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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제국의 황태자는 제1 황자, 오르핀 에테르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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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친근한 이미지를 유지했는데, 그 덕에 현재 제국민 사이에서 오르핀의 인기는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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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황태자로 선정되기도 했고 인기도 많았으니 변수만 없다면 오르핀이 황좌에 오르는 건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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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세상은 변수투성이인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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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핀의 황위 계승엔 커다란 변수가 2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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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 야만족과의 분쟁에서 큰 성과를 올려 제국 남부군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제2 황자 이사크 에테르노와, 어린 나이에 고유 마법을 손에 넣어 마법사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제3 황자 네오트 에테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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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명의 커다란 변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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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 밖의 다른 황자들도 눈에 불을 켜고 황위를 노리는 중일 수 있지만, 일반인에게 알려진 정보는 저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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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말해 제1, 2, 3 황자와 제1, 2, 3 황녀 말고는 일반인은 이름조차 모르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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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황자님이 성배를 손에 넣은 게 정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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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소문이 꽤 구체적입니다. 거기에 저 말고 다른 성기사들도 수도를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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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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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가 누군가의 소유물일 거라는 건 진작 예상한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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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무의식적으로 성배의 소유주가 없을 거라 가정하고 탐사 계획을 짰지만, 나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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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성배 같은 보물은 늘 피를 몰고 다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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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별개로 제2 황자가 성배를 소유 중이라니 안 믿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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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뜬금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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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재물은 제국에 모였고, 황실은 그 제국의 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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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논리적으로 따지면 황실이 성배를 보유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웠지만, 그냥 안 믿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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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별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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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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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미지? 루이나 님은 은근 이상한 걸 신경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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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황자 같은 군인 타입은 성배가 아니라 에고 소드를 손에 넣는 이미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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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헛소리인데, 또 은근 말 되네. 제1 황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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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드래곤의 알을 얻는 타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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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돼 말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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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깔깔대며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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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나랑 감성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는 크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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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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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이라 해도 아룡이라 크게 강하진 않아야 돼요. 살짝 연설할 때 하늘에서 날아오며 환호성을 받는 용도지, 전투용은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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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기 때 아룡이 희생하고, 제1 황자가 각성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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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건 거기에서 아룡이 각성하는 거예요. 누군가의 죽음으로 강해지다니. 장의사도 아니고 그게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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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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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 하실 말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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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시선이 느껴져 물었지만,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할 말이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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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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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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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제3 황자는 금서를 가지고 있을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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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은 황실 모독죄로 잡혀갈 말만 골라서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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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방음 마법을 빡빡하게 해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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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테이블 위 등불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에 반응해 소리를 먹어 치우던 불꽃이 배를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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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정상적으로 작동 중인 걸 확인한 나는 말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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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3 황자가 가지고 있던 금서로 대사건이 벌어져 황위 계승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예요. 최종 승자는 조용히 여자를 쫓아다니던 제5 황자쯤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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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다음 권 언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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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연극으로 만들어서 팔까요? 크리스 님 돈 좋아하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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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오래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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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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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은 이쯤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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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가장 큰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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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출처가 어떻게 되나요. 진짜 제2 황자가 성배를 가지고 있어도 그걸 자랑하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아니면 혹시 성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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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공식적인 답변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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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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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출처는, 큼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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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목을 풀었다. 뭔가 싶어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레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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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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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만이 오직 세상을 비추는 가운데, 나는 술에 거나하게 취해 길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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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엿 같은 세상, 왜 나만 이 모양 이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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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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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온의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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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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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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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요. 지금 이게 뭐죠? 연극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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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식으로 얘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그대로 따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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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의 펍은 굉장히 재밌는 곳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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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펍에서 죽치면 누군가 연극도 하고 노래도 하고, 지루할 일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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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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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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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엿 같은 세상, 왜 나만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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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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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에 치여 사니 인생의 낙이 술밖에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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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자 화려한 황궁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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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신 초대 황제의 혈통이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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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곳에서 사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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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적어도 저택에서 살아보고 싶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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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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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황궁에 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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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아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개선 행진 때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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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황자님, 이사크 님의 수행원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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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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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황궁 쪽으로 이동했다. 