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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마지막 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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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이 달성되며 정령 친화도가 올랐고, 그에 따라 [대지 정령의 가호] 스킬의 레벨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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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스킬에 붙은 기능은 다 개방되어 있어서, 여기서 더 레벨이 오를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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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뭔가 새로운 기능이 생긴 건 아니고, 그냥 전반적인 효과의 수치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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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로 제공되는 방어력 수치가 오르고, 물리 데미지 감소 수치도 살짝 오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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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어째서인지 내구 스탯이 추가로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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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상승치는 그리 높지 않지만, 전부 합쳐 보면 상당한 수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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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에 붙어 있는 [철벽]스킬의 성능도 조금 올랐을 거다. 생각지도 못한 이득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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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은근히 지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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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쉴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 춤추는 요정들에게서 멀어져, 엘레노어의 옆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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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들을 접하는 것 자체가 마력을 소비하는 일이라서 그런 거다. 그만큼 어울릴 수 있는 게 대단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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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내가 엿본 기억 속의 엘레노어도 요정과 그렇게 오래 어울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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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력 친화도가 높기 때문인지, 나보다는 더 버텼던 것 같지만. 새삼스레 그걸로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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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내 기억을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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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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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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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의 엘레노어가 뛰놀던 모습, 이 호수에 도착해 요정과 어울리던 모습, 그리고 성장한 뒤의 모습까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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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가 정확히 어디까지 본 건지도 모르겠다. 사념은 단순히 기록물처럼 읽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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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순간, 엘레노어와 반쯤 동화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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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가 느끼던 것을 나도 똑같이 느꼈고, 엘레노어가 생각하던 것을 나도 똑같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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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기분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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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단순히 이상한 기분이었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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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NP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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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에서부터 시작되는 진영 퀘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 시련의 탑이 창조한 공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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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탑은 내가 있는 2661탑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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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탑에도 그 탑의 엘레노어가 있을 것이다. 엘레노어라는 이름은 아닐 테고, 똑같은 외형도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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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비슷한 모습으로, 같은 역할을 맡은 NPC가 존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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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존재의 과거를 엿보고 체험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상천외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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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시스템에 의해 창조된 NPC의 배경 설정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엘레노어’ 라는 독립된 존재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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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엘레노어는 그냥 NPC에 불과한 걸까? 시련을 위해 준비된 일회성 존재가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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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를 모두 마치고 나면, 평범한 깡통으로 돌아가 버리는- 그런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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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부끄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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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수줍은 표정으로 미소 짓는 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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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그대의 과거를 엿보고 싶었어. 필요한 일이라지만, 내 것만 보여주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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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살짝 한숨 쉬며 말했다. 나에게는 무척 아찔한 말이었다. 내 기억을 엿보려 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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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에게 문을 열어주었지. 문은 열린 이상 양방향으로 통하는 법이야. 나도 그대의 사념을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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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기억을 봤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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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보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볼 수는 없었지. 그대의 정신은 내가 넘보지 못하는 무언가로 가로막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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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엘레노어를 가로막은 무언가가 시련의 탑의 시스템일 것이라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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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기억에 동화되어 체험할 수도 없었고,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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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해야 내가 리즈멜과 수련하는 모습, 그리고 혼란했던 감정 일부만을 느낄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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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밖에는……보고도 이해하기 힘든 사념의 단편뿐이었다. 그대가 여러 세계를 넘나드는 모습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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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순간 흠칫했다. 여러 세계를 넘나드는 모습이라니, 그렇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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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시련의 탑이라는 게 대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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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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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 주 정도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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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부터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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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감응 스킬을 획득하면서 마력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 되었지만, 명상은 여전히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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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지는 마력의 움직임 자체가 워낙 시원찮은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감각이 많이 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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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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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조작 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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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감지 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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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레벨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마력 관련 스킬을 새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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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감응이 마력의 존재를 느끼는 스킬이라면, 마력조작은 체내의 마력을 직접 움직여 활용하는 스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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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체내의 마력을 방출해 주변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마력감지, 리즈멜이 수정 거미의 공격을 간파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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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이라고 해도 이건 검술 스킬과 마찬가지로, 그냥 내가 도달한 경지를 수치화한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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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다루는 기술을 여럿 터득하긴 했지만, 그 수준은 아직 간신히 1레벨에 닿아 있을 뿐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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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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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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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엘레노어가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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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제는 안 놀라는구나. 