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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린이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웬 인간이 자신이 품은 꿈을 까발리고, 이뤄주겠다고 천명한 거다.
믿기지 않아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루이나 님.”
“뭔가요.”
“에이린 님은 그냥 루이나 님이 이상한 인간이라 불안해하는 거 같은데?”
“그런 말을 하고 싶으면 옷부터 입으세요.”
“아차.”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는 크리스를 뒤로한 채 에이린에게 설명했다.
“확인할게요. 에이린 님은 세상을 직접 겪으며 알아보고 싶은 거죠?”
“맞다.”
요정족은 폐쇄적인 종족이다. 외부와의 접촉을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자생하는 종족.
이런 종족이 자유롭게 외부를 돌아다닐 수 있으면 그건 이미 폐쇄적인 게 아니었다.
요정족의 이런 선택엔 세계수의 영향이 지대했는데, 사실 세계수를 그 무엇보다 중요히 생각하는 요정족이 세계수와 멀어지는 선택을 고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했다.
“어떻게 나를 밖으로 데려간다는 거지?”
에이린이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요정족과 연을 끊고 탈주하면 모를까. 그러지 않고 규율을 중시하는 와중엔 소망을 들어주기 어려운 탓이었다.
근데 그건 일반적인 경우고.
나는 다르다니까?
“밖으로 데려간다는 말은 안 했는데요?”
“그게 무슨―.”
“자리에 앉아보세요.”
“이미 앉았다만?”
이것으로 모든 조건이 완성됐다.
나는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다음.
에이린의 이마를 톡 밀었다.
“어?”
“좋은 여행 되세요.”
뒤집혔던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오자마자 에이린은 몸을 낮추며 정령술을 발동했다.
살아 움직이는 불꽃이 꺄르륵 웃음을 터트리며 주위를 돌아다니고, 전투태세를 갖춘 상태에서 에이린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숲속?
몸을 원래대로 일으킨 에이린은 곧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봐! 이게 무슨 짓―.”
꺄아아악!
그리고 갑작스러운 비명에 멈칫했다.
당황한 것도 잠시. 에이린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땅을 박찼다.
바람의 정령이 에이린을 받친다. 하늘을 날듯 바람길을 밟으며 목표 지점에 도착한 에이린은 웬 도적 무리가 마차를 감싸고 있는 걸 발견했다.
습격인가.
전형적인 광경에 에이린은 한숨을 쉬었다.
탓. 마차 위에 올라탄 에이린을 향해 도적들이 소리친다.
“뭐야 저건.”
“호위 인원인가?”
“기사다!”
에이린의 본질은 기사보다 마법사에 가까웠지만, 저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오랜 삶을 살다 보면, 검 정도는 누구나 다룰 수 있게 되기 마련이었으니까.
검을 뽑자 그곳에 정령이 깃들었다. 바람의 정령이 낄낄대며 일렁인다. 마치 살아있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바람의 정령이 못 참겠다는 듯 몸을 움찔거리고, 에이린은 검을 손으로 쓸며 그대로 휘둘렀다.
직후 숲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든 적을 말살한 에이린은 마차 앞에 착지해 문을 열었다.
마차 안에는 훤칠한 미남이 꼿꼿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에이린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중얼거렸다.
“내게 악운은 남아있던 모양이군.”
이미 마부도 말도 죽어버려서 그런가. 남자는 마차를 버리듯 안에서 나왔다.
가볍게 어깨를 턴 남자는 이내 에이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칸트론이다. 구해줘서 고맙군.”
“에이린이다.”
에이린은 칸트론과 악수를 한 후 상대를 살폈다.
은발녹안. 흔하다면 흔한 조합이었지만, 에이린은 그 흔한 조합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당연했다. 자신을 이곳으로 날려 보낸 여자가 은발녹안이었으니까.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에이린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 파악이 도저히 안 됐다.
공간 이동? 설마 진짜 밖으로 이동시켜 버린 건가?
그렇다면 이건 요정족의 규율을 어기는 짓이었다.
그 미친 여자. 상의도 없이 이런 일을 벌여?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에이린은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했다.
가장 먼저 해야 될 건 역시 위치 파악이었다. 그래야 왕국으로 돌아가기 수월했으니까.
결정을 내린 에이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는 어디지?”
“이상한 걸 묻는군. 너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떠돌아다니는 중이었단 말인가?”
“질문에나 대답해.”
“대륙 동쪽이다.”
대륙 동쪽. 하필 요정족 왕국과 정 반대편이었다.
작게 혀를 찬 에이린은 금방 계획을 수립했다.
일단 대륙 서쪽으로 이동하는 걸 목표로 삼은 에이린은 바람의 정령을 꺼냈다.
그대로 칸트론을 버리고 이동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나저나 너는 귀가 특이하게 생겼군. 정말 인간이 맞나?”
―칸트론의 이상한 말에 자리에 멈춰 섰다.
방금, 저 인간이 무슨 말을 한 거지?
에이린은 차분히 질문했다.
“무슨 의도로 한 말이지?”
“아, 듣기 불쾌했나? 그럼 미안하군. 순수하게 궁금해 질문한 거지 다른 의도는 없었네.”
“그게 아니라, 왜 그런 의문을 품었냐는 뜻이다.”
에이린은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칸트론은 자신의 귀를 보고도 요정족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게 너무나도 이상했다.
