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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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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마지막 단락
업적이 달성되며 정령 친화도가 올랐고, 그에 따라 [대지 정령의 가호] 스킬의 레벨도 올랐다.
이미 스킬에 붙은 기능은 다 개방되어 있어서, 여기서 더 레벨이 오를 줄은 몰랐는데.
그렇다고 뭔가 새로운 기능이 생긴 건 아니고, 그냥 전반적인 효과의 수치가 높아졌다.
패시브로 제공되는 방어력 수치가 오르고, 물리 데미지 감소 수치도 살짝 오른 정도.
거기에 어째서인지 내구 스탯이 추가로 상승했다.
각각의 상승치는 그리 높지 않지만, 전부 합쳐 보면 상당한 수준일 것이다.
가호에 붙어 있는 [철벽]스킬의 성능도 조금 올랐을 거다. 생각지도 못한 이득을 봤다.
“이거 은근히 지치네.”
잠깐의 쉴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 춤추는 요정들에게서 멀어져, 엘레노어의 옆에 주저앉았다.
“요정들을 접하는 것 자체가 마력을 소비하는 일이라서 그런 거다. 그만큼 어울릴 수 있는 게 대단한 거야.”
그러고 보니, 내가 엿본 기억 속의 엘레노어도 요정과 그렇게 오래 어울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마력 친화도가 높기 때문인지, 나보다는 더 버텼던 것 같지만. 새삼스레 그걸로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는다.
“그대, 내 기억을 보았지?”
엘레노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릴 적의 엘레노어가 뛰놀던 모습, 이 호수에 도착해 요정과 어울리던 모습, 그리고 성장한 뒤의 모습까지 보았다.
솔직히, 내가 정확히 어디까지 본 건지도 모르겠다. 사념은 단순히 기록물처럼 읽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엘레노어와 반쯤 동화되어 있었다.
엘레노어가 느끼던 것을 나도 똑같이 느꼈고, 엘레노어가 생각하던 것을 나도 똑같이 생각했다.
“이상한 기분이던데.”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단순히 이상한 기분이었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엘레노어는 NPC다.
7층에서부터 시작되는 진영 퀘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 시련의 탑이 창조한 공산품.
시련의 탑은 내가 있는 2661탑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탑에도 그 탑의 엘레노어가 있을 것이다. 엘레노어라는 이름은 아닐 테고, 똑같은 외형도 아니겠지만.
한없이 비슷한 모습으로, 같은 역할을 맡은 NPC가 존재하겠지.
그런 존재의 과거를 엿보고 체험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상천외한 느낌이었다.
탑의 시스템에 의해 창조된 NPC의 배경 설정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엘레노어’ 라는 독립된 존재의 과거.
정말로 엘레노어는 그냥 NPC에 불과한 걸까? 시련을 위해 준비된 일회성 존재가 맞는 걸까?
퀘스트를 모두 마치고 나면, 평범한 깡통으로 돌아가 버리는- 그런 존재가.
“좀 부끄럽구나.”
이렇게 수줍은 표정으로 미소 짓는 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사실 나도 그대의 과거를 엿보고 싶었어. 필요한 일이라지만, 내 것만 보여주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나.”
엘레노어는 살짝 한숨 쉬며 말했다. 나에게는 무척 아찔한 말이었다. 내 기억을 엿보려 했다니.
“나는 그대에게 문을 열어주었지. 문은 열린 이상 양방향으로 통하는 법이야. 나도 그대의 사념을 향해 다가갔다.”
“지금, 내 기억을 봤다는 거야?”
“그래, 보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볼 수는 없었지. 그대의 정신은 내가 넘보지 못하는 무언가로 가로막혀 있었어.”
나는 엘레노어를 가로막은 무언가가 시련의 탑의 시스템일 것이라 짐작했다.
엘레노어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기억에 동화되어 체험할 수도 없었고,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며 말을 이었다.
기껏해야 내가 리즈멜과 수련하는 모습, 그리고 혼란했던 감정 일부만을 느낄 수 있었다고.
“그리고 그 밖에는……보고도 이해하기 힘든 사념의 단편뿐이었다. 그대가 여러 세계를 넘나드는 모습이었지.”
그리고 순간 흠칫했다. 여러 세계를 넘나드는 모습이라니, 그렇다는 건.
“그대여, 시련의 탑이라는 게 대체 뭔가?”
엘레노어는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았다.
**
그로부터 이 주 정도가 지났다.
나는 아침부터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마력감응 스킬을 획득하면서 마력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 되었지만, 명상은 여전히 쉽지 않다.
느껴지는 마력의 움직임 자체가 워낙 시원찮은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감각이 많이 둔하다.
그래도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력 조작 Lv.1]
[마력 감지 Lv.1]
1레벨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마력 관련 스킬을 새로 얻었다.
마력감응이 마력의 존재를 느끼는 스킬이라면, 마력조작은 체내의 마력을 직접 움직여 활용하는 스킬이다.
그리고 체내의 마력을 방출해 주변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마력감지, 리즈멜이 수정 거미의 공격을 간파한 방법이다.