내 기척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모양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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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대로, 나는 엘레노어가 오는 것을 마력감지를 통해 미리 알아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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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감지는 감각 강화 이상으로 훌륭한 탐지기가 되어 준다. 그리고 엘레노어의 존재는 유독 탐지에 잘 잡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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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마법의 달인이면서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는 엘레노어는, 그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갖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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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기척만 간신히 느끼는 수준이야, 아직 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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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면 무척 빠른 거다. 분명 그대는 마력강화까지 터득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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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네, 어디……저번에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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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맨의 유적에 들어가는 부분까지였다. 어서 말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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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그렇게 말하며 내 침대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것도 이젠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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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수에서 마력감응을 깨우친 그날 이후, 엘레노어에게 꾸준히 모험담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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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담이란 당연히 내가 시련의 탑에서 보고 겪은 것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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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시련의 탑이 무엇이느냐고 묻는 엘레노어에게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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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여러 차원과 세계를 넘나들며 시련에 도전하고 있는 모험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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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라고는 하지만, 탑의 시스템에 대한 부분을 빼면 사실 그렇게 틀린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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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쩌다 보니, 한심하게 살다가 엄마의 부고를 받고 정신을 차렸다는 이야기까지 간략하게나마 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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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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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거짓말을 할 것도 없이, 그냥 몰라도 된다는 말로 때울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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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엘레노어의 기억을 엿보고, 호수에서 요정과 춤추었던 그 순간은 내게 여러모로 특별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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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중 엘레노어의 정신과 마음에 무언가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내심 누군가에게 토해내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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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아니면, 저 꿈꾸는 눈동자를 그저 외면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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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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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엘레노어는 나이트 엘프의 후손다운 왕성한 호기심을 내보이며, 내게 넘나들어 온 차원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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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나는 시스템이나 NPC에 관한 부분만 제외하고, 여러 이야기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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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아. 어쩜 그렇게 새로운 것투성이인지, 어린아이 때로 돌아간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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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약혼을 깨고 자유를 찾으면, 자신도 그렇게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며 고개를 살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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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약혼 파기를 위한 의욕이 더해지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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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단련에 매진하고 있을 뿐인데도, 퀘스트는 점점 진도를 빼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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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그다지 대단한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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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운용에 관한 몇 가지 잡다한 기술을 손에 넣은 것과, 무기술 레벨이 조금 더 올랐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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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는, 점점 다크엘프들 사이에서 나와 엘레노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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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가 평소에 떠벌리고 다닌 ‘취향’ 에 내가 워낙 잘 들어맞았기에, 원래도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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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엘레노어와 별 연관이 없는 평범한 다크엘프들도 나를 점점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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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네가 엘레노어의 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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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 애가 좋아할 것 같이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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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하 취향을 어쩌면 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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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이 많겠네, 맛있는 거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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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 특유의 인간 우호 기질도 더해져, 그냥 사람 많은 길만 지나가도 묘하게 간질거리는 시선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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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초등학생 커플을 응원하는 듯한 느낌 절반에- 엘레노어를 변태 취급하는 느낌 절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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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엘프의 왕자와 약혼을 맺은 상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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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엘레노어가 비장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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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폐하가 우리 관계를 알게 됐다. 물론 그대가 사사로운 일을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다 정리해 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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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뜸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엘레노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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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내 정혼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뭐든 할 준비가 되었다는 식으로 말을 마쳐 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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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잠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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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쟁이들 쪽에도 이미 선전포고를 보내 놨지. 그대는 이제 하나만 해 주면 된다. 어렵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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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 다크엘프의 서 -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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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의 진행을 알리는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내용을 눈으로 슬쩍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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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적혀 있지 않던 퀘스트 달성 조건이 정확하게 표시되었고, 보상 정보까지 간략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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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는 것은, 이게 7층에서 진행할 수 있는 진영 퀘스트의 마지막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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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의 서, 그 첫째 장의 마지막 단락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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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쟁이 왕자 놈과의 결투에서 승리해서, 내 정혼자가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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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 층으로 올라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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