이건 요정족이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이건, 그래.
물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묻는 그런 감각에 더 가까웠다.
인간, 수인족, 요정족, 소인족.
세계를 구성하는 이 네 개의 종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요정족’의 피가 흐르냐고 묻고, 고집이 강한 사람을 보면 ‘소인족’이냐고 묻고, 힘이 강한 사람을 보면 ‘수인족’이냐고 묻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세상이다.
그런 상황이다.
그런데 요정족을 모른다?
어디 산속에 갇혀 있던 게 아니면 납득이 안 됐다.
에이린은 칸트론과 눈을 마주쳤다. 칸트론은 에이린과 똑같이 눈을 마주쳤다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야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귀가 긴 인간을 보면 자연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나? 여태 살면서 비슷한 질문을 수없이 받아봤을 텐데?”
“너.”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뇌 속을 통통 튀며 돌아다니는 생각을 하나하나 잡아채던 에이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문득, 커다란 의문 하나가 삐죽 솟구쳤다.
억누르려 해도 참을 수 없는 의문 하나가.
그 의문을.
에이린은 기어코 입 밖으로 뱉었다.
“너, 요정족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나?”
그 말에 칸트론은.
“아니. 처음 듣는군. 요정족? 마치 인간 외의 종족이 있다는 듯한 단어인데, 그런 건 없지 않나?”
에이린의 의문을 완벽히 해소해 주었다.
그제야 에이린은 모든 상황을 완벽히 파악했다.
에이린은 단순히 어디 외딴곳으로 공간 이동한 게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먼 개념의 이동을 한 거였다.
에이린은.
미래로, 이동한 것이다.
요정족도, 수인족도, 소인족도 사라진 미래로.
에이린의 눈이 가라앉았다.
지금은 왕국으로 돌아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돌아갈 왕국도 안 남았다.
현재 중요한 건, 무슨 이유로 세상이 이렇게 됐는가. 그걸 파악해야 됐다.
깊게 심호흡해 감정을 가다듬은 에이린은 입술을 뗐다.
“나를 도시로, 도서관이 존재하는 도시로 안내해 줬으면 좋겠군.”
그리고 그 모든 걸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재밌게 즐기니 나도 좋네.
행복하렴 에이린.
“루이나 님.”
“네. 말하세요.”
“그래도 말은 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이거 가짜라고?”
“말해줬는데요?”
“언제?”
“처음부터요.”
나는 분명 방구석 여행을 한다고 처음부터 말해줬다.
방구석 여행이면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가짜인 게 당연하지.
방구석 경험이란 그런 거니까.
“그건…맞는 말이긴 한데, 그럼 에이린 님이 착각하고 있는 지금은 정정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그거야.”
“그거야.”
“이게 더 재밌잖아요.”
나는 많은 마법을 보유했다.
고유 마법만 따져도 이미 정상 범주를 벗어났다.
, , , , .
고유 마법만 5개라니. 그 누가 이런 상황을 상상하겠는가.
지금 내가 펼친 가짜 세상은 이 5개의 고유 마법 중 몇 개를 응용한 거였다.
가장 먼저 . 특수한 공간인 미로를 만드는 마법.
두 번째로 . 하나의 존재를 다음 단계로 끌어 올리는 마법.
이 둘이 기반이 돼 가상 세상을 만드는 기틀이 됐는데, 사실 이것만으론 지금처럼 생생한 가상 공간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의 특수성은 전투와 연관된 부분이 많았고, 이런 환영 같은 기능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탓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저 둘에 추가로 새로운 고유 마법을 덧댔다.
바로 을 말이다.
은 쉽게 설명하면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갈림길에서 고르지 않았던, 버려진 가능성.
그걸 고를 수 있게 해주는 고유 마법인 것이다.
시한부 천재 마법사가 손에 넣은 고유 마법다웠다. 건강했던 삶을 원한 끝에 얻어낸 거겠지. 어떤 점에선 과 결이 비슷했다.
하여간.
이 세 개의 고유 마법을 조합한 끝에 나는 드디어 원하던 걸 탄생시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이제 제자 육성은 걱정이 없겠네요.”
“보통 사람이 그 말을 하면 제자만 생각하는 참 스승처럼 느껴지겠지만, 루이나 님이 그 말을 하니 불순해 보여.”
“감사합니다.”
별개로 에이린의 대모험을 구경하고 있으니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현자도 미처 생각 못 한 새로운 맛의 술.
혹시 나는, 술이라는 카테고리에 너무 갇혀 있었던 거 아닐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른 떠올린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고 싶었다.
“루이나 님? 어디가?”
“정답을 찾았어요.”
“무슨 정답?”
“기다려 보세요.”
나는 궁금해하는 크리스에게 즉시 내가 떠올린 술을 만들어 보여줬다.
술잔 안에서 불꽃이 타오른다.
극도로 압축된, 초압축 불꽃을 구경한 크리스가 이마를 탁 쳤다.
“확실히 이거면 현자도 못 먹어봤겠는데?”
“그죠?”
좋아.
현자의 돌은 이제 내 거야…!
허나 다음날 아침.
술을 바치기도 전에 요정족 하나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현자님의 요구가 바뀌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이 아니라, 아르카나 체스를 가장 잘하는 사람에게 현자의 돌 제작법을 준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부동의 현자 이 녀석.
완전 제멋대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