반쯤은 술에 취해서 그랬고, 반쯤은 묘한 예감을 느껴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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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사크 님의 수행원이 넘어지며 손에 든 상자가 땅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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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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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만 가득하던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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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안에서 튀어나온 빛나는 컵을 허겁지겁 챙긴 수행원은 재빨리 황궁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저게 뭔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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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초대 황제의 동료. 그분의 뼈로 만들어진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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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가 세상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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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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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와 내가 박수를 치자 레온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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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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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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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미묘해요. 조금 더 감정을 싣는 법을 배우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이야기 구성이 늘어져요. 저라면 관심 없는 술주정뱅이의 독백으로 내용을 채우는 게 아니라 짧고 굵게 제2 황자의 수행원이 넘어지는 부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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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물어본 건 다른 겁니다. 이게 성배 소문의 출처인데,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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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를 서고 봐도 성배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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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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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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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말고도 목격자가 꽤 있습니다. 전부 비슷한 증언입니다. 이래도 못 믿는 겁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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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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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이야기를 한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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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람의 기억은 자기 멋대로라. 스스로에게 편한 방향으로 조작하는 경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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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진실한 사람이냐, 거짓된 사람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의 뇌가 원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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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똑같은 증언을 했다고? 뭐, 빛나는 무언가가 떨어진 건 봤겠지. 거기까진 맞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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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빛나던 물체가 잔 형태였다고 확신하는 건 조작된 기억일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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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성배 연극을 보며 ‘맞아. 나도 그때 잔 형태의 무언가를 봤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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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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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가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되는 거라서요.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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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이야기는 거짓이라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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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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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나는 가능성을 얘기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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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가 찾아와 ‘루이나 님. 제2 황자가 성배를 가지고 있다와 없다. 둘 중 뭐를 고를래? 틀리면 모든 마법을 잃어.’ 따위의 제안을 한다면 없다 쪽에 걸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면 굳이 확언하기 싫은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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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단서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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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레온 님은 제2 황자가 성배를 가지고 있으면 곤란하지 않아요? 무슨 방법으로 얻게요. 뺏을 수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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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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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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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성배의 소유주가 이미 있을 경우를 진지하게 상정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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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황자가 아니더라도 저는 성배는 누군가의 소유물일 거라 생각하거든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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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협상을 해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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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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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지 못하게 다시 잘 협상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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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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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성배는 본디 교국의 것이니 돌려받아야 된다고 했다면 나는 즉시 대상인 크리스 루트로 갈아탔을 거다. 미래가 없는 주식은 빠르게 손절할수록 이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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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인간이 아니었기에 내가 레온 루트를 아직 붙잡고 있는 거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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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다른 소문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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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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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당장 할 일은 정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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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와 관련된 소문을 모으고, 정말 이사크가 성배를 소유한 상황을 대비해 협상 방안을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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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내 전문이야 루이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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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부분은 크리스 님이 해주세요. 저희는 소문을 더 모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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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역할 분담까지 끝났다. 더는 떠들 비밀 얘기도 없었기에 나는 방음 마법을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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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소리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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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워진 여관홀 안에서 나는 파이프 담배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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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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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디서 모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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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은 레온이 가니, 나는 체스 클럽을 돌아다니며 소문을 모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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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군지 정말 모르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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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라 제리. 이 로브를 보고도 눈치 못 챈 놈들이다. 말해도 알아들을 리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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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소음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여관홀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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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로브를 입은 세 명의 남자와 용병으로 추정되는 남자 한 명이 대치 중이었는데, 대화 내용만 들어선 시비가 붙은 지 꽤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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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음 마법 때문에 눈치채는 게 늦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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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싸움이 붙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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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옷에 술을 쏟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안면이 있는 사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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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생각을 내가 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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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로브를 입은 남자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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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델리안 크로프트 님의 제자다. 너 같은 떨거지 마법사랑은 위치와 재능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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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리안 크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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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익숙한 이름에 나는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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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했더니, 켈튼의 스승의 제자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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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동문을 만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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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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