다.”

이사크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려 로데릭이 모아온 물건을 방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러다 유독 눈에 띄는 거대한 광석을 직접 들고 황제의 앞에 섰다.

“성은입니다.”

“그게 성은이라고? 직접 손에 넣은 건가?”

“물론입니다. 이 크기면 일반 성은의 몇 배나 되는 힘을 간직했겠죠. 가공할 것도 없이 이걸 침대로 쓰면 될 겁니다.”

“오오. 역시 내 아들이야. 시종장! 당장 저걸 내 침대로 만들게!”

“알겠습니다.”

황제의 명령 한 마디에 분주하게 새로운 침대가 만들어졌다.

대체 언제 준비한 지 모를 화려한 장식과 나무 틀이 구석에 쌓이는 가운데, 문득 이사크는 이 모든 일이 촌극처럼 느껴졌다.

황제는 이사크가 바라는 게 뭔지 안다. 뭘 바라고 이렇게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지 안다.

이사크는 황제가 알고 있다는 걸 안다. 저 음흉한 아버지가 모를 리 없다는 걸 세상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서로 속을 전부 까놓고, 서로의 바람을 전부 까놓고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허나 이사크와 황제는 마치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어긋난 상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황제는 이사크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는다. 설사 지금 가져온 성은이 황제를 치료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황태자는 1황자일 거고, 이사크는 계승권 2위의 황자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게 너무나 불쾌해, 이사크는 빠르게 인사하고 침실을 벗어났다.

[그러게 누가 둘째로 태어나래? 조금 더 노력해서 한 5개월 먼저 태어났으면 네가 제1 계승자잖아.]

“닥쳐.”

야전을 구르며 배운 욕설을 뱉은 이사크는 허리춤에 찬 검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들기고 걸음을 옮겼다.

이 에고 소드는 다 좋은데 가끔 사람의 속을 박박 긁어서 문제였다.

그래도 덕분에 머리가 좀 정리됐다.

아직 모든 게 결정된 건 아니다.

실제로 이사크의 성과가 높아질수록 황제도 흔들리고 있었다.

기어코 야만족을 반으로 쪼개버린 성과가 수도를 울렸을 때는, 황제가 진지하게 황태자를 바꿀 고민을 했다고 들었다.

비록 황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으나 괜찮았다.

이대로 한 1년, 아니. 반년만 지나도 이사크는 황제의 마음을 바꿀 자신이 있었다.

반년. 딱 반년이다.

그동안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해 황제의 마음을 바꾸면, 이사크의 승리―.

“뭐라고 했지?”

“황제 폐하께서 신들의 정원으로 떠나셨습니다.”

이른 아침. 이사크는 남부 사령관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황제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럴 리가. 분명 며칠 전만 해도 아버지는 멀쩡히 나와 대화를….”

“이사크 님.”

남부 사령관은 진중한 태도로 이사크를 불렀다.

이사크는 남부 사령관과 눈을 마주쳤다가, 각오를 다진 눈빛에 눈치챘다.

“설마.”

“저희가 개선 행진을 하기 위해 수도에 입성한 순간에 황제 폐하께서 세상을 떠나다니. 단순히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공교롭군요. 저는 이게 하늘의 뜻이라고 봅니다. 일을 벌이려면 지금이 최적입니다.”

남부 사령관의 선언에 이사크는 ‘그건 미친 짓이야’라든가, ‘내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왜’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읊조렸다.

“상황은?”

이사크의 아랫사람이 하는 일은, 결국 이사크가 원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만큼 단단한 신뢰 관계로 묶여 있었다.

남부 사령관이 말했다.

“수도를 장악하고 수도 근처에 포위망을 형성했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물론 다른 황위 계승자들도 잡아들이는 중입니다. 명분은―.”

“황제 폐하 피습…은 너무 과하고, 독살 의혹 조사면 되나?”

이사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린 경.”

“하명하시길.”

“전부 내 앞에 잡아 와. 특히 황태자는 반드시.”

“알겠습니다.”

원하는 건 직접 손에 넣어라.

언젠가 아버지가 해준 말을 되새기며 이사크는 별궁을 벗어났다.

이제 둘 중 하나였다.

죽거나.

황제가 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