스킬이라고 해도 이건 검술 스킬과 마찬가지로, 그냥 내가 도달한 경지를 수치화한 것에 불과하다.
마력을 다루는 기술을 여럿 터득하긴 했지만, 그 수준은 아직 간신히 1레벨에 닿아 있을 뿐이라는 거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끼익!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엘레노어가 걸어 들어왔다.
“오, 이제는 안 놀라는구나. 내 기척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모양인걸.”
그 말대로, 나는 엘레노어가 오는 것을 마력감지를 통해 미리 알아차리고 있었다.
마력감지는 감각 강화 이상으로 훌륭한 탐지기가 되어 준다. 그리고 엘레노어의 존재는 유독 탐지에 잘 잡히는 편이다.
그림자 마법의 달인이면서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는 엘레노어는, 그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갖고 있으니까.
“네 기척만 간신히 느끼는 수준이야, 아직 멀었어.”
“그 정도면 무척 빠른 거다. 분명 그대는 마력강화까지 터득할 수 있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 어디……저번에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리자드맨의 유적에 들어가는 부분까지였다. 어서 말해다오.”
엘레노어는 그렇게 말하며 내 침대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것도 이젠 익숙하다.
나는 호수에서 마력감응을 깨우친 그날 이후, 엘레노어에게 꾸준히 모험담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모험담이란 당연히 내가 시련의 탑에서 보고 겪은 것들을 말한다.
나는 그날, 시련의 탑이 무엇이느냐고 묻는 엘레노어에게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사실 나는 여러 차원과 세계를 넘나들며 시련에 도전하고 있는 모험가라고.
거짓말이라고는 하지만, 탑의 시스템에 대한 부분을 빼면 사실 그렇게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한심하게 살다가 엄마의 부고를 받고 정신을 차렸다는 이야기까지 간략하게나마 말하고 말았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이야기였다.
애매한 거짓말을 할 것도 없이, 그냥 몰라도 된다는 말로 때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엘레노어의 기억을 엿보고, 호수에서 요정과 춤추었던 그 순간은 내게 여러모로 특별하게 남았다.
그러는 중 엘레노어의 정신과 마음에 무언가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내심 누군가에게 토해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저 꿈꾸는 눈동자를 그저 외면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어쨌든 엘레노어는 나이트 엘프의 후손다운 왕성한 호기심을 내보이며, 내게 넘나들어 온 차원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나는 시스템이나 NPC에 관한 부분만 제외하고, 여러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대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아. 어쩜 그렇게 새로운 것투성이인지, 어린아이 때로 돌아간 기분이야.”
엘레노어는 약혼을 깨고 자유를 찾으면, 자신도 그렇게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며 고개를 살랑거렸다.
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약혼 파기를 위한 의욕이 더해지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나는 혼자 단련에 매진하고 있을 뿐인데도, 퀘스트는 점점 진도를 빼 나간다.
**
그로부터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그다지 대단한 일은 없었다.
마력 운용에 관한 몇 가지 잡다한 기술을 손에 넣은 것과, 무기술 레벨이 조금 더 올랐다는 것 정도.
그 밖에는, 점점 다크엘프들 사이에서 나와 엘레노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엘레노어가 평소에 떠벌리고 다닌 ‘취향’ 에 내가 워낙 잘 들어맞았기에, 원래도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엘레노어와 별 연관이 없는 평범한 다크엘프들도 나를 점점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아아, 네가 엘레노어의 걔구나?”
“딱 그 애가 좋아할 것 같이 생겼네.”
“그 연하 취향을 어쩌면 좋담?”
“고생이 많겠네, 맛있는 거 줄까?”
다크엘프 특유의 인간 우호 기질도 더해져, 그냥 사람 많은 길만 지나가도 묘하게 간질거리는 시선이 쏟아진다.
뭔가, 초등학생 커플을 응원하는 듯한 느낌 절반에- 엘레노어를 변태 취급하는 느낌 절반 정도?
하이엘프의 왕자와 약혼을 맺은 상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엘레노어가 비장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여왕폐하가 우리 관계를 알게 됐다. 물론 그대가 사사로운 일을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다 정리해 놨으니.”
이게 대뜸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엘레노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대가 내 정혼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뭐든 할 준비가 되었다는 식으로 말을 마쳐 놨거든.”
“야, 잠깐, 뭐라고?”
“숲쟁이들 쪽에도 이미 선전포고를 보내 놨지. 그대는 이제 하나만 해 주면 된다. 어렵지 않을 거야.”
[에픽 : 다크엘프의 서 - 결투]
퀘스트의 진행을 알리는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내용을 눈으로 슬쩍 훑었다.
제대로 적혀 있지 않던 퀘스트 달성 조건이 정확하게 표시되었고, 보상 정보까지 간략하게 나타났다.
그렇다는 것은, 이게 7층에서 진행할 수 있는 진영 퀘스트의 마지막이라는 뜻.
다크엘프의 서, 그 첫째 장의 마지막 단락에 도달했다.
“숲쟁이 왕자 놈과의 결투에서 승리해서, 내 정혼자가 되는 거다.”
이제 다음 층으로 